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MMORPG는 특히 현실과 닮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실보다 더 인간적이에요. 만렙 달고 게임 내 콘텐츠를 다 소비했는데도 게임을 접지 않는 것은, 그 과정에서 타 유저들과 사회적 인간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일(17일) 열린 '제 1회 게임문화포럼'의 발제자로 선 김휘강 고려대 교수가 'MMO에서 휴머니티를 발견하다'라는 주제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MMORPG의 사회성,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낸 '인간적인 면'을 찾는 데 매진한 김 교수는, 가상세계의 고유 문화에는 사회적, 학술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강조했다.

▲ 김휘강 고려대학교 교수


김 교수는 게임 내에서 선행을 하는 유저들의 행동 패턴,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장기적으로 게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했다. 또, '종말이 다가올 때 대중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는데도 MMORPG를 활용했다. 첫 번째 주제에는 '아이온'을, 두 번째 주제에는 '아키에이지'를 예시로 들었다.

MMORPG의 선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나보다 낮은 레벨의 유저에게 돈이나 아이템 등을 주는 행위, 그리고 같이 파티플레이 또는 퀘스트 가이드를 해주는 행위다. 이를 선행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가치가 절대적인 MMORPG에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안하면서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선행이 자신의 행복도 및 커뮤니티(게임 사회)에서의 소속감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실제로 이러한 선행을 한 유저들의 비율이 실제 사회와 비교해도 큰 편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710명의 유저 중 890명이 타인에게 무료로 아이템이나 돈을 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8%의 유저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의 50% 이상을 타 유저에게 베푸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파티플레이를 한 번이라도 해본 유저 중 52%는 자신보다 낮은 유저들과 최소 한 번 이상의 가이드 플레이를 이타적으로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약 4개월 간의 모니터링을 통해 김 교수는 MMORPG의 이타적인 플레이가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자 전체의 80% 가량 되는 유저들이 이전 유저들이 받았던 선물의 4배에 이르는 선물을 받았고, 이 80%의 유저들은 이후 신규 유저들에게 7배에 이르는 선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타적인 플레이는 게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본인 역시 도움을 준 경험이 있는 유저의 62%가 해당 게임에 잔류했지만, 이러한 경험을 한 번도 겪지 못한 유저는 25%만 잔류하고 있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세상에 종말이 다가올 때, 과연 인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실제로 인류 역사에 종말이 온 적은 없으므로, 이를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김 교수는 MMORPG의 'CBT'를 통해서 추측 및 연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키에이지의 CBT 종료 시점을 연구했습니다. CBT는 초기화되므로, 유저들이 게임에 더 헌신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입니다. 내일 서버가 닫히는 시점에서, 유저들이 사과나무 한 그루를 더 심을지, 아니면 무분별한 PK를 감행하는지... 한 번 조사해봤습니다."

조사 기간은 11주, 예상한 만큼의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유저들의 생산 및 소비 패턴, 유저 대 유저 간 전투 횟수 등은 전체적으로 고른 그래프를 그렸다. 지금까지 모은 재화를 마구 사용하는 유저도 드물었는데, 이를 두고 김 교수는 "어차피 종말이라면, 좋은 아이템을 구매하더라도 쓸 시간이 부족하니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유저들도 인식한 것은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유저 대 유저 간 전투 수치는 조금 재미있는 양상을 보였다. 종말이 다가오자 PK 비율이 PvP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특히, 게임 서버가 닫히기 전 게임을 그만두는 유저들 중 다수가 이러한 행동을 보였고, 김 교수는 "게임 내 별다른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유저들에게서 반사회적 행동이 감지됐다"고 언급했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따뜻한 대화의 비율이 급속도로 올라가는 것 역시 눈에 띈다. 퀘스트, 반복 전투, 채집 등의 일상 업무 수행 비율은 급감한 데 반해, 단순한 대화 및 따뜻한 소셜 인터렉션이 증가한 것.

발제를 마치며 김 교수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가상세계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문화가 더 많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MMORPG는 사람의 행태를 관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매우 큰 가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금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제 1회 게임문화포럼'은 게임과 게임관련 산업에 대한 심도있는 정책을 제시하고자 마련됐다. 지난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소통과 공감의 게임문화 진흥계획' 주요 과제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산업계·학계‧공공기관·시민단체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게임문화에 대한 담론을 나눴다.

발제자로 선 도영임 카이스트 교수는 "문화자원으로서 게임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게임은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문화적 전이공간"이라고 말했고, 김용하 스마일게이트 PD는 게임이 가진 2차 콘텐츠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외에도 장민지 한콘진 박사, 정의준 건국대 교수, 방승호 아현산업정보고 교장 등이 게임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현장을 방문한 전병헌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은 "게임은 시대가 요구하는 소비 콘텐츠의 중심이 됐다. 따라서 게임의 가치를 인정하고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를 더 열심히 고민해야할 시점이다."라며, "사회적인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고,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여러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데 방점을 두고 게임문화포럼이 지속적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축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