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테일즈'의 정성환 대표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4년 하고도 반 년 전이었다.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법 구색을 갖춘 상암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퍽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 했다. 오래 전부터 기획해온 자신만의 콘솔 게임을 이제 딱 만들어가는 그런 시기였으니까. 콘솔 게임 퍼블리셔와도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부족한 개발비 속에서도 개발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이후 시간이 흘러 듣게 된 그의 소식은 조금 뜻밖이었다. 크래프톤에 소속되어 개발 PD가 되었다는 소식. 인터뷰 이후 다소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당시 한 땀 한 땀 만들던 콘솔 게임에 행복해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게임 산업도 엄연히 산업이고, 필요에 따라 업무 성격이 바뀌는 건 너무나 빈번한 일이었으니까. 무언가 사연이 있겠거니 싶은 정도였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정성환 대표를 다시 만났다. 크게 달라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은 상암에서 구로디지털벨리로 옮겨졌고 정성환 대표는 22년차 개발자에서 26년차 개발자가 되었다. 그래도 대형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상태니 눈빛이나마 조금은 달라져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개발 연차에 비해 순수한 눈빛은 그대로다. 아니, 어찌 보면 4년 전보다 더 기대에 불타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무실의 모습도 얼핏 전보다 남루해진 듯 했지만, 정성환 대표는 이제야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며 즐거워하며 말문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뭔가 우여곡절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겉에서 보는 게임 산업이야 COVID-19의 위협 속에서도 성장해 가는 수혜산업이자, 수백억 자산의 부자들을 쏟아내는 신흥 산업이지만, 실상은 하늘에서 볼 때나 아름다운 정글에 가깝다. 수많은 성공의 사례 이면에 그 수백배에 달하는 실패와 좌절이 쌓여 지금에 이른 산업 아니던가.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에서 단박에 느껴졌다. 그의 지난 4년이, 단순한 성장의 시기가 아닌 위기와 고난이 함께 했던 시기였음을 말이다.

▲ 게임테일즈 정성환 대표


Q. 먼저,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앞서 본인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짧게 말하자면 뭐...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많긴 많았다.

게임 개발을 처음 시작한게 9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93년 대전엑스포 게임공모전에서 대상 수상한 게임에 음악디렉터로 참여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뛰어들면서 참 여러 게임을 만들어왔다. 대학을 다니면서 대구의 한 PC조립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월급 40만 원을 받으면서 낮에는 PC를 조립하고, 밤에는 당시 사장님의 양해를 받아 회사 컴퓨터 한 대를 빌려 게임을 만들었다. 당시는 게임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고, 잘 해봐야 좀 복잡한 취미 활동 정도로 여겨졌으니까 사실 그 정도만 해도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은 거였다. 또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짬짬히 소설도 쓰고 그랬다.

그렇게 대전엑스포에서 열린 작은 자작 게임 경연대회에서 수상도 해 보고,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뛰어들면서 참 여러 게임을 만들어왔다. 다른 개발사에 들어가 PD로 일하기도 하고,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또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짬짬히 소설도 쓰고 그랬다.

신기한 게, 그러다 보니 주변에 점점 사람이 붙더라. 그렇게 모인 이들이 지금의 '게임테일즈'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26년의 내 게임 개발 경력에 이 사람들이 있다. 끌고 오고, 꼬셔도 보고, 또 때로는 이들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온 시간들이다.


Q. 그러고 보니 4년 전엔 상암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지금은 구로로 사옥을 옮겼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그 인터뷰를 진행하고 몇 달 후에 참 힘든 일을 겪었다. 물론 그 전에도 투자 약속을 받아 일을 진행하다 소스만 뜯긴 적도 있고, 우여곡절끝에 만든 게임이 영 신통찮은 성과를 냈던 여러 어려움들을 겪었지만, 그땐 정말 바닥의 바닥까지 본 것 같다.

게임 개발 건을 받아 투자금까지 약속받았는데 하필 또 그때 사드 미사일 사태와 한한령이 떨어질 건 뭔가(웃음). 여튼 약속했던 투자금도 거의 못 받고 고정 비용은 있으니 돈은 계속 나가고... 마이너스 통장 한도고 신용 한도고 완전 바닥을 보였을 때, 업계에서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 큰 도움을 주셨다. 그때도 지금도 게임사 대표로 있으신 유명한 분인데. 어느날 전화로 내가 도와줄 테니, 딱 한 달만 쉬고 사업을 천천히 생각하라고 하시더라. 괜히 일벌린다고 나가서 돈 쓰고 미팅하지 말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한 달을 딱 가족과 보내고 나니 크래프톤이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후에 팀 전체를 끌고 크래프톤에 머물면서 겨우겨우 바닥에서 기어오른 지금, 다시 '게임테일즈'를 가동하기 시작한 거다. 사무실도 얻은 지 얼마 안 됐고, 나 역시도 아직 크래프톤에 속한 몸이지만, 미리 나와서 자리를 잡던 팀원들은 이전에 중단한 프로젝트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다시 꿈을 꾸고 있다.

