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나 여타 매체에서 흔히 '루프물'하면, 언제부터인가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이전 시간대로 돌아가서 똑같은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루프물은 '반복'이 전제된 만큼, 보통 그 상황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하거나, 혹은 그 반복되는 배드엔딩을 벗어나기 위해서 반복되는 상황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포인트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아케인 스튜디오에서 선보인 '데스루프'는 조금 달랐다. 주인공 콜트가 계속 반복되는 하루에서 영생을 약속한 블랙리프 섬의 선지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루프에 들어가는 구성은 유사하지만, 루프를 깨뜨릴 단서는 비교적 초반에 제시된다. 그리고 신중하게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식이라기에는 일종의 초능력인 '슬랩'을 얻게 되는 시점도 비교적 이르고, 곳곳에 예전의 콜트가 다녀간 흔적이나 퀘스트 리드 등을 통해서 루프를 길게 이어가면서 더 액션을 즐길지 혹은 빠르게 끝내버릴지 선택 가능하게 한 것이다.

흔히 루프물하면 떠오른 틀을 깨뜨린 데스루프지만, 메타크리틱 80점대 후반에 여러 매체에서 GOTY를 수상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럼 과연 '데스루프'는 미리 힌트를 다 줘도 왜 반복하는 것이 지겹지 않고 짜임새가 있을까? 아케인 리옹의 데이나 나이팅게일 캠페인 디렉터는 '데스루프'의 구성을 어떻게 만들어갔나 설명했다.

▲ 데이나 나이팅게일 아케인 리옹 캠페인 디렉터

데스루프를 처음 개발할 때부터 중점에 뒀던 것은 '루프'라는 테마와 '이머시브 심', 즉 유저가 주체적으로 데스루프의 세계를 탐사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을 즐기게끔 유도하는 것이었다. 블랙리프섬이라는 좁은 공간이 무대였던 만큼, 이 무대의 밀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유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이어그램을 그리면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초창기부터 콜트가 루프를 깨뜨리는 방법은 8명의 선지자를 한 루프 내로 죽이는 방법으로 설정한 만큼, 다이어그램을 짜맞추면서도 그 모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유저들에게 이해시키는 방법도 고민해야만 했다. 데스루프에서 유저는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밤까지 네 개의 시간대가 주어지고 각 시간대마다 맵 하나만 탐사할 수 있다. 그런데 선지자는 각자 등장하는 시간이나 맵도 다 다르며, 줄리아나를 빼면 한 맵에 선지자 한 명씩만 배치된다. 즉 어떻게 루프를 돌려도 단순히 계산해보면 최대 4명밖에 죽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 하루 네 시간대를 돌면 끝인데, 처리해야 할 사람은 8명이니 계산이 안 맞는다

▲ 그래서 루프 안에서 몇몇은 직접처리하고 다른 선지자는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풀이 과정을 설계했다

이 모순은 유저가 특정 맵의 특정 시간대에서 꼭 해야 하는 조건을 이행하면서 풀리는 것이 '데스루프'의 풀이법이다. 예를 들어 선지자 중 프랭크를 사살하기 위해서는 불꽃놀이에 손을 써둬야 하는데, 그러려먼 해리엇이 있는 구간에서 메시지를 찾아서 오토에게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각기 다른 시간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선결 조건을 클리어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네 명의 선지자를 죽이면서 프랭크까지 불꽃놀이로 처리하면 총 5명의 선지자를 한 루프에 죽일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복잡한 풀이법이 '데스루프'의 묘미이자 진입장벽이었고, 이 장벽을 어떻게 낮추면서도 게임의 코어를 유지하느냐가 데스루프의 최우선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개발진에서는 프롤로그부터 8명의 타겟을 제시하고, 그 8명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단서를 찾고 그 단서를 따라서 루프를 깨뜨리게끔 설계했다.

