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측부터) SNK 오다 야스유키 총괄 PD, 조슈아 웨더포드 시스템 PD

일본 게임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장르 중 하나를 꼽자면 대전 격투 게임일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킹 오브 파이터즈', '철권', '버추어 파이터' 등, 당장 떠오르는 게임들을 나열해봐도 거의 일본 게임들이 장악했다고 봐도 무방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회자되는 격투 게임들을 살펴보면, 몇몇은 비교적 새롭게 등장한 시리즈이긴 하지만 대부분 8~90년대부터 시작된 시리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재까지 버티고 있는 작품들의 양상을 보면 때로는 캐릭터 라인업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고, 그래픽이 일신되는 등 변화가 있긴 하지만 그 시리즈 안에서 정체성을 유지한 채, 격투 게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때 명맥이 끊길 뻔했고, 3D 그래픽으로 노선을 바꾼 뒤에 한동안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개발사인 SNK도 최근 킹 오브 파이터즈15의 호평으로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90년대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격투 게임 장르에서 희노애락을 이어온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그리고 일본 격투 게임의 과거와 현재는 어떨까? SNK의 오다 야스유키 총괄 PD와 조슈아 웨더포드 시스템 PD는 데브컴 현장에서 서양 그리고 글로벌 유저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다 PD의 커리어는 '아랑전설'부터 시작됐다. 그 뒤 킹 오브 파이터즈 95때부터 킹 오브 파이터즈를 담당하고 용호의 권이나 아랑전설 신작도 꾸준히 개발해왔다. 이후 잠시 이직해 스트리트 파이터4 개발에 참여하는 등 대전 격투 게임 일변도로 30년 넘게 커리어를 이어왔다.

▲ SNK를 떠나있기도 했지만, 그때도 스트리트 파이터4 개발에 참여하는 등 격투 게임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가 커리어를 시작한 시기부터 일본 게임계는 대전 격투라는 장르에서 지배적인 위상을 보였다.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는 물론이고, SNK의 아랑전설, 용호의 권, 킹 오브 파이터즈, 사무라이 쇼다운에 아크시스템웍스의 길티기어 시리즈, 이후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와 반다이남코의 철권까지 2D에서 3D로 넘어와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비결에 대해서 오다 PD는 2D 대전 격투 게임 시절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일본 게임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의 환경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와 함께 실제로 대전 격투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 중에 프로급으로 격투기를 수련하거나 실제로 자신의 모션을 캡쳐하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서도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3D 대전 격투 게임에서는 모션 캡쳐를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오다 PD가 주로 맡았던 2D 격투 게임의 초창기에는 실전적인 움직임보다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뇌리에 그 캐릭터의 강함과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선보일 수 있을까에 주목했다. 따라서 과장된 구도와 연출로 흑백의 지면에도 박진감을 불어넣는 만화의 노하우와 그 움직임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애니메이션의 기법에 영감을 받았다.

그것이 대전 격투 게임의 태동기에 일본 게임이 확실히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인 한편, 그 게임에 영감을 받은 신진 개발자들이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진 기존 개발자들이 3D 기술을 접해서 새롭게 대전 격투를 구성한 것이 최근의 3D 대전 격투 게임의 양상이라고 보았다.

▲ "현실에서 사람의 손에서 불이 나오지 않지만, 그런 연출이 확실히 눈길이 간다"