▲ 꽤 멀리 돌아왔지만, 이제야 다시 게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TS프로젝트'


Q. 4년 전에도 얘기했던 그 게임같은데, 'TS프로젝트'. 그걸 다시 개발중인 건가?

맞다. 최초엔 콘솔 게임으로 개발하려 했고, 소니와도 대화가 오간 상태였는데 회사가 힘들어지면서 무기한 연기중이었다. 지금은 노선을 살짝 바꿔 모바일 MMORPG로 개발 중이다.

물론, 최초 기획이었던 콘솔 게임으로서의 TS프로젝트를 포기한 건 아니다. 다만, 아무 수익원이 없는 상태로 다시 개발팀을 꾸린 상태에서 바로 콘솔 게임을 개발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모함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안전 장치는 갖춰야 '아름다운 도전'이 되는 것 아닌가.

게임 산업에서 워낙 성공한 분들이 많고, 그 분들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다 보니 게임 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산업처럼 비춰지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사실 힘든 분들은 어마어마하게 힘들다. 우리만 해도 한 때는 회사 전체 연매출이 2천만 원 정도에 그쳐 매달 경조사가 있는 직원들에게 돈을 몰아주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번 달은 누구 아들이 입학이니 좀 몰아줄게요', '이번 달은 누구 아이가 태어나니 좀 많이 드리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의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일단 수익성을 챙길 수 있는 모바일 MMORPG를 먼저 개발하게 되었다.


Q. 이전 인터뷰에서는 그냥 간략한 설명만 들었는데, 'TS프로젝트'는 정확히 어떤 게임인가? 그리고 지금 게임 개발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인가?

'테일즈 앤 스토리'의 약자다. 나는 개발자이지만, 그 이전에 게이머이며, 천리안 최초의 콘솔 게이머 동호회인 '환상빌리지'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나는 게임에서 서사가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서사 없이 게임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완성도는 90%에 그칠 뿐이다. 100%를 만들려면 무조건 이에 걸맞는 적절한 서사가 필요하다.

'TS프로젝트'의 서사는 내가 지금껏 집필해 온 소설들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과거 집필한 소설 중 '황금의 나르시소스'에 여러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이는 이벤트가 존재하는데, 이를 기반으로 다른 소설인 '사일런트 테일'이나 '홀리 나이트'의 세계관을 하나로 묶어 게임의 배경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해당 소설의 등장 인물들과 소설 내에서 인물들이 쓰는 기술, 그리고 이들의 관계도 게임 내에 묘사된다.

개발 정도를 말하자면 음... 출시는 내년이나 그 이후가 될 지도 모르겠다. 게임 내 핵심 시스템은 이미 이전부터 생각하던 기획과 팀원들의 노하우 덕에 80% 이상 완성된 상태이나, 아트 부분에서 아직 덜 만들어진 부분들이 있어 이를 채워나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도 게임 기획안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선뜻 투자를 약속한 분들이 많아 게임 완성에 필요한 시간은 확보할 수 있었다.

나중 일이지만, 만약 게임이 잘 되서 재정적으로 여유가 좀 생긴다면 이후엔 원래부터 생각하던 콘솔 버전의 TS프로젝트를 만들 계획이다.(웃음) 콘솔 버전의 완성이야말로 여태껏 이 프로젝트를 놓지 못한 이유니 말이다.

▲ TS프로젝트의 세계는 몇 년의 세월 동안 조금씩이나마 만들어져왔다.


Q. 앞서 이전에 진행하던 프로젝트 외에 새로운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라 했는데, TS프로젝트 외에 또 다른 개발중인 게임도 있는 건가?

맞다. '리전 워페어'라는 이름의 PC 온라인 FPS를 개발하고 있다. 나보다 조금 앞서 게임테일즈를 유지하고 있던 팀원들이 개발을 시작해 이제 딱 1년 정도 된 프로젝트인데, 이미 플레이 가능한 초기 빌드까지 만들어진 상태다. 솔직히 말하면 '콜오브듀티'나 '배틀필드'와 비빌 만한 엄청난 비주얼의 게임은 아니다. 과거 국내 온라인 FPS가 줄줄이 나오던 시절 등장한 게임들과 좀 더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이는 '리전 워페어'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와도 관련이 있다. 난 온라인 FPS게임을 즐기는 편이고 옛 게임들의 경우 국내에 유저가 드물다 보니 유럽이나 북미 게이머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편인데, 이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게임은 새로 나오는데, 우리가 가진 컴퓨터로 돌리기엔 너무 버거운 게임들만 나와서 할 게임이 없다'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평균 PC 사양은 세계 기준에서 굉장히 높은 편이며, 게임 산업에서 '제3세계'라고 할 만한 시장의 평균 PC 사양은 잘 쳐줘봐야 5년쯤 전 메인스트림 수준이다. 당연히 지금 나오는 게임들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저사양 PC에서, 웬만한 노트북 수준에서도 플레이 가능한 온라인 FPS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지금의 '리전 워페어'다. 남미에서 대흥행한 '오퍼레이션7'이나 동남아를 장악한 '포인트 블랭크'같은 게임들이 아마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결과에 가깝지 않을까?

