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까지 살린 그래픽, 그러나 MMORPG라기엔 다소 아쉬운 구성


'그랑사가'는 세븐나이츠 개발진이 설립한 신생 개발사, 엔픽셀이 선보이는 첫 번째 프로젝트다. 2019년 첫 공개 당시부터 원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그래픽으로 주목받았으며, 사전예약 5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비록 2020년 9월 1차 CBT에서 조작감과 UI/UX, 최적화 등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12월에 진행한 파이널 CBT에서 이를 개선하면서 정식 출시를 기대하게끔 했다. 그 뒤 약 한 달이 지나 양대 마켓 및 PC 버전 출시를 완료한 그랑사가는, 예전 테스트 단계에서 품었던 불안감을 어느 정도는 해소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게임명: 그랑사가(Gran Saga)
장르: MMORPG
출시일 : 2021. 1. 26.
개발 : 엔픽셀
배급 : 엔픽셀
플랫폼: 모바일, PC



PC 버전에서 진가를 발휘한 감성 그래픽, 모바일은 아쉽다


그랑사가가 내세운 주요 포인트는 원화의 느낌을 한 껏 담은 감성적인 그래픽이었다. 언리얼 엔진 기반의 MMORPG하면 흔히 떠오르는 실사풍 그래픽이 아닌, 카툰렌더링 스타일을 일부 가미하면서 원화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한 그래픽은 그간 국내 모바일 게임에서 흔치 않은 유형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만큼, 자칫 퀄리티가 조금이라도 낮다면 이질적으로 느끼거나 외면할 수도 있는 리스크 있는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그랑사가는 CBT 때부터 퀄리티로 증명했다.

정식 출시 버전은 한 층 더 개선해서, 자칫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줄였다. 일례로 지난 CBT에서는 일부 감정 표현이 지나치게 카툰처럼 과장된 나머지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자칫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제였지만, 캐릭터가 감정 표현을 할 때나 클로즈업할 때 입이 벌어지는 정도를 조절하는 등 디테일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였다.

▲ PC 버전으로는 최상옵까지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구동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가다듬은 그랑사가, 특히 PC 버전은 최고 그래픽으로 플레이할 시에 원화 같다는 느낌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느낌 있는 그래픽을 보여줬다. 그러나 모바일 버전에서는 최적화 이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커뮤니티에서 일부 기종으로 플레이할 때 튕기거나 프레임 드랍, 지연 현상이 발생한다는 유저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아이폰XR의 경우 CBT에 비해 확연히 발열이 줄었지만, 종종 로딩이 길어지거나 캐릭터의 움직임이 급작스레 멈추는 일이 있었다. CBT보다 개선됐지만, 테스트 단계가 아닌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고쳐나가야 할 과제라 할 수 있겠다.

▲ 반면 모바일 버전은 최적화가 다소 아쉬웠다



개선된 조작감으로 살아난 전략, 그러나 직관적이지 않은 구성


"무기? 아니, 그랑웨폰!" 이 캐치프레이즈처럼, 그랑사가에서는 여타 MMORPG처럼 무기/방어구 장비 체계가 아닌 그랑웨폰/아티팩트/방어구라는 다소 특이한 장비 체계를 채택했다. 타 게임에 맞춰서 설명하면 그랑웨폰은 캐릭터 스킬이자 무기고, 방어구는 여타 MMORPG와 비슷한 구성이다. 아티팩트는 수집형 RPG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의 장비로, 그랑사가는 기존의 MMORPG와 달리 수집형의 요소를 일부 더하면서 차별화를 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랑사가의 전투는 유저가 세 캐릭터를 번갈아가면서 쓰거나, 혹은 동시에 전투에 투입하면서 따로따로 조작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회피는 없지만 대신 피해야 하는 패턴은 공격 범위가 표시되고 약간의 딜레이가 있기 때문에 컨트롤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도록 했다. 혹은 피할 수 없는 공격은 각 캐릭터의 직업 스킬을 활용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등 나름의 체계를 갖췄다.

▲ 못 피하는 패턴은 해방 스킬로 상쇄하는 등, 전략과 컨트롤 요소도 살렸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각 캐릭터를 일일이 교체하지 않고 리더 캐릭터가 가는 대로 따라가는 팔로우 기능을 추가, 컨트롤 요소를 한 층 더 살렸다. 이전에는 일일이 캐릭터를 하나하나 태그하면서 패턴을 피하고, 미처 못 피한 캐릭터는 해방 스킬의 무적 판정을 활용하는 식으로 극복해야했다. 그마저도 1차 CBT에서는 태그 후 지연 현상 때문에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팔로우 기능으로 태그 없이도 팀원 전체를 움직여서 피할 수 있는 만큼, 캐릭터 운신의 폭이 한 층 더 넓어졌다.

