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OS 혹은 DotA-Like?


이런 게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이런 게임을 거의 카오스밖에 접할 수 없었을 때는 장르고 뭐고 그냥 카오스라고 부르면 되었다. 도타는 도타라고 부르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오스 혹은 도타와 같이 워크래프트3의 모드로 종속된 것이 아닌, 독립적인 게임들이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아진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걸 카오스류라고 하면, 아마 카오스의 탄생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카오스는 도타 베낀 것"하며 화를 낼 것이다. 그럼 도타류라고 해야 하나.


사실 비슷한 게임들의 원류를 찾아 장르의 이름을 정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스키 텍스트들로 꾸며진 그래픽에서 무한 던전을 탐험하며 한시적 생명을 자연에 내던졌던 로그라이크(Rouge-Like)로 불리는 장르의 게임들은, 그런 게임의 시초가 '로그'였는데 딱히 정해진 장르명이 없다 보니 '로그 비슷한 게임들'로 불리게 되었고 결국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로그라이크 장르의 가장 먼저 나온 게임이 실은 로그가 아니라는 지적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자.)



▲ 게임의 이름이 장르를 대변해 버린 경우



그런 점에서 카오스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외국에서 이런 종류의 게임들이 도타라이크(DotA-Like)로 불린다면 그것도 별로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이런 종류의 게임들은 대부분 자신의 게임을 소개할 때 '도타 같은 게임(DotA like, DotA based)입니다'라며 게임을 홍보하고 있다.


게임의 장르라는 학술적인 카테고리 분류보다는, 대게 이 게임이 어떤 형태의 게임인지 소비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단어의 선택이 마케팅에서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아직 '도타 같은 게임'만한 설명은 없고, 게이머들도 '도타 비슷한 게임 뭐 있어?'라는 식으로 이들 게임을 묶고 있다.



▲ 도타 같은 게임 뭐 있어?



우리나라는 상황이 좀 다르다. 도타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이 카오스고 그래서 이런 류의 게임이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쉽게 설명하려면 '우리 게임은 카오스 같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로코가 LOCO(Land of Chaos Online의 약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오스 온라인의 경우는 아예 직접적으로 '나는 카오스다'라고 외치는 경우.


하지만 카오스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원죄가 있다. 카오스는 도타를 베낀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 그래서 굳이 카오스를 강조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생기게 된 것이다.


'카오스 같은 게임'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게임성을 전달해야 한단 말인가. 아마 이런 필요에 더해 '원조할머니 국밥집 옆에 있는 원조할머니 국밥집'처럼 원조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의 성향이 만나, AOS라는 장르적 명칭이 생겨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원조가 어디냐를 따지고들면 지금의 도타올스타즈와 카오스의 원조격인 도타 역시 실은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Aeon Of Strife(앞글자를 따서 AOS라고 한다)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인데, AOS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아무튼 뭐라고 불러야 할 필요는 있었고 '도타는 잘 모르고, 카오스라고 하자니 찜찜해서' 그렇다면 원조인 AOS라고 부르자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재밌는 것은 막상 외국에서는 AOS라는 이름을 장르명이나 게임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네들은 그냥 '도타 같은 거'라고 하면 통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2의 공식 유즈맵으로 만드는 AOS 형태 유즈맵의 이름을 DOTA라고 한 것을 보면, 원조라는 AOS를 블리자드부터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은지.



▲ 위키피디아 LOL 페이지
AOS 대신 외국에서 장르로 선택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위키피디아에는 이런 류의 게임들의 장르를 소개할 때 쓰는 Action RTS.


하지만 액션RTS가 도타류 게임이 가진 RPG의 성격과 크립과 함께 싸우는 공성전까지 담아둘 수 있는 장르적 명칭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도타류게임에 전략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원을 생산하고 생산건물을 언제 어떤 조합으로 건설하고 거기서 생산된 유닛들을 어떻게 배치해서 전쟁에 승리할 것이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RTS와 한 그릇에 담아둘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워크래프트3라는 RTS 게임의 모드에서 뻗어나왔다는 의미를 담아낼 수 있긴 하겠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르 명칭은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다. 도타올스타즈의 제작자가 참여해 만든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비롯해 최근의 게임들이 자신을 MOBA라고 부르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우리말로 하면 온라인 투기장쯤 되는 말이다.


