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보드게임 디자인 라운드테이블 인 부산'은 우보펀앤런의 정희권 이사로부터 출발했다. 서울이 아니라 남쪽 부산에서 자리를 잡은 정희권 이사는 이미 2002년부터 보드게임을 개발해 온 인물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드게임 디자인과 기획, 유통을 진행했고, 보드게임 제작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을 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보드게임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거의 대다수가 실패를 겪었다. 열정과 용기만으로 도전하기에는 보드게임 시장이 녹록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었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도 산재했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늘어나고 있었다. 정 이사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드게임 개발자 협동조합 '사부작 '을 설립하게 됐다.

그는 왜 보드게임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보드게임 제작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협동조합의 대표로 강단에 선 정희권 대표는, '보드게임을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과 '왜 부산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 우보펀앤런의 이사이자, 보드게임 개발자 협동조합 사부작의 대표인 정희권 대표


■ 왜 지금이 보드게임을 개발하기 좋은 시기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이 보드게임을 개발하기 좋은 시점일까? 정희권 이사는 '시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카탄'이 출시된 시점부터 현대 보드게임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10년간 계속해서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봤다. 전 세계적으로도 보드게임의 세부 분류 모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내 보드게임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 부분이다.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시장의 성장에도 대부분의 매출은 할리갈리, 젠가, 루미큐브 3종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탄과 같은 세계적인 히트작도 판매량은 수천 개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6년 기준으로 1만개 이상 판매된 게임이 50종 이상이 되었으며, 제작과 마케팅 면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됐다.


드라마의 PPL로 보드게임이 등장하면서 매출 순위가 바뀌거나, 시장을 주름잡던 퍼즐류 외에도 추상전략, RPG 등 다양한 장르의 히트작이 나왔다. 그래서 '물 들어올 때 노젓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면서 출시 환경도 나아졌다. 서양권 보드게임 시장에서 동북아 보드게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건희씨가 개발한 보드게임 '고려'가 프랑스에서 매출 순위를 기록했고, 황소망 디자이너의 '길드홀'이 주목받았다. 한국 외에도 대만, 중국, 일본의 보드게임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국내에는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많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간다면 유럽보다 출시하기가 좋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마주하는 문제들

정희권 이사는 보드게임을 출시하는 것은 유럽보다 국내의 사정이 나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게임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한국이 더 크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단적인 예로, 독일의 에센 스피엘에서의 경험을 들었다. 공동부스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먼저 시작했음에도, 대만이나 일본의 사례처럼 공동 제작이나 유통의 형태로 연결되지 못했다. 정보 없이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발생했고, 새로 개발을 시작한 사람들은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80~90%가 떨어져 나갔다.


정 이사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제작 시스템의 부재에서 찾았다. 그리고 '바퀴벌레 포커'의 개발자를 만났던 일화를 던졌다.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보드게임을 플레이한 바퀴벌레 포커의 제작자는, 정 이사에게 바퀴벌레 포커의 프로토타입을 보여주며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이거 재미있지? 이 게임을 처음 가져온 것이 1년 전이고. 현재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은 6개월 전이다'고 말하며 '테스트를 더 해라' 라는 말을 돌려서 전달했다고 한다. 정 이사는 이 대화를 통해서 테스트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문제는 15년 전의 이 일화가 지금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충분한 테스트와 시장 이해를 거치지 않고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용감하지만 무모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플레이 테스트가 중요한데, 부산에서는 이러한 테스트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외국의 사례처럼 보드게임 전문 제작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국내에서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보드게임을 개발하게 되고, 실패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 그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던 일화이기도 하다.

테스트의 중요성 외에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텀블벅과 킥스타터에 보드게임 펀딩이 많이 존재하지만, 전부다 펀딩과 개발에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드게임이 어느 정도 만들어두고 펀딩을 진행하므로, 프로젝트가 드랍되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펀딩 실패율과 드랍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계했다.

이와함께 '조제남조'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품질이 낮은 제품들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질이 낮은 제품을 펀딩하고 실망하게 되면, 보드게임 시장 전체의 구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 이런 문제가 심화한다면? 결과는 아타리 E.T처럼 될 수도 있다.


■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기

정희권 이사는 앞서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부작'이라 협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게 됐다. 작년에 진행했던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개발자들이 매주 모이는 모임을 만들었다.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지속할 수 있는 모임이 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보드게임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도 함께 진행한다. 정보산업진흥원과 함께 진행한 보드게임 공모저의 반응이 좋았고, 앞으로는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또한, 단기간에 보드게임을 개발해보는 해커톤 방식의 행사도 올해 준비 중이다.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보드게임 디자이너들을 위해서 우보펀앤런의 몰드와 금형을 공유하는 공동생산 계획을 갖추기도 했다. 하나의 게임을 천 개 찍는 것은 어렵지만, 이러한 소규모 생산을 원하는 사람이 모인다면 활로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해외 박람회에 공동으로 참가하고, 작은 워크샵이라도 진행함으로써 '혼자서 도움 없이 보드게임을 만드는 일'을 줄여나가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협동조합 '사부작'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렇게 마련됐다. 궁극적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사가 단계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계획이 마련됐다. 아주 조악하더라도 실제 플레이하는 방법을 만들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일본의 게임마켓이나 부산의 보드락에서 전시회를 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이후에는 퍼블리싱 계약 또는 창업을 통한 독립 출판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드게임 제작을 꿈꾸는 사람들의 리스크를 줄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그런데 왜 부산이에요?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희권 이사는 '왜 부산에서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답했다. 정희권 이사가 부산에 정착을 시작한 시점만 하더라도, 부산은 보드게임 불모지에 가까웠다. 방과 후 보드게임 과정이 있는 학교는 네 군데 밖에 없었고, 보드게임 축제는 지스타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디자이너는 있었으나,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는 형성되지 않았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부임한 시기에는 부산의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네에 제대로 된 놀이터가 없었고, 이를 보드게임으로 고쳐나가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부 공간만 있으면, 테이블만 있으면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를 행동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 4년 전의 일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나서는 생각 외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단순히 몇십 명 정도가 와서 놀더라도 보람이 있겠다 싶었던 행사였지만, 별다른 광고가 없었음에도 7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심지어 보드게임을 행사에서 처음 해본 사람들도 존재했다. 정 이사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수요가 있다.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에서 행사를 발전시키게 된다.

현재는 30~40개의 초등학교가 보드게임 과정을 도입했고, 2년 전부터 시작한 부산 보드게임 페스티벌 (보드락)이 서울에서 진행하는 행사와 비슷한 규모로도 성장했다. 관이 지원하는 보드게임 센터를 올해 오픈하기도 했으며, 2017년에는 보드게임 디자인 콘테스트를 전국 대상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이 마련되면 2~3년 이내에 좋은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을 남기기도 했다.

정 이사는 강연을 마지막에, 이번 '2017 보드게임 디자인 라운드테이블 인 부산'을 개최하게 된 이유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는 씨앗을 뿌리고 싶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명한 강연자로 사람을 당장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규모는 작더라도 더 많은 공감을 나누고, 국제적인 연대를 구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