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수능 만점자가 남긴 말은 많은 이들을 답답하게 했다. 교과서라면 전국 학생들이 접해보지 않았는가. 무엇이 어디서부터 다른 것일까. 이런 답변만으로 만점자의 숨은 노력과 재능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당연히 알 수 없다. 비법을 알고 싶은 많은 이들에겐 해답이 되지 않는, 본인만 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LoL 판에도 비슷한 답변을 하는 프로게이머가 있다. 솔로 랭크와 대회 모두 잘하는 비결에 대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솔랭은 실수를 줄이면 된다"고 말하는 '타잔' 이승용이다. 많은 이들이 극심하다고 느낄 법한 밸런스 패치에도 '타잔'은 흔들리지 않았다. "1티어 챔피언은 딱히 없으며, 상황에 맞게 모든 챔피언의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마치 만사에 해탈한 것처럼.

놀라운 건 '타잔'의 말이 모두 프로 경기에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대세 챔피언과 메타가 이렇다고 말할 즈음, 갑자기 '타잔'이 의외의 챔피언을 들고나온다. 그동안 많은 유저들과 전문가들이 가졌던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듯이 게임은 결국 '타잔'의 승리로 끝났다. 올해 경기 중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인 SKT T1과 그리핀의 대결에서 단독 MVP를 받으며 자신을 입증했다. 그렇게 변화와 발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타잔', 교과서 같은 답변을 모두 해내는 그의 길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된 자 '타잔'
5전 전승 카드가 막힌다면?



▲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지난 SKT T1과 1세트 대결에서 '타잔'의 녹턴 활용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19 LCK에서 5전 전승 카드로 그리핀의 최근 경기까지 계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타잔'의 녹턴 갱킹은 매번 유효타로 들어갔고, '발사'라고 불리는 무리한 플레이 역시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온 SKT T1이 녹턴의 발을 확실히 묶었다. 서로 뒤를 봐주는 플레이로 6레벨을 달성한 녹턴이 궁극기를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리핀은 최근 5전 전승을 기록한 핵심 카드 하나가 막혔기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리핀과 '타잔'은 더 멀리 내다봤다. 2세트부터 다음 샌드박스전까지 끊임없이 의외의 카드가 등장한 것. 올해 처음으로 꺼낸 엘리스부터 두 번째로 보는 탈리야-이블린이 나왔다. 세 챔피언 모두 프로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었고, '타잔'이 자주 쓰지도 않았다. 단순히 일회용 깜짝 카드가 아닌 상위권 두 팀을 상대할 만한 '무기'로 갈고 닦아온 것이다. 통계와 메타로 설명할 수 없는 '타잔'만의 챔피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전과 확연히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소화해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맞춰갔다. 엘리스와 이블린을 선택했을 때는 불리한 상황을 매복과 암살로 경기를 풀어갔고, 탈리야로 바론 스틸과 한타 활약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자신의 선택한 챔피언의 게임 내 핵심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냈다.


▲ '칸' 매혹 임무 완료! '타잔' 이블린

가장 뜨거운 반응이 일었던 SKT T1전 3세트에서 '타잔'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SKT T1에게 제이스를 열어주고 이를 막아내야 했다. 그것도 '대각선'의 법칙마저 무시하는 괴력을 자랑하는 '칸'의 제이스를 말이다. LCK 상위권 탑 솔러들의 제이스 캐리력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였음에도, 그리핀은 이를 받아칠 생각이었다. 확실한 암살로 사이드 라인 주도권을 제이스한테 빼앗아올 수 있었다. 불리할 법한 상황에서는 은신과 궁극기를 활용한 백도어로 승부를 지었다. 이블린이라는 챔피언 활용의 끝을 보여주며 가장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타잔'의 경기는 이전에 보여줬던 녹턴-스카너-아트록스와는 또 다른 모습이어서 더 놀라웠다. '이것이 '타잔' 스타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고, 챔피언 폭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할 수도 없다.




'타잔'이 다시쓰는 정글 공식
굳어 버린 승리법, 이제는 변화하는 LCK


나아가, '타잔'의 변화는 LCK를 넘어 LoL씬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메타를 가장 잘 활용하는 팀이 최고의 자리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시에 큰 변화 없는 승리 공식에 지루함을 느끼는 팬들도 많았다. '노잼톤-또바나'부터 아지르-빅토르만 나오던 시기, 봇 라인 중심의 '향로 메타', 우르곳-아트록스가 대회를 지배하던 최근까지 말이다. 특히, 대세를 따라가는 정글에서 변수를 만들긴 쉽지 않았다. 등장해도 깜짝 카드일 뿐, 다음 승리까지 보장해주진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변화를 체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타잔'과 그리핀이 이런 양상을 모두 바꿔나가고 있다. 언제 다시 새로운 챔피언을 꺼낼지 모르며, 고정된 스타일과 메타란 게 딱히 없다. 게임 내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역할을 방해받지 않고 해낼지만 고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의 게임이 등장해 최강팀의 경기를 더 기대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타잔'을 보면, 정글 챔피언 간 상성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한타형 '초식' 정글러-갱킹형 '육식' 정글러, 그리고 궁극기 리메이크전 렉사이와 녹턴이 보여주는 글로벌 운영형 정글까지.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였던 이들의 상성이 '타잔'의 플레이 하나로 뒤바뀌고 있다. 갱킹형 정글러를 만나더라도 어느새 6레벨을 달성해 활약하고 있는 자크-녹턴 등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상성상 유리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하게 대처해냈으니까. 나아가, 메타를 따라가기 바빴던 정글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정글러가 라이너 이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경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타잔'은 진정한 '정글의 왕'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모든 챔피언을 호령할 수 있는 선수. '상황에 맞으면 어느 챔피언이든 꺼낼 수 있다'는 이상적인 말을 실현해가고 있기에 더 그렇다. 지금까지 이렇게 색다른 스타일을 완벽히 소화하는 정글러가 드물 정도로 '타잔'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아직 LCK를 비롯한 세계 대회 트로피가 없기에 최고의 정글이라고 칭하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타잔'이 걸어온 길처럼 꾸준히 새로운 챔피언을 연구하고 활용한다면, 언젠가 진정한 '정글의 왕'이자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LCK 1위 자리에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타잔'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