날 선 잣대를 들이대면, 투기장 또한 독특한 공성전과 영웅 성장의 과정을 오롯이 담아내기는 어려운 명칭으로 보인다. 배틀 아레나 장르에 꼭 맞는 게임을 꼽으라면 도타류가 아니라 펀컴의 '블러드라인 챔피언' 같은 게임이 일감으로 꼽힐 것이다. 블러드라인 챔피언에는 파괴해야하는 본진이 없고, 크립도 없다. 탱커, 딜러, 힐러와 같이 역할 구분이 된 다양한 영웅들을 조작해 상대방의 영웅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이 게임의 내용인데, 도타류와 이 게임을 같은 장르라고 하면 도타 게이머가 느끼는 거리감은 꽤 클 것이다.



▲ 최근에는 MOBA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있다



▲ 그렇지만 투기장 하면 이런 모습이 떠오르는데...
블러드라인 챔피언도 이런 모습을 가진 게임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게임을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 카오스 짝퉁게임들? 물론 짝퉁 수준의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럴 수야 없다. 도타류? 뭐 그래도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정히 하나 정하기 어려우면 AOS도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외국에서는 MOBA를 쓰는 게임이 많으니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냥 카오스는 카오스고 도타는 도타고 LOL은 LOL이라고 해도 되겠고.


솔직히 뭔들 어떠랴 싶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것들만 우리나라 서양 합쳐 15개 이상의 게임이 이미 나와 있고, 앞으로 이런 류의 게임이 더 출시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뭔가 이들을 통칭하는 이름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로그라이크'의 경우처럼 그걸 장르처럼 부르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AOS든 DotA-like든 MOBA든.


(편의상 여기서는 이들 게임을 AOS로 통칭하기로 한다.)



▲ 위키피디아는 또 이런 게임을 'Dota 장르'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정답은 없다는 이야기.




▶ 태초에 도타가 있었으니...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AOS 게임은 우리나라에는 카오스, 외국에는 도타올스타즈가 있다. 두 게임 모두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 형태로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드게임이다. 기왕 AOS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이들 게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간단히 돌이켜보자.


언급했듯 이런 게임의 원조를 따지고 올라가면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Aeon Of Strife가 나온다. 지금은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운 맵이고 특히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플레이해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시초라는 전설로 남아 있달까.



▲ 세 갈래 길. 쏟아지는 적을 물리치며 영웅을 강화해 적의 본진을 파괴하면 승리하는 Aeon Of Strife



그래서 본격적인 시작은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 Defense of the Ancients(앞글자를 따면 DotA가 된다. 제작자는 EUL)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다. 워크래프트3의 영웅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온 이 유즈맵은, 공성전 형태의 플레이 방식과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EUL 의 Defense of the Ancients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03년 워크래프트3의 확장팩인 프로즌쓰론이 출시되면서 이전에 있던 유즈맵들의 보호장치가 깨져버린 것이다. 유명한 유즈맵들은 함부로 다른 사람들이 수정할 수 없도록 원작자가 프로텍트라는 일종의 보호장치를 걸어두었는데, 확장팩이 나오면서 유즈맵 파일의 형식이 바뀌자 이전의 맵들의 보호장치가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DotA 역시 많은 언프로텍터들의 표적이 되었다. 여기에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제작자 EUL의 부재가 겹치면서 DotA를 자기 나름대로 '업데이트'한 DotA Outland, DotA Classic, DotA Rumble 같은 수정작들이 배틀넷에 범람하기 시작한다. 혼란의 시대가 닥친 것이다. 그러나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것은 단 두 개의 맵 뿐이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흔히 도타와 카오스라고 부르는, DotA Allstars 와 DotA CHAOS 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어떻게 보면 보호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일종의 해킹을 통해 탄생한 이 두 맵은 외국와 국내에서 각각 오리지널 도타를 잇는 승자가 되었으며, 하늘을 찌르는 인기와 함께 나날이 발전해 나갔다.



