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하나둘씩 은퇴를 선언해 적적해지는 연말입니다. 현장에서 정들었던 프로게이머들을 이제 더 이상 같은 장소에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슬퍼집니다.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빈자리에 대한 공허함은 팬들에게도 꽤 오래도록 남을 감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쿠로' 이서행이 LCK로 복귀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반가움이 더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이 됐습니다. 아, 곧 2020년이 되니 8년 차가 되는군요. 아무튼 그 정도로 '쿠로' 이서행은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프로게이머입니다. 그리고 일단 적어도 1년 동안 그를 LCK에서 더 볼 수 있게 됐죠.

'쿠로' 이서행은 kt 롤스터에 입단했습니다. IM 시절 함께 했던 강동훈 감독과의 재회이기도 했고, 과거 같은 팀 동지였던 '투신' 박종익, '에이밍' 김하람과의 재결합이기도 했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재미있게 나올 것 같아 오랜만에 그를 찾았습니다.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미소와 함께 kt 롤스터의 새로운 연습실 근처에서 '쿠로' 이서행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Q. 인터뷰의 시작은 근황 토크가 제격이죠. 어떻게 지냈어요?

중국에서 온 다음에 사람만 만나고 다녔던 거 같아요.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11월 17일인가 그때쯤이었어요. 그땐 좀 여유로우니깐 친구들도 만나고 프로게이머 동료들도 만나고. 진짜 사람만 만났어요. 구 락스 친구들은 '고릴라' (강)범현이를 빼면 이번에는 못 만났어요. '구거' (김)도엽이랑 '듀크' (이)호성이도 만났고요. '피넛' (한)왕호랑 육개장 칼국수 같이 먹으려다가 시간이 안돼서 못 봤어요.

게임은 좀 많이 쉬었어요. 그렇게 놀다가 중국 내부 올스타에 참가하라는 말을 들어서 중국에 다시 가서 한 4박 5일 있었죠. 12월 2일쯤에 한국에 다시 들어왔고요. 12월 4일에나 kt 롤스터 숙소에 합류했어요. 아무래도 중국에서 1년 동안 있다가 한국 게임단에서 숙소 생활을 하려니 조금 어색하긴 하더라고요.


Q. '고릴라' 강범현이 저번에 헤어스타일을 추천해줘서 펌을 했었잖아요.

원래 펌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기분 전환 겸 다운펌 하고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상담을 받았어요.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셔서 일반 펌을 했거든요. 그런데 앞으론 펌은 안 하려고요. 그건 제 스타일이 아닌 거 같아요(웃음).

제가 원래 짧은 머리를 잘 안 하는데 하다 보니 좀 적응된 거 같아요. 지금은 살짝 만족? 일단 머리 감고 말릴 때 오래 안 걸려서 편해요.


Q. 새로운 식구인 강아지 '조이'는 얼마나 컸나요?

지금 생후 6개월쯤 됐을 거예요. 성격이 워낙 낯을 안 가리고 사람을 엄청 좋아해요. 집에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놀러 오잖아요. 그럼 꼬리가 거의 프로펠러처럼 막 돌아가요. 안기고 뽀뽀하고 난리가 나요. 원래 키우던 고양이랑도 잘 지내요. 그런데 둘이 막 장난치면서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더라고요.

▲ '쿠로'가 직접 전해준 강아지 '조이' 사진


Q. kt 롤스터가 숙소랑 연습실을 새로 짓고 있죠. 어떤가요?

숙소가 되게 맘에 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모님 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게 제일 맘에 듭니다. 그리고 연습실을 아직 짓고 있고 얼마 후에 완성되긴 할 텐데 가봤더니 좋더라고요. 지금도 좋은데 그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니깐 만족해요(웃음). 새로 짓는 곳이라 깔끔하고 넓어요. 컴퓨터 같은 것도 새 거라 좋고요. 사무국 분들도 저희한테 필요한 거 없냐고 먼저 물어봐 주세요. 말씀드리면 다 해주시더라고요. 일단, 저는 원래 원하는 게 별로 없긴 한데 잘 때 멀티탭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바로 주셨어요.


