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자임을 떠나서 한 명의 게이머로서 게임쇼에 다녀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세계 3대 게임쇼로 손꼽히는 ‘E3’, ‘도쿄게임쇼’, ‘게임스컴’은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열성 게이머라면 직접 찾아가거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다면 새벽 시간임에도 게임쇼에서 나오는 최신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수마를 견디기도 합니다.

물론 3대 게임쇼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규모만으로 보자면 세계 최대급인 중국의 ‘차이나조이’는 매년 몸집을 키우고 있고, 유럽에서는 ‘파리게임쇼’ 역시 그 위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도 빼놓을 수 없죠.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한국은 국내 게임쇼로 ‘지스타’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지스타’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게임쇼들이 저마다 콘솔, PC, 모바일 등 자신만의 장기를 공고히 하는 와중, ‘지스타’는 매년 특색 없는 게임쇼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때는 온라인 게임 시장의 선봉에 섰던 ‘지스타’가 왜 이렇게까지 추락을 한 걸까요.

그래서 한번 알아봤습니다. 한국 최대의 게임쇼 ‘지스타’, 그 영욕의 시간과 앞으로 ‘지스타’가 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말이죠.



■ 1995년 미약했던 시작 - ‘한국 게임기기 및 소프트웨어전(AMUSEWORLD)’ 개최

국내 최대의 게임쇼 ‘지스타’. 하지만 ‘지스타’가 처음부터 이 이름으로 불리고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는 ‘대한민국 게임대전(이하 카멕스)’이라고 불렸고, 그보다도 전에는 ‘한국 게임기기 및 소프트웨어전(이하 어뮤즈월드)’라고 불렸습니다.

▲ 95년 개최한 국내 첫 게임쇼인 '어뮤즈월드'
출처 : http://www.hardcoregaming101.net

하지만 당시에 게임쇼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는데요. 95년 당시에는 게임이란 것이 사회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특히 게임쇼의 핵심이라고 할만한 게임이 없었습니다. 게임 산업이 커지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다양한 게임이 나오고 그걸 소개하고 즐기는 명목의 게임쇼이건만 가장 중요한 콘텐츠가 없던 거였죠. 실제로 90년대 게임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일본의 JRPG나 서양의 게임을 떠올리는 게 그 방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당시 ‘어뮤즈월드’는 상당히 초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아케이드 그럼에도 ‘어뮤즈월드’는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매년 개최됐고, 그러던 중 국내 게임사를 뒤바꿀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국내 패키지 시장의 종말을, 온라인 시장의 부흥을 이끈 초고속 인터넷의 발전과 와레즈가 대두하기 시작한 거였죠.

[게임이슈 '콕!] '와레즈'의 탄생 - '화이트데이'의 몰락과 온라인 게임의 태동

비록 와레즈로 인해 국내 패키지 시장은 종말에 치닫게 됐지만, 그 반동으로 온라인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됐고 이를 기점으로 국내 게임 시장은 활기를 띠게 됩니다. 와레즈가 한창 대두할 당시인 97년에는 ‘대한민국 게임대상’이 신설됐고 그 첫 번째 게임으로 98년도에 리니지가 대상을 타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성장 속에 ‘어뮤즈월드’는 사회악이라는 통념을 넘어 문화관광부의 지원 속에 ‘카멕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본격적인 국내 게임쇼의 부흥기가 시작된 겁니다.



■ 2000년 온라인 시장의 성장과 함께하다 - ‘카멕스’, 그 흥망성쇠

▲ 국내 게임쇼의 이정표를 제시한 게임쇼 '카멕스'

‘카멕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게이머는 더러 있을 겁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한국 시장의 특성과 ‘지스타’의 전신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카멕스’야 말로 진정한 국내 게임쇼의 이정표를 제시한 게임쇼이기도 합니다. 비록, 패키지 시장에서는 ‘창세기전3’, ‘악튜러스’, ‘마그나카르타’와 같은 게임들이 그 마지막을 불살랐던 시기였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포트리스’ 같은 온라인 게임들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게임을 팔기에도 급급했던 개발사들이 이제는 게임을 미리 알릴 수 있는 거대한 쇼가 필요했고 그 역할은 ‘카멕스’가 맡게 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앞으로 출시할 게임을 소개하고, 미리 시연할 수 있는 형태의 게임쇼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던 거죠. 그리고 그 시작은 국내 온라인 게임계의 양대 산맥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맡게 됩니다.