▲ 도타계를 평정한 도타 올스타즈



▲ 도타 카오스로 출발해 나중에는 도타를 떼버린 한국의 카오스



도타올스타즈 그리고 카오스로 자리를 잡고 나서부터는 원작인 워크래프트3의 인기보다 이들 게임의 인기가 훨씬 높았으며, 급기야 도타올스타즈가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의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카오스 클랜 배틀(CCB)같은 대회가 열리며 일개 유즈맵이 e스포츠의 종목이 되는 신분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두 맵의 제작자들은 그 인기와 오랫동안 함께 하지는 못했다.


도타올스타즈를 만든 구인수(Guinsoo)는 6.01버전까지만 개발하고 그 후 아이스프로그(IceFrog)에게 도타올스타즈의 운영권을 넘겨주게 되고, 카오스를 만든 초고수는 유즈맵 소스의 출처에 대한 논란과, 밸런스 조정 등에 대해 부담을 느껴 제작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카오스는 새로운 개발자 '하늘섬'이 업데이트를 맡게 된다.


※ 관련 기사 : 워3 유즈맵 카오스를 아시나요? 제작자 하늘섬과의 인터뷰




▶ 독립 클라이언트 게임이 등장하기까지


'언프로텍트의 정당성. EUL의 허락은 받았는가. (도타올스타즈와 카오스 모두 EUL로부터 사후 맵 수정에 대한 허락을 받게 된다.) 카오스가 도타를 잇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적통이 아니라도 좋다. 도타보다 카오스가 한국인의 정서에 더 맞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한글화도 중요했고. 결국 과정이 어떠했든, 시장을 누가 지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도타올스타즈와 카오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따라나오는 이런 논란들에 대해서 여기서 쉽게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마 위에 간추린 내용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군.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말해주지'와 같은 폭풍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많은 도타류 맵들 중에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이 전 세계적으로 도타올스타즈와 우리나라의 카오스라는 점.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의 게임성에 개발사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개발자 : "내가 해봐도 재미가 있네?"



사실 도타나 카오스는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개인의 취향을 제외한다면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대립하는 두 진영에 개성이 뚜렷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돈을 벌고 레벨업도 하면서 스킬도 배운다. 그 와중에 끊임없이 상대편과 PVP를 해야 한다. 무시할 수 없는 아이템빨과 아이템 구매, 조합, 인챈트. 캐릭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고정된 자리에서 사냥하기, 돌아다니며 사냥하기, 건물 테러하기, 암살하기와 같은 다양한 플레이 패턴. 상대방의 조합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운영. 순간적인 센스와 전반적인 게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각. 플레이 패턴과 스킬에 따라 차별화된 캐릭터의 상성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팀워크. 1:1, 2:2, 5:5 PVP와 탱커, 딜러, 힐러와 같은 역할 구분에 최종 목표는 상대방의 성을 무너뜨린다는 공성전의 콘텐츠까지.


이를테면 MMORPG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바닥에서 정점까지 1시간이면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카오스였고 도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게임이 가지는 한계 또한 명확했다. 우선 워크래프트3가 있어야 플레이할 수 있었다. 워크래프트3에 종속되어 있어 불편한 게임 매칭 시스템이나 방 생성을 그대로 사용해야 했고, 워크래프트3의 틀을 빌어 쓰다보니 인터페이스와 같은 부분에서도 불편함이 있었다.



▲ 한 명이 나가면 여지없이 방폭이 뒤따랐다



또 한 명의 제작자가 밸런스 작업과 업데이트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 보니 효율적인 유지보수와 안정적인 관리도 어려웠다.