▲ 그 풀이를 찾는 것이 복잡한 만큼, 대신 8명을 한 루프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처음부터 제시했다

아직 UI를 입히지 않은 알파 단계였지만, 초안은 베데스다의 유저 리서치팀에게 혹평을 들었다. 콜트와 줄리아나가 등장한 프롤로그는 그때도 힙한 분위기를 전달하기엔 충분했지만, 콜트와 줄리아나가 왜 서로 싸우게 됐나 설득력이 부족했다. 추리 요소를 넣은 것은 좋았지만, 루프를 어떻게 깨야 할지 단서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고, 로그라이크처럼 생각했다가 로그라이크가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하는 유저도 있었다. 그나마 불꽃놀이 파트를 클리어한 유저들은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하고 좋은 평가를 줬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작중 콜트가 루프를 반복하면서 느끼는 혼동을 몰입감 있게 표현하는 작업은 성공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한 만큼 긴급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케인의 시니어급 직원들이 모인 스트라이크팀이 관여, 수정 작업에 나섰다. 그중 나이팅게일 캠페인 디렉터가 맡은 역할은 이미 적용된 콘텐츠들을 어떤 식으로 맞춰나갈지 조율하는 작업이었다.

▲ 초안은 리서치팀의 비판을 들었으며, 시니어급으로 구성된 팀이 투입되어 개선 작업이 이루어졌다

조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유저의 경험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기준에 따라서 프롤로그부터 여러 가지가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풀어서 헷갈린다는 의견에 목표를 네 가지로 단순화하고 나머지 파트는 덜어냈다. 프롤로그 단계에서는 루프를 깨뜨리기 위해 콜트가 줄리아나와 싸운다는 점과, 타임 루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작법 등 기초적인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레지덤과 인퓨전이 무엇인지 정도만 집중적으로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특히 알파 당시 유저들 다수가 인퓨전에 대해 몰랐다는 반응이었던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 NPC가 등장해서 소개하는 부분을 넣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루프 유지 프로토콜이나, 새로운 루프로 가게 되도 이전에 진행했던 사건 일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저가 학습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 해당 퀘스트의 처음에는 금고가 닫혀있지만, 콤플렉스로 가서 루프 유지 프로토콜에 대해 알게 된 뒤 프리스타드락에서 금고 코드를 찾고 다시 업댐으로 가면 금고가 부서진 걸 확인하게 된다. 그 뒤 루프가 진행되어 업댐으로 바로 가면 금고는 열려있고, 여기서 NPC가 등장해 관련 내용을 짧게 소개하면서 재차 확인시켜주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 금고를 여는 과정에서 특정 행동을 이행하면 루프를 해도 무언가 바뀐다는 걸 인식시킨 다음에는

▲ 게임 내 시스템을 이해 못하는 유저들에게 과연 어떻게 설명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인퓨전으로 루프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걸 유저들에게 어필했지만, 레지덤과 무기 그리고 슬랩과 트링켓 중 어떤 것이 초기화되고 어떤 것이 초기화되지 않는지 설명하는 구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이것까지 한꺼번에 설명하면 복잡해진다고 생각한 개발진은 프롤로그에선 인퓨전 관련 설명을 빼고, 가이드 투어식으로 진행되는 프롤로그가 끝난 뒤에 루프를 시작할 때 레지덤으로 장비 합성을 하면 무기가 그대로 유지되는 시스템을 소개했다. 또한 인퓨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선지자 중 웬지에를 죽인 다음에야 알게 하는 식으로 퍼즐의 완급을 조율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에도 유저들과 리서치팀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다수의 테스터들이 인퓨전에 대한 정보를 몰랐고, 장비 합성으로 무기가 유지되는 그 시스템을 활용한 사례도 얼마 없었다. 그나마 콜트와 줄리아나가 왜 싸우는지, 또 8명의 선지자를 한 루프 내에서 죽여야만 끝난다는 것을 바로 이해시킨 점은 고무적이었다.