엔씨는 당시 심혈을 기울였던 ‘리니지2’를 공개하며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정상급의 그래픽과 웅장한 부스로 관람객들에게 얼굴도장을 톡톡히 찍은 거였죠. 이에 넥슨 역시 2년간 비밀리에 개발한 ‘마비노기’를 공개하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 엔씨는 심혈을 기울인 게임 '리니지2'를 선보였고

▲ 넥슨은 '마비노기'로 생활형 MMORPG의 새 장을 열게 됩니다.

이때부터 ‘카멕스’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개발사들은 너도나도 신작들을 ‘카멕스’에서 공개했으며, 당시 4일 간 행사에 2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그 규모는 나날이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카멕스’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습니다. 엔씨와 넥슨이 ‘리니지2’, ‘마비노기’를 공개한 2002년 이듬해에는 엔씨, 넥슨, 웹젠 등의 대형 게임사들이 너도나도 불참을 하기 시작한 거였죠. 앞서 게임쇼의 핵심 콘텐츠는 게임이라고 말한 바 있었죠. 대형 게임사가 불참한 2003년 ‘카멕스’는 콘텐츠 부족과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한 연예인과 모델을 대거 투입하는 졸속적인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왜 이런 폐단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물론 ‘카멕스’의 운영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내 게임시장이 성장하면서 해외 진출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사업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게임사에게 있어 ‘카멕스’는 더이상 성에 차지 않았던 거죠. 실제로 2003년 ‘카멕스’에 불참한 엔씨와 웹젠은 그 해 ‘E3’에 참가하며 해외 진출 등에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바 있었습니다.

결국 국내 개발사들이 등을 돌린 ‘카멕스’는 2004년,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선보이는걸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 ‘카멕스’의 대미를 장식한 ‘와우’
여담이지만 저도 당시 홍보 버스에서 ‘와우’를 플레이하고 감동한 바 있었습니다.
출처 : http://neverland7.egloos.com/m/601692



■ 2005년 게임의 신천지가 열린다 - ‘카멕스’, 일산 ‘지스타’로 부활


2004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 ‘카멕스’는 이듬해 ‘지스타’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앞서 ‘카멕스’의 쇠락을 경험했기 때문일까요. ‘지스타’는 게임전시뿐만 아니라 게임관련 기술과 주변기기, 컨퍼런스는 물론이고 수출상담회와 B2B•B2C관을 운영해 비즈니스 행사도 병행하는 등 ‘카멕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교통의 요지였던 코엑스에서 일산의 킨텍스로 옮겨 교통편은 불편했으며, 숙박시설도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게임들의 부재. 초창기 ‘지스타’는 빈약한 콘텐츠를 만회하기 위해 과도하게 부스걸을 고용했고 이후 걸스타라는 두고두고 따라다니는 오명을 얻게 됩니다.

2006년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전년도에 공개돼 빅3 MMORPG로 불리던 ‘제라’, ‘그라나도 에스파다’, ‘SUN’의 참패로 온라인 게임 시장은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맞게 됩니다.그리고 더 큰 풍랑이 찾아오게 되죠.바로,한국 게임계를 휩쓴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지게 된 겁니다.이로 인해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의 병폐가 도마위로 오르면서 ‘지스타’의 부스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아케이드 게임 부스가 퇴출되며 더욱 침체되기 시작합니다.물론, 사행성 게임과의 결별은 이후 긍정적인 면을 가져오기도 했었으나 당장의 ‘지스타’에게는 뼈저린 아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쇠락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엔씨에서는 자사의 구원주가 돼준 ‘아이온’이 첫 선을 보였으며, 한빛소프트에서는 빌로퍼의 ‘헬게이트:런던’을 선보이며 전시장을 빛내며 온라인 게임의 가능성을 여전히 보여주곤 했습니다.