수익성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이미 인기가 사그라진 후에도 계속해서 워크래프트3가 온라인 게임 순위에 포진하는 이유의 8할이 카오스 때문이었지만, 그 혜택을 수익적으로 보상받는 쪽은 없었다. (굳이 찾아보자면 카오스 대회를 위해 맵을 수정해주며 제작자인 하늘섬이 약간의 수고비를 받았던 정도)


그러니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귀결이었다.


'카오스의 불편함을 개선한 게임을 만들어 카오스를 대체할 수만 있다면, 그로부터 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겠구나.'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 '도타의 불편함을 개선한 게임을 만들고 거기에 수익모델을 얹는다면 성공할 수도 있겠구나'.


거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유즈맵이 있었지만, 정작 독립 AOS는 무주공산이었던 것이다.




▶ 한국형 AOS의 출몰 그리고 도전


하지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워크래프트3가 그리 만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 카오스는 거의 모든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워크래프트3 월드 에디터의 능력을 극한으로 사용하는 유즈맵이었다.


그러니까 카오스 비슷한 게임을 만들려는 어떤 게임사가 있다면, 그 게임사는 우선 워크래프트3를 뛰어넘는 게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장벽에 부딪히고야 마는 것이다. 워크래프트3를 아무나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년이 지났지만 블리자드가 만든 게임을 더 뛰어난 버전으로, 아니 똑같이라도 만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 워크래프트3 에디터의 위엄. 비행시뮬레이션, FPS까지 만들 수 있으니...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초창기 선을 보였던 AOS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카오스의 재미에 심취했던 개발사들은 워크래프트3를 따라 하겠다고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실패해갔다. 설령 겉모습은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었더라도, 유닛 한 마리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그 미묘한 손맛 같은 것들은 결코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의 것이었다.


이 시기에 나온 '다크니스 앤 라이트(2007년)'나 '삼국통일:대륙의 별(이후 TK온라인으로 이름을 바꿨다. 중국에서는 배틀 오브 킹덤즈 Battle of Kingdoms 라는 이름으로 오픈베타를 하기도. 2008년)'은 영락없는 워크래프트3에 대한 실패한 오마주라 하겠다.



▲ 엔로그소프트의 다크니스 앤 라이트(DAL)



▲ 게임알로의 삼국통일:대륙의 별. 양영순 작가의 작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후에는 좀 더 개발력을 갖춘 게임사들이 AOS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펜타비전이 개발한 '듀얼게이트(2008년)'는 AOS의 컨셉을 따온 조금은 다른 게임이었다. 카드로 용병을 소환하거나 마법을 사용하고, 전투액션은 마치 던파처럼 싸우는 방식으로 카오스와는 꽤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가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글쎄. TCG에 소환물에 횡스크롤액션에 AOS까지 섞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거라 짐작해볼 수는 있겠다.


좀 더 완성도를 높인 형태의 AOS로 '아발론(2009년)'도 나왔다. 아발론은 다크니스 앤 라이트나 삼국통일:대륙의 별보다는 조금 더 게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초보자를 배려한 시스템이나 워크래프트3의 불편한 인터페이스의 개선에 신경을 쓴 게임이었다. 또 PVP 외에도 시나리오 모드나 레이드 모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꽤 괜찮아 보였다.



▲ 펜타비전의 듀얼게이트. 하이브리드라고 해야 할 듯



▲ 모본의 아발론. 유럽 37개국, 대만, 동남아, 중국까지 진출하는 등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카오스의 불편함을 개선한 게임을 내놓으면, 카오스에서 넘어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카오스 유저들은 카오스와 비슷한 뭔가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굳이 이미 익숙해진 카오스에서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카오스랑 비슷한 정도면, 그냥 카오스 하면 되지'. 이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래서 좀 더 차별점을 강조하는 백뷰 시점의 TPS 조작을 도입한 게임이 나왔다. 카오스 유저를 향한 애정을 담뿍 담은 '로코(2010년)'와 킹덤언더파이어의 이름를 활용한 '킹덤언더파이어 온라인(2011년)'은 좀 더 사실적인 그래픽에 마치 TPS 액션 게임을 하는 듯한 조작감으로 색다른 맛을 선보였다.



