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신을 가장 많이 의심했던 스플릿이었어요."

사실 2022 LCK 서머 스플릿 개막에 앞서 각오를 담은 가벼운 인터뷰로 생각하고 '비디디' 곽보성을 만났다. 스프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많은 시간이 쓸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2022 스프링은 '비디디'의 프로게이머 인생에 있어 꽤 강한 인상을 남긴 스플릿이었다.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비디디'는 잔뼈 굵은 선수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LCK 정상에 섰던 적도 있고, 프로게이머라면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을 승강전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정규 시즌 8위, 플레이오프 탈락. 분명 좋지 않은 성적임에도 그에게 가장 힘든 시즌이었을 거라는 예상은 미처 못했다.

"젠지 e스포츠에서 트레이드가 돼서 농심 레드포스로 오게 되었는데, 기분이 마냥 좋을 수는 없잖아요. 회의감도 좀 들었죠. 그런데 성적까지 안 좋게 나오다 보니까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가 경쟁력 있는 미드라이너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그런 것도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내 실력을 의심하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악순환이었죠.

사실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내가 플레이하는 것에 비해 사람들의 인정이 덜하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어요. 이게 커뮤니티의 영향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원래는 그런 걸 안 봤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서 팬분들과 소통할 창구가 줄어들다 보니까 보기 시작했어요. 팬분들 반응도 궁금하고 하니까요.

근데, 이게 중독이 되더라고요. 안 좋은 얘기가 있으면 '뭐라는 거지' 하면서도 내일은 '또 무슨 말을 할까' 하면서 확인하게 돼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진짜 그런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 그게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거기다가 성적까지 안 좋으니까 점점 그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스프링은 저 자신을 가장 많이 의심했던 스플릿이었어요."



'비디디'의 고민은 서머 개막을 앞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달라진 점은 있었다. 동기부여를 얻었고,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 '비디디'는 그 원동력으로 팬을 꼽았다. 지난 달 말 진행된 오프라인 팬미팅에서 오랜만에 팬들과 직접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큰 힘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답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 아니면 주변에 조언을 구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고 나면 뭔가 제가 더 그 생각에 휩싸일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혼자 극복해 나가자고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면서요. 옛날에도 게임 잘 안 될 때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다가 최근에 팬분들을 만나 뵐 수 있는 자리가 있었어요. 직접적으로 함께 뭘 하고 그런 건 진짜 오랜만이었어요. 되게 재미있었고, 사람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얼굴이랑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거든요. 한 4년 전에 뵙고 못 뵌 팬분이 있는데, 그분을 팬미팅에서 만나서 재미있었던 기억도 있어요.

진짜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어요. 전에는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그 길이 확실히 보여요. 팬분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거죠."



그의 슬럼프와 별개로 농심 레드포스의 서머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팀 분위기는 여전히 좋고, 스크림 성적도 스프링보다 확실히 좋아졌다고.

사실 농심 레드포스는 2022 시즌을 맞아 '칸나' 김창동-'드레드' 이진혁-'비디디'-'고스트' 장용준-'에포트' 이상호라는 이름값 있는 선수들로 로스터를 꾸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성적은 기대를 훨씬 못 미친 8등이었다. 힘 있는 상체와 안정적인 하체를 바라본 조합이었으나, 냉정히 말해 기복 있는 상체와 약한 하체에 그쳤다.

게다가 코로나19와 함께 겪은 7연패는 팀의 사기를 떨어트릴 만한 상황이었다. 7연패라는 말보다 한 달 내내 지기만 했다는 표현이 더 와닿을 거다. 진짜 농심 레드포스는 딱 한 달 만에 연패를 깨고 승리했고, 이후로도 내리 5연패를 더 겪었다. 스프링을 회상하던 '비디디'는 오히려 팀원들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팀원들과 감독, 코치님이 너무 좋았던 게, 아무리 연패를 해도 서로에 대해 불신이 생기거나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서머 때 더 잘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아무리 성적 안 나와도 '다음 경기 준비 잘 하면 되지' 하면서 지냈어요. 제가 원래 낯을 많이 가려서 스프링 때는 잘 못 친해지는데, 지금 이미 팀원들과 2년 한 것처럼 친해졌어요. 다들 배려심이 너무 좋아요.

