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TV의e스포츠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게임단인 아프리카 프릭스도 마찬가지다. 5년 전 창단한 아프리카 프릭스는 게임단 스태프, 환경, 거물급 선수 영입 등, 매년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올해 역시 강남에 새로운 숙소를 구하고, 사무국 사무실을 1층에 둬 선수단과 소통을 더 원활하게 하는 등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팀의 성적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팀에 공식적으로 합류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95년생 어린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한 것이다. 바로 '릭비' 한얼 감독. 한얼 감독은 선수 출신도, 경력이 엄청 오래된 인물도 아니라 아프리카 프릭스의 선택에 많은 호기심이 생겼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뒤 느꼈던 점은, 기존 e스포츠 종목 어떤 코칭 스태프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타입이라는 점, 정형화된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패기로 똘똘 뭉친 어린 괴짜 감독 '릭비' 한얼, 그가 그려나갈 2021 아프리카 프릭스는 어떤 모습일까.





Q.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인물이다. 어떻게 코칭 스태프 일을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때 축구를 했다. 부상으로 인해 일찍 관뒀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독립을 시작했다. 3년 정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도 모으고, 최소한의 안정이 생기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었다. 어떤 분야든 맨땅에 헤딩이 무섭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자연스레 LoL에 관심이 생겼고,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될 순 없어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수 출신이 아니다 보니 게임단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찾아올 리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예전에 잠시 해외에 살았을 때 배운 영어를 바탕으로 프로팀 스트리밍 통역 일을 잠깐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자연스레 게임단과 접촉이 생겼고, 2018년 콩두에서 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며 코칭 스태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Q. 이후 북미에서도 잠깐 활동했다.

콩두를 떠난 뒤 LCK 팀에서 코치를 했던 경험과 영어라는 장점을 살려서 해외팀을 알아봤다. 마침 북미 클러치 게이밍에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 코치를 구하고 있어서 합류하게 됐다. 북미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롤드컵도 다녀오게 됐다.


Q. 비 선수 출신에 게임 자체도 일찍 접한 편은 아니다. 실력을 떠나서 게임에 대한 내가 가진 이해도, 개념의 확신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일을 처음 배울 때 도움을 많이 받은 게 천정희 코치님이다. 게임에 대해 엄청 진지하고, 본인 생각에 확신이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질문도 언제나 답변을 해주셨고,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천정희 코치님을 정말 귀찮게 했다(웃음).

최소한 티어도 다이아1 정도까진 올려놓은 후 선수들과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북미 활동 당시 베테랑인 '피글렛', '리라' 같은 선수들과 말이 통하는 걸 경험하고 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사실 롤에서 명확한 정답은 없고, 서로 누가 누구를 설득시키고, 맞춰가느냐에 대한 문제 아닌가? 그런 부분에서 선수들과 말이 통했다.



Q. 그리고 작년 섬머 시즌을 앞두고 아프리카 프릭스에 합류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2020 시즌을 앞두고 아프리카 프릭스 측에서 나한테 연락했었다고 하더라. 당시 내 연락처가 바뀌면서 연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섬머 시즌부터는 팀에 합류하고 싶어서 스프링 시즌부터 나만의 준비에 돌입했다.

LCK 외에도 가능한 많은 해외 리그를 찾아보며 메타에 대한 개념이나 데이터를 쌓아나갔다. 그러다가 현 아프리카 사무국장님을 소개받았고, 아카데미 숙소에서 지내면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 사무국 분들과 안면도 트고, 최연성 감독님이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Q. 그렇게 2020년 5월 코치로 정식 입단했다. 그리고 무려 한 시즌 만에 감독으로 승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2020 스프링 시즌이 끝나갈 무렵 아프리카 프릭스의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코치로 계약할 때도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선수단 분위기를 바꾸는 용도 중 하나가 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프링 시즌 당시 최연성 감독님은 오며 가며 나를 계속 주시하셨고, 내가 정식 코치로 합류한 뒤에 1군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여해줬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걸 믿고 추진해보라고, 나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인게임 세부적인 코칭부터, 선발 명단까지 전부 말이다. 그때부터 더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일단 냉정하게 당시 분위기나 전력상 4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또, 선수단 회의에서 특정 팀에게 정말 지기 싫다는 의견이 나오면, 어떻게 해서든 그 팀은 반드시 이겼다.

스스로 패치와 메타에 대한 감이 빠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들은 선수들이 받아들이느냐 문제가 가장 크다. 그 부분에서 선수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대회에서 사용해 이긴 경험도 있다. 한 예로 플레이오프 T1과 대결을 말할 수 있다.

나는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스크림을 통해 상대가 너무 노골적인 전략, 전술을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팀 판독기 이미지에 대해 선수들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본격적인 대회 준비 전 선수들을 모아두고 '이번엔 우리가 평소와 다르게 연습할 거야'라고 말했다. 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 이겼고, 선수들한테 신뢰를 얻었다.


Q. 시즌 중 전권을 받은 뒤 바꾼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기존에는 연습량이 상당했는데, 그걸 줄였다. 당시 우리 선수들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위주였다. 절대적인 연습량이 곧 성적으로 이어질 선수들이 아니었다. 그런 부분에서 연습량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선수들의 마인드나 정신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인게임 내적으로 몰두하는 것보다 단기간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는 내부 스크림을 통해 팀이 가지고 있는 자원 가운데 최적의 1군 조합을 찾았다.