▲ 다날의 로코. AOS + TPS의 새로운 시도



▲ 최근 테스트를 한 드래곤플라이의 킹덤언더파이어 온라인



물론 여기에도 '그러나'가 있다. 카오스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뭔가 새로운 충격을 주겠다고 백뷰 시점에 TPS 조작을 도입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런 조작 때문에 새로운 불편함들이 생겨났다.


특히 인터페이스 부분에서 카오스의 아이템 시스템이나 상점 시스템을 되도록 보존하려다보니, 조작하랴 상점 열어서 아이템 선택하랴, 아이템 쓰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TPS 조작이 되면서 강조되었어야 할 기본적인 액션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에 더해지면서, 결국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습만 남기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 나온 '사이퍼즈(2011년)'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서 액션 자체에 집중하는 형태로 가다듬어진 게임. 카오스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쉽게 풀어낸 점에서 대중성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흥행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까지 가버린 사이퍼즈를 AOS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회의감이 든다. 그냥 공성룰을 도입한 TPS대전 액션이 아닌가.)


※ 관련 기사 : 한국형 AOS 사이퍼즈의 미래는? 4인 4색 리뷰




▶ 외국에 등장한 '도타 같은 게임'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는 순 카오스 짝퉁만 만들거나 이상한 시도를 하다 자멸한 게임들만 나온 사파 같고, 반대로 외국은 순정파 도타에 올인한 정파인 것 같이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외국 개발사들이라고 도타의 게임성에 주목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외국 개발사들도 '도타 이거 돈 되겠다. 잘만 만들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외국 게임은 국내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어떤 게임들이 있는지 이름이 알려진 것들 위주로 살짝 살펴보기로 하자.


Demigod

유명 RTS 토탈 어니힐레이션(Total Annihilation)의 창조자인 크리스 테일러(Chris Taylor)가 창업한 개스 파워드 게임즈(Gas Powered Games)가 개발한 게임이다. 던전 시즈의 바로 그 개발사다. 전형적인 AOS로 싱글플레이 모드가 있다는 것이 특징. 2009년 출시되었다.




Heroes of the Newerth (HON)

DotA를 가장 잘 따라 한(?) 북미 게임이다. 도타올스타즈를 맡고 있던 아이스프로그에게 '만들어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허락을 받았음을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독립 클라이언트 게임이 되면서 개인 스탯관리나 보이스챗, 매치 메이킹, 재접속 기능, 페널티 등 DotA에 비해 다양한 기능 보완이 이루어졌다. 게임의 완성도 또한 높다는 평가. 2010년 6월 정식 출시되었다.




Realm of the titans (원제는 天翼决, 천익결)

중국의 성광천익이라는 개발사가 만든 처녀작. 빅월드 엔진으로 제작되었으며 올해 6월 22일 오픈베타를 시작했다. 북미에는 Realm of the Titans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2007 WCG 아시아지역 도타올스타즈 종목 우승팀이 개발에 참여했는데, 개발사의 대표 또한 도타올스타즈 챔피언 출신이라고.




Rise of Immortals (ROI)

커맨드 앤 컨쿼와 듄2의 개발자가 창립멤버이기도 한 북미 개발사 페트로글리프(Petroglyph)가 만든 게임. 클로즈베타를 마치고 7월 7일부터 오픈베타에 들어갔다. 플레이 영상만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인 면을 느끼기는 어려운데, 아무튼 소셜 기능을 담은 허브, PVE 콘텐츠 등으로 DotA와의 차별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 AOS 개발사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온다.


데미갓을 만든 개스 파워드 게임즈는 따지고 올라가면,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를 다시 만들게 한 당시 최고 수준의 RTS 토탈 어니힐레이션을 개발한 노하우를 가진 회사. HON의 개발사 S2 게임즈는 2003년에 이미 RTS 와 FPS 액션을 결합한 독특한 게임, 세비지(Savage)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곳이다. 페트로글리프도 거슬러 올라가면 RTS의 시조격인 듄2, C&C를 만나게 된다.


