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느낌은 '설렘'입니다"

가장 먼저 소감을 물어보자 나온 답변이었다. 4년이라는 개발 기간이 지났다. 그 사이 국내 초대형 MMORPG들은 고전을 거듭했다. 공개 당시의 수준 높은 그래픽으로 인해 기대치는 높아졌고, 개발진들의 목표 역시 높았다. 반면 지스타 시연 과정에서 지적된 문제점들도 있었다. 대병력을 출진시킬 장수로서는 머리가 터질 일이었다. '설렘'이라는 한 단어에서 수많은 의미가 느껴지는 이유였다.

'어디 가서 사기는 못 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눠본 그는 자기 생각을 감추거나 속이는 일에 서툴러 보였다. 미사여구도 많이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꽤나 곧은 직선을 그렸다. 웃는 얼굴로 적절한 비유와 함께 하나씩 풀어놓는 생각에서는 높은 이상과 날카로운 직관, MMORPG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판교 네오위즈게임즈 사옥을 직접 찾아가 '블레스'의 한재갑 총괄 디렉터를 만났다. 10여년 전 '리니지2' 개발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고, 그 사이 강산은 한 번 변했다. 또 하나의 대형 프로젝트 마무리를 앞둔 한재갑PD는 어떤 그림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그가 말하는 '살아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정석에 충실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 네오위즈게임즈 '블레스' 한재갑 총괄 디렉터


참 오랜 시간이었다. 1차 CBT를 앞둔 심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

게임을 만드는 일은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게임을 플레이하는 고객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사랑해주시는 분들과 질책해주시는 분들 모두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직접 서비스를 통해 유저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아마 많이 기다리시고 지치셨을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드디어 기회가 와서 설렌다.


첫 테스트를 통해 어떤 종류의 피드백을 듣고 싶은지 궁금하다.

MMORPG 장르는 이용자의 위치 선택이 다양하다. 그만큼 점진적으로 콘텐츠를 펼치게 될 것이다. 이번에 큰 틀에서 검증하고자 하는 부분은 세 가지다. 스토리와 전투, 그리고 프로토타입으로 들어간 이벤트가 그것이다.

스토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글을 안 읽고 영상을 스킵하는 분들도 많다. 우리 목표는 그런 분들까지도 플레이하는 종족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블레스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명확한 롤(role)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내 테스트를 거치면서 스토리 구조와 전투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전투와 사냥만을 위한 퀘스트가 중요하고 재미있는 스토리 퀘스트와 섞여서 '다 재미없네'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또다른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를 도입했다. 정말 중요한 종족과 진영 이야기는 메인 스토리 라인으로 가지고 가고, 서포트하는 퀘스트는 에피소드 방식으로 포지션을 새로 잡았다. '무엇을 잡아와라, 모아와라' 식의 재미없는 퀘스트는 만들지 않았다.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시스템으로 대체해 구성한 것이다. 글을 읽지 않더라도 최소한 종족의 이야기는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블레스'의 서사는 종족 스토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고 보면 되나?

더 큰 대서사 구조가 이어진다. 종족-진영-전체 월드, 3단계 이야기다. 이번 CBT에서 체험할 부분은 각 종족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진영 이야기 중간 정도까지다.

MMORPG 특성상 스토리 전달이 쉽진 않다. 사람이 많다 보니 몬스터와 NPC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블레스'는 와우의 위상 시스템처럼 인스턴스 월드로 넘어가며 나만의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유저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심리스(seamless)하게 진행된다. 스토리를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재미없는 부분을 버리는' 일이었다.

▲ 1차 CBT는 네 가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 검증 요소로 전투를 꼽았는데, 재작년 지스타 시연 버전에 비해 무엇이 변화되었나.

많이 바뀌었다. 특히 큰 변화가 있었다. 일반적인 MMORPG는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강한 스킬을 배우게 되는데, 우리는 다양한 전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스킬을 모으는 방식을 선택했다. 옆으로 늘려나가는 셈이다. 스킬은 다양한 방법으로 습득할 수 있다.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스토리 퀘스트 보상, 제작, 몬스터 드랍, 향후 콘텐츠의 결과물 등으로 얻게 된다. 스킬을 어떻게 모아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핵심 매커니즘이다.