▲ 파티원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팔로우 기능 추가로 컨트롤 요소는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UI/UX는 2차 CBT에 이어서 정식 출시에서도 약간 개선된 모습을 보였지만, 아쉬운 점은 남아있었다. 전체적으로 UI의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심플하게 바꾸면서 시선이 분산되는 현상을 줄였지만, 아이콘이 화려한 나머지 직관적이지 않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은 여전했다. 감성을 살린 그래픽과, 판타지풍의 세계관에 맞춘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엔 예쁘고 화려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다소 애매해진 셈이었다.

단순히 오토만 돌리는 식으로 기획이 되어있다면 넘어갈 법한 문제겠지만, 그랑사가는 다른 방향을 추구했기 때문에 문제가 달랐다. '기사단'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것처럼, 그랑사가는 캐릭터 하나만을 강하게 키우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게임이 아니다. 캐릭터와 몬스터 간 속성 및 상성 관계가 있는 만큼, 다른 캐릭터도 필요에 따라서 육성하고 때에 따라서는 다르게 조합하면서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게임이다.

물론 돈을 투자해서 모든 캐릭터를 SSR급 그랑웨폰, 아티팩트로 풀장착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다수의 유저들은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는다. SSR급이 어느 정도 구비해두긴 하지만, 보통은 SR, R등급도 섞어서 장비할 수밖에 없다. 레벨이 오르면 스탯이 일괄적으로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노드를 올려서 추가로 캐릭터의 스탯이나 특성을 올리는 잠재능력 시스템을 채택했기 때문에 캐릭터 육성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복잡하다.

▲ 그랑웨폰만 해도 여러 효과가 붙어있고

▲ 잠재능력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이처럼 복잡한 체계는 깊이가 있고 연구할 맛이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거리감이 생긴다는 단점도 있다. 직관적인 UI/UX는 이런 거리감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지만, 그랑사가의 UI/UX는 다소 가시성이 떨어져서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아이콘이 화려한 것에 비해 설명은 최대한 축약한 나머지 필요한 정보가 빠져있는 경우도 있었다. 방어구의 종류도 판금/가죽/천 3종류로 나뉘어져있는데, 이를 아이콘으로만 작게 표기하고 설명이 안 적혀있는 등, 직관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엿보였다.

다소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랑사가에서 추구하는 전략성을 살펴볼 때 이런 문제점은 스노우볼처럼 굴러갈 여지가 있었다. 화려한 스킬 연계와 콤보로 적을 때려눕히는 액션 RPG나 좋은 장비만 믿고 무작정 밀어붙이는 자동사냥 MMORPG가 아니라, 캐릭터 조합과 세팅이 중요한 수집형 RPG의 구성을 참고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세팅과 관련된 정보를 유저가 훑어보고 해석하기 편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그랑사가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만큼 플레이하다보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게 익숙해지기 전까지 첫 인상이 어떻게 남느냐도 중요한 문제라 하겠다.

▲ 상성 등 복잡한 요소로 전략성을 갖춘 건 좋지만, UI/UX의 직관성은 조금 아쉽다



MMORPG라기엔 애매한 콘텐츠 구조

▲ 그랑사가는 캐릭터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기사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랑사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MMORPG에 수집형 RPG, 액션 RPG의 요소를 가미했다. 스토리상 모험에 나선 5인의 기사단과,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면 모든 기억을 잃은 주인공까지 총 6명이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그들 중 셋을 선택해서 필드에 나서는 방식이다. 처음에 고른 3명 외에도 다른 캐릭터들도 같이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에 충실하기 때문에, 언제고 팀 편성을 새롭게 꾸리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특성은 MMORPG라기보다는 수집형 RPG, 액션 RPG를 언급할 때 주로 나오는 소재들이다. 속성과 상성 관계뿐만 아니라 태그 공격과 해방 스킬의 무적 판정을 활용한 패턴 넘기기로 고난도 콘텐츠를 아슬아슬하게 공략하는 느낌 등. 여기에 메인 퀘스트-서브 퀘스트 외에도 그랑웨폰과의 인연 퀘스트, 캐릭터와의 인연 퀘스트로 방대하게 짜인 설정과 스토리 라인은 최근 MMORPG보다는 수집형 RPG에서 주로 강조해온 요소였다.

물론 장르의 근간을 따져보면 그랑사가는 MMORPG가 확실하다. 다수의 다른 유저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플레이하는 RPG인 건 맞기 때문이다. 다만 MMORPG하면 흔히 기대하는, 다른 유저와의 협력 혹은 경쟁 콘텐츠는 정식 출시 단계에서도 구색을 갖추지 못했다. 일종의 필드 보스 인던인 강림 콘텐츠는 별도 필드에 최대 10명의 유저까지 같이 들어가는 방식이었고, 일부 강림 보스는 너무 쉬워서 소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리어되는 등, 메인으로 내세우기엔 다소 애매했다. 파티 인던인 섬멸전도 특별한 기믹이나 공략이 없었다. 더군다나 길드 콘텐츠는 길드 상점과 회관 정도만 구비되어있었다.

