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리그오브레전드는 무엇인가요?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이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저 게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도 있고, 고된 하루를 위로하는 잠깐의 휴식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 혹은 동료들과 이어주는 관계의 연결고리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날 주인공의 대답은 사뭇 다를 것 같습니다.

그가 그려둔 흔적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리그오브레전드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 그것도 깊은 상상력과 다양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바다. 그에게 리그오브레전드는 하나의 게임을 넘어서는 광활한 바다가 아닐까요?

리그오브레전드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한 명의 유저이자, ‘The Champions – 잭스편’과 ‘Deus Ex Machina - 기계장치의 신’으로 많은 분에게 감동을 선물했던 팬아트 작가! 그로녹을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만나봤습니다.


▲ 큰 화제를 모았던 그로녹의 'Deus Ex Machina - 기계장치의 신'



Q. 안녕하세요 그로녹님. 이렇게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및 인사 부탁드립니다.

간밤에 좋은 꿈 꾸셨나요? 미흡한 팬아트를 통해 드문드문 활동하고 있는 그로녹입니다. 이런 식으로 찾아뵙는 것은 처음인데다, 혹시 인터뷰 솜씨가 좋지 못해 보시는 분들께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 지 걱정이 앞서네요. 그래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는 독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인터뷰 중 비싼 스킨(?)을 자랑하고 있는 그로녹!


Q. 닉네임을 처음 들었을 때, 참으로 특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숨겨진 뜻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로녹은 한쪽 팔이 없는 거대한 근육 오크 족장의 이름입니다. 제가 만화를 시작할 때 처음 만들었던 단편의 주인공이에요. 물론, 해당 작품은 다른 분들께 공개하기에는 민망한 ‘흑역사’로 남았지만, 그로녹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여전히 애착이 갑니다. 그래서 닉네임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그로녹이라는 세 글자를 적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로녹이라는 닉네님으로 활동하는 것은 꽤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보통 어떤 길이든지 걷다 보면 초심을 잃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럴 때마다 저의 닉네임을 보면서 처음 만화를 그렸던 순간을 떠올려요. 그런 의미에서 그로녹은 저를 상징하는 닉네임이자, 저를 다잡아주는 울타리와도 같은 단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그로녹의 첫 작품의 주인공은 '그로녹'이었다!


Q. 리그오브레전드의 소환사명도 그로녹이라고 알고 있어요. 알아보는 유저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알아보시는 분들이 더러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놀랐습니다. 대개 그림 잘 보고 있다며 인사도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기뻐요.

예전에 여자친구와 함께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같은 팀으로 만난 유저 분께서 저를 알아봐주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 만화는 언제 나오냐?’, ‘왜 이렇게 게으르냐?’라고 저를 질타했더니, 그 유저 분께서 버럭 화를 내시는 것이었어요.

격하게 저를 보호(?)해주시는 모습에 기분이 무척 좋아서 대화 내용을 저장까지 해두었습니다. 혹시 나중에 악플이 달리면 꺼내 보려고요.


Q. 여자친구분과 함께 게임을 하시나봐요. 여자친구분은 그로녹님의 작품 활동에 많이 도움을 주시나요?

실제로 대부분 게임을 여자친구와 함께해요. 랭크게임도 듀오로 하고 있죠. 게임뿐만 아니라 작품 활동에도 큰 힘이 되어줘요. 만화를 그려서 올리면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도 하고, 아래 달리는 유저분들의 댓글도 꼼꼼히 살펴봐요. 마치 매니저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Q. 그래서 님 티어가?

플래티넘 2입니다. 프리 시즌 말기에 다이아까지 찍어보기는 했지만, 거기가 한계인 것 같아요.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 갈수록... 눈물이 주르륵... 비단 저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겠죠?

주로 하는 포지션은 탑과 정글이고, 좋아하는 챔피언은 잭스, 카타리나, 소라카, 이즈리얼, 리 신입니다. 바로 The Champions - 잭스편의 주인공 일행이죠^^


▲ 그로록님이 좋아하는 다섯 챔피언 조합!
(The Champions - 잭스편 중)


Q. 팬아트를 그리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나요? 많은 영향을 받았던 작품들을 소개해주세요.

대부분 사람들은 머릿속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나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이런저런 상상들을 하곤 하잖아요. 작가는 그 상상을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만화가는 만화로 표현할 뿐이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부가적인 것이에요.