▲ 엔씨를 구원한 신의 한 수 '아이온'도 2006년 지스타에서 처음 공개됐다.

▲ 지금이야 실패로 기억되는 '헬게이트: 런던'의 당시 인기는 엄청날 정도였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게임계의 거장 리차드 게리엇이 방한해 엔씨와 손을 잡고 만든 ‘타뷸라 라사’를 들고 ‘지스타’를 방문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하지만 빅3의 몰락과 ‘바다이야기’로 인해 업계로 향하는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걸스타라는 오명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2008년 ‘지스타’는 ‘카멕스’에 이어 또다시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 2009년 게임쇼는 죽지 않아요 - 부산 ‘지스타’, 부활의 날개짓

▲ 우려 속에 개최된 2009 ‘지스타’

‘지스타’에게는 체질 개선이라는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혁신의 시작으로는 개최지의 이전이 있었죠. ‘지스타’는 2009년 개최지를 부산 벡스코로 옮기면서 대대적인 개선을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수도권을 벗어난다는 사실에 많은 개발사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했으나 결과만으로 보면 2009년 ‘지스타’는 유례없는 대성황을 이루게 됩니다.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간 부족한 부분으로 내내 지적돼 왔던 해외 게임사들도 성공적으로 유치하게 됩니다. 특히 블리자드는 비장의 신작인 ‘스타크래프트2’를, EA미씩에서는 ‘워해머 온라인’을 선보이며 부산 ‘지스타’의 체면치레를 톡톡히 해줬고, 단순히 게임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체험할 수 있는 체험존과 다양한 행사장을 마련함으로써 진짜 게임쇼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온라인 게임도 빼놓을 수 없죠. 엔씨는 ‘아이온’에 이은 비장의 신작으로 ‘블레이드&소울’을 공개하며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라는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 2009년 ‘지스타’의 주인공 ‘스타크래프트2’의 인기는 어마어마 했습니다.

한편, 이때를 기점으로 부스걸의 의상에도 제한을 두며, 노출이 심한 의상을 단속하기도 하는 등 걸스타의 오명을 벗고 내실을 다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24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리며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등 ‘지스타’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그 규모는 더욱 커졌었죠. 소니가 2005년 ‘지스타’ 이후 오랜만에 참관했고,세가와 유니아나 등이 참여해 콘솔,아케이드, 온라인 할 것 없이 다양한 게임들이 선보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부터 엑스엘게임즈의 ‘아키에이지’글 공개했으며, 엔씨는 작년 ‘지스타’ 화제의 게임인 ‘블레이드&소울’의 시연대를 설치해 다시 한 번 관람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켰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았습니다. 2011년 들어서 정부의 게임 규제 법안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임 규제가 확대됨에 따라 자연스레 정부의 지원 역시 끊기게 됐고, 이에 2012년부터 ‘지스타’는 정부가 아닌 민간 단체가 주관하는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지스타’는 정부의 규제와 육성이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을 넘긴 ‘지스타’였지만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규제 법안은 날이 갈수록 업계를 조르고 있었고, 그러던 중 ‘지스타’가 열리는 해운대 지역구 서병수 의원(현 부산시장)이 게임중독법안을 공동 발의했다는 게 알려지게 됩니다. 이에 ‘지스타’의 메인 스폰서를 맡았던 위메이드의 남궁훈 전 대표는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개최 전부터 삐꺽이기 시작합니다.