저도 우리 팀 선수들 다 잘한다고 생각해서 부담감 같은 건 없었어요.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어느 순간부터 제가 느끼기에 선수로서의 자존감이 너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그게 문제였죠. 현장에서 팬분들도 뵙고, 승리도 쌓아가다 보면 다시 되찾을 수 있겠죠? 아직은 못 찾은 것 같아서 서머 동안에 그걸 꼭 되찾고 싶어요.

지금 확실히 스프링보다 스크림 성적도 괜찮고, 나아지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저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섯 명이 한 각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걸 고치려고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개인적으로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새롭게 팀에 합류한 허영철 감독과 '코코' 신진영 코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스브스' 배지훈 감독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허영철 감독은 해외 리그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해오다 농심 레드포스에 합류하며 처음으로 국내 팀을 맡게 됐다. 지역 리그 우승 경험도 있고, 월드 챔피언십도 겪어 봤다.

신진영 코치는 '비디디'와 인연이 있다. CJ 엔투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 '비디디'는 연습생이었고, 신진영 코치는 1군 미드라이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디디'에게는 그저 동경하는 선배였던 신진영은 이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든든한 코치 형이 됐다.

"감독님은 이번에 처음 뵙는 분이세요. 국내에서는 활동한 적이 없으시다 보니까 정보가 없었는데, 엄청 열정적이고, 계속 소통하려 하시고, 신경을 엄청 많이 써주셔요. 약간 범현이 형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고릴라' 형이 너무 착해서 도가 지나치게 챙겨주거든요(웃음). 그런 걸 감독님은 게임 내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주셔요. 그래서 엄청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사실 해외 쪽이 엄청 빡빡하게 연습한다는 인식은 없잖아요. 그래서 살짝 느슨해지려나 싶었는데, 오히려 출근 시간이 빨라졌어요. 원래는 1시 출근이었는데, 이제는 12시에 출근해서 솔로 랭크 한판 하고, 점심 스크림에 들어가요. 그런 부분은 예상 외였던 것 같아요. 휴가 다음 날은 좀 힘든데, 평소엔 좋아요. 확실히 스크림 때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코코' 형은 예전에 어떤 성격인지 옆에서 봐왔잖아요. 선수 시절에는 '코코' 형 성격이 되게 세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엄청 유하게 해주셔요. 또, 게임 내적이나 외적으로 제가 말을 안 해도 다 아시더라고요. 어떤 게 불만이고, 어떤 생각인지 미리 얘기 해주시니까 너무 좋아요.

게임을 할 때 미드에서 세게 해야 하는 시기나 구도 같은 게 있는데, 그런 걸 못하는 상황들이 있어요. 그러고 그냥 지나가게 되면 되게 찝찝하긴 하거든요. 근데, 그걸 '코코' 형이 꺼내서 이야기를 해주면 다음 게임을 더 편하게 임할 수 있어요. 그냥 제 모든 생각을 읽으시는 것 같아요"



이제 스프링보다 중요한 서머 스플릿이 곧 막을 올린다. '비디디'는 유기적인 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팀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정해져 있는 플레이가 아닌 상황에 맞춰 유기적으로 하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또한, 현실적으로 플레이오프를 바라보고 있고, 폼이 좋다면 더 높은 곳을 노릴 것이라고 전했다.

"모든 팀이 그럴 거예요. T1처럼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고 싶을 거거든요. 저도 항상 그런 게임을 추구해요. 정해져 있는 상황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플레이를 잘하는, 그런 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서머에서 현실적인 목표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우선일 것 같고, 만약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폼이 좋으면 충분히 우승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 개인적으로는 kt 롤스터보다 높게 올라가고 싶네요. '라스칼' 광희 형이었나, '라이프' 정민이었나. 우리 8등했다고 놀렸거든요. kt 롤스터는 꼭 꺾겠습니다(웃음).

모든 프로 선수들이 다 비슷하게 느낄 것 같은데, 저희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는 데에는 팬분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이번 팬미팅에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동안 팬분들을 못 만나다 보니까 잠깐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항상 너무 감사합니다.

스프링 때 성적이 안 좋아서 많이 실망하셨을 텐데, 서머는 확실히 더 나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성적 내서 월드 챔피언십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