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필드' 시리즈의 최근 몇 년을 요약하면 '부침의 반복'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배틀필드4'가 레볼루션 시스템과 고퀄리티의 현대전으로 호평받았다면, 다음 작품인 '배틀필드: 하드라인'은 기억하는 이가 없습니다. 다음 작품인 '배틀필드1'은 1차 대전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잘 엮어 호평받았으나 또 다음 작품인 '배틀필드V'는 사상 강요 이슈와 개발진의 부적절한 언행 등으로 얼룩졌죠.

그리고, 곧 '배틀필드 2042'가 출시됩니다. 일단 순서 상으로는, '침(沈)'이 아닌 '부(浮)'의 차례인 만큼,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실제로 '배틀필드 2042'는 공개와 동시에 게이머들의 관심을 모았고, 시네마틱 및 게임 플레이 트레일러 또한 많은 게이머와 대중 매체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7월 말 진행될 'EA PLAY에서는 '배틀필드 2042'와 관련된 추가 정보가 공개될 예정입니다. 아직 베일 속에 감춰져 있는 세부적인 게임 시스템은 물론, '배틀로얄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던 숨겨진 게임 모드에 대해서도 공개될 예정이죠.

그에 앞서, '배틀필드 2042'와 관련되어 밝혀진 정보를 분석해 이 게임이 전작들과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모습의 게임이 될 지를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배경이 어떻고, 설정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잠시 접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배틀필드' 시리즈의 핵심은 대규모 멀티플레이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전장에 있으니 말이죠.

시네마틱 트레일러와 게임 플레이 영상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간 '배틀필드' 시리즈가 보여준 면모와 영상에서 드러난 정보를 조합해 보면 '배틀필드 2042'의 꽤 뚜렷한 모양새를 유추할 수 있다는 뜻이죠.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배틀필드 2042'는 이전의 배틀필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128인 전장'의 의미


표기로는 단 한 줄입니다. '최대 64인이 참여했던 멀티 플레이 인원이 128인으로 늘어납니다.' 간단하죠. 산술적으로 딱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점이 '배틀필드 2042'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라고 봅니다. 배경이 근미래가 된 것도, 단순한 군인이 아닌 스페셜리스트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도 중요한 변화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이 '참전 인원의 확대'입니다.

이유인즉 이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슈팅 게임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소규모 멀티플레이 팀 전투의 스케일 2진법의 배수를 따라갑니다. '기어즈오브워'처럼 플레이어 한 명의 존재감이 무겁고 TTK(Time to Kill: 한 명의 적을 무력화하는데 걸리는 시간)가 긴 게임에서는 4:4 구도가 쓰이고, 8:8은 매우 흔하며,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은 16:16 스케일을 사용하죠.

▲ 이 정도 무게감이면 4:4로도 충분

이런 슈팅 게임을 해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인원이 두 배가 될수록, 전장의 복잡성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난다는 것을 말이죠. 32:32로 진행되는 현존 배틀필드 시리즈의 경우 전장의 흐름은 굉장히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한 팀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한 개 분대, 즉 4명만 있어도 후방 침투를 통해 전선을 뒤흔드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4:4 전투가 반응 속도를 위시한 개인의 피지컬과 숙련도에 좌우되는 승부라면, 32:32의 전장은 구도에 따라 무기와 장비를 선택하거나, 공격 루트를 설계하는 등 전략적 식견이 실력에 포함되기 마련이죠.

▲ 생각 이상의 와글와글 전장을 보게 될 겁니다

때문에, 이보다 더 커진 64:64의 전투가 될 '배틀필드 2042'의 흐름은 이보다 더 말도 안 되게 복잡할 겁니다. 산술적으로 두 배가 아닌, 네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변수가 생긴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배틀필드V'까지 보이던 탑승 장비의 우세는 다소 수그러들 겁니다. 대전차포를 휴대한 보병이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갈 확률이 두 배가 되었으니까요. 다이스가 탑승 장비에도 중대한 변경을 주겠다 말했으니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이전처럼 헬기 하나에 보병이 우르르 쓸려나가거나, 짱박힌 탱크 하나에 전선이 고착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시리즈 전통의 승리 전법인 상륙정이나 헬기를 이용한 소규모 강습 부대의 활용도 다각도로 변할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 갈피를 못 잡고 후방 거점에 멀뚱히 서 있는 얼빠진 인원이 늘어날테니 빈 거점을 몰래 털어먹기는 힘들어지겠지만, 인원 여유가 생기니 한 번에 두세 팀 이상의 강습조가 전장을 돌아다닐 가능성도 크게 늘어났죠.