▲ 당시 업계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 지스타 보이콧 사태

그리고 마침내 개최된 ‘지스타’는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보이콧의 여파로 위메이드를 비롯해 엔씨, 넷마블, NHN 등의 굵직한 게임사들이 불참한 거였죠. 그나마 넥슨, 블리자드, 닌텐도가 참가하면서 체면치레는 했으나 행사를 이끌 메인 타이틀의 부재로 인해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또한, 전년도인 2012년 총관람객 수가 약 30만 명이었던데 반해, 2013년도에는 19만 명으로 급감해 ‘지스타’ 위기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지스타’는 이런 위기설에 힘을 실었습니다. 대형 MMORPG로는 '파이널판타지14', '리니지 이터널', '로스트아크'가 공개돼 호평을 받아왔고 콘솔로는 '블러드본', '디 오더: 1886'이 공개됐으나 이런 신작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B2C 참관객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다만, 이 시기에는 B2B관이 크게 성장하며 수출 계약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작년 ‘지스타’도 마찬가지였죠. 모바일 게임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지스타’를 이끈 MMORPG의 감소, 그리고 여전한 해외 개발사들의 부재가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부산의 약발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지스타’는 다시 한 번 좌초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제 ‘어뮤즈월드’에서 ‘카멕스’로 변했을 때처럼, ‘카멕스’가 ‘지스타’로 부활한 것처럼 다시 한 번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 위기는 또다른 기회 - ‘지스타’, 앞으로의 미래는?

올해로 ‘지스타’는 11년이 넘는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카멕스’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기도 했고, 일산에서 부산으로 옮겨지기도 하면서 이제는 국내 대표 게임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변화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실패를 반성하고 타 게임쇼를 보면서 ‘지스타’의 미래를 모색할 때가 온 겁니다.

그렇다면 ‘지스타’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그 첫 번째는 바로 해외 개발사들의 존재입니다. 매년 ‘지스타’는 한국의 안방 행사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아쉽게도 그 의견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해외 게임사들의 참여가 저조해지고 있는 이때, 그들이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겁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 시장은 필요 없는 시장이 아닌, 필요한 시장이란 걸 어필할 필요성이 있는 거죠.

▲ 소니뿐 아니라 좀 더 많은 해외 개발사들의 참여가 절실한 순간입니다.

두 번째는 ‘지스타’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입니다. 한국의 게임쇼는 온라인 게임의 성격이 짙은 게임쇼입니다. 과거 ‘지스타’에서는 신작을 공개하면 전광판에 신작의 영상을 틀고 시연대를 마련하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아끌었습니다. 이건 콘솔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제 게임 시장의 중심이 된 모바일은 다릅니다.

진득하게 즐기는 형태이기보다는 가볍고 빨리 즐기는 형태의 게임성을 갖고 있고, 이는 온라인 게임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바일 게임의 최적화된 전시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한발 앞선 ‘도쿄게임쇼’와 ‘차이나조이’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이제는 관람객과 함께 즐기는 행사로 변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스타’에 간 게이머는 뭘 할까요. 그 대답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게임 시연.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냉정히 말해서 ‘지스타’는 게이머에게 불친절한 게임쇼입니다. 있는 거라곤 오직 게임뿐. 그에 반해 다른 게임쇼는 어떨까요.

‘E3’, ‘도쿄게임쇼’, ‘게임스컴’, ‘차이나조이’ 등의 게임쇼에서 대규모 머천다이징 존을 꾸미고 굿즈샵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 상당수의 관람객들이 찾는 곳 역시 이 굿즈샵이죠. 물론 아직 국내에서는 굿즈 판매와 제작은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지스타’를 위해서는 늦든 빠르든 시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 해외에 취재를 간 기자들도 굿즈샵을 더러 이용하곤 합니다.

‘지스타’는 다시 한 번 변화의 기로에 섰습니다. 온라인 시장의 성장과 함께했으며, 여러 풍랑 속에서도 버텨왔습니다. 사회의 인식과도 싸웠고, 게임사의 보이콧이라는 위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스타’는 버텨왔고 이제는 국내 최대의 게임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 위기 역시 해결할 방안은 분명 있습니다. 그동안 쌓은 경험을 살려, 앞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멋진 게임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