모은 스킬은 하나의 덱 페이지에서 구성할 수 있다. 스킬 덱 시스템이라고 하고, 블레스에서는 '전술'이라는 개념이다. PvE나 PvP와 같은 다양한 환경에 맞게 액티브, 패시브, 핵심 기술을 구성하는 재미를 준다. 핵심 기술을 교체하면 액티브-패시브 스킬의 속성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2차 리소스를 활용해 단단한 탱커, 솔로 플레이, 파티 플레이에서 하이브리드 탱딜 등 여러 전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전투 시스템을 스킬 덱 방식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기존의 틀을 바꾸는 데서 오는 부담이었다. '디아블로3'와 비슷한 방식이기도 한데, MMORPG 속에서 액티브, 패시브, 핵심 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덱 페이지를 구성하는 방식은 우리가 첫 시도다.

구성 면에서 볼 때 스킬을 1단 2단 전부 모아두고 하나하나 다 사용하는 플레이가 정말 재미있을지 싶었다. 키 슬롯을 줄이는 것이 요즘 추세고, 향후에는 차세대 콘솔로 컨버팅할 생각이 있는 것도 이유였다. 덱 페이지를 구성하는 것부터 머리를 쓰는 일이고 다른 플레이어와 다른 나만의 덱 페이지가 또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런 종류의 시스템이 나올 때마다 흔히 따르는 부작용도 있다. 최고 효율의 스킬 조합이 밝혀지면 '국민덱'으로 굳어지는 현상인데, 그에 대한 우려는?

그 생각도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덱 페이지는 전투 클래스에 따른 스킬 구성, 전투 대상, 전투 환경에 맞추어 달라진다.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국민덱'은 매번 달라질 것이다. '리그오브레전드(LoL)'만 해도 밸런스나 메타 변화에 따라 아이템 트리가 바뀐다. 우리도 스킬 자체를 바꾸는게 아니라 업데이트마다 최적의 덱 구성을 변화시키고, 그 가운데 새로운 방식을 만드는 재미를 주고 싶다.

▲ MMORPG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킬 덱 시스템


세 번째 검증 요소인 이벤트는 어떤 특징을 가졌나?

재미를 첨가하기 위해 준비한 여러 이벤트가 있다. 하나는 테이밍과 마운트다. 희귀한 유니콘과 같은 나만의 마운트를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잠든 비늘 유적'이라는 인스턴스 유적이다. 성장 과정에서 스토리 전달하기 위한 파티 던전이다. 그리고 쿠아트라가 테스트 기간 동안 실제 필드에 출현한다. 필드에서의 대규모 레이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버서커를 플레이해보고 놀랐다. 논타겟팅 방식이라 다른 클래스와 전혀 다른 전투였다.

'블레스'는 기본적으로 정교한 후판정 시스템과 타겟팅 방식이다. 하지만 범위공격이나 방향이 중요한 스킬을 가진 클래스는 오히려 논타겟팅 플레이가 편하다. 그런 액션성이 있는 버서커와, 향후 추가될 어쌔신 등은 논타겟팅으로 전투를 즐길 수 있다.

다양한 환경에 맞는 전투 클래스를 구성했다. 대중성을 중시했다. 지금껏 'WoW', '아이온', '테라' 등 메이저 MMORPG를 하나쯤 해본 분들이 '블레스'에서 내가 할 만한 재미있는 클래스가 적어도 하나 이상은 있다고 느끼도록 했다.


커스터마이징이 이슈가 되었는데, 이번 CBT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지.

공개 당시 반응이 정말 좋았다. 기존 MMORPG보다 자유도를 더 주자는 생각에서 얼굴을 직접 그리는 메이크업 방식을 선택했다. 그에 더해 특정 파츠로 나만의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계획이다. 이런 커스텀 역시 우선순위가 높았지만, 많은 양을 개발해야 하는 퀘스트와 진행 방식, 전투 시스템 검증이 가장 중요했다. 2차 CBT에서 커스터마이징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1차 CBT의 구체적인 범위도 궁금하다.

23레벨까지 가능하고, 플레이 시간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15시간 전후가 될 것이다.


테스트 실시가 예상보다 많이 늦어진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처음에는 1차 CBT를 빨리 실시하고, 이번에 개선한 전투 시스템 등은 2차 CBT에 내놓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기존 전투가 재미없더라. 우리가 재미없으면 유저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래서 당초 예정에 비해 이번 테스트에 새로운 요소를 많이 끌어오게 됐다.

