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들아, 강해져서 용사를 물리쳐라.


얄미운 용사들은 왜 이렇게 강한지, 그리고 내 몬스터들은 왜 이렇게 픽픽 죽어나가는지.

던전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임이 있다. 비록 던전을 1부터 100까지 만들어나가는 맛은 없지만, 몬스터와 함정을 배치해 용사들과 직접 싸우는 재미는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게임, 바로 ‘레전드 오브 키퍼: 커리어 오브 던전 매니저(이하 레전드 오브 키퍼)’다.


게임명: 레전드 오브 키퍼: 커리어 오브 던전 매니저
장르명: 전략, 로그라이트
출시일 : 2021. 4. 29
개발사 : Goblinz Studio
서비스 : Goblinz Publishing
플랫폼: PC(Stove, Steam) NSW

관련 링크: ‘레전드 오브 키퍼: 커리어 오브 던전 매니저’ 오픈크리틱 페이지


용사로부터 던전을 지켜라


레전드 오브 키퍼는 로그라이트와 덱빌딩, 전략요소가 적절히 잘 섞인 던전디펜스 게임이다. 게임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열심히 키운 몬스터와 함정을 통해 쳐들어오는 용사들을 막아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영웅들에게 던전을 클리어당하면 성장시켜온 모든 요소가 리셋되고 대신 '마스터'의 경험치가 올라가는 전형적인 로그라이트의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로그라이트임에도 덱빌딩과 이를 통한 전략적 요소가 정말 엄청 중요하게 작용하는 편이다. 여기에 운적인 요소도 생각보다 크게 들어가 있다 보니 매우 독특한 방식의 게임이 탄생했다.


덱의 종류를 결정하는 건 크게 두 가지 갈래다. 기본적으로 적을 물리적으로 공격해서 던전을 방어할 것인지, 아니면 공포에 질려 도망치게 만들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물리적 공격을 선택할 시 그 안에서 또 어떤 속성의 공격을 위주로 진행할지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냥 마구잡이로 때려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속성 약화라는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왕 때릴 거 속성에 맞춰서 때리면 좀 더 효과적이다. 또한 몬스터와 함정을 얻을 기회는 그닥 많지 않고 몬스터를 강화시키는 데 들어가는 금화도 절대 적은 편이 아니다.

즉 얻을 수 있는 몬스터도, 키울 수 있는 몬스터도 한정되어 있으니 꼭 처음부터 어떤 속성을 위주로 덱을 구성할지 전략을 짜서 시작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덱빌딩이 일반적인 TCG류처럼 매우 어렵거나, 정석적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몬스터들은 두 개의 룸에 각 3마리씩 배치할 수 있는데, 덱 자체는 룸당 6마리씩 구성할 수 있다. 즉, 꼭 사용할 필수 몬스터를 제외하고도 후보군을 2배까지 둘 수 있는 것.

개인적으로 덱빌딩 요소가 들어간 게임에 약한 편인데, 구성 자체가 널널하다보니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막 진행했을 때도 마지막 주까지 플레이할 수 있었다.

덱빌딩이 중요하긴 하지만 체계적으로 짜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게임은 어떻게든 플레이할 수 있달까. 물론 제대로 고민해서 하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게 던전을 지켜나갈 수 있다.




운과 전략의 절묘한 결합


전략적인 요소는 덱빌딩 외에도 꽤 있다. 이게 참 재미있는데, 운적인 요소가 이 게임에서는 전략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운과 전략, 정말 안 어울리는 듯한데 이게 또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진다.

용사들은 계속해서 쳐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리 용사라도 재정비가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몬스터들 역시 쉴 수 있는 타이밍이 주어진다. 물론, 우리는 맘 편히 쉴 수 없다. 다음 용사들이 찾아오기 전, 이 타이밍을 통해 던전을 강화시켜야 또다시 악랄한 용사들에게서 던전 속 보물을 지켜낼 수 있다.

그렇기에 용사와 싸우기 전 주어지는 몇 주간의 ‘이벤트’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게임 전체를 운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매주 등장하는 이벤트의 종류는 랜덤이다. 2개에서 3개가량의 이벤트 리스트가 주어지고, 그 중 단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해서 들어간 이벤트 내부에서도 또다시 랜덤하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벤트 자체에 들어간 뒤에는 자원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리스트가 없어도 재선택은 불가능하다. 유물을 얻고 싶어서 약탈을 선택하지만 정작 피로도만 닳고 유물은 얻지 못한다거나, 싼 가격에 2레벨을 올려준다는 이벤트에 혹했으나 정작 올려준다는 몬스터는 전혀 쓰지 않는 녀석이더라도 선택을 돌이킬 순 없다.

