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자 소개] 양승혁 강연자는 스튜디오 도마의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있으며, '왕자영요'를 비롯한 수많은 히트작 음악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중국의 유명 게임 기업 텐센트와 넷이즈 작품에 대거 참여하는 등 대륙에게 사랑받는 음악감독으로 유명하다.

게임을 언급할 때 대부분 화려한 그래픽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 모델링, 아름다운 배경, 그리고 화려한 이펙트들. 물론 그래픽은 게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이자, 중요한 몰입요소인 것이 사실이다.

오디오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픽에게 주인공을 넘긴 채 뒤에서 묵묵히 조연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디오는 게임의 ‘맛’을 낸다. 그래픽이 그래픽답게 보일 수 있도록, 게임이 더욱 큰 흥미를 자아낼 수 있도록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스튜디오 도마의 양승혁 음악감독은 게임 오디오를 논하기에 앞서 동서양의 오디오적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동양과 서양은 문화적, 산업적인 측면에서 발전의 시기가 크게 다르다며, 이는 곧 악기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동양은 저음역부를 담당하는 악기가 북 같은 타악기가 사실상 전부지만, 서양은 베이스 기타를 비롯해 다양한 저음역부 악기가 포진되어있다. 이러한 악기의 차이 덕에 동양과 서양은 선호하는 소리가 다르다. 동양권은 저음, 서양권은 고음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그는 과거 EA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이퀄라이저를 통해 고음역부를 아예 잘라냈다고 밝혔다.

이러한 차이는 의외의 곳에서도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서양의 검은 날이 넓은 반면, 동양의 검은 날이 좁다. 문제는 대다수의 소스가 서양의 소리를 다루기 때문에 동양의 검이 들려주는 경쾌한 소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에 양승혁 음악감독은 직접 대장간을 찾아가기도 하는 등 현장 오디오 녹음도 불사했다고 밝혔다.


오디오는 소스가 아닌 상위 디자인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소리는 게임 속의 요소들과 어떻게 어울릴지를 고려해야 게임 오디오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지브리 스튜디오의 유명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OST는 굉장히 멜로디가 강한 오디오다. 훗날 영화를 떠올릴 때 멜로디가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이다. 반면, 마블 영화는 그렇지 않다. 대다수는 어벤저스를 비롯해 어떤 마블 영화의 OST도 떠올리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멜로디가 뚜렷하면 관객의 집중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약 20년 전부터 멜로디가 강한 오디오는 지양해왔다. 지브리와 할리우드 어느 한 쪽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방향성은 확연히 다르다.


게임 내 오디오는 마블의 방식과 유사하다. 게임 내 전투시 멜로디가 너무 선명하게 들리면 플레이어의 집중도가 흐트러진다. 이에 양승혁 음악감독은 “전투 음악을 작곡할 때 분위기는 완벽하게 맞추되, 사람들이 음악을 따라가는 걸 막고자 7/8박자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반면, “로그인 화면이나 로비 등 플레이어가 릴렉스 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멜로디가 부각되는 음악을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오디오 상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가 있다. 격투 게임을 예로 들자면, 3연속 공격을 시행할 때 타격 별로 소리에 완급을 줘야한다. 기본적으로 마지막 타격이 가장 중요한 만큼, 1타를 강하게 준 뒤 2타의 소리를 줄인다. 이런 조절이 들어가야 소위 ‘막타의 상쾌함’이 살아난다. 공격과 피격도 한 쪽의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격투 게임 장르는 ‘피격’을 더욱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 게임 오디오를 제작하기 위해선 거시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작곡가 개인의 만족을 위한 ‘멋’ 보다는 게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해야한다.

양승혁 음악감독은 “오디오의 주인은 게이머”라며, “게이머의 반응이 없으면 쓰레기라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멋있는 오디오’가 아닌, ‘유저의 재미를 위한 오디오’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이런 재밌는 게임 오디오를 제작하기 위해선 몇 가지 유념해야 될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에코 효과 같은 공간계 이펙트는 CPU를 상당 부분 점유하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CPU 점유율도 적으면서 효과가 확실한 기능은 레벨이다. 아울러 리소스의 재배열 역시 고려해볼 만 하다.


그는 랜덤 플레이가 상당히 강력한 기능인데도 안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예를 들어, ‘어택’, ‘히트’, ‘어택텍스처’ 3단계의 레이어를 분리한 뒤 볼륨을 교차 적용하면 가장 이상적인 오디오가 완성될뿐더러 엔진에 부담도 없다. 하지만, 꼼꼼하게 오디오를 체크해야되기 때문에 저예산 환경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다.

저예산 게임을 제작할 때는 청각 레벨을 뜻하는 라우드니스 레벨을 중요한 지표로 삼아야한다. 게임 오디오 작업을 할 때 라우드니스 레벨 미터를 측정하면서 작업해야 나중에 튜닝하기가 수월하다. 만약 라우드니스 레벨에 일관성이 없으면 후에 폴리싱 작업 자체를 진행할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하기도 한다.


라우드니스 레벨의 차이 정도를 뜻하는 다이내믹 렌지는 3단계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래프에 여백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극적으로 라우드니스가 변화한다는 걸 의미한다. 보통 영화에서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극적인 다이내믹 렌지를 사용한다. 여백이 거의 안 보이는 그래프는 라우드니스 레벨이 일관적으로 높은 경우다. 보통 음악 트랙이 이런 형태를 나타내며, 2분가량의 짧은 게임 트레일러 역시 이런 형태를 띄는 것이 좋다.

라우드니스 레벨은 -15를 기준으로 잡는 것이 유용하다. 전투 상황에서 일반적인 공격이 -15라면, UI 인지 사운드는 -15~-25, UI 터치 사운드는 -25~-40 정도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폴리싱을 하게 되면 전반적인 사운드를 깔끔하게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양승혁 음악감독은 저예산 작업환경에서는 리소스를 증가시키는 것보다 볼륨 레벨 조정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