Q. 본격적인 인터뷰를 해보죠. 1년 만에 LCK로 복귀했어요. 부담되진 않았나요?

부담이 없지 않았죠. 새로운 환경에서 어느 정도 잘하긴 했는데 중국에서 1년을 뛰다가 한국에서 다시 뛸 생각에 기대되고 설레기도 했어요. 근데 걱정되는 게 한국 팀들은 다들 잘하니깐. 지금 못하는 팀이 없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있으니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처음 복귀를 생각할 때 제 경기력에 대한 의문부호를 띄웠던 적은 없었어요. 한국에서 뛰고 싶고 한글로 대화하고 싶고 한국 밥, 한국 생활이 너무 그리웠어요. 향수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이끌려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Q. 부모님이 중국 경기도 챙겨보셨나요?

가족 모두 제 경기를 항상 챙겨 보려고 하셔요. 중국 경기는 어디서 봐야 하는지 물어보시길래 알려드렸거든요. 생활은 괜찮은지도 매번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경기를 보시면서 '저 친구들은 대체 왜 저러니' 이런 말도 가끔 하시고(웃음).

어머니가 챔피언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시거든요. 게임에 대해 다 아세요. 거의 8년쯤 저랑 같이 보시다 보니 이젠 전문가가 되셨죠. 3, 4년 전부터는 충고도 해주세요. 심지어 다른 팀들 간 경기인데도 보시고 저한테 '얘네는 이런 챔피언을 하더라'라던가 '이번에 어느 팀 경기 엄청 깔끔했어'같은 말을 해주시죠. LCK 같은 경우에는 제가 없던 해에도 경기를 거의 다 보셨을 거예요.



Q. 아들의 한국 복귀 소식에 정말 좋아하셨을 것 같네요.

사실 제가 나이도 있고 군 문제도 있을 거라 남은 활동 기간이 1, 2년 정도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하는 게 서로 더 가깝기도 하고 자주 볼 수도 있잖아요. 제가 출전하는 대회도 쉽게 접할 수 있고요. 그래서 되게 좋아하셨어요. 제가 중국에서 뛸 때 걱정 많이 하셨거든요. 전 잘 적응해서 활동 중이라곤 해도 해외에 아들이 나가있는 것 자체가 걱정되셨을 테니까. 한국에서 열심히 하는 걸 더 바라시긴 하셨어요.


Q. 그러고 보니 kt 롤스터에서 강동훈 감독님과 재회했어요.

좀 신기했어요. '아, 인연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하는 걸 느꼈죠. kt 롤스터 오기 전부터 그런 생각도 했어요. 처음과 끝을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감독님도 '우리가 이렇게 또 볼 줄은 몰랐다'라고 하시면서 웃으시더라고요.


Q. 계속 끝이라던가 1, 2년 뒤라는 말을 하네요. 확실히 압박을 느끼나봐요.

만약, 제가 내년에 잘하면 2년 뒤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제 포지션이 미드라서... 저만큼 나이 먹은 미드 라이너가 또 없거든요. 그런데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 보면 나이차 때문에 자괴감도 들고(웃음). 아무튼 그래서 1, 2년 정도 남았다고 항상 생각 중이에요.

중국 선수들에게 딱 한 가지 부러웠던 게 군문제랑 관련이 없다는 거였어요. 군대에 대한 걱정이 없다 보니 한결 편해 보이더라고요.


Q. 그때와 지금의 강동훈 감독님은 어떻게 다른가요?

차이가 크죠. 일단 IM 때는 제가 프로게이머를 처음 했던 것뿐만 아니라, 감독님도 LoL 팀은 처음이셨을 거예요. 그래서 서로 잘 몰랐죠. 지금은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오래됐다 보니 LoL e스포츠 판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니까 많이 다른 것 같아요.


