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의 회사, 5개의 기획' 강연에서는 레인보우 스튜디오의 김현석 개발 본부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김현석 강연자는 10년 이상 게임 기획에 몸담았다. 이번 강연에서는 현재 재직중인 회사가 아닌 거쳐온 5개의 게임 개발사에 기획자로 참여한 경험을 소재로 강연을 준비했다.


김현석 본부장은 강연 취지를 밝히면서 "제가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는데, 10년 차가 넘어가면서 다른 기획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데 과연 강연을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밸런스, 시스템 등 업무에선 큰 자신이 없었다." 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다 한 회사에서 10년을 다녔다는 내용의 강연을 듣고 '아, 나는 10년 동안 많이 회사를 옮겨다녔구나. 이 부분을 강연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이런 강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또 다양한 게임개발 세미나에서 게임 기획 강연에서 중급 이상 강연자 세션이 드뭄을 지적하며, 그 이유는 다양한 회사마다 게임에 대한 접근법이나 기획 방법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러한 다양한 회사에서의 기획 경험이 나름의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은 김현석 기획 본부장이 경험한 다섯개의 회사들을 예시로 각각의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측 정보보호를 위해 각각의 회사명은 이니셜로, 설명을 위해 제시된 기획서의 세부 내용은 모자이크되어 보여졌다.

※ 프레젠테이션으로 제시된 기획서들은 내용 보호를 위해 확인할 수 없도록 흐릿하게 처리되었습니다.



'5개의 회사, 5개의 기획' 강연 정리


■ 첫번째 - D회사


첫번째 직장인 D사에는 같은 기획자가 총 네명 있었고, 하나의 그래픽 팀과 네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 강연자는 총 14개의 게임에 참여했고, 그중 3개 게임의 기획, 시나리오, 프로그램 모두를 담당했다.


당시 피쳐폰용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던 개발자는 기획서를 처음 써보는데다가 당시 환경상 사내 제안서, 퍼블리셔용 제안서, 이동통신사 검수용 제안서를 모두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전문적인 기획서보다는 제안서에 머무른 문서를 써야했다고 회고했다. 또 중복작업에 따른 효율성 문제도 있었다고 밝혔다.


D사의 구조상 게임 개발의 A부터 Z까지 모두 한명의 기획자가 담당해야 했고, 그만큼 원한다면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개발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고, 개인의 개발 능력 한계에 따라 구현할 수 있는 범위도 좁다고 장단점을 설명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결과물이 초기 기획의도에 비해 다운그레이드된 게임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 두번째 - L회사


L사에서 강연자가 개발한 게임은 로봇슈팅물로, 클리이언트 시스템 기획자 역할을 맡았다. 이 회사에서는 초기에 본래 실력있는 기획팀장 아래에서 작업을 시작했으나 기획팀장이 사내 정치로 인해 퇴사하고 전반적으로 개발 기간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


아직 기획자 경력이 일천했던 강연자는 기존의 기획서가 부족함을 깨닫고 여러모로 개선을 시도하는데, 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시스템 기획에 도움이 되는 각종 기초 물리 서적이었다. 이를 통해 게임 시스템 내 공식과 수치를 만들었고, 자연히 밸런스도 담당하게 된다.


강연자는 기획에 있어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예외처리'라고 지적했다. 기획서에 제시한 다양한 상황이나 시스템의 예외처리를 명확하게 정해놓으면 보다 구현이 수월하고 발생하는 문제가 적어진다.


L사의 기획이란 그래픽팀과 프로그램팀이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용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개발된 내용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명확한 역할 배분을 통해, 업무 부담이 적고 보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개발과정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




■ 세번째 - W사


W사의 이야기를 꺼내며 강연자가 밝힌 주제는 '사내 정치' 였다. 다섯명의 기획자가 있었는데, 그중 한명은 리소스 관리자로 그래픽 팀의 리소스를 관리함으로서 기획팀과 그래픽팀의 협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강연자가 다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실제로 사내 정치가 있었지만, 이 W사에서는 기획자의 실제 업무가 사내 정치로 인해 악영향을 받게 되는 문제가 컸던 사례였다고 밝혔다. 기획팀과 프로그램팀의 팀원 간이 아닌 보다 높은 직급의 사내 정치가 문제인 사례였다.


본디 제대로 된 기획서를 다시 쓰게 하는 방식으로 한 기획서를 47번 까지 새로이 쓰도록 한 적이 있었고, 때문에 개발 일정이 지연되게 된다. 여기서 개발 일정 지연에 대한 항의가 들어오면 '개발팀의 문제'로 돌려 서로를 공격하는 식의 일이 일어났다.


