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개인리그는 김대엽에게 있어 개인리그 커리어에 빛나는 순간을 장식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좌절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스포티비 스타리그 시즌 1, 2에서 김대엽은 2연속 4강 진출이라는, 정말 달성하기 힘든 업적을 이룩했지만 결국 생애 첫 국내리그 결승 진출에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죠.

김대엽이 프로게이머로서 데뷔한지 약 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투자해도 개인리그 결승전에 오를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이며, 특히 김대엽처럼 오랫동안 개인리그에서 실패를 겪은 선수들의 경우엔 그걸 딛고 결승전에 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꾸준함, 노력의 대명사 김대엽은 결국 해냈습니다. 수많은 동료 프로게이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지켜본 김대엽은 오랜 경력답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결승전에 올라가더라도 엄청나게 기쁘다거나 감정이 크게 요동치거나 하지는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강)민수와 그렇게 힘든 경기를 한 끝에 이기고 결승전에 올라가니까 정말 가슴이 벅차고 누가 옆에서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런 기분은 정말 처음 느껴봤어요." 김대엽의 생애 첫 결승 진출 직후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개인리그의 문을 두드렸지만 끝끝내 열리지 않던 문이 드디어 열렸으니 충분히 그럴만했죠. 그간 수없는 좌절을 맛봐야 했을 때 김대엽은 프로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쉬웠어요. 저도 개인리그 우승 타이틀 하나는 가지고 싶었는데 그런 것 없이 연차만 쌓이고, 또 프로리그에서만 강한 이미지가 있어서 스스로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온 것 같아서 정말 기뻐요."

"아무래도 개인리그는 프로리그에 비해 즉흥적인 판단과 플레이가 좀 더 요구되는 편이에요. 프로리그는 한 경기만을 준비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계적으로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죠. 돌이켜보면 제 기본기가 그다지 탄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요." 사람이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엽은 솔직하게 자신의 어떤 점이 문제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김대엽의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바로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소속팀 kt를 떠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다른 국내 팀, 혹은 해외 팀으로 소속을 옮기는 데 비해 김대엽은 8년간 오로지 kt에만 헌신했다는 것이죠. 브루드워 당시에는 이영호, 스타2에서는 주성욱 등 다른 팀원이 개인리그를 제패하는 동안 김대엽은 팀 동료들과 비교당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팀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을까요?

"팀원들이 개인리그 결승전에 진출할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했어요. 그냥 팀원이 결승에 진출했으니까 마냥 기뻤고 그 외에 별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했죠. 다만 나 스스로에게 아쉬웠을 뿐이에요. 8년 동안 이룬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 대신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제가 실력이 떨어지고 프로리그에서 성적을 잘 내지 못했을 때 해외 팀으로 가서 자유롭게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요. 팀에 얽매이지 않았을 때의 느낌도 느껴보고 싶었기에 무소속으로도 경기에 출전해서 편하게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데 가끔씩 휴가를 길게 한 번씩 낸 다음 집에서 게임을 하지 않고 그냥 쉴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쉬니까 게임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머릿속으로 내가 게임을 안 했으면 뭘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집에서 쉬면서 제가 게이머라는 것을 스스로 일깨우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 덕분에 계속 kt에 남아있을 수 있었죠."



또, 팀의 상징이자 기둥이었던 이영호가 은퇴했을 당시의 심정도 털어놓았습니다. "솔직히 (이)영호는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제가 그만두지 않는 한 끝까지 같이 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영호가 은퇴하니까 굉장히 느낌이 이상했어요. 늘 옆에 있던 친구가 없어졌으니까요. 어색하고 뭔가가 허전해진 기분이었죠."

