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뮤 김연주 대표

기호는 일종의 문화적인 약속이다. 같은 기호여도 지역에 따라, 관습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한국에선 불행을 나타내던 까마귀가 일본에서는 행운을 의미하기도 하는 등 기호의 해석은 천차만별로 나누어진다.

로컬라이제이션은 상품 내에 담긴 기호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순화시키는 절차다. 상품을 해외에 수출할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으로, 대상국가의 이용자들이 상품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마리뮤의 김연주 대표는 금일(11일)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플레이엑스포 컨퍼런스에서 ‘로컬라이제이션’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 기사는 편한 전달을 위해 강연자의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로컬라이제이션의 기본은 번역이다. 별도의 번역팀을 갖춘 기업이 아니라면, 보통 번역회사와 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때 번역을 요청할 문구를 담은 스크립트를 개발사 측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 첫 절차가 굉장히 중요하다. 스크립트가 애매하면, 번역도 애매해진다.

일반적으로 번역용 스크립트는 넘버링에 스트링 아이디를 덧붙여 번역가가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원문을 배치하고 그 뒤에 각국의 언어를 나열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만약 편의를 위해 ‘코딩 전체’를 스크립트에 첨부할 경우, 코딩 언어까지 번역 견적에 포함될 수 있다.

▲ Run? Start? Configure?

번역 비용은 난이도와 장르에 따라 다소 달라진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글자수를 줄이는 건 추천할만한 방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게임 실행하기’라는 문장을 ‘실행’이란 두 글자로 줄일 경우 번역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게임의 실행을 의미하는 ‘Run’인지, 전투 실행을 의미하는 ‘Start’인지, 설정 실행인 ‘Configure’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적절한 스크립트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항목을 사전에 체크하는 것이 좋다.

우선 게임 내에서 기획 의도를 적절히 반영한 한국어 문장 및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효과는 같은 데도 용어가 ‘순간이동’, ‘워프’, ‘공간이동’ 등으로 나누어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텍스트는 번역가 입장에서 모두 다른 내용이라 인식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용어를 통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 내에 인종, 성별, 종교, 문화 등을 차별하는 요소는 없는지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국가나 인물에게는 차별로 와닿으며 불쾌감을 줄 수 있기에 민감한 요소는 배제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내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유행어나 개그요소 역시 최대한 지양하는 게 유리하다.

▲ 의미 파악이 힘든 문장

기획자의 올바른 국어 사용 능력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일된 용어와 깔끔한 문장구조로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과거 의뢰를 맡았던 한 게임의 스크립트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업그레이드 효율 증가가 높을 수록 적은 보물상자로 높은 능력치 도달’. 한국어로 적혀있음에도 각종 조사와 목적어가 문장에서 빠져있는 탓에 의미 파악을 좀처럼 할 수가 없었다.

이 외에도 트롤 암살단과 트롤 어쌔신, 오크 세이지와 오크 현자가 서로 다른 몬스터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사실상 같은 의미가 되므로 사전에 용어에 대한 분류와 정의가 필요하다.


언어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뜻의 문장이더라도 언어에 따라 길이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에 최대 글자수를 사전에 정해놓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UI 가독성이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문구를 아예 배제하고 기호나 이미지로만 표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표기법’ 역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0년 0월 같은 시간표기의 경우, 특정 국가에서는 언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조건문을 전부 고쳐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어순의 차이 역시 고려해야 하기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 전부 번역사에 제공하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폰트’의 통일이 필요하다. 대만, 중국, 일본, 한국의 경우 서로 사용하는 한자가 다르기 때문에 노출되는 폰트가 불규칙할 수 있다. 폰트에 많은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본고딕’과 ‘본명조’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20개국 이상에 글로벌 런칭을 하게 될 경우 용량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용량이 압축된 유료 폰트나 유저 디바이스의 시스템 폰트를 사용해 용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시각적 만족도가 감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