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팀은 잘하는 미드 라이너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를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SKT T1은 '페이커' 이상혁과 전성기를 함께했고,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들을 보면 미드 라이너의 기량이 출중해졌죠.

그렇다면 최근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ROX 타이거즈는 어떨까요? ROX 타이거즈에는 주전 미드 라이너로 활동 중인 '쿠로' 이서행이 있습니다. 이서행만큼 꾸준하게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드 라이너도 없지만, 워낙 캐리력 가득한 팀원들과 함께하기에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그 누구도 이서행의 뛰어난 경기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 '쿠로' 이서행과 막타

IM(현 롱주 게이밍)과 나진 e엠파이어를 거쳐 현재 ROX 타이거즈의 허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이서행. 그를 만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인벤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ROX 타이거즈 미드 라이너인 '쿠로' 이서행입니다. 항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눈팅' 중이에요. 그러니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웃음).


Q. IEM 시즌 10 월드 챔피언십이 열린 주말 동안 롤챔스가 휴식기에 들어갔었죠. 뭐 하고 지내셨나요?

우리가 쉬면서도 휴가를 많이 받진 않았어요. 이틀 정도? 팀원들 대부분이 숙소에 있었죠. 그래도 오랜만에 푹 쉬면서 놀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도 쉬엄쉬엄 즐겼어요. 그러다가 휴식이 끝나감을 느끼고 2라운드 준비에 집중했어요.


Q. '빅토르 그 자체' 라는 평가를 받았죠. 기분이 어땠나요?

빅토르를 한창 할 때 강력하고 좋아서 했어요. 지금은 너프도 되고 너무 많이 해서 하기도 싫어요. 약간 질렸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그래도 여전히 좋아서 빅토르를 하지만, 그게 사실 제가 원해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팀원들이 자꾸 빅토르를 하라고 시켜요(웃음).

빅토르 자체가 워낙 좋은 챔피언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어서 할 때마다 결과가 좋더라고요. 그 반대 경우가 아지르죠... 아지르 같은 경우도 스크림에서는 성적이 좋았는데 대회에서만 하면 이상하게 잘 안되더라고요.


Q. 빅토르 스킬 활용 중에서도 유독 '중력장' 컨트롤이 좋던데요?

이게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서 멋진 플레이가 나오려면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서로 잘 맞아야 해요. 정확히 말하면 중계진이 말씀하듯이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죠. 제가 중력장을 설치할 때마다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Q. 빅토르가 최근 너프되서 슬프진 않은가요?

딱히 슬프진 않아요. 여전히 쓸 만한 것 같더라고요.


Q. 이번 IEM 시즌 10 월드 챔피언십에서 SKT T1이 전승 우승을 기록했죠. 솔직히 부럽진 않았나요?

저희가 작년 IEM 시즌 9 월드 챔피언십에서 말 그대로 죽을 쒀서(웃음) 이번에도 출전 기회를 잡아서 우승하고 싶었어요. 재평가를 받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가지 못했어요. 그래서였는지 SKT T1이 우승하는 걸 보면서 정말 부러웠어요. 게다가 '전승 우승'이었잖아요. 저희는 4강에서 탈락했었는데 말이죠.


Q. SKT T1의 우승을 예상했었나요?

네. SKT T1은 항상 강력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전승 우승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승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Q. SKT T1이 '힐링'하고 돌아왔는데 다시 만나면 어떨 것 같아요?

1라운드 때보다는 탄력을 받지 않을까 싶어요. 큰 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왔잖아요. 전보다 더욱 강력해질 것 같아요. 작년 SKT T1의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라운드에 다시 만난다면 많이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만나 보기도 전에 패배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패배하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팀을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거든요.



Q. 이제 본격적으로 ROX 타이거즈 이야기를 해보죠. 롤드컵 준우승하고 웃었던 에피소드가 있어요. 저번에 '스멥' 송경호 선수는 "그냥 아쉬워할걸" 이라고 말하던데요?

사실 정말 아쉬웠어요. 압박감이 상당했거든요. 실제로 다 끝나고 허탈해서 울 뻔했어요. 그래도 팀원들 모두 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웃는 것이 낫지 않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로 축하해주고 환하게 웃었어요.

원래 저희 롤드컵 목표는 4강이나 8강 정도였어요. 당시 팀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잖아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 해서 목표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와서 만족해요.


Q. 항상 손꼽히는 장점 중의 하나가 미칠 듯한 합류 속도예요.

비결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오더가 대부분 좋아요. 항상 오더가 나오자마자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죠. 저희는 초중반에 욕심을 줄이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급한 상황이 터지면 내가 하던 것을 포기하고 전장으로 빠르게 합류할 수 있죠.


Q. 또 하나의 장점은 유쾌한 분위기죠?

팀원들이 모두 유쾌해요. 친해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요. 다들 정말 친하고 어울려서 잘 놀아요. 그 덕분에 대회에서 시너지가 발휘되는 것 같아요.