AOS를 액션 RPG와 RTS의 결합이라고 본다면, 그런 관점에서 이들 개발사의 도전은 아예 근거가 없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 외에도 글로벌 아젠다를 개발한 하이레즈 스튜디오(Hi-Rez Studio)가 언리얼 엔진 3를 사용한 '스마이트(Smite)'를 발표하는 등 외국 개발사들의 독립 AOS 도전은 계속되는 중이다.




▶ 도타와 카오스의 주인공들은?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어 왜 그 게임이 안 나왔지'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쓰려고 그랬다.


도타와 카오스를 바라보던 다른 개발사들과 마찬가지로 도타와 카오스를 이제까지 무료봉사로 개발하고 업데이트했던 인물들 역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따로 만들어서 팔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도타 만든 사람, 카오스 만든 사람이라고 이런 생각 안 해봤을까.


물론 오로지 수익성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워크래프트3라는 게임에 종속된 AOS가 가진 많은 한계점과 불편사항들은 워크래프트3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타올스타즈를 제작한, 카오스를 운영하던 주인공들이 새로운 독립 클라이언트 게임을 제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에 더해 거의 무료로 업데이트와 밸런스 작업을 해야 했던 고충과 제작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너무도 무거운 짐들은 개발사 정도가 되어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여기에 성공적인 유료화 모델로 안정적인 서비스와 업데이트를 한다면 결과적으로 게이머들에게도 질 좋은 게임을 서비스하는 셈이 되므로,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깃발을 세운 건 도타올스타즈의 제작자 구인수였다.


도타올스타즈를 아이스프로그에게 넘겨준 구인수는 라이엇 게임즈에 참여해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LOL)라는 AOS 게임을 만들어낸다. 가장 유명한 도타올스타즈 커뮤니티(www.dota-allstars.com)의 운영자 펜드라곤(Pendragon) 역시 사이트를 접고 라이엇 게임즈에 참여했다.



▲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2009년에 출시된 LOL은 깔끔한 그래픽과 수준 높은 완성도를 기본으로 독립 게임이 얻을 수 있었던 강제 종료 페널티나 전적 관리 등 워크래프트3의 한계를 넘어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초심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게임의 진행이나 UI에 신경을 써 진입 장벽을 낮췄으며, 빠른 업데이트와 함께 부담 없는 부분유료화 모델로 큰 호응을 얻으며, WCG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만큼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 LOL 정보는 인벤 리그 오브 레전드 소모임에서...


국내 AOS의 대들보, 카오스를 개발한 초고수와 하늘섬 또한 지금은 개발사 네오액트에서 독립 AOS '카오스 온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역시 독립 게임이 되면서 매치메이킹이나 편리한 인터페이스, 전적과 랭킹 관리, 이탈 방지 등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카오스 온라인이 가지는 무서움은 이름에서도 그 각오가 느껴지듯 '원래 그대로의 카오스'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카오스에 등장하는 영웅, 스킬, 아이템, 밸런스 등을 완전히 그대로 옮기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미 카오스를 즐기던 게이머들이라면 아무런 저항감을 느낄 수 없다. 이는 카오스를 제작하고 업데이트했던 초고수와 하늘섬이 모두 제작에 참여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성과이기도 했다.


아직은 막바지 개발 작업을 하는 카오스 온라인은, 벌써 카오스 유명 클랜들을 초청해 대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카오스 게이머층을 공략하고 있다.


▲ 초고수와 하늘섬이 함께 만드는 카오스 온라인



그리고 남은 한 사람.


구인수로부터 도타올스타즈를 넘겨받은 아이스프로그(IceFrog)에게도 독립 AOS 제작의 운명이 다가온다.