▲ 32:32 규모인 '쉬벌리2'를 봐도 전장은 장난 아니게 복잡합니다.



'스페셜리스트'의 추가는 무엇을 바꾸는가?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스페셜리스트' 시스템의 추가입니다. 오버워치나 에이펙스 레전드처럼 상식을 파괴하는 초인들이 날뛰는 건 아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특기'가 추가되죠. 이전까지 배틀필드 시리즈를 책임지는 주역들이 일반적인 무장과 스펙을 지닌 알보병들이었다면, 이젠 뭔가 특색을 지닌 녀석들이 전장에 뛰어든다는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몇몇 스페셜리스트들의 특기입니다. 단순한 개성이라 보기엔, 전장의 흐름을 바꿀 여지가 너무나 높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죠. 예를 들어 이미 공개된 '웹스터 멕케이'의 특기인 로프 런처는 지형 극복과 기동성에 특화되어 있는 장치입니다. '타이탄폴'의 파일럿 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보병들에 비하면 훨씬 빠른 속도로 전장을 누비고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경로로 상대의 사각을 파고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 고지대 저격수는 이제 보너스가 될 예정

이 하나의 특기만으로도 이전과 다른 게임 양상이 그려집니다. 고지대에서 유일한 진입로에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짱박히던 저격수들은 이제 멸종의 길을 밟을 겁니다. 지뢰를 깔아두면 뭐 합니까 갈고리로 날아오는데. 자연스럽게 딱히 세지도 않은 저격을 고집하는 이른바 '똥쟁이'들도 줄어들 거고, 저격수가 줄어드는 만큼 전선의 주축이 되는 일반 보병들의 비중이 올라가게 되겠죠.

'스페셜리스트' 시스템의 도입에서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가 있습니다. 각각의 스페셜리스트는 배틀필드 특유의 병과 구분에 속해 있지만, 고유 장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정규군이 아닌 무국적 용병에 가까운 컨셉이다 보니 그렇겠지만, 여튼 단적으로 말하면 기관총과 대전차포를 든 의무병이 전장을 돌아다닌다는 뜻입니다.

▲ 애초에 전투기 파일럿도 대전차포를 들고 다니는 마당

그렇기에 탑승 장비의 비중은 또 다시 줄어들게 됩니다. '배틀필드' 시리즈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대물 장비를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로 전차를 만날 때의 무력함을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권총을 포기하더라도 간단한 대전차 장비 정도는 필수 교양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장비의 부착물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플러스 메뉴' 시스템을 통해 상황에 맞는 장비 변경도 쉽게 가능하니 굳이 대전차전이 아니더라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거나 패는 상황도 잘 나오지 않겠죠.

▲ 부착물의 실시간 변경을 지원하는 플러스 메뉴 시스템

다만, 이 '스페셜리스트' 시스템이 배틀필드 2042가 현역으로 기능하는 내내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전작인 '배틀필드V'에서도 프리 알파 단계에서 병과별로 세부 병과(아키타입)을 나눠 더 강한 개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팬들의 반발에 부딪혀 지금은 패시브만 약간 다른 '전투 역할'의 형태로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캐릭터 베이스'보다는 일반 병과들이 대규모로 맞물리는 전장을 선호하는 배틀필드 시리즈의 팬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스페셜리스트 시스템은 추후 업데이트에서라도 변경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 배틀필드V에 퇴화 기관처럼 남아 있는 '전투 역할'



보다 크고, 보다 복잡한 '전장'


또 하나, '배틀필드 2042'에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부분은 바로 전장 그 자체입니다. 일단, 전장의 크기 자체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모래폭풍에 뒤덮인 카타르의 도하를 무대로 하는 '모래시계'전장의 경우 배틀필드V의 최대 맵인 '하마다'의 세 배에 이르는 크기를 보여줍니다. 이보다 더 큰 맵인 남극 배경의 '이탈'맵의 경우 5.9제곱킬로미터라는, 배틀필드 시리즈 사상 최대 규모의 전장입니다.

배틀필드 시리즈의 간판 모드인 '컨퀘스트' 모드의 변화 역시 크기 변화에 맞춰졌습니다. 기존작에서 컨퀘스트 모드는 작게는 4개, 많게는 7개에 달하는 거점을 점령하는 땅따먹기 모드였습니다. 하지만 '배틀필드 2042'에서는 하나의 거점에 세 개의 하위 거점이 생겨 이 하위 거점을 모두 점령해야 하나의 거점을 점령하는 것으로 변경됩니다. 각 군의 점령지와 전선이 형성된 교착 지역을 명백히 보여주는 좋은 변화임과 동시에, 복잡해질 전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변경점입니다.