▲ 정보를 너무 한꺼번에 풀었다는 생각에 일부 파트는 좀 더 뒤쪽으로 옮겨서 배치했다

이러한 결과에 개발팀 내부에서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나 논의가 오갔다. 그러나 알파에 이어 프리베타급으로 평가받은 이번 테스트에서도 서로 죽고 죽이려 드는 힙한 스타일은 유지됐다는 평가가 있던 만큼, 그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여러 단서를 추가하면서 직관성을 좀 더 높이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앞서 언급한 프랭크를 불꽃놀이로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유저들은 선지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퀘스트 리드를 받게 되면, 그걸 우선해서 가장 간단한 방법부터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자를 직접 죽이러 가지만 잘 풀리지 않으면 플레이 경험이 급격히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불꽃놀이 전에 사전에 처리해야 할 찰리와 알렉시스를 먼저 두는 구도로 개편하고, 튜토리얼에서부터 지난날의 콜트의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사전에 접하고 대비할 수 있게끔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유저 리서치팀은 베타 단계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개발팀 내에서 가이드 투어라고 말하는 초반 파트는 확실히 유저들이 잘 클리어하지만, 유저들이 선지자가 있는 맵에 도착하면 무조건 선지자를 바로 킬하기 위해 여러 번이고 헤매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저 다수가 데스루프를 로그라이크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였다. 당시에도 로그라이크가 크게 유행했던 만큼, 유저가 친숙한 장르에 맞춰서 해석하다가 오인한 것이었다. 그런 유저 다수는 각 맵과 시간대 사이사이에 퍼즐의 연계를 찾기보다는 반복을 통한 클리어에 집중했고, 결국 루프를 깨는 가장 간단한 방법보다 두 배 이상은 더 맵과 시간대를 헤매면서 플레이하는 양상을 보였다.

▲ 사보타주에 성공한 경우엔 평가가 좋았지만, 그냥 돌격해서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

▲ 불필요한 시간은 그냥 스킵해서 넘어가고 다음 루프에 완성한다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도 문제였다

UI 직관성이 떨어져서 해당 정보를 캐치하지 못했다고 분석한 개발팀에서는 시간대를 스킵하는 법과 인퓨전을 빨리 사용하게끔 UI를 재구성하는 것에 주력했다. 한편으로는 스킵과 인퓨전을 최근의 쉬운 게임들처럼 강제로 사용해야만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설계하고, 되도록이면 맵을 어느 시간 대에 방문했을 때 최대한 유저가 많이 처리하고자 하는 니즈를 반영했다.

그렇게 수정했음에도 리서치팀은 합격이 아닌, 파이널 리포트 단계로 평가했다. 가이드 투어식 전개로 타임 스킵이나 인퓨전 등 주요 기능은 알게 됐지만. 선지자 중 프랭크를 노리는 유저들이 무모하게 쳐들어가서 프랭크를 잡으려고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이팅게일 디렉터는 불꽃놀이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이고르, 해리엇과 관련된 사항도 처리하고 오토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 절차가 필요한데, 그 선행 조건 없이 무리하게 자신의 게임실력을 믿고 들이받고 실패하는 유저가 의외로 많았다고 회고했다.

▲ 특정 방법 외에 못 잡는 보스를 컨트롤로 잡는 묘미가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반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더군다나 인퓨전까지는 알게 됐어도, 레지덤을 얼마나 얻을 수 있고 어떻게 경제적으로 활용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유저도 꽤 많았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게임플레이를 진행하면서 유저가 직접 알아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판단, 더 손을 대지 않고 플레이어가 퀘스트의 벽을 깨는 방향에 집중했다.

프랭크를 불꽃놀이로 처리하기 위한 단서를 쉽게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유저들이 어떤 단서를 찾으면서 플레이하는 것 자체는 좋아한다고 판단해서 이 부분은 유지했다. 이고르와 해리엇의 퀘스트 리드 중에는 비교적 쉬운 해리엇의 퀘스트 리드를 센터에 오게끔 UI를 조정했다. 그 결과 원래는 프리스타드 락이 컴플렉스 아래쪽에 배치되어있었지만, 칼스베이가 그 아래로 오게 됐다. 유저들의 시선이 화면 중앙에 먼저 가는 만큼, 더 중앙에 가까운 리드를 먼저 읽고 이행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해서였다.

▲ 그래서 퀘스트 우선 순위도 다시 짜고

▲ 그에 맞춰 UI 배정도 다시 하면서 유저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했다

데스루프는 이렇듯 최초 설계부터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구성을 담아낸 만큼,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게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통해서 게임의 목표와 시스템을 직관적으로 담아내는 것에 성공했고, 2021년 GOTY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던 원동력으로 나이팅게일 디렉터는 여러 차례 테스트를 해준 팀원들과, 유저가 어떻게 느낄지 차분히 생각하고 단순화해서 하나하나 풀어나간 아케인 스튜디오의 개발 풍조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난관이 닥쳐도 당황하지 말고 '유저의 경험'이라는 것과 '단순화'를 잊지 말 것을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