▶ 밸브와 상표권 분쟁. 격동의 도래


아이스프로그가 손을 잡은 게임사는 무려 밸브! 카운터 스트라이크, 하프 라이프, 팀 포트리스 2 등 유명 게임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실력과 흥행성을 인정받고 있는, 그리고 디지털 다운로드 유통망인 '스팀'을 통해 전 세계 게이머들의 지갑을 홀쭉하게 만들어 버린 바로 그 밸브가 AOS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2010년 10월 청천벽력같은 이 소식이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 신작 게임의 이름이 'Dota 2'였기 때문이다. 2라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나온다. '그럼 Dota 1은 어디에 있는가'. 밸브가 Dota 1을 만든 적은 없다. 그러니까 밸브는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이 게임이 카오스와 도타올스타즈의 토양이 되었던 DotA를 잇는 적통이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 밸브가 공개한 Dota 2의 영웅들



사실 지금에 와서 DotA의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DotA의 원제작자 EUL이 멍석을 깐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이후 도타올스타즈나 카오스는 여러 명의 제작자를 거쳐 가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해왔으며, 이런 게임들에 영감을 얻은 많은 게임사가 다양한 독립 AOS를 내놓으며 새로운 발전적 실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독립 게임뿐 아니라, 워크래프트3 유즈맵에도 카오스vs도타라거나 도타워즈, 배틀쉽 같은 새로운 형태의 AOS가 등장해왔다.


애초에 아이스프로그에게 도타올스타즈를 넘겨준 구인수조차 LOL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며 밑바닥부터 유저를 끌어모아 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Dota 2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AOS의 역사와 그 때문에 맺어진 열매를 독식하겠다는 의도는 아닐까.


특히 밸브는 'DotA'에 대한 상표권을 등록하기도 해 많은 도타 관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아이스프로그에 앞서 도타올스타즈를 제작한 구인수의 라이엇 게임즈는 밸브의 상표권 등록에 대해 "DotA는 어떤 한 명이나 개발팀이 아닌 수많은 사람의 공헌에 힘입어 만들어진 모드게임이므로 DotA라는 이름은 커뮤니티에 소속되어야 한다"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밸브가 상표권을 등록한 3일 뒤 DotA의 풀네임인 'Defense of the Ancients'로 상표권을 등록한다고 밝혔다.


원조라면 원조인 AOS부터 DotA는 물론 도타올스타즈까지 모두 자사의 게임에서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던 블리자드 또한 반박하는 입장에 섰다. 블리자드의 랍 팔도 부사장은 "블리자드와 워크래프트3 커뮤니티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했던 명칭을 상표로 등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DotA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블리자드뿐 아니라 커뮤니티에게도 제공되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사실 블리자드 또한 밸브가 Dota 2를 발표한 직후, 스타크래프트2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는 공식 블리자드 제작 유즈맵 '블리자드 DOTA'를 발표했으니 어쩌면 블리자드 대 밸브의 상표권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 자꾸 늦어지고 있기는 한데 아무튼 스타크래프트2 블리자드 DOTA



그러거나 말거나 게이머로서는 이 재미있는 게임이 다양한 게임사들을 통해 더 완성도 있는 형태로 서비스된다는 것이 반갑기만 하다.


스팀을 통해 공개될 밸브의 Dota 2는 나오기 전임에도 그 완성도에 기대를 감출 수 없으며, LOL의 라이엇 게임즈는 한국 지사를 설립하며 한국 서비스에 시동을 걸었다. 블리자드 DOTA도 올해 발매될 '군단의 심장' 확장팩과 함께 공개될 가능성이 큰 등 이제까지 나왔던 어떤 AOS 게임보다 게임성이 뛰어날 신작들이 줄을 지어있다.


※ 관련 기사 : 밸브 DOTA2 8월 독일에서 열리는 게임스컴 행사에서 공개?


워크래프트3 확장팩이 나오며 찾아왔던 수많은 DotA 후속작의 향연.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았던 카오스와 도타 올스타즈.


어쩌면 2011년은 그때를 잇는 AOS 제2의 격동기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격동의 시대를 뚫고 생존하게 될 게임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