"특히 지난 프로리그 통합 포스트시즌 진에어전이 기억나요. 그날 영호가 3킬을 했거든요. 앞에서 영호가 판을 다 만들어준 덕분에 오늘 경기는 질 수가 없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영호가 마지막에 (김)유진이랑 경기를 할 때 생각이 많아지길래 '우리가 뒤에 있으니 걱정 마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역올킬을 당하면서 져버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영호는 우리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은퇴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져서 최종 결승까지 영호를 데리고 가질 못했죠. 영호한테 정말 미안했어요."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번번이 포스트시즌에서 진에어에게 발목을 잡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김대엽은 웃으면서 "일단 (조)성주가 원수죠."라고 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진에어만 만나면 저를 포함한 다른 선수들이 평소보다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특히 항상 성주한테 멀티킬을 당하기도 했고요. 지난 통합 포스트시즌에서는 어떻게든 성주를 잘 막긴 했는데 그랬더니 유진이한테 역올킬을 당하는 바람에 이젠 신경 쓰이는 선수가 둘로 늘었네요."라며 진에어가 확실한 난적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팀 내에서 저는 그냥 좀 편한 형 정도? 제가 군기를 잡거나 다른 동생들한테 뭐라고 하는 편이 아니라서 서로 같이 장난치는 사이가 되는 그런 편한 형인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도 대부분 착하고 남에게 쓴소리를 하지는 못하는 편이라 딱히 군기반장이라 할만한 선수가 없어요. 제가 주장이니까 그런 일을 맡아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예전에도 그런 역할을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어색하고 영 소질에 맞질 않더라고요." kt가 꾸준한 강팀으로 분류되는 비결은 바로 주장 김대엽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요?


여러 커뮤니티에서 김대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일꾼이 없다'는 것 아닐까요? 브루드워 당시 프로리그 경기에서 벌쳐가 심은 스파이더 마인에 일꾼이 폭사당하는 장면, 그리고 그 순간 경악하는 김대엽의 리액션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필수요소 중 하나니까요. 김대엽은 본인도 그 '짤방'을 자주 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도 커뮤니티에서 그 영상을 봤어요. 그 당시에 그렇게 졌을 때는 이 경기의 영상이 이렇게까지 돌아다닐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해가 지나도 계속 눈에 띄어서 '저게 그렇게까지 대박 영상이었나' 싶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럴 만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일꾼이 폭사하던 그 장면 자체보다는 그때 제 표정과 리액션이 살린 것 같아요." 자칫하면 트라우마로 남을 법한 순간이었음에도 김대엽은 덤덤했습니다. 그리고 그 덤덤함은 생애 첫 개인리그 결승이라는 큰 무대를 눈앞에 둔 지금도 여전했습니다.

▲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필수요소 (출처 : 유튜브 Starcraft Highlights)

"마음 같아서는 편하게 경기를 싶어요. 부스 안에서도 연습 때처럼만 경기에 임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만 부모님이나 팀원들,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제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아요. 그런 걸 느낄 때마다 '이번 결승 무조건 우승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감이 약간 드는 건 사실이에요."

결승전 상대인 박령우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심지어 동일한 대회 내에서 이미 0:3으로 무너진 경험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박령우 선수를 상대로는 초반에 밀려서 진 것이기 때문에 초반만 넘기면 무조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어요. 지난번 민수와의 경기에서 오히려 민수가 중후반 토스전을 더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선수를 이겼기 때문에 박령우 선수를 상대로는 초반만 넘기면 제가 게임을 쥐고 흔들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역시 '징징'은 스타2 전 종족 선수들의 공통점인 것일까요? 솔직하게 '징징 타임'을 주겠다고 하자 김대엽은 냉큼 속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사실 프로토스 유저로서 저그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궤멸충이나 가시지옥이 너무 강력해요. 그런 유닛들은 상대하기가 너무 벅차요. 둘을 약간 너프시켜야 프로토스가 할만하지 않나 생각해요. 음... 징징이 아니라 모든 프로토스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웃음). 테란 선수들도 요즘 굉장히 잘해지고 있어요. 생각해보니 해방선도 조금 손을 봐야 하지 않을까...(웃음)."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대엽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8년이란 시간만에 개인리그 결승전에, 그것도 야외무대에 진출을 했다면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얼굴에 그늘이 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유를 잃지 않은 김대엽이었지만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를 물을 때는 눈빛이 사뭇 달라지고 자세도 굉장히 진지해졌습니다. 그것은 '그냥 좀 편한 형 김대엽'이 아니라 '프로게이머 김대엽'이 내비치는 각오이자, 이번 결승전에 임하는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팬분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셨어요. 드디어 결승에 올라가게 돼서 기쁘지만 한편으론 죄송스럽기도 해요. 그렇게 오래 응원을 해주셨는데 거기에 답하는 데 8년이나 걸렸어요. 이번 결승전에선 제가 그간 갈고닦았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우승도 하고 동시에 '꿀잼' 경기도 만들고 싶어요. 많이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우승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