Q. 아프리카 프릭스에 이어 kt 롤스터에서도 주장이자 맏형이네요.

아마 그때랑 비슷한 역할일 것 같아요. 제가 어린 친구들에게 세거나 강압적인 형 이미지는 아니더라고요. 친구들이 어렵지 않게 자신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형?

먼저 다가와서 '형, 저 고민 중인 게 있는데 대화 좀 해요'라던가 '노래방 가서 놀래요?' 혹은 '술 한잔해요'같은 이야기를 해주면 거기서 진중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형이 되려고 노력해요. 제가 아무래도 연차가 있고 나이가 있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 그 친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제가 예전에 했던 것과 비슷할 가능성이 크잖아요.

지금 팀원들 중에는 낯을 가리는 친구들이 좀 있어요. 그래도 서로 재밌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인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 영향이 아직 조금 남아있지 않나 생각해요.



Q. 지금 팀원들과 어떤 대화를 해봤나요?

고민 상담까진 아직 안 했어요. (박)종익이랑 (김)하람이는 원래 알고 지냈고. '말랑' (김)근성이랑 '보노' (김)기범이, '소환' (김)준영이, '레이' (전)지원이는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됐잖아요. 지원이는 같이 중국에 있었던 것 덕분에 그 이야기를 한두 시간 정도 했던 거 같아요. 기범이랑 하람이가 제 룸메이트인데 자기 전까지 계속 수다 떨면서 친해지고 있어요. 서로 아는 '썰'도 좀 풀고(웃음).


Q. 오래 겪어보진 못했지만 현재 팀원들은 어떤가요?

제가 8년 차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겜돌이'들은 대부분 착하다는 거예요. 98%는 착하고 2%의 반대 케이스가 간혹 있어요. 저희 팀에는 98%의 사람들만 모인 거 같아요. 준영이는 말이 별로 없는 편이긴 해요. 근성이는 예전 왕호랑 되게 비슷해요. 말투나 행동이 나진 e엠파이어 혹은 락스 타이거즈 초창기의 왕호랑 비슷한 것 같거든요. 지금의 왕호는 좀... 사회에 의해 오염됐거든요(웃음). 근성이는 지금의 왕호 말고 예전 왕호.


Q. 그러고 보니 '투신' 박종익과 같은 팀을 또 하게 됐어요. IM이랑 아프리카 프릭스에 이어 세 번째네요.

종익이는 거의 동생이 아니고 친구 같아요. 서로 의지도 되고 고민 있으면 거침없이 말하고요. 또 재미있어하는 것들도 비슷해요. 노래방 가는 거 좋아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한 잔 기울이는 그런 분위기도 좋아하고요. (막역한 사이?) 그렇게 막역한 사이까진... (웃음) 사실 여기에 '크레이머' (하)종훈이까지 셋이서 그런 부분이 정말 잘 맞더라고요.

▲ 또 함께 하게 된, 막역하진 않은(?) '투신' 박종익


Q. 이번에 합류한 kt 롤스터는 전통의 게임단이잖아요. 각오가 남다를거 같아요.

일단 kt 롤스터는 대기업 소속 팀이잖아요. 제가 대기업 팀에서 처음 뛰어봐요. 그래서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동안 성적도 꾸준히 좋았던 명문 게임단이잖아요. LCK 우승도 했었고요. 부담도 꽤 돼요. 대기업 이름값만큼의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


Q. kt 롤스터는 T1이랑 통신사 라이벌이기도 하죠.

저도 프로게이머 하면서 통신사 대전은 항상 재밌게 봤거든요. 다시 그런 매치가 성사되게끔 저희가 열심히 해야죠.


Q. 예전부터 대결 구도에 관심이 모였던 '페이커' 이상혁과 통신사 대전이라는 타이틀 아래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죠?

이번에 합류하면서 그거에 대한 생각은 딱히 해보진 못했어요. 지금 한국 팀들이 모두 잘해서 그런 세세한 대결 구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거든요. 그냥 제가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한국은 참 소위 빡세죠.