저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멘토같은 작품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다양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소개해드리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 편을 고르자면, Yukito Kishiro의 '총몽', Fujita Kazuhiro의 '꼭두각시 서커스',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 이영도의 눈마새 시리즈 정도. 저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분들이라면 한 번쯤 접해본 작품들이죠.

아참! 그리고 '플레인스케이프:토먼트'라는 게임도 생각이 나네요. 혹시 안 해보셨다면, 반드시 해보세요.


▲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로녹님의 추천 게임, 플레인스케이프:토먼트


Q. 그림은 따로 배우셨나요?

저는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어렸을때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렸었고, 군복무 이후 23살부터 만화를 공부해야겠다 싶어 책을 통해 그림을 연습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교재들이 넘칠 정도로 많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만화책들이 다 교재나 다름없어요. 다른 프로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 이것저것 연구했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죠. 도중에 화실에 들어간 적이 있기는 한 데,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혼자서 연습하고 작업하고 있어요.


Q. 작품은 어디서 그리시나요? 사용 중인 그림 작업 툴이나 장비를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대학가 근처 원룸에 세 들어 살고 있는데, 그곳이 저의 작업실 겸 주거지입니다. 원룸 한 쪽에 컴퓨터와 책상을 놔두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코믹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이에요. 흑백 만화에 특화된 프로그램이라 색상이 필요한 팬아트나 일러스트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이용하는 타블렛은 ‘그라파이어1’이라고 10년 정도 된 모델이에요. 가끔 팬 촉도 없어서 이쑤시개(?) 같을 것으로 끼워서 쓰고는 했답니다.


▲ 고수는 장비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그로녹님이 보내주신 작업실 겸 주거지 사진)


Q. 리그오브레전드 인벤에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처음 롤 인벤에 방문했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에픽작가 분들의 멋진 작품과 그에 못지않은 수준 높은 그림들의 향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신선한 즐거움에 가슴이 무척 설렜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느꼈던 재미와 감동을 다시 되돌려주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부족한 실력이지만 펜을 들었죠.


Q. 시작은 ‘The Champions - 잭스편’이었습니다. 왜, 잭스라는 챔피언을 주인공으로 선정했나요?

대개의 챔피언들은 명확한 배경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저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이 없었죠. 하지만 잭스는 달랐어요. 여백이 많은 챔피언이었고, 그곳에 저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잭스는 챔피언 그 자체로도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가로등을 들고 투박한 가면을 쓴 무예의 달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백과 매력! 그렇게 저는 잭스를 주인공으로 택하게 되었어요.


▲ 그로녹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The Champions - 잭스편’



Q. The Champions - 잭스편의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특히 노력한 부분이 있나요?

스스로하고 타협하지 않는거요. 저는 스스로 재능있는 그림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The Champions - 잭스편은 제가 컴퓨터로 그린 첫 만화고 어떻게 보면 습작이라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나태한 생각은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소일 뿐 아니라 독자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믿어요.

물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실패했을 때, 그 실패가 어떤 값어치를 가지느냐를 결정하죠. 좋은 작품이 피어날 수 있는 밑거름을 다지는 것. 그것은 최선을 다한 결과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Q. The Champions - 잭스편을 그리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기억 남는 에피소드나 명장면은 있으신가요?

많은 작가님들이 그러하시듯, 힘든 점은 나중에 다시 제 만화를 볼 때죠. ‘왜 이것밖에 못했지!’라는 안타까움이 엄습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에피소드라 할 것은 딱히 없지만, 만화 안에 넣어둔 자그마한 장난들을 독자 분들께서 금방 찾으시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했어요. 한편으로는 꽤 세세하게 저의 만화를 봐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명장면이라... 사실 안타깝게도 The Champions- 잭스편은 첫 작품이라서 딱히 떠오르는 명장면은 없어요. 그나마 리 신의 과거 이야기에 등장하는 애쉬람은 꽤나 멋지게 그린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의 대사를 굉장히 고민해서 넣었거든요.


▲ 대사에 많은 고민을 했다는 레지날드 애쉬람 등장씬


Q. 많은 분들께서 처음 The Champions- 잭스편을 접했을 때, ‘그로녹님은 원래 뭐하던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신가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보통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궁금해할 때, 그 사람의 직업이나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저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을 때, 특정 대답을 기대하시는 것처럼 보여요. 만화나 그림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요. 그래서 만화가 지망생이라고 하면 '아~'하고 납득하시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던 학생이라고 하면 '응?'하고 놀라셔요. 사실은 그 반대인데 말이에요.