▲ 화제가 된 블레스 '3세대 커스터마이징' 시연 영상


현재 국산 MMORPG 시장이 좋지만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게임은 놀이고 필수재가 아니라서 선택할 수 있다. 대체재가 있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맥주 마시다가 누군가 '막걸리 먹자' 하면 함께 막걸리 마시러 가기도 하는 것과 비슷할까. MMORPG의 전성기는 '테라'가 출시되던 2009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게임들을 다 합치면 동시접속자 100만 명 정도였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긴 텀으로 성장시키는 재미에서 LoL처럼 캐주얼하게 성장하는 재미로 이동한 것 같다.

장르 대 장르로 살피기보다는, 이 시대에 온라인 유저들이 만족할 만한 MMORPG가 잘 안 됐다고 보는 게 맞겠다. '블레이드소울'은 훌륭한 그래픽에 스토리텔링도 굉장히 잘 되었지만 단일 스토리의 단점이 있었다. 자유도가 없이 한 곳 인스턴스로 가야 하는 문제였다. 일반 MMORPG에서 사용자 요구는 다양한데 하나의 콘텐츠로만 귀결되는 현상은 맞지 않다. 전투 시스템이 차별화되다 보니 PvP가 안 되고. 멀티플레이 전투가 가능해야 커뮤니티 전투도 되는 등 가능성이 열리는데, 기존 틀을 비켜가다 보니 MMORPG의 프레임도 많이 버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아키에이지'는 그런 것을 잘 계승했다고 생각한다. 틀이 확장됐고 콘텐츠도 정말 많다. 하지만 전투에서 결정적 문제가 있었고, 유저 생태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부드럽지 못했다. 소수 그룹이 월드를 지배하는 구조가 너무 빨리 만들어졌다. 오래 가기 위해서는 대중성을 담보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서비스하면서 제때 틀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다.

교역이 발생해야 쟁탈이 있듯, 특정 콘텐츠들을 유저가 사용해야 파생 콘텐츠가 활성화되고 커뮤니티가 생긴다. 그리고 경제가 돌아가면서 재미가 생긴다. 경제 밸런스가 한 쪽으로 쏠리거나 각종 어뷰징이 생기면 안 되고, 그런 상황에서도 하위 그룹이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MMORPG는 거대한 세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성장-공동의 성장-갈등 해소'의 사이클이 선순환해야 한다.

두 게임 다 아쉬웠다. '블소'는 전투를 차별화했지만 MMORPG 세계에서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고, '아키에이지'는 MMORPG 틀에서 많은 반찬을 준비했는데 아이들이 반찬을 안 먹는 경우랄까. 누군가가 밥상을 다 차지한다거나. 두 가지 큰 사례 때문에 "MMORPG의 미래가 없지 않나?", "장르적 한계가 있지 않나?" 같은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장단점을 블레스에는 어떻게 적용했는지?

MMORPG는 다양한 욕구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월드에서 돌아가는 장르다. 대중성을 담보해야 하고, 전투에서도 멀티에 적합한 타겟팅을 갖추되 이 시대에 맞는 논타게팅 클래스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자유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선형 게임을 하던 유저에게 'GTA' 시리즈를 갑자기 던져주면 쉽게 적응하지 못할 거다. 대중성을 위해서는 처음에 좁게 시작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내 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월드를 소유한다거나, 나 자신이 제일 잘 하고 싶다거나, 우리 커뮤니티가 가장 전투 잘 하는 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등이 그것이다. '블레스'에서는 이것을 네 가지 정도의 타입으로 구분하고 있다. 각자에게 맞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하면 거기에 끝이 있어야 한다.

▲ 전투 모션의 개선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콘텐츠를 준비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

'블레스'도 월드를 소유하는 구조가 들어가 있다. 물론 모든 유저의 최종 골인 지점은 아니다. 공성전은 결국 소유를 하기 위한 도구다. 소유욕이 있는 소수 유저는 그룹을 형성해서 도전할 것이다. '블레스' 세계에서 집단 소유를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분들의 목표는 렐름의 오너가 되는 것이다. 우니온 진영의 경우 개성 있는 중소형 도시들과 전방기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도시 '스페치아'가 있다. 대도시가 '왕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전투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대도시를 소유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리니지' 서버가 심리스하게 두 개 붙어 있다고 보면 적절하겠다. 아덴 성이 두 개 있는 셈이다. 대신 체제 정착을 방지하기 위한 RvR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렐름의 오더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인이 된 자는 그곳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체제가 뒤바뀌는 정치 및 경제적 밸런스를 만들려 한다.