즉 뜨는 이벤트도 랜덤, 그 안에서 주어지는 선택지도 랜덤, 주사위를 굴리고 또 굴리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그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할 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

물론 잘못된 결과를 얻을 경우 아무 의미 없이 한 주를 날릴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은 항상 주의 깊게 해야 한다. 특히 매주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테이지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진다.


이 게임이 흥미로운 건, 추가적인 몬스터나 함정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덱만으로 충분히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점이다.

물론 희귀 몬스터와 희귀 함정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있는 애들을 잘 키우기만 해도 얄미운 용사들을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 레벨이 깡패라는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아무리 기본 정석 캐릭터라도 레벨을 올려 새로운 패시브를 배우고, 스탯을 올리면 별을 달고 던전을 제패하러 오는 희귀 용사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

다만 운적인 측면이 잘 따라줘야 한다.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이벤트가 자주 등장해야 마지막 주에 쳐들어오는 챔피언급의 용사들을 물리칠 수 있다. 이들은 워낙 강력한 편이라 꾸준히 빌드업을 해두지 않는다면 다시 1주차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물론 로그라이트이기 때문에 모든 덱은 리셋되더라도 마스터의 레벨과 특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던전 설계가 빠진 던전디펜스

레전드 오브 키퍼는 분명 던전을 운영하고 용사들로부터 지키는 게임이지만, 일반적인 던전 키퍼류 게임과 다른 느낌이다. 아무래도 던전 자체를 설계하는 부분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던전의 구성과 순서가 정해져 있고, 유저가 직접 할 수 있는 건 그 정해진 곳에 몬스터와 함정을 배치하는 것뿐이다. 결국 던전 설계보다는 덱빌딩에 좀 더 주가 맞춰져 있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게 조금 아쉽게도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던전 구성 역시 직접 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장 준비된 몬스터들의 스킬셋과 함정의 속성을 보면 연계 플레이를 충분히 할 수 있을듯 한데, 정작 함정이 먼저인지 몬스터가 먼저인지를 설정할 수 없다.

즉 전략을 앞세운 게임임에도 좀 더 ‘전략적인’ 요소를 게임 자체가 제한해버린 셈이다. 지금도 재미있는 편이지만, 던전 구성을 막아버리면서 훨씬 더 전략적이고 흥미로운 게임이 될 수 있었을 여지도 같이 막아버린 것 같아서 아쉽게 느껴진다.


대신 직접 용사들과의 전투를 조작할 수 있어 컨트롤적인 재미는 충분하다. 단순히 덱을 구성해서 몬스터와 함정을 배치하고 구경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몬스터 하나하나 어떤 스킬을 쓸지, 어떤 적을 공격할지 등을 조작할 수 있다.

또한 얻게 되는 유물에 따라 매 판 확연히 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질리지 않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38주차에 쳐들어온 용사에게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굴복시킬 것인지는 그야말로 운과, 전략 모두에 달려있다.

운과 전략이라니,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은 요소임에도 레전드 오브 키퍼는 정말 흥미롭게 적절히 잘 섞어냈다.




용사들로부터 던전을 지키는 몬스터 회사라는 컨셉이다 보니 나름 유머러스하거나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특히 자잘한 곳에서도 컨셉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이벤트만 하더라도 몬스터의 피까지 빨아먹는 세금 징수원에, 누가 몬스터들 아니랄까 봐 마을을 약탈하러 떠나기도 하고, 인간들을 저주하기도 한다. 화폐로 용사의 피와 눈물이 사용되는 것도 정말 독특한데, 그 피와 눈물은 던전을 지키는 과정에서 용사들을 처치하거나 공포에 질려 도망치게 하면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던전을 지키는 몬스터들이라는 컨셉에 아주 적절하게 들어맞는달까. 그래서인지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몬스터를 너무 쉽게 처치하고 괴롭히는 용사들이 악의 편처럼 느껴진다. 정말 누가 용사아니랄까봐 더럽게 강하다.


내가 용사였을 땐 귀찮다고 생각되었던 잡몹들이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니 왜 이렇게 불쌍한지. 파밍 잘 된 용사의 공격 한 방에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재가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리고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던전 디펜스와 덱빌딩, 여기에 전략과 운까지 모두 적절하게 합쳐진 레전드 오브 키퍼는 스팀과 스토브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