Q. 요즘 미드 라이너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플레이가 있을까요?

요즘 미드 라이너들 플레이 영상을 보면 진짜 '그냥 잘하는' 플레이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서 '오, 이럴 땐 이렇게 하는구나'하면서 배우기도 해요. 근데 또 요즘 피지컬 메타라기보다는 팀플레이 위주의 메타거든요. 그래서 나랑 잘 맞겠다 싶기도 해요. 최근 경기에서는 챔피언 상성에 따라 경기가 끝나더라고요. 그게 뒤바뀌질 않아요. 그래서 챔피언 폭이 정말 넓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조금 부족하다면 피지컬로 어떻게든 극복해야죠.


Q. 프리시즌 들어 바뀐 소환사의 협곡에 따라 어떤 경기 양상이 예상되나요?

오브젝트를 챙기는 게 전보다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라인에서 킬을 내는 것보다 그 주도권을 활용해서 오브젝트를 어떻게 해서라도 챙기려는 움직임이 잦아지지 않을까요. 협곡의 전령을 두 번 연속해서 차지하면 포탑을 두 개 공짜로 얻어 가는 수준이고 드래곤 영혼을 획득하면 한타에 자신감이 엄청 생기거든요.

만약 불리한 팀에서 드래곤을 세 번 내줬어요. 그럼 다음 드래곤이 바론이나 장로 드래곤 만큼의 압박감으로 다가갈 거예요. 그래서 첫 번째 드래곤은 그냥 내주더라도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드래곤부터는 라인 관리보다는 한타 위주로 풀려는 팀들이 많아질 거 같아요. 그냥 주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거든요.


드래곤 효과에 따라 협곡 지형도 바뀌죠. 전 개인적으로 바람 효과가 제일 좋더라고요. 로밍을 가거나 낚시 플레이를 할 때 이동속도가 빨라지잖아요. 도망갈 때 그 이동속도 증가 효과 때문에 살 가능성도 높고요. 반대로는 화염 효과가 별로예요. 원래 상대가 죽는 각인데 뚫린 벽 때문에 살아갈 때가 많았어요.

탑이랑 바텀 라인에 새로 생긴 샛길도 어색하더라고요. 원래 상대가 도망갈 때 택하는 길이 정해져있었는데 지금은 그쪽으로 가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시간을 막 끌어요. 근데 또 항상 대회는 직접 해봐야 알아요. 연습할 때 말했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대회 경기에 가면 또 다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요.


Q. 어느덧 인터뷰도 막바지예요. 이번 스토브 리그가 정말 격동의 시기였어요. 그 중에서 완성된 kt 롤스터의 현실적인 목표는 어떤가요?

다른 팀들의 전력을 보면 하나하나 만만치 않아요. 작년 kt 롤스터도 로스터가 만들어질 때 다들 성적이 잘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론 아쉬웠잖아요. 그래서 정확히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 현실적인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에요. 물론, 거기서 더 잘하면 결승도 가고 우승도 하겠죠. 그런데 그건 그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1차 목표는 포스트시즌에 가는 것. 그리고 그 이후의 목표들을 위해 계속 몸을 만드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오랜만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제가 중국에서 활동할 때도 잊지 않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아요. 현지에 직접 오셨던 분들도 계셨고요. 한 분 한 분 다 감사드려요. 중국 생활도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이 정말 그리웠어요. LCK 식 팬미팅이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요. 중국에서는 뽑히신 팬분들만 따로 모아서 진행하거든요. 그리워하던 한국에 돌아와서 이제 다들 다시 뵙게 됐어요.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해서 저랑 제 팀원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현실로 만들 테니 항상 더 많이 응원해주세요.

그리고 기존 kt 롤스터라는 팀 자체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도 많으시잖아요. 그분들과 이제 같은 배를 타게 됐어요. 이전까지 저를 좋게 봐주셨거나 밉게 보셨던 분들과 모두 한 팀을 꾸린 셈이니 응원 많이 해주시길 바라요. 저도 kt 롤스터라는 명문 게임단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