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회사 드왕고 카와카미 노부오 고문

세계 각국의 게임 개발자들이 모여 개발 실무 이야기와 사례를 소개하는 CEDEC 2021(이하 세덱) 행사의 올해 기조 강연은 주식회사 드왕고의 카와카미 노부오 고문이 맡았다. 강연의 주제는 'VR·AI 시대의 새로운 현실'이다.

카와카미는 이날 강연을 통해 컴퓨터 그래픽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지금, 젊은 세대가 마주하게 되는 주된 풍경은 집 밖이 아닌 게임 속 체험에 속하게 됐다며, 점점 불분명해지고 있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자신이 소개하는 것이 개인적인 지론이며 망상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으니, 너무 깊게 파고들기보다 '이런 생각도 있구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당부했다.

카와카미는 'AI 시대에 맞춰 현실의 재정의'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AI와 VR은 '정보'로서 현실과 구분됐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그 차이가 줄어듦에 따라 기존의 구분법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실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진 CG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처럼 게임 자체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메이저 장르로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점, 그리고 실제로 연인을 사귀는 것보다 2차원 캐릭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어느샌가 현실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공통된 경험'이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기반으로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실 또한 정보의 일종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와 같은 존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인간을 생명이라는 정의 대신 '정보를 처리하는 주체'로 해석하게 되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상을 이상하거나 비일상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의 흐름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간을 정보를 처리하는 주체로 정의한다면, 그 모습은 '외계로부터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라는 것은 의식의 바깥, 즉 외부의 정보에 속하게 된다. 의식의 바깥에 있는 정보의 일부를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셈이다. 이러한 시선에서 보면 의식의 바깥에 있는 타인 역시 자기 자신의 일부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사회란 여러 의식이 구성하는 '집합의식'이며, 개인의 의식은 정보 전달의 부품이 된다.

다소 철학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지는 카와카미는 해석은 '미래의 엔터테인먼트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영화나 애니메이션, 인터넷 스트리밍, 게임, 소설, 만화 등으로 정의되는 엔터테인먼트는 정보생명체인 인간에게 있어 교육장치이자, 손상된 목적함수의 복구 역할을 담당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재 가장 히트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해당 시점에서 검토하고, 간추려진 목적함수 내에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부분을 채워주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지는 셈이다. 그는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때 타겟 유저의 손상된 함수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여기에 집중해서 마케팅을 진행하고, 이에 맞춰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빠르게 바뀌어가는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현시대에 '히키코모리로 살았기 때문에 이성에게 인기가 있다'라던지, '노력하지 않았는데 성공하게 됐다'라던지, 아무리 봐도 우유부단한 주인공이 귀여운 여성 캐릭터들로부터 '상냥하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등의, 다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제공하는 개발자라면 이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기보다는 인간 의식의 결손을 채워줄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를 콘텐츠 개발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