저는 만화를 사랑하고 게임을 즐기는 청년이에요. 연어를 굉장히 좋아하고,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관심이 없죠. 생계를 위해서 가끔씩 외주받은 그림을 그리거나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해요. 먹고 살 걱정 없이 만화만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요.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만,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해요. 꿈이 있다면 제 이름으로 된 만화책을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독자들이 좋아해 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직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신다면, 그냥 백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중간중간 짧은 팬아트도 제작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음 작품에 대한 예고편 성격이 강해보였어요. 그리고 특히 기억에 남는 짧은 팬아트가 있나요?

사실 아프리카 그림 방송을 자주 하는데, 롤 팬아트들을 꽤 많이 그렸습니다. 그 중 꽤 완성도 있는 것을 추려서 인벤 팬아트에 올렸어요. 마음먹고 올리는 단편이나 스토리 만화와 크게 연관성을 부여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볼만한 방식이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짧은 팬아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인간의 마음’이에요. 따로 계획이나 수정을 가한 것이 아니라, 새벽에 즉흥적으로 떠오른 스토리를 쭉 그렸어요. 그래서 제일 솔직한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 짧지만 감동적이었던 '인간의 마음'


Q. 이제 ‘Deus Ex Machina - 기계장치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떻게 영감을 얻으셨나요?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시계태엽 소녀와 증기골렘'을 그렸을 때부터 오리아나와 블리츠크랭크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오리아나와 블리츠크랭크가 가진 비극성의 배경에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공통된 질문이 깔려있다고 봐요.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견해를 첨가해 플롯을 완성했어요. 물론 작품 자체가 특별하거나 참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많은 분들께서 으레 한 번씩은 생각해왔을 내용이니까요.

따라서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핵심에 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롤리전 출품을 위한 촉박한 시간, 적은 페이지 수, 경험의 부재 등 많은 난관이 있었고, 두 번째로 시도해보는 단편이었기에 몸으로 느껴지는 부담감도 상당했어요. 결국, 대사에 많은 신경을 쓰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고 해도 똑같은 대사를 쓸 정도로 치열했던 것 같아요. 구상부터 완성까지 한 달.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 ‘Deus Ex Machina - 기계장치의 신’의 시작점이 되었던 '시계태엽 소녀와 증기골렘'


Q.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의 배경음악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해당 음악을 선정한 이유라도 있나요?

방송을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선곡했던 곡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 조용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예요. 마침 내용과도 어울리고 딱히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아,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에 'Secret garden의 papillion'이라는 음악을 넣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선곡을 칭찬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부담되게ㅠㅠ


Q. 엄청난 추천수와 유저들의 큰 관심, 이후에는 2014년 최고의 팬아트로 선정까지.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은 그로녹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걷고 있는 길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이 독자분들께서 보내주신 응원과 관심을 통해 증명됐다고 생각합니다.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의 작품성은 그다지 높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쉬운 부분이 훨씬 많은, 모자란 작품이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요.

그렇지만 제 작품을 좋아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에 그런 마음을 잠시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요.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이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게끔 독자 분들이 계속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 ‘Deus Ex Machina - 기계장치의 신’은 그로녹에게 확신과 증명이었다


Q.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롤리전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했어요.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고 있는 도중에 한 중년 남성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뿐인데 특이한 경우잖아요? 설마 저 분도 롤을 하시나 싶었는데, 갑자기 제 쪽으로 와서 책을 살 수 있느냐고 물어 보셨어요.

자제 분이 병원에 입원해서 대신 왔다며 사진도 찍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부족한 작품임에도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부끄러우면서도 기쁜 찌릿찌릿한 경험이었어요.


Q. 책으로도 판매되고 있는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을 커뮤니티에 흔쾌히 공개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나요?

제가 바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을 그렸던 목적은 많은 분들이 보고 즐겨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지,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었어요. 리그오브레전드 인벤 팬아트를 첫 방문 했을 때 제가 느꼈던 그 설렘을 많은 분들과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었던 것이죠. 따라서 저에게는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님들도 판매 후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공개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단지 저는 순서만 바뀐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구매자분들께 덜 죄송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내용을 잘 모르고 혹해서 샀다가 실망하시는 분들은 없을 테니까요:)


▲ 그로녹의 선택은 많은 유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Q. 오랜만에 ‘영혼의 불꽃’이라는 작품을 내놓으셨습니다. 대작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예상하셨나요?

