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5년을 보내고, 올해도 프리 시즌을 맞아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프로게이머들은 새 시즌에 적응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 결과 롤챔스가 시작하기 전 어느 정도 대세 챔피언들과 메타의 윤곽이 솔로 랭크를 통해 드러났다.

사실 메타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는 챔피언의 '성능'이다. 그리고 솔로 랭크에서는 스킬셋, 조합 시너지, 특정 상황의 유용성 이전에 챔피언의 성능이 좋지 않다면 쓰지 않는다. 여기서 '성능'은 라인전과 초반 소규모 교전이나, 특정 상황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지는 라인전에서 스노우 볼을 발생시켜 게임 끝까지 우위를 점하는 메타에서는 더욱 그렇다.

식당가를 지나다 보면 냄새만으로도 그 음식이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듯. 솔로 랭크에 나오는 챔피언들은 대회 메타를 높은 수치의 정확성으로 추측 가능케 했고,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곧 시작되는 롤챔스 스프링 개막에 앞서 우리가 지켜보고 환호하게 될 메타는 어떤 것인지, 무슨 연유로 이런 메타가 생겼는지 한 번 알아보자.


[Tanker] 탱커 오브 레전드? - 문도 박사의 '공포'가 만들어낸 미신!

프리 시즌 패치 이후 '탱커 오브 레전드'라는 말이 급속도로 번졌다.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었다. 저항 관통력을 가진 '최후의 속삭임'과 '공허의 지팡이' 적용 계산식이 바뀌며 극후반이 아닌 탱커가 초중반에 가지는 무게가 더 커졌다. 그런데도 탱커로 분류되는 챔피언들은 문도 박사를 제외하고 솔로 랭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대회 메타의 거울인 솔로 랭크는 지난 시즌보다 딜러들의 분포가 더 많아졌다.


시즌 초기 문도 박사는 공포의 대상이 분명했다. '오염된 식칼'과 이어지는 상향된 '피학증'은 리 신에 버금가는 폭딜을 가능케 했다. 몸은 훨씬 단단한데 파괴력도 굉장했다. 대치 상황에서도 좋았고, 탱커 사냥의 주요 역할군인 원딜러의 핵심 아이템 '최후의 속삭임' 너프는 문도 박사를 프리 시즌의 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2달가량 지난 지금 탱커의 명맥을 이어가던 문도 박사는 킨드레드, 리 신, 니달리, 그레이브즈, 렉사이에게 그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왜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던 문도 박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직접적인 너프라곤 '오염된 대형 식칼'밖에 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의문을 풀어줄 답은 이번에도 '천둥 군주의 호령'에 있다. 메타 분석 1편에서 다뤘던 천둥 군주가 만든 암살자 메타. 그 마수가 탱커의 명맥을 이어가는 문도 박사에게 뻗어졌다.

문도 박사의 스킬셋은 하나하나 봤을 때 훌륭한 성능을 자랑한다. 그런데 전체를 모아보니, 치명적인 단점이 발견됐다. '순간 저지력의 부재'. 문도 박사가 가진 최악의 단점이다. 세계수라 불리던 마오카이 OP 시절을 기억하는가. 그 당시 마오카이가 프로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문도 박사에 버금가는 단단함도 있었으나, 이니시에이팅부터 상대 암살자의 기습을 저지할 수 있는 '뒤틀린 전진'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마오카이와 다르게 문도 박사는 암살자들이 아군 딜러를 기습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상대 딜러들의 총알 세례를 단단한 몸으로 받아내며, 제발 우리 딜러가 살아남아 한타를 승리로 이끌어주길 기대하는 것. "탱커가 단단하면 딜러를 먼저 잡으면 된다"는 상식은 문도 박사를 1점짜리 문제로 만들었다. 결국, 천둥 군주를 위시한 암살자들이 미드와 탑 메타를 지배하게 됐고, 순간 저지력이 없는 문도 박사는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문도 박사는 최후의 속삭임의 안부를 물을 때가 아니다.