캐주얼한 전투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다. 공정하게 팀이 짜인 인스턴스 전장 시스템을 도입한다. 전장이나 pvp를 통해 지향하는 점은 '내가 어느 정도로 잘 하는지'를 명확한 차이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투의 재미와 보상을 통해 주어질 것이다.

세 번째는 기본적인 MMORPG 틀에서 생각하고 있다. 이름 짓지는 않았지만 'WoW'의 공격대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어려운 던전을 달려들어서 누군가가 깨고 공략을 올리면, 그 뒤 많은 사람들이 클리어하게 된다. 그 일련의 과정이 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중요하고 제일 빨리 깨고 싶은 그 마음을 시스템화하고 있다. 최고의 던전을 제일 먼저 깼으면 거기에 걸맞는 보상이 주어지고, 거기에 맞게 월드나 던전이 변화되는 시스템이다. 다른 사용자가 똑같은 목표가 생길 수 있고, 점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걸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전투 콘텐츠는 크게 세 가지다. 집단 소유욕을 위한 것,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PvE. 그 밑에 보이지 않는 경제 흐름이 있을 것이다. 비전투 콘텐츠를 통해 리소스를 생산한다. 레시피대로 제작하는 것이 아닌 재미있는 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이와 관련된 부분은 2차 CBT에서차차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도시를 점령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주어지나.

기본적으로 비주얼 보상이 있다. 거기에 명예 보상과 경제 보상도 주어진다. '블레스'의 거점 시스템은 해외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유사하다. 월드 전체가 RvR이다. 대도시 중심으로 주요 거점들이 있다. 왕이 있고 가문이 있다. 길드가 모여서 하우스가 된다.

도시마다 개성 있는 보상이 기다린다. 각각 다른 펫을 준다거나 스킬 보상을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마법의 기운으로 바다 위에 성을 쌓은 도시에 하우스를 지으면 마법과 관련된 보상 등을 받을 것이다. 대도시 스페치아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보상이 가장 크겠다.

▲ 2개 진영 10개 종족, 그 속에서 '왕좌의 게임'이 펼쳐진다고?


요즘 MMORPG에서 계속 언급되는 문제는 콘텐츠 소모 속도다.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양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인데, '블레스'만의 해결책은?

콘텐츠 양도 중요하지만, 같은 콘텐츠인데 이것을 반복해도 얼마나 다양한 재미가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요소는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캐릭터 자체의 성장, 다음은 플레이어 조작 능력 성장이다. 퀘스트처럼 하나하나 소모하게 되는 콘텐츠가 세 번째다. 마지막으로 월드를 소유하거나 'LoL'처럼 정해진 룰에서 사람과 시기가 바뀌며 달라지는 것이다.

가장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은 세 번째다. 패키지 게임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MMORPG에서 그 방식으로 개발하다 보니 개발속도와 소모속도가 불균형해졌다. 'LoL'이 콘텐츠가 다양해서 오래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매 판마다 다른 재미를 주니 오래 하는 것이다. KGC 강연에서 왜 MMORPG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었다. 던전을 돌아봐야 어떤 식으로 뭐가 나타날지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게임은 예측되지 않아야 되고 매번 새로운 재미를 줘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정적인 콘텐츠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RPG다 보니 정적인 콘텐츠도 스토리 몰입을 위해 개발했지만, 주요 가치로는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플레이가 달라지는 '동적 환경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밤일 때가 다르고 비가 올 때가 또 다르다거나, 월드 상태가 변하니 그 상태에 맞는 이벤트와 보상이 달라져서 매번 새로운 콘텐츠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정 사용자가 월드를 바꿔서 나에게 새로운 콘텐츠가 생길 수도 있다. RvR에서 갑자기 쳐들어온 적을 방어하는 것도 콘텐츠다. 이런 것들이 따로 시스템화되지 않았다. 그러면 하나의 퀘스트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MMORPG가 오래 가려면 유저가 많이 있을 때 그런 것들을 콘텐츠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식서비스 이전에 그런 콘텐츠를 모두 완성할 생각인가?