Q. 본인이 생각할 때 스스로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팀, 선수마다 챔피언 폭에 대한 한계가 있다. 그걸 고려했을 때 밴픽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조합을 짜는 거다.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고 믿음이 없는 챔피언이라도, 스크림에서 한 게임만 내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면 무조건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크림에서 A라는 챔피언을 사용해 승률이 매우 저조해도 내가 바라던 게임 양상이 한 번이라도 나온 적이 있으면 대회 때 꺼낼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끊임없이 해주려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간절함이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올해 감독님들 중 내가 가장 간절하다. 나는 내년에 입대 예정이라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선수 출신도 아니고, 인맥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제대 후 다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래서 어떻게든 올해 사고를 치고 싶다.



Q. '케이니' 김준철 영입은 의외였다는 평도 많다.

예전에 APK 프린스 면접 당시 잠깐 '케이니'가 경기하는 모습을 봤다. 피드백 과정에서 '케이니'가 잘 성장한 자신을 팀에서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답답해하고, 분해하면서 우는 모습을 봤다. 코칭을 제대로 해주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서 사무국에 살짝 어필했다.


Q. 이번 로스터에서 정글은 '드레드' 이진혁 단독 주전이다.

'드레드'를 이야기할 때 기복이 심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케스파 컵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냉정하게 케스파 컵에서는 그냥 못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게임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드레드'를 평가할 때 나온 기복과는 다른 느낌이다.

'드레드'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생각은 막내인 '드레드'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 형들이 다 맞춰줄게'라는 상황 속에서만 게임을 했던 것 같았다. 애초에 머리가 안 좋은 선수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글러가 할 일에 너무 몰두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팀이 이기는 방향으로 생각하며 게임을 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숙제를 같이 풀어가도록 하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케스파 컵의 패배는 과거 '드레드'에 대한 평가인 저점을 찍었을 때 모습이 나와서가 아니라 전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라' 남태유 코치가 있어서 무조건 잘해질 거라는 믿음도 있다.


Q. 케스파 컵 4연패에 대해 말이 많다.

핑계로 들릴 수 있지만, 선수들이 게임을 이겨왔던 방법이 다 다르다. 기존 아프리카 선수들이 게임을 이겨왔던 패턴과 새로 합류한 선수들의 패턴은 전혀 다르다. 어떤 챔피언에 대한 이해도나 운영 방법도 제각각이다. 케스파 컵은 이 부분을 처음으로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실 더 좋은 경기력, 눈앞의 승리를 위해서였다면 기존 아프리카 선수들이 많이 했던 승리 패턴에 바텀 듀오를 설득해서 플레이했으면 전패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실 지난 섬머 시즌 후반부터 조금 한계점을 느꼈다. 그래서 더 우리가 안 하던 방식으로 해보고 싶기도 했다. 피드백 과정에서 우리가 합의한 최소한의 가이드는 있지만, 무조건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시도로 만약 승리했을 때 가져올 이득은 상당했을 거다. 결과적으로 모두 지긴 했어도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Q. 1년을 함께 할 선수들에게 한마디 하면 어떨까?

일단, 나는 잘하면 조금은 게을러도 된다는 주의다. 짜증을 내도 된다. 대신 못하면 안 된다(웃음). '뱅, 리헨즈, 기인, 플라이' 등등 모두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 아닌가. 아마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받을 때를 되돌아보면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했을 거다. 밤을 새우기도 하고, 분해서 울어보기도 하고, 남의 입에서 '좀 쉬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봤을 선수들이다.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의 아프리카 프릭스를 만들어보겠다.

먼저 '기인'이는 정말 잘하는 선수인데,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스스로 알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본인 몫은 해내는 선수지만, 이제는 가장 앞에서 먼저 이끌어 주기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드레드'는 보기와 달리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다. 자신감에 따라 실력이 왔다 갔다 한다. 분명한 건 우리팀은 '드레드'가 잘하는 정글러라는 걸 믿고 있으니까 자신만의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자신감 있게 표출했으면 좋겠다.

'플라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작년 플레이오프 때 느낀 건데, '페이커', '비디디' 등 미드 라이너에 비해 절대 밀리지 않았다. 자신감을 가지고 올해는 지지 않는 게 아니라 이기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금상첨화다.

'뱅'은 형으로써 모범이 되고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건 좋은데, 나한테 만큼은 그런 부담을 덜고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무작정 참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연습량이 가장 많은 건 정말 고맙다.

'리헨즈'에겐 내가 널 이해하고 지켜줄 테니까, 너는 팀을 이해하고 지켜주길 바란다.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는 선수다. 마지막으로 '케이니'는 짧고 굵게 '정신 차려!!'라고 말하면 본인, 팀 관계자는 다 알아들을 거다(웃음).


Q. 팬들에게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나?

먼저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사과부터 하고 싶다. 감독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는데, 경솔한 행동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감독이라는 직책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겠다. 쓴소리는 코칭 스태프가 안고 가겠다. 직책과 상관없이 팀에 소속된 사람의 가장 큰 목표는 승리다. 이 두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팬분들이 걱정하는 일 없도록 잘 이끌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