이번 대회 결승 대진을 처음부터 예측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결승 무대에서 예상 외의 매치업이 벌어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매치업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바로 정종현과 이승현의 대결이 그렇다. 스타2 팬들에게 축복과 같은 빅 매치다.

네 번이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 GSL의 제왕이 다시 돌아왔다. 상대는 불과 열 여섯 살의 어린 선수다. 하지만 그 선수는 최근에 치른 경기마다 압도적인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그 돌풍이 과연, 큰 경기일수록 지지 않는 정종현에게도 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그 최강의 왕과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신예가 맞붙는다. 10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 삼성역 Coex 오디토리움 홀에서 대결을 벌일 두 선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 왕이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첫 우승은 GSL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2011년 1월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네 번의 GSL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Code A로 수 차례 떨어지기도 했다. 바로 이전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제 슬럼프가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곧장 일인자의 위엄을 보여준 선수가 바로 정종현이다.

정종현은 32강 첫 경기부터 테테전 유일한 천적인 문성원과 만났다. 상대전적은 1승 8패. 하지만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2:1로 승리한 뒤 다시 만난 최종전에서는 2:0의 압승을 거뒀다. 가장 큰 장애물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

정종현의 현재 저그전을 가장 명확히 알려주는 경기는 8강 대 강동현 전. 1세트에서 저그가 가장 아픈 타이밍만을 정확하게 찌르는 동시에 화염차로 저그의 두 확장을 동시에 말려버리는 멋진 그림을 선보였다. 3세트는 숨쉴 틈 없는 기동전을 펼치며, 4세트는 단단한 바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정종현은 변화무쌍한 판으로 무장한 '왕'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렸다.

4강전, 요즘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정윤종이 상대였다. 아무리 정종현이 다전제에 강하다고 해도 정윤종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다수가 예상했다. 더군다나 정종현의 최근 토스전 전적은 많이 침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세트가 진행될수록 정종현의 판짜기는 단단해졌다. 결국 두 선수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5세트에서 정윤종의 빠른 암흑기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틀어막으며 '왕의 귀환'을 알렸다.

GSL 4회 우승자 정종현이 이제, 5회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마지막 관문에 올라서 있다.


■ 당신이 무엇을 할지,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스타크래프트2를 즐겨 보는 사람 중에, 정종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정종왕', GSL 최초이자 유일한 4회 우승, 최초의 GSL 통산 100승 달성자. 그리고 그를 가장 잘 수식하는 표현이 한 가지 있다. '다전제 최강'.

이것은 LG-IM 팀 전체에게 해당되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LG-IM 선수가 큰 대회 결승에서 진 것은 단 두 번이다. 2011 소니에릭슨 GSL 9월 시즌에서 정종현이 문성원에게 패했고, 다른 한번은 2011 펩시 GSL 7월 시즌에서 황강호가 임재덕에게 진 것인데 이 경우는 LG-IM 내전이었다. 그러므로 한 번을 제외하고 결승이라는 무대에서 진 경험이 없는 셈이다.

이것은 LG-IM 팀과 정종현이 가진 분석 능력에 맞닿아 있다. 상대가 그 다음 경기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종현은 8강에서 강동현이 초반을 노릴지, 아니면 자원을 더 확보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맞춤 플레이를 펼쳤다. 4강에서는 내내 안정적으로 진행하던 정윤종이 최종전에서 날카로운 빌드를 준비했을 것이란 것 역시 예측하고 있었다.

정종현이 특히 강력할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가 심리전, 둘째는 최적화 능력이다. 자신이 언제쯤 변칙적인 빌드를 사용하면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언제든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심어줌과 동시에, 상황에 맞는 빌드와 병력 운용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구현한다. 더불어 정찰 싸움에서도 이긴다.

정종현의 승리 키워드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더 많은 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대로서는 상대적으로 수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한다. 상대를 자기 손바닥 위에 놓고 가장 확실한 그림을 그린다.

정종현이 '정종왕'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다.





■ "이승현은 시대를 바꾸는, 상식을 부수는 선수거든요"



안준영 해설이 남긴 말이 있다. "B급 저그는 공성모드가 되어 있을 때 들이받습니다. 하지만 A급 저그는 공성모드가 안 된 타이밍을 노리고, S급 저그는 공성모드를 풀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공성모드가 되어 있을 때 밀어버리는, S급 그 이상의 전투력을 보여주는 저그가 등장했다. 바로 이승현이다.

이승현의 아이디는 StarTale_Life. '넥라'라는 별명은 이승현이 Nex 클랜에서 활동할 때 쓴 아이디 'NEXLife'에서 생겼다. 이제 16세의 어린 나이로 올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셧다운제의 피해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온라인 경기로 진행된 ISC 한국 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셧다운 시간인 12시가 다가오자 초반 올인 러시를 시도한 뒤 게임을 패배하고 나간 일화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관련기사] '아, 셧다운제...' 프로게이머 이승현, 셧다운때문에 경기 포기

유망주로만 불리던 이승현이 받은 첫 번째 스포트라이트는 5월 29일 GSTL 경기일 것이다. 팀리퀴드와 대결을 벌인 12강 경기에서 올킬을 기록한 것. 그 후 이승현은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32강에서 최강급 저저전을 선보이며 임재덕을 2:0으로 완파, 그리고 박진영과의 경기에서도 수준 높은 명경기 끝에 2:0 완승을 거둔다.