그러다보니 기획서 자체가 지나치게 자세하게 쓰여지게 되었고, 기획서의 양이 증가함과 함께 효율성이 극도로 낮아지게 되었다. 단순한 동작도 과다한 기획서로 처리하게 되니 개발 전체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개발이 틀렸다는 것은 다음 직장에서 지적을 받고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강연자는 이 과정을 포크레인과 삽질에 비유해 '실력있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이렇게 저렇게 이만큼의 땅을 파주세요라고 하면 되는 것을 나는 모든걸 직접 삽질을 해서 땅을 파고 그걸 보여주는 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에서의 기획은 불필요할만큼 디테일한 프로그램의 설계도를 작성하고, 게임 전체의 컨셉, 시스템 제안, 또 그래픽 리소스의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에서는 단지 동료들의 인정과 프로그래머들의 평가가 좋은 점이 장점이었으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과도했다고 회고했다.




■ 네번째 - H사


밀리터리 슈팅게임을 개발했던 H사는 강연자의 기억속에서 가장 뛰어난 개발자들을 만난 회사였다. 입사 전부터 이미 개발을 진행중이었던 만큼 시스템 기획자로 입사했으나 기존의 실무자가 뛰어나 별도의 업무를 찾던 중, 언리얼 엔진을 다뤘던 것과 그래픽 리소스 관리 등 경험을 살려 전체 개발팀의 관리와 조율을 하는 일종의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됐다.


이 회사에서의 강연자는 뛰어난 개발 능력을 지닌 '어벤저스' 팀 같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그 개발자들이 온전히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헬리캐리어' 같은 역할이었다고 설명했다. 업무 효율 증대를 위해 XML과 엑셀, CSV를 연계해 개발 방식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개발 외의 임금 체불 등 회사의 문제로 주축 멤버가 퇴사하고 강연자 마저 회사를 나가자 전체 개발자들을 이어주고 조율하던 역할이 사라져버렸다.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할 인력을 뽑기도 했으나 그간 개발 기간동안 쌓여있던 경험이 부족했으므로 완벽히 대체할 사람이 없어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이 회사의 게임은 제대로 빛을 보기 전에 팀이 좌초되었다.


이 회사에서의 강연자가 했던 기획은 각종 리소스의 링크와 서버를 관리하는 것이었으며, 또 콘텐츠와 시스템의 추가,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문서화하는 작업이었다. 이런 방식은 전체가 조율되어 돌아갈 경우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지만, 전체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쌓이기 때문에 인력이 교체되거나 숙련되지 않을 경우 개발진행 자체가 어렵게 된다.





■ 다섯번째 - B사


강연자는 B사는 마치 하렘 같은 곳이었다고 소회했다. 여성 개발자가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개발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팀 같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열손가락에 꼽힐만큼 유명한 디렉터를 위해 차려진 팀으로, 디렉터 휘하의 기획, 그래픽, 프로그램 팀이 각각 디렉터의 지시에 따라 동시에 업무를 시작하는 곳이었다.


디렉터가 무엇무엇이 괜찮아보인다고 하면 그래픽 팀은 그래픽 리소스를 찾고, 프로그램 팀은 툴을 만들고, 기획 팀은 가안을 만든다. 이렇게 다같이 예제를 만들어서 디렉터에게 검수받는 방식으로 디렉터의 생각을 구현해내는 것이 개발 팀이었다.


때문에 디렉터의 한마디 한마디에 게임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는 일이 잦았다. 환경, AI, 등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 때문에 완성품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 필요 이상의 리소스가 들어갔고, 유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구조를 짰다. 일년에 몇차례 임원진 시연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닌 이상 확정된 사항이 없었다.


이 회사에서의 기획은 디렉터의 생각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디렉터는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관철했고 개발팀은 거기에 맞춰 게임을 만들었다. 강연자는 '그러나 그들의 개발 방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존경하는 개발자의 게임을 만든다 라는 점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 3D 레이싱으로 시작했던 게임은 3D 슈팅으로, 또 TPS 게임으로, 또 사이드뷰 슈팅으로, 거기서 다시 사이드뷰 RPG까지 변경되었다. 결국 과도한 개발기간으로 더이상의 변경이 되지 않을때까지 게임 개발이 계속 되었다.


이 개발 방식의 장점은 개발자 자체가 '레벨업'을 한다는 점이다. 많은 업무 스킬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단점으로는 자기 스스로 개발의 방향성을 얻을 수 없고, 디렉터의 방향성을 따라가게 된다는 점이다.



강연을 정리하며 김현석 강연자는 "여기 계신 실무자분들의 회사는 모두 제각각 다른 방식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중에서 가장 훌륭한 게임 기획은 무엇인가. 이 답을 얻기 위해 상당기간 고민했다."라 화두를 던졌다. "정답은 없다. 자기 경험에 기반해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게임 기획자, 게임 기획이 나아가야할 길은 자신의 환경에서 스스로 찾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을 이었다.


"가장 훌륭한 게임 기획자, 게임 기획이 나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의 회사에 달렸다. 나를 필요로 하고, 사람들이 나와 같이 일을 하고 그것이 중요하다. 환경에 불만을 가지게 되면 계속 다른 회사, 환경을 보게 된다. 하지만 어느 회사나 문제가 있는 것은 같다. 각자 다른 문제일 뿐이다." 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게임 기획자라는 직군 자체에 대한 평가도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