반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설령 재미가 없고 엇나간 방향이었다 하더라도 작품에 쏟은 노력만은 독자 분들께서 인정해줄 것이라 믿었어요. 이러한 믿음은 저와 저의 만화가 지향하는 모토와 관련이 있습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스스로 ‘대충 했다’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내놓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약 평가가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잘하라는 응원만큼은 꼭 보내 주실 것이라 믿었어요.


Q. 작품 제작에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을 것 같습니다. ‘영혼의 불꽃’은 기획에서 완성까지 얼마정도의 시간이 걸렸나요? 작품 제작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 이후로 7개월 이상이 지난 작품이지만, 실제 제작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어요. 보통 하루 8시간 작업한다고 했을 때, 하루에 2페이지 정도를 그릴 수 있어요. 그렇게 계산하면 72 페이지니까 작화에만 꼬박 한 달을 썼네요. 더불어 기획에서부터 콘티, 수정 등에 들어간 시간을 고려한다면, 대략 3개월 정도를 ‘영혼의 불꽃’에 쏟아낸 것 같네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였습니다. 수익이 전혀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문득 저를 참고 견뎌주는 여자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지네요. 그렇지만... 이 일을 그만두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의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독자들을 볼 때 느껴지는 행복!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기 때문이에요


▲ 그는 2015년 1월, '영혼의 불꽃'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Q. 카르마가 주인공입니다. 다소 특이해 보이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일종의 숙명이었나 봐요. 앞서 말 한대로, 저는 제가 좋아하는 챔피언을 소재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을 즐겨요. 따라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챔피언 중 하나인 카르마는 당연히 저의 만화 주인공 후보에 있었죠. 막연하게 카르마를 소재로 한 단편을 생각하고 있던 가운데, '두 늑대 이야기'라는 인디언 우화를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었어요. 갑자기 스토리 구성이 떠올라 가볍게 시작했는데... 배경 설정과 주변 이야기들을 집어넣다 보니까,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Q. 여전히 흑백 작품이었습니다. 칼라 작품을 그릴 생각은 없으신가요? 흑백을 고집하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칼라 작품을 안 그린다가 아니라 못 그린다가 맞은 표현입니다. 저는 색감 쪽에서는 영 꽝이라서요. 물론,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흑백 선화를 기반으로 해서 채색을 가미한 정도가 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영향을 받은 많은 작품들이 흑백으로 그려진 만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흑백 만화를 그리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채색을 한 그림도 괜찮은데?
(현재 작업 중인 케이틀린 팬아트)


Q. 이젠 롤 팬아트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유저라면 누구라도 아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팬아트를 꿈꾸는 새내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부끄럽네요.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있어요!

세상에 완전한 창작자나 독자는 없습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그림을 돌아볼 때는 오히려 독자가 되고, 독자는 그림을 보면서 머릿속에 새로운 창작을 해요. 그렇게 우리는 창작자이면서도 동시에 독자이기도 해요.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판단의 자유'는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 가는대로 그리는 것을 존중받길 원한다면, 동시에 그것을 보는 타인의 판단도 존중해야 하죠.

나의 그림을 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비난이든 찬사든 창작자 본인이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따라서 작품을 만들 때, 한 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예술은 자유롭고 위대하지만 예술가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사회의 일부이며 의무와 책임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창작활동을 하시길 바랍니다.


Q. 그로녹에게 팬아트란? 그로녹에게 리그오브레전드란?

일종의 덕질(?)이네요. 쉴 수는 있지만 그만두기는 어려운,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 그것이 저에게 팬아트입니다. 리그오브레전드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만해야지, 그만해야지 하다가 어느덧 3200승!


▲ 시즌4 월드 챔피언십 전시회에 공개된 그로녹의 '재회'


Q.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딱히 목표라고 할 것은 없고,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The Champions- 잭스편 다음 화와 리메이크에 대한 부분이에요. 아무래도 너무 오래 기다려주신 만큼, 최대한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다른 단편을 내놓는다면, 아마 그레이브즈나 올라프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마초! 마초를 그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있을 인벤 유저분들께 한마디 부탁합니다.

다음 만화는 무엇으로 할까요?


Q. 아참! 마지막으로 The Champions- 잭스편의 13화 언제 나오는 건가요? 예고편이라도!!!



◆ 그로녹의 작품 모음

☞ 01. The Champions- 잭스편 및 기타 작품 - 모아 보기

☞ 02. 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 - 보러 가기

☞ 03. 영혼의 불꽃 -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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