물론, 단점도 있어요. 너무 친하다 보니 너~무 허물이 없어요. 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는 거죠(웃음). 어떨 때는 서로 막 놀리다가도 한 명이 갑자기 상처를 받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죠. 그래도 워낙 다들 친해서 금방 분위기를 회복하고 바로 또 서로 놀려요(웃음).



Q. IM과 나진 e엠파이어, 그리고 ROX 타이거즈 이렇게 세 팀을 모두 겪었잖아요. 분위기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제가 IM, 그러니까 지금의 롱주 게이밍에 있었을 때는 항상 도전하는 분위기였어요. 다들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분위기였다고 할까요? 어찌 보면 지금 저희와 매우 비슷한 것 같아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정말 좋았죠. 나진 e엠파이어는... 뭐라고 해야 하지? 분명 다 친하고 회사에서도 정말 잘해주셨거든요? 그런데 약간 직장 느낌?(웃음) ROX 타이거즈는 완전 놀자판이에요.

솔직히 무엇을 하건 시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IM 시절이 가끔 그리워요. 하지만 지금 ROX 타이거즈에 소속된 순간이 가장 좋아요.


Q. ROX 타이거즈 선수들의 개인 방송에서도 유쾌한 분위기가 많이 드러나더라고요.

연습을 할 때는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개인방송이다 보니 재미있게 해야 사람들도 많이 보거든요. 그러다 보면 너무 격하게 방송을 하는 부분이 있긴 한 것 같아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됐던 적도 있었고요.


Q.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가끔 ROX 타이거즈 선수들의 개인 방송 수위에 대해 비판이 있기도 하더라고요?

팀원들이 한 데 모여 방송을 하다 보니 평상시 저희끼리 주고받는 버릇이 나와요. 욕도 좀 하고... 감탄사로 농담도 하고 말이죠. 그런 부분에 대해 안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고 재밌게 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물론, 저희가 봐도 도를 지나칠 때가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정말 죄송해요. 앞으로 개인 방송에서도 도를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특유의 유쾌한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Q. 실력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한 마디로 저평가 받는 미드 라이너 중의 한 명으로 본인이 꼽혔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그런 평가가 있는 건 저희 팀이 워낙 잘하는데, 그중에 제가 돋보이는 모습을 못 보여드려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제 경기력에 대해 만족할 때도 있고 아쉬울 때도 있어요. 모두 저에게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저평가 받지 않도록 해야겠네요!


Q. 만났을 때 까다로운 선수가 있나요?

항상 '페이커' 이상혁 선수인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는 '페이커'라는 존재만 만나면 주눅이 들었어요. 이제는 시간이 지나고 저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다 보니, 예전보다 압박감이 덜하긴 해요. 하지만 그래도 항상 '페이커'라는 이름이 부담돼요.



Q. 예전 NLB 결승 때 오리아나와 야스오 일기토 이후, 압박감이 더욱 심해진 건가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에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먼저 싸움을 걸길래 저도 같이 싸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기는 '각'이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데, 제가 그때 치명적인 실수를 했어요. 제가 아직 이뤄 놓은 것이 없을 때였기에, '페이커를 잡으면 대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오리아나 Q스킬을 잘못 활용했어요. 결론은 명장면 이후 솔로킬을 당했죠.

그 때 이후로 '페이커'에 대한 압박감이 더욱 심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지난 롤드컵 때보다는 나아졌어요. '페이커' 이상혁 선수를 만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여전히 '페이커'라는 이름에 압박감이 있어요.


Q.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듣네요(웃음). 2라운드가 한창 진행 중이죠. 팀적인 목표 말고, 개인적인 목표가 있을까요?

이번 시즌 저희가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에 12연승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올해에는 12연승보다 많은 연승을 기록하고 싶어요.

3년 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떤 우승이라도 좋으니 트로피를 들어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롤챔스 우승컵이 목표고, 더 큰 목표는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는 거예요.

개인적인 목표라... 제가 부적처럼 달고 다니는 게 SCM(세체미)이라고 쓰여 있는 건데요. 그걸 보면서 항상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 하지만 제 위에 항상 '그분'이 있어서 쉽진 않을 것 같아요(웃음). 그분의 인기와 경력을 보고 있자면 정말 어렵고 힘들겠지만, 따라잡기 위해서 그리고 앞지르기 위해서 노력 중이에요.


Q. 목표가 뚜렷하네요. 그런 만큼 2라운드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모든 팀에게 패배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제는 저희도 나름 경력이라는 것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경력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인 셈이죠. 팀원들 모두 항상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1등만 못해봤어요. 작년에 2, 3위만 엄청나게 했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


Q. 진지하고 솔직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번에는 정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게요.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금 보내주시는 응원의 배가 되는 응원을 받고 싶어요. 저희의 첫 우승이니 칭찬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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