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대체 우리 정글러는 뭐하나?

'밥먹냐? 전화하면서 게임하냐? 상대편 정글러는 전 라인에 순회 공연을 돌면서 입금받고 있는데 우리편 정글러는 아직도 RPG 중이네. 아휴. 5분 남았네. [전체] 우리편 정글러 신고좀요.' 어떤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자, 그럼 생각해보자. 저 문장이 묘사하는 상황에서 잘못한 소환사는 누구일까?

① RPG 중인 니달리 정글
② 갱 당하고 정치질 중인 봇듀오
③ 출발 드림팀 출연으로 연예인 야레야레 '캡틴잭' 강형우

마음 같아선 ③번을 찍고 싶지만 정답은 ②번이다. 문제풀이를 해보자. 갱을 당하는 것은 순전히 라이너 잘못이다. 와드가 없으면 라인을 당겨 상대 정글러에게 갱킹 각을 주지 않으면 된다. 봇 듀오가 갱킹을 당한 것은 방심했거나 상대를 제압하려고 싸우는 도중 정글러가 합류했거나 타워 다이브를 당해도 될만큼 라인전이 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들이 정치를 하건말건 '저들과 나는 곧 티어가 달라질거야'라고 생각하고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자.

① RPG를 하는 니달리 정글은 잘못이 없을까? 이 부분은 15분의 시간 동안 니달리가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정답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자, 자신의 주라인이 정글러라면 상대 정글러가 1/0/6을 기록하는 동안 니달리가 0/0/0의 기록을 남기면서 무엇을 했어야만 잘못이 없다는 판결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에 대한 대답을 길게 작성하면 할수록 당신의 티어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실버, 브론즈 티어에서 정글러를 자신의 주 포지션으로 설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라인전에서 받는 압박이 무섭기 때문이다. CS 하나만 먹으려고 하면 레이저 날아오고, 표창 날아오고, 알리스타 날아오는데 몇 번 죽다 보면 상대 라이너가 춤만 춰도 공황장애 걸린다. 반면, 정글에 편안하게 노닥거리는 칼날부리, 골렘 형제는 적당히 만만하다. 은근히 강해서 세세한 컨트롤을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 약간의 긴장감도 주고 얼마나 재밌나?


정말 이런 이유로 당신이 정글을 주 포지션으로 잡았다면 진심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정글러는 축구 포지션으로 치자면 지단, 리켈메 등 축구 센스가 가장 좋은 선수가 서는 '플레이메이커' 자리다. 정글러는 모든 라이너 중에서 가장 맵 리딩이 뛰어나고, 피지컬도 준수하면서, 게임에 대한 지능도 뛰어나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는 포지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시간 소개한 탑 장인들은 브론즈, 실버 티어에 속한 이들도 많았다.(단순히 판수가 많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만약, 실버, 브론즈 티어에 속해서 정글러 장인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와라. 혼 좀 나게.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정글 챔피언 장인들은 기본적으로 티어가 매우 높다. 그만큼 정글러는 승리에 끼치는 영향이 가장 큰 포지션이라는 뜻이다.

정글러가 중요한 포지션이라는 점은 해외 리그에서 보여주는 정글러 포지션에 대한 수요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원거리딜러가 주요 캐리로 활약한 2014년에는 '우지' 지안즈하오를 키워낸 '인섹' 최인석이 해외 리그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뒀다. 탑 캐리 메타로 바뀐 2015년에는 프나틱에서 활약한 '레인오버' 김의진이 '후니' 허승훈과 함께 성공을 거뒀다. 이외에도 중국 리그 1위를 달리는 QG, VG, 작년 iG, Team WE 등 해외 리그팀들은 대부분 '정글러+(미드,탑) 라이너'로 팀을 꾸린다.

▲ 정글러 챔피언의 장인들은 대부분 높은 티어를 유지하고 있다.

'정글러+(미드,탑) 라이너'로 이뤄지는 조합이 강력한 이유는 두 사람의 능력에 따라 캐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글러는 플레이메이커로서 경기 전반을 책임지며 듀오를 키운다. 미드, 탑 라이너는 스트라이커로서 정글러의 어시스트를 받아 득점을 기록한다. 즉, 정글러 입장에서는 확실히 자기 몫을 하는 믿을만한 스트라이커와 팀을 이루고 그를 키워내는 역할이다.

이만큼 정글러 포지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으면 됐다. 그럼 지금부터 정글 포지션으로 골드 티어에 오르기 위한 꿀팁을 한번 알아보자.



[설계자] 정글러라면 판을 읽고 큰 그림을 그려라




고니를 아냐고요? 내가 아는 타짜 중에 최고였어요. 이 대사를 알고 있는가?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 역할을 맡은 김혜수가 하는 말이다. 고니는 타짜다. 화투패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패를 가지고 상대에게 줘서 상대의 돈을 따내는 역할이다. 축구로 치면 스트라이커, 야구로 치면 4, 5번 타자 정도 되겠다.

정마담은 뭘까? 그녀는 '도박의 꽃, 설계자'다. 돈이 많고 노름에 빠진 일명 '호구'를 타짜가 있는 판에 앉히는 역할을 한다. 설계자의 능력은 판의 크기를 결정한다. 설계자가 대단할수록 타짜가 작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정글러는 LoL에서 정마담과 같이 설계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판을 보고 갱킹을 당할만한 호구를 찾는다. 그리고 판에 앉혀서 아군이 킬을 따거나 오브젝트를 취득해서 이득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타짜에서 '호구'는 돈이 많을수록 노련해지고 꾀가 많아져서 판에 앉히기가 힘들다. LoL에서 '호구'는 티어가 높을수록 눈치만 늘어서 갱을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설계자는, 정글러는 똑똑해야한다. 상대를 판에 끌어들일 수 있을만큼.