예전에는 시간이 주어졌다. 대체재가 없으니까. '리니지' 말고 할 게 없었다. 사용자가 계속 기다려주면 운영하고 패치하면서 생태계를 완성해갔다. 지금은 다르다. 최근 게임들을 살펴보면 유저들이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른 게임이 많으니까. '블레스'는 점진적으로 2,3차 CBT와 오픈 베타를 통해 검증해나갈 계획이다. CBT에서는 하나씩 검증하고, 오픈 베타에서는 생태계 전체가 잘 이루어지는지 최종 점검을 하려 한다.


플레이 초반 스토리를 살짝 먼저 안내해줄 수 있나?

'블레스'는 지역별로 가문이 소유하고 통치하는 봉건주의 세계고, 남쪽 우니온과 북쪽 하이란이라는 두 진영의 갈등이 있다. 1차 CBT 구간에서는 월드 남부 지역인 나바나, 컴퍼니, 놀란드를 탐험하게 된다. 우니온 지역에서 음모가 감지되고, 비밀을 살펴보니 하이란의 황제가 우니온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치코라는 상인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음모를 파헤쳐나가게 된다. 그렇게 종족에서 진영 스토리로 나가다가, 나중에 여러 반전이 펼쳐지면서 월드 스토리로 흘러간다. 2차나 3차 테스트에서는 아마 진영간 갈등을 해소하는 러브스토리 같은 이야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미스타드(인간) 시연을 잠깐 해봤는데, 처음 교수형 신부터 아주 강렬했다.

첫 기획에서는 목이 잘리는 장면이었다가 수정했다. 2차 CBT에서는 베드 신도 나온다(웃음). 우리는 스토리에서 성인 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멀티 레이어 두세 단계를 생각했다. 퀘스트 글을 확인하지 않는 유저들도 플레이어가 전쟁 유민이고, 물건을 가져다주다가 뭔가 꼬였고, 그것을 조사하다가 치코를 만났다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와 누구가 사귀었다 하는 인간관계까지 유추할 수 있다. 스토리 이해 최상위 유저는 세계의 전체적인 큰 구조를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부에 오로지 설정만 전담하는 사람이 두세 명 있다.

▲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호작용하는 '블레스' 배경


요금제 모델이 요즘 부분유료화와 정액제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블레스'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과도기라고 본다. 예전엔 정액제였고, 하이브리드 정액제를 거쳐 부분유료화 아이템 세일즈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같은 게임을 가지고 국가마다 다른 방식을 택한 경우도 많다.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 일단 사용자가 많아야 한다. 누가 돈을 내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이 어디까지 즐길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핵심 콘텐츠는 모두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프리 유저가 어디까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느냐가 지금 핵심적인 고민이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 두세 번 플레이하는 분들이 꼭 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많아져야 사람들과 플레이할 수 있는 풀이 넓어질 것이다. 이 풀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서버 부하를 피해 채널을 분산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북적북적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오랜 유저들은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맞다.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가장 편한 건 서버를 새로 만드는 것이겠다. 하지만 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사람이 많으면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필드 PvP 자체의 재미와 보상도 있다. 조심해야 할 점은 보상을 원치도 않는데 그걸 강요하게 되는 상황이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중요하다. 길만 있다면 채널을 많이 나누지 않고 PvP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앞선 대작들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블레스에 더 기대가 쏠리기도 한다. 부담감이 큰가?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 든다. 사실, 이 시대에 MMORPG가 몇 없을 줄은 미처 몰랐다(웃음). 이 장르가 지속될 수 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블레스'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 끝에 집어든 키워드는 '살아 있는 세상'이다. 1차 CBT만으로 많은 부분을 보여드리진 못하겠지만 큰 바탕에는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가 있다. 서로 다른 니즈를 가진 유저가 각자의 목표나 콘텐츠를 즐기면서 생태계를 이루는 세계를 지향한다. 그 밑바탕에는 대중적이고 자유도를 갖추면서도 개연성 있는 고급화를 이루자는 것이 깔려 있다. 고급화라는 것은 곧 '창피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 되기를 원한다.

작년에 대외적으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사내 테스트를 많이 했다. 하지만 욕이든 사랑이든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개발하는 입장에서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을 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의견과 질책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고객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또한 존재한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우리도 많은 고민을 해서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