이승현의 현재 '포스'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16강 안호진과의 경기와 8강 경기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여기에서 이승현은 저그가 테란을 가장 처참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장면이 어떤 것인지를 현실로 보여주었다.

4강 대결, 정종현이 이미 결승에 다다른 뒤 '태자' 윤영서와의 승부가 펼쳐졌다. 윤영서 역시 지금껏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결승에서 왕위계승전을 벌이겠다는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모두 팽팽한 승부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넥라의 폭풍은 한 차원 위에 있었다. 윤영서를 세 경기 내내 점막조차 제대로 밟지 못하게 하며 3:0, 셧아웃을 달성한다.

'시대를 바꾸는 저그',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식어였다.


■ 압도적인 피지컬, 저그의 새 패러다임



저그가 가진 공통적인 숙제가 있다. 군락까지 어떻게 가느냐. 얼마나 많은 가스를 확보해서 강력한 군락 유닛으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느냐가 그것이다. 스타1 시절과 마찬가지로, 모든 저그들에게 '가스를 어떻게 쓰느냐'는 여전한 화두다.

그런 의미에서 저글링은 현재를 팔아서 미래를 사는 유닛이고, 맹독충과 바퀴 그리고 뮤탈리스크는 미래를 팔아서 현재를 사는 유닛이다. 저글링 위주로 초중반을 버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 당장을 버티기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일반적인 저그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한다. 앞서 말한 초중반 가스 유닛들을 한두 가지 주력으로 활용하면서 어떻게든 감염충과 군락 테크트리까지 시간을 버는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이승현이 왜 시대를 바꾸는 저그인지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일반 유저가 따라하면 지는 플레이'를 한다. 저글링 위주로 끊임없이 병력을 움직이면서 마이크로 컨트롤을 통해 불리한 상성을 극복한다. 가스를 적게 소비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많은 감염충과 군락 유닛을 확보한다.

멀티 테스킹 능력으로 상대의 견제를 막아내며 생산을 쉬지 않는다. 빠른 손 속도를 이용해 중앙 교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상대의 모든 확장 기지를 테러해버린다. 압도적인 피지컬이다.

결국 이승현의 키워드는 이것이다. '미래를 팔지 않아도 현재를 이긴다'. 저글링으로 화염차를 때려잡고, 저글링으로 벙커 해병 수비를 뚫어버린다. 최소한의 가스를 사용해서 최대한의 이득을 가져간다. 이승현의 폭풍이 불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다.





■ 다전제 최강 '왕좌'에 '넥라'의 폭풍은 몰아칠까.


다전제에서 정종현은 '날빌'로 불리는 초반 전략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 세트 이상 사용한다. 이번 결승은 어떨까. 이미 그 질문을 떠올리는 것 자체로 심리전은 시작되어 있다.

정종현이라는 선수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업적과 전적은 큰 경기일수록 상대를 묵직하게 짓누른다. 매 게임마다 "초반에 당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머릿속을 돌아다닐지 모른다. 이 조건에서 아직 경험이 적은 이승현이 얼마나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가장 흥미롭게 지켜볼 관전 포인트다.

정종현은 스타2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커리어 선수다. 사람들이 이제 침체기 아닌가 생각할 때마다 바로 부활해서 자신의 왕좌를 지켜 왔다. 하지만 아직 스타2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진 못했다. 이번 승부는 정종현에게 화룡점정을 찍는 자리일 수 있다.

이승현은 이제 막 시작하는 열 여섯 나이의 선수다. 셧다운제에 걸려 한국대표 결승전을 놓쳐야 했던 중학교 3학년생이다. 하지만 이 대결을 이기고 우승컵을 손에 든다면, 정말로 시대를 바꾸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어리다는 것은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GSL 최고의 선수가 다시 한번 자신의 왕좌에 앉기 위해 걸어온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왕국의 계보를 종결지을 기세로 새로운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가을의 바람은 과연 어느 곳을 향할까.

10월 20일, 거대한 풍향계가 움직인다.



LG-IM_Mvp 정종현

32강 vs문성원 2:1, vs윤영서 0:2, vs문성원 2:0
16강 vs박진영 2:1, 이정훈 2:0
8강 vs강동현 3:1
4강 vs정윤종 3:2

대회전적 : 14승 7패
2012 년 vs Z : 19승 13패


StarTale_Life 이승현

32강 vs임재덕 2:0, vs박진영 2:0
16강 vs안호진 2:0, vs안상원 2:1
8강 vs이정훈 3:1
4강 vs윤영서 3:0

대회전적 : 14승 2패
2012년 vs T : 12승 4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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