암살자 메타와는 별개로 문도 박사는 관통 아이템 너프로 상대 딜러를 몸으로 묶을수 있으니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관통 아이템 하향의 실상도 달랐다. 기자는 두 명의 원딜 선수에게 "최후의 속삭임 너프로 탱커 잡는 일이 어렵지 않나?"는 당연한 질문을 했는데, 예상외의 답변이 나왔다.

A 선수는 "탑, 미드가 2ap면 잡기 어렵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난 시즌과 체감은 비슷하다"라고 말했고, B 선수는 "정수 약탈자 이후 두 번째 코어 아이템이 늦게 나오면 탱커를 잡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시즌에도 1코어로 탱커를 잡는 것은 힘들었고, 3코어부터는 '최후의 속삭임'의 너프의 영향이 미비한 수준이다"라고 답변해 두 선수의 의견이 "탱커, '최후의 속삭임' 없이 새로운 아이템 트리로 잡을만하다"로 일치했다.

암살자 메타에 깎이고 '최후의 속삭임'의 거품을 걷어내니, 문도 박사라는 공포의 존재는 침을 흘리면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지능이 낮고 골드를 많이 주는 최고의 사냥감이 돼버렸다. '탱커 오브 레전드'는 아마 롤챔스에서 보기 어려울 것이다.


[Uptempo] 빠른 속도 - 천둥 군주가 만든 '어쌔신 오브 레전드'

그렇다면 롤챔스에서 우리가 보게 될 챔피언들은 누구일까. 역시 '암살자'와 '브루저'들이다. 천둥 군주를 손에 들고 봉기한 이들은 한 시즌을 쉬었던 울분을 토해냈다. "탑 라인이 잘해야 게임이 쉽다"는 암살자의 부활로 "미드가 잘해야 이긴다"로 바뀌었다. 최근 솔로 랭크를 좀 했다는 사람들은 절실히 체감할 것이다. 40~50분까지 가는 장기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걸. 솔로 랭크가 모든 부분에서 대회와 같을 순 없지만, 탑과 미드에서 쉴새 없이 발생할 스노우 볼은 롤챔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 천둥 군주가 만든 암살자 메타

빠른 경기 속도, 암살자 메타의 부활, 문도 박사의 몰락. 이 모든 일이 천둥 군주 때문일까? 정말 그렇다. 미니언 강화, 타워 방어력 약화, 초당 획득 골드 증가도 한몫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천둥 군주가 만든 암살자 메타의 부활이다. 과거 암살자들이 소환사 협곡을 지배할 때도 경기 시간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탑 라인에는 탱커들이 서로의 육체미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탑 라인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다. 브루저들이 여전히 주류고, 퀸이라는 포식자가 새로이 등장했을 뿐 롤드컵과 메타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왜 게임의 템포가 올라갔을까? 문제는 미드 라인의 변화다. 아지르, 빅토르, 룰루 같은 안정적인 미드가 아닌 르블랑, 제드가 대표하는 암살자들이 '주류'가 되자 경기의 템포를 유례없이 빠르게 만들었다. 지난 시즌 탑 라인의 양상은 초반 주도권이 경기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드 라인도 이에 합류했다.

탑 라인에서도 쉼 없이 싸우고, 미드 라인에서도 내가 칼이 더 날카롭다고 서로 소리친다. 협곡에 퍼진 탑, 미드 딜러들의 함성은 이전과 비교도 안 되는 눈사태를 발생시켰다. 라인전의 승리는 게임의 승리와 꽤 큰 연결성을 가진 것은 롤 유저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이번 시즌은 그 끝이 어디쯤인지 가늠케 하고 있다. 최상위권 유저들도 초반 라인전이 무너진다면 쉽사리 뒤집지 못한다. 팀 게임에서는 어떨지는 몰라도 솔로 랭크의 현실은 그렇다. 라인전의 패배는 곧 경기의 패배가 됐다.

천둥 군주의 날갯짓이 롤 메타의 판도를 뒤집는 폭풍을 만들어냈다. 롤챔스가 어떤 맛을 보여줄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그러나 솔로 랭크의 냄새로 그 내용물을 짐작해 봤을 땐 '암살자'들과 '브루저'들이 '탱커'가 들어올 틈 없이 가득 자리하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