▲ 파티플레이 없이도 깰 수 있지만, 보상 때문에 파티플레이를 하는 섬멸전

반면에 싱글플레이 요소는 나름 짜임새가 있었다. 스토리와 세계관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고난도 콘텐츠 '무한의 서고' 등이 그 사례 중 하나다. 들어갈 때마다 그때그때 무작위로 버프가 등장하는 등 로그라이크 요소가 일부 가미된 데다가, 물약을 사용할 수 없다보니 캐릭터가 최대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합하고 컨트롤하는 맛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간 잘 사용하지 않았던 어그로 컨트롤이나, 캐릭터 고유 스킬을 최대한 활용해 버티는 등 그랑사가 특유의 전략성이 잘 드러나는 콘텐츠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요소는 MMORPG라고 말하기엔 다소 부족한 구성이었다. MMORPG는 혼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유저와 함께 하는 콘텐츠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른 유저와 함께 한다는 건 단순히 전투력의 수치 비교, 세팅 비교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유저에 비해서 자신이 어떤 활약을 할 수 있나 직접 체험해보거나 비교해보는 장이 필요하다. 이런 공간이 그랑사가에서는 다소 늦게 열릴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의 질도 타 MMORPG와 비교했을 때 그리 높지 않다. 스토리를 얼마나 빨리 깨고 있느냐 정도만이 게임 이해도와 전투력 지표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MMORPG이기에 편리한 요소도 있었다. 다소 전투력이 모자란 상황에서도 다른 유저들이 몰려있는 파밍 구간을 가면 쉽게 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챕터5 이후부터는 솔로 파밍이 어려울 정도로 몹이 강력해 자연히 다른 플레이어들과 동선을 맞춰야만 했다. 다만 MMORPG가 이런 단순한 묻어가기뿐만 아니라 유저 간 유기적인 관계를 기대하는 장르인 만큼, 그 의의를 앞으로 증명해야 하는 과제는 남아있었다.

▲ 가면 갈수록 솔로 사냥은 힘들어지니 파티 혹은 다른 플레이어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의의는?





그랑사가는 1차, 파이널 CBT, 정식 출시까지 단계를 거칠 때마다 자신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어필하면서, 그간 단점으로 지목되어왔던 요소들은 조금씩 고쳐나갔다. 그간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래픽 스타일을 어색함 없이 최대한 퀄리티를 끌어올렸고, 이 부분은 호평을 받기엔 충분했다. 그 강점은 PC 버전이 출시되면서 극대화되었지만, 모바일에서 최적화는 아직은 조금 아쉬웠다.

싱글플레이 요소는 구색을 갖췄으나 다른 유저와 함께 하거나 비교 및 연구, 경쟁을 벌일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도 아쉬운 요소였다. 아울러 다수의 캐릭터의 장비, 그것도 그랑웨폰/아티팩트/방어구 세 가지에 각각 파트를 신경 써야 하는 복잡한 육성 구조를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물론 이처럼 복잡한 구조는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플레이하면서 세팅을 연구하는 맛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모바일 게임에서는 효율적인 육성 과정에 유료 재화가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만큼, 때로는 유저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가오기 십상이다. 특히 불편한 UI와 UX 대비 자주 보이는 패키지 등은 그런 인상을 줄 수 있는 위험요소였다. 자칫 어려워보이는 육성 과정은 각종 다양한 보상 체계와 깜짝 보상, 이벤트 타임으로 보완하는 등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상쇄하기 위한 시도가 엿보였다. 다만 그것 외에도 유저가 계속 게임을 붙잡게 할 플러스 알파 같은 이벤트는 아직은 다소 부족했다.


▲ 다소 부족할 수 있는 재화는 깜짝 보상 및 이벤트로 메우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랑사가는 지난 26일 출시 후 3일이 지난 지금(28일)까지 양대마켓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랑사가가 유저들을 그만큼 끌어모을 만한 매력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남은 일은 그렇게 모은 유저들이 그랑사가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다듬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특히 모바일 MMORPG는 출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할 만큼, 출시 후 운영 및 업데이트가 유저에게 중요한 이슈다. 운영과 업데이트에 따라 찍먹하던 유저가 다시 돌아와 정착하기도 하고, 혹은 떠나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랑사가는 아직 첫 발을 디딘 만큼, 지금 언급된 장단점을 어떻게 다듬고 완성해나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점


+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린 감성적인 그래픽과 연출
+ 그랑웨폰과 아티팩트, 캐릭터 조합으로 살린 전략성
+ 혼자 세계관을 음미하며 차근히 즐길 수 있는 구성


단점


- 모바일 버전 최적화는 아직 미흡
- 시인성이 떨어지는 UI/UX, 직관적이지 않은 구조
- MMORPG에서 기대할 법한 콘텐츠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