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2000년대 초, 아직 게임은 '불량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시절.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하나가 우리나라 10~20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바꿔버렸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기자 역시 학창 시절 태권도와 피아노, 그리고 구몬, 눈높이 등 학습지와 씨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 사회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뚜렷한 '목표' 즉, 하고자 싶은 게 딱히 없었다. 그런데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 되고 싶다고 느낀 것. 그게 '프로게이머'였다. 당시만 해도 프로게이머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팀에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대우를 받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라는 말을 부모님께 말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보수적이었던 우리 세대 부모님들에게 '프로게이머'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고, 공부에 전념해야 할 나이에 게임을 직업으로 삼겠다니. 내가 부모님의 입장이라도 답답했을 것이다.




■ 21세기 새로운 직업군 '프로게이머'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어떤 분야든 최고가 되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8~90년대 불량스러운 아이콘으로까지 불리던 '게임'도 마찬가지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도 게임 폐인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들처럼 '선수'로 대우받고 있다. SK텔레콤, kt, CJ, 삼성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프로게임단을 운영하고, 선수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제공한다.

또한, 정상급 프로게이머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요즘 최고의 프로게이머라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은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에서도 이상혁을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에 비견하는 세계적 슈퍼스타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더 지니어스'에 출연한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남다른 승부욕과 두뇌 회전으로 '프로게이머'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은 대중에게 노출시켰고, 방송인으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요즘은 글로벌 시대로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유럽, 북미, 중국 등 세계적으로 e스포츠의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 방방곡곡에서 활동할 수 있다. 특히 어마어마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중국에 진출한 선수들의 연봉은 수억을 기본으로 웃도는 수준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미래의 직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의 답변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진로교육 벤처기업 캠퍼스 멘토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직업관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고자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시리즈의 책을 출간 중인데, 요리사, 아나운서, 소방관, 교사 등과 함께 '프로게이머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 '프로게이머'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프로게이머가 되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과거에는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인정하는 공인 대회를 거쳐야 했지만, 최근에는 프로게임단에 소속되면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팀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올라서야 한다.

프로게이머가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제서야 진짜 출발선 궤도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연습생은 2군이 되기 위해, 2군은 1군이, 1군은 또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 또 노력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직업 수명이 짧은 프로게이머, 그래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친구나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지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최고의 선수가 된다면 그동안 노력한 것들에 대해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 열광하는 팬들, 연봉, 명예 등 많은 부분에서 말이다. 우리에게 비치는 프로게이머의 삶은 대부분 상위 1% 선수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은 1%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대다수가 냉정히 게임에 재능이 있어서, 이 길이 내 길이라고 느끼는 게 아니라 그저 공부는 하기 싫고 재밌는 게임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도피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 진짜 문제는 은퇴 이후부터..



더 문제는 짧은 수명을 가진 프로게이머들의 은퇴 후 삶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세상에 알려진지도 15~6년이 지났지만, 초기나 지금이나 은퇴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고, 달라진 것도 크게 없다.

북미의 유명 프로게이머 '더블리프트' 피터 펭도 "프로게이머 지망생 대부분이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연습하고, 90%는 1년 내에 은퇴를 결심하며 사람들에게 잊혀 가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은퇴한 뒤 계속 e스포츠 업계에서 자신들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다. 해설자가 되거나, 아니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코치, 감독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 반대로 선수 시절 화려했지만, 은퇴 이후 도박, 화류계 등 좋지 못한 쪽으로 빠진 선수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 선수가 아닌 평범했던 선수들의 경우 은퇴 후 군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지만,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선수 시절 모아둔 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최근에는 BJ로 넘어가는 선수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1인 미디어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BJ로 전향하는 수많은 선수 중 과연 진정성을 가지고 1인 미디어로서 새로운 삶에 진지하게 도전하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요즘 활동하는 전 프로게이머 BJ 중 70% 이상은 제2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고 나온 대안이 아닌 당장 돈벌이가 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인 경우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선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눈앞의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타크래프트1 시절 MBC 게임 히어로의 김태훈은 은퇴 후 학업에 전념해 7급 공무원이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고, CJ 엔투스 출신 박영민 역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프로게이머 시절 했던 노력만큼만 하면 뭐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 진로에 대한 문제는 비단 프로게이머뿐만 아니다. 비인기 스포츠 종목 선수들도 마찬가지고, 축구, 야구, 농구 등 인기 있는 종목들에서도 나오고 있는 문제들이다.

2014년 대한 체육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퇴 후 43%가 무직이며, 일자리를 갖고 있는 57% 중 자신의 전공을 살린 작업을 가진 수는 18%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마저도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다른 나라 같은 경우, 호주는 ACE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이후 1년간 사후 관리를 해주며, 일본 J리그는 은퇴한 선수들에게 향후 진로와 새로운 삶에 도전할 수 있도록 교육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육인들이 지난 2012년 발의된 체육인 복지법 제정을 촉구해 오고 있다. 지난 2015년 7월에도 역도 영웅 장미란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은퇴 이후 체육인들에 대한 법 제정을 다시 촉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9일에 Ever8 Winners(이하 에버8)과 게임코치가 e스포츠교육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프로게이머가 은퇴 후에도 지속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왔고, 이번 MOU를 통해 이에 대한 방안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에버8은 최근 LoL 챌린저스 코리아 팀 Ever8 Winners을 창단해 호텔 내 연습실과 숙소를 제공하고 있으며, 게임코치는 1년간 게임 온/오프라인강의, 프로게이머 육성아카데미를 진행해온 게임교육서비스업체이다.

게임코치 대표는 "프로게이머가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e스포츠 강사, 감독관, 사회자 등 다양한 직종이 생겨나야 하며, 게임산업에 대한 체계적 교육시스템, 프로게이머 양성 과정 교육 교재 출판, 전문 e스포츠강사 육성프로그램, 인증제도 등 사회적으로 다양한 제도가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대한민국을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초기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해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프로게이머들의 은퇴 이후 복지나 삶에 대한 방안은 크게 발전했다고 보기 힘들다. 수백,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포츠들에서도 나오는 문제인데, 이제 겨우 15~6년의 역사를 가진 e스포츠가 해결할 수 있을까 싶지만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 올인하되 올인하지마라?!



▲ 프로게이머 소양 교육


무슨 일이든 한 번 시작한 일에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올인'하며 임해야 좋은 성과를 가져올 밑거름이 되기 마련이다.

프로게이머는 지독한 연습이 일상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연습 시간에 인터넷조차 하지 못하기도 했고, 핸드폰도 만질 수 없었다.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하고, 10시간이 넘는 연습 시간 외에 더 간절함을 느끼는 선수는 자율적으로 추가 연습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은퇴 이후 내가 해왔던 게임 자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수많은 날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프로게이머 선수들에게 '올인하되 올인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물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당연히 밑바탕이 되어야겠지만, 너무 거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다른 것들을 놓치지 쉽다.

휴식이 정해지는 날에는 게임 외에 관심 있는 분야나 취미 활동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고,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면 틈이 날 때마다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일찍 해외에 진출한 스타2 프로게이머 최성훈, 장민철, 박지수 등은 해외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했고 지금은 통역 없이 의사소통이 원활할 정도 수준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어린 나이에 절대 가질 수 없는 돈과 명예를 갖는 달콤함도 있지만, 분명 그에 따른 책임도 고스란히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들뿐만 아니라 구단 및 관계자들도 선수들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더 자긍심을 가지고 어린 선수들이 올바른 마인드와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제도가 더욱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