▲ '컨퀘스트' 모드엔 '하위 거점' 시스템을 도입

'배틀필드4'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레볼루션'과 '배틀필드V'에서 보여준 심도 깊은 지형 파괴 효과를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레볼루션'은 전장 흐름의 변화에 따라 수위가 달라진다거나, 엄청나게 거대한 빌딩이 무너지는 등의 극적인 변화가 주를 이루었고, '배틀필드V'의 지형 파괴 효과는 레볼루션만큼의 임팩트는 없지만 그래도 전장 내 거의 모든 구조물에 파괴 효과가 적용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게임 시작 시점에선 평화로운 전원 마을이 끝날 때쯤엔 쑥대밭이 되어 있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죠.

'배틀필드 2042'에서도 일단 '레볼루션'과 같은 대규모 지형 변경 효과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궤도'맵의 경우 발사 직전의 위성 로켓을 둘러싼 전장인데, 여기서 로켓 발사가 성공하느냐에 따라 지형이 바뀌고, 실패할 경우 로켓의 추락 지점에 따라 또 지형이 변합니다. '모래시계' 맵의 경우 플레이 트레일러에서 볼 수 있듯 처음엔 매우 화창한 전장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래 폭풍에 뒤덮이면서 전장이 온통 시뻘겋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네마틱과 플레이 트레일러 모두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소용돌이는 전장에서 어떻게 작용할 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구현되었다는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죠.

▲ 화창하던 도하와 불지옥이 되버린 도하

상대가 점거한 건물을 전차포로 시원하게 밀어버리던 '배틀필드V'의 지형 파괴 효과가 배틀필드 2042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벽돌로 대충 쌓아 올린 2차 대전기의 건물과 철근을 빽빽히 박아둔 근미래의 건물은 내구도부터 차이가 날 테니 포탄 몇 발에 건물이 내려앉지는 않겠지만, 프로스트바이트 엔진 자체가 지형 변화에 강점을 지닌 엔진임을 감안하면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배틀필드V'처럼 전장을 평탄화하는 수준에 이르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그래도 자동차를 뭉개고 가는 전차 정도는 당연히 보입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다른 요소로 채워집니다. 2차 대전 배경의 '배틀필드V'에 비해 전장의 고도가 높아진 만큼, '배틀필드4'와 비슷하게 고층빌딩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전장 디자인은 부족함 없이 도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플레이 트레일러에서 빌딩 사이를 짚라인으로 극복하는 장면이 나왔으며, 엘리베이터로 고층 빌딩을 오르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죠.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퇴보한 모습이 보일 수 있으나, 커진 맵의 크기와 복잡해질 전투 구도를 생각해보면 분명 이전보다 훨씬 발전한 전장을 우리 앞에 가져오리란 건 확실해 보입니다.

▲ 고층건물 중심의 수직적 전장은 '배틀필드V'와 차별화될 부분

정리하자면, '배틀필드 2042'는 이전의 배틀필드와 유사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 이유는 '스케일'의 차이입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초기 시절의 PVP를 즐겨 보셨던 분이라면, 2박 3일을 싸웠던 토나오는 알터렉 계곡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당시 참여 인원이 40:40입니다. 그마저도 인원이 꽉 차는 경우는 별로 없었죠. 그럼에도 온갖 천태만상이 그 전장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배틀필드 2042'의 참전 인원은 팀당 64명. 총 128명에 이릅니다.

서울의 랜드마크인 롯데타워나 우리집 앞 아름빌딩이나 엄밀히 말하면 그냥 같은 건물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국내에서 롯데타워의 유일함을 부정하진 못합니다. 똑같이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뤄진 건물이란 점은 같으나, 스케일의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배틀필드 2042'는 다릅니다. 산술적으로는 두 배 늘어난 숫자이지만, 전장의 변수는 상정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날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게임 경험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조언드리자면, 혹시나 '배틀필드 2042'를 구매하실 계획이라면 구세대 콘솔로 플레이하는건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구세대 콘솔은 한 전장에 64인이 한계입니다. 결과적으로, 조금 다른 이전작들을 플레이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꼭 현세대 콘솔이나 PC로 플레이하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