또한 일본에서 대전 격투 게임이 강세를 보인 이유 중 하나가, 아케이드 게임 센터에서 대전 격투 게임의 인기가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등 대전 격투 게임 출시 후 아케이드 게임 센터는 호황을 맞았고, 이에 아케이드 게임 센터 주인들이 게임사에 신작 격투 게임이 언제 나오냐고 지속적으로 문의했던 것이다. 90년대만 해도 신작 격투 게임이 어느 센터에 먼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인근뿐만 아니라 곳곳의 고수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양상이었으니, 자연히 유저를 끌어오기 위한 신작 개발과 고수들의 입소문을 타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지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일본의 대전 격투 게임 개발자들이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서로 공유된 것 아니냐는 질문도 제기됐다. 이에 오다 PD는 대전 격투 게임 개발자들이 회사를 옮기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대부분은 회사에 계속 남아서 그 노하우를 신입들에게 꾸준히 전수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옛날에 서양권에서 킹 오브 파이터즈 개발 당시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관련 인력을 빼왔다는 루머가 돈 것에 대해서는 스트리트 파이터 개발진 중 한 사람이 퇴사 후 SNK의 GM으로 온 것이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다소 주춤하지만, 게임 센터는 일본 게임 업계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한때 그만큼 폭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SNK였지만, 기나긴 부진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그 뒤에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부터 명맥을 다시 이어오면서 점차 기세를 회복하고 있는 SNK의 과거와 현재 개발 인력은 몇 명 정도일까? 오다 PD는 90년대에는 30명, 많으면 50명이 개발하는 구도였다고 설명했다. 언리얼 엔진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개발 인력의 수는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협력 업체와 클라이언트를 포함하면 200명 정도로 확장된 상황이다. 개중 오다 PD처럼 SNK에 오래 있던 인력은 15명 가량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을 2D에서 3D로 바꾸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킹 오브 파이터즈15가 발전한 시스템과 그래픽, 그리고 롤백 넷코드 등으로 커뮤니티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초기의 테리와 바네사를 비롯해 최근 EVO 2022에서 크로닌과 B.제니, 쿨라 동일픽이 자주 나오는 등 밸런스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데이터에 기반해서 밸런스 패치를 진행하고 있으며, 각 지역마다 선호하는 픽이 다른 것도 고려해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다 PD에 따르면 아시아권에서는 제니와 베니마루를 많이 활용하며, 북미 유럽권에서는 락 하워드와 크로닌의 픽률이 높았다. 반면 남미에서는 예전부터 인기 있는 픽인 이오리, 쿄의 픽률이 타 대륙보다 높았다고 설명했다. 크로닌의 너프에 대한 청중의 질문에는 너프를 크게 먹이면 재미가 줄어들 것이 우려되지만, 방법을 고려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EVO 2022에 자주 보였던 크로닌-B.제니-쿨라. 크로닌 너프와 관련해서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다 PD는 대전 격투 게임의 흐름을 바꾼 기술로는 그래픽이나 시스템보다는 '롤백 넷코드'를 첫손으로 꼽았다. 이전에는 각 지역권 유저끼리만 원활한 매칭이 가능해서 지역마다 잘 쓰는 캐릭터나 전략이 다르고 지역별 격차도 컸지만, 롤백 넷코드의 도입으로 전세계 유저끼리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가고 메타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롤백 넷코드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있었던 기술인데, 왜 그간 그런 장점이 있었는데도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또한 대전 격투 게임팬이면 기존 게임에 바로 롤백 넷코드를 적용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도 궁금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오다 PD는 우선 개발사들이 당시에는 아케이드나 오프라인 대회, 동일 지역권에서 진행되는 대회나 매치에 초점을 뒀던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일본 등 네트워크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롤백 넷코드가 굳이 필요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구현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원인이었다.

아울러 롤백 넷코드는 상대방의 입력이 전해지기 전에 게임이 진행된 후, 롤백으로 수정하는 방식이라 그 움직임이 어색하지 않으려면 움직임을 예측해서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롤백 넷코드가 처음 언급되던 시기에는 그런 예측을 적용하는 노하우가 부족했던 터라 어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개발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시뮬레이션한 끝에야 비로소 적용이 가능했다. 즉 기술적으로는 어렵지는 않으나, 그 예측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게끔 짜는 과정이 필요해서 롤백 넷코드가 기존 작품에 바로 도입될 수 없던 셈이다. 그래서 사무라이 쇼다운은 출시 후 3년이 지난 EVO 2022에서 롤백 넷코드가 예고됐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EVO 2022에서 공개된 '아랑전설' 신작을 개발하게 된 계기와 SNK가 자사의 각기 다른 게임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서로 크로스오버해도 잘 어우러지게끔 디자인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오다 PD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부터가 용호의 권, 아랑전설의 캐릭터가 모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시도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 노하우가 쌓인 뒤, '이런 캐릭터들이 여기에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상상을 한층 더 넓혀간 것이 현재의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그리고 SNK 격투 게임의 유니버스였다. 상상을 그냥 상상으로 끝내지 않고 시도하면서 때론 실패하고 그걸 극복하는 것은 일본 대전 격투 게임의 역사 그리고 SNK가 걸어온 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