정글러의 판짜기는 챔피언 밴픽이 완료되는 순간부터 그림을 그려야한다. 아군 챔피언과 상대 챔피언의 상성을 보고 갱킹 호응력이 좋은 곳,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 같은 곳, 라인 주도권을 어느 챔피언이 쥐고 있을지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초반 정글링 설계를 한다.


자, 이해가 됐는가? 그럼 실습에 들어가 직접 설계를 한번 해보자. 위의 스크린샷은 2016 네네치킨 LoL 챌린저스 코리아 스프링 1라운드 스퀘어와 웨이의 1경기다. 당신이 그레이브즈라면, 혹은 니달리라면 어떻게 정글링 설계를 하겠는가?

그레이브즈 입장 : 그레이브즈는 스킬 중 CC기라고는 '연막탄'뿐이고 이동속도 감속효과도 미미하기 때문에 라인에 갱킹을 가려면 호응을 잘해줄 수 있는 라인을 가야 득점을 할 수 있다. 미드 라인의 코르키는 갱킹을 갔을 때 딱히 호응할 스킬도 없고 갱플랭크는 귤 까먹으면 도망갈 것이다. 탑 라인과 봇 라인은 브라움과 노틸러스의 존재 때문에 갱호응이 괜찮다. 그런데 리산드라는 노틸러스를 상대로 라인을 밀어댈 것이기 때문에 탑 라인의 갱킹을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갱킹 루트다.

니달리 입장 : 니달리 역시 CC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군의 갱호응을 받아야한다. 미드 라인의 갱플랭크는 CC기가 약하고 봇 라인의 뽀삐는 조건부 CC기라서 기회가 된다면 갱을 갈수도 있다. 탑 라인의 리산드라는 노틸러스를 상대로 라인을 계속 밀어댈 것이기 때문에 6렙 이전에는 갱각이 잘 안나올 것이다. 다만, 노틸러스의 갱킹 호응력이 탁월하니 리산드라가 마음 편하게 압박할 수 있도록 탑 라인 위주로 정글 루트를 짜야 겠다.

이 경기를 실제로 리산드라가 라인을 계속 밀어대면서 노틸러스의 성장을 방해했고 니달리는 탑 라인 위주로 정글링 동선을 짰다. 그레이브즈는 상대의 역갱킹을 의식해 쉽사리 탑 라인 갱킹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퍼스트블러드는 어디서 나왔을까? 역시, 탑 라인에서 나왔다. 경기시간 10분 경, 리산드라는 니달리의 갱킹과 갱플랭크의 궁극기 도움으로 노틸러스를 잡아냈다.

고수들의 경기니까 갱킹, 역갱킹을 따지면서 동선을 짰지만 실버, 브론즈 티어에서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실버, 브론즈 티어에서 동선을 짤때는 ① 상대가 라인을 미는데 아군 갱킹 호응이 좋은 곳, ② 리븐, 블리츠크랭크 등 상대가 싸움을 벌이길 좋아하는 곳을 위주로 가면 됀다. 혹시라도 역갱을 맞는다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자.



[기회주의자] 이기고 있는 라인만 가라




손자병법이라고 들어봤는가? 원래는 고대 중국의 병법서로 유명하지만 나 어렸을 때는 회사원의 삶을 그린 드라마 제목으로 유명했다. 워낙 어렸을 때여서 아버지가 그걸 보고 있으면 '이 재미없는 것을 왜 보고있나' 싶었는데 회사생활을 하는 지금은 가끔 그 드라마가 생각이 나고 보고 싶어진다. 예전 회사생활도 지금과 다름이 없을지 그 아저씨는 왜 양복을 입고 울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손자병법의 정수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승리가 확정된 상황을 만들고 싸우는 것이다. LoL에 손자병법을 대입한다면? 이기는 라인에만 갱킹을 가라. 혹은 이기는 라인 주변에서 호시탐탐 라이너가 던져주는 어시스트를 받아라. 20분 만에 상대팀의 항복을 받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보자. 탑 라인에서 아군 리븐이 상대 피오라를 솔로킬했다. 물주를 찾았다. 곧바로 탑 라인에 달려가 적군 정글러 동선에 와드를 박고 그 주변에서 정글링을 한다. 상대 피오라는 가끔씩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그렇다. 벌써 정치는 시작됐다. 피오라는 애타게 갱킹을 부르고 있다. 그럼 나는 기다렸다가 역갱킹으로 피오라와 상대 정글러까지 함께 부술 수 있다. 갱킹을 오지 않더라도 상대는 다이브 압박 때문에 타워를 지킬 수 없고 스노우볼은 점점 빨리 굴러가게 됀다.

이 전략의 핵심은 이미 아군 라이너가 상대와 성장 격차를 벌려놨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날수록 아군이 이길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솔로킬을 기록했다는 것은 아군의 실력이 상대보다 높다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옆에서 보좌해줘도 상대를 숨도 못쉬게 만들 수 있다.

이 전략의 약점은 유리한 라인을 제외한 다른 라인에서 아군이 갱킹을 당하는 불상사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겐 잘 큰 리븐이 있지 않은가? 이런 판은 잘 큰 라이너끼리 처음 부딪쳤을 때 곧바로 승패가 갈린다. 그러니 잘 큰 라이너가 죽지 않도록 최대한 보필하자. 꼬옥!


3화 예고 - [실론즈 탈출 비법③] 정글 포지션 - 먹던 정글몹 정리 안 하고 백업만 가도 골드 간다(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