▲ 별개의 프로젝트이자, 뉴트로 FPS로 개발 중인 '리전 워페어'


Q. 콘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동력으로 먼저 모바일 MMORPG를 만든다는 건데, 좋든 싫든 지금 국내 게임 산업의 헤게모니는 모바일에 있지 않나. 모바일을 최종적 목표로 삼지 않은 이유가 있나?

콘솔 게임을 좋아했다는 건 이미 말했으니 다른 방향으로 설명해 보자면, 모바일 게임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쁘고, 컴퓨터를 잠깐 킬 시간조차 없는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PC게임보단 모바일이 확실히 더 어울리며, 이를 선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모바일 게임을 원하는 건 또 아니지 않나?(웃음) 분명 나 같은 게이머도 적지 않을 텐데 말이다. 누구나 원하는 게임은 다른 법이고, 모바일보다 PC나 콘솔 게임을 선호하는 게이머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고 싶은 거다.

재미있는게, 이 마음이 굳어지다 보니 BM도 옛 방식 그대로다. 일단 게임을 사면 추가로 뭔가 살 필요는 없었던 시절 그대로 말이다. '리전 워페어'는 배틀패스 시스템도 없다. 그냥 게임을 사면, 멀티플레이나 추가 업데이트 요소는 그냥 무료 업데이트다. 게다가 10단계로 계획된 싱글 플레이 켐페인도 있다. 컴퓨터 사양이 안 되서 최신 하이엔드 게임을 못 하는 플레이어들인데, 온라인 환경도 불안할 수 있지 않나? 대형 업데이트야 추후 DLC형태로 판매할 수도 있겠으나, 리전 워페어는 지속적인 과금 요소를 아예 배제하고 개발하고 있다.

▲ 요즘 게임과는 달리 한 번 사면 추가 결제가 없는 옛 감성으로 개발 중이다.


Q. 앞에서 이미 말한 바지만, 확실히 게임 산업에서도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린 분들은 참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곤 한다. 생각해보면, 정성환 대표 본인은 그 와중에 26년을 현역 개발자로 버텨왔다는 것 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 같은데, 본인이 지금까지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음...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 성공을 거둔 많은 게임사 대표들이 가진 번뜩이는 선구안이나 사업 전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도, 누구보다 정직하고 진솔했다는 자부심은 있다. 함께 게임을 만든 이들, 게임 개발에 투자한 이들, 그리고 우리 게임을 플레이했던 게이머에 이르기까지 이 산업에서 일하며 엮인 모든 이들을 진솔하게 대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힘들었던 적이 많았던 걸 보면 이 진솔함과 솔직함이 성공한 사업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다시 되돌아와 지금의 나를 만든 거름이 된 것 같다. 회사가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준 팀원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분들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냈고, 그 어려움 속에서 얻은 실력과 노하우가 또 다른 좋은 분들의 투자로 되돌아왔다.


Q. 달리 보면 굳이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보단 적당히 좋은 게임사의 임원으로 일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독립된 팀으로서 독자적인 게임을 만들려는 이유가 있나? '그만 포기할까?' 하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나?

나도 사람인데 없었겠나.(웃음)

실제로, 게임을 만들 건데 PD로 와 달라는 제안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가 버리면 지금까지 날 믿고 따라온 팀원들은 어떻게 하나. 게임테일즈에게 있어 게임을 만들어 성공하는 건 어떻게 보면 숙명적인 도전이다.

우리 팀의 멤버들 면면을 보면, 어디에 가도 바로 즉시전력으로 투입될 수 있는 개발자들이다. 짧아도 10년 이상 게임을 개발해 온 사람들이고, 어딜 가도 시니어에 프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개발자들이다. 하지만, 실력에 자부심이 있어도 실제로 검증된 결과물이 없다면 마음이 메마른다.

아마 아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실력도, 능력도 갖춘 것 같은데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가 없을 때의 그 불안함과 자괴감. 실제로는 이런 저런 게임의 개발에 참여했지만, 그 중 어느 것에도 내가 개발의 주인공이 된 적은 없었다는 실망. 지금 우리가 하는 도전은 이 마음의 그늘을 걷어내고, 볕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 먼저 자리를 잡은 팀원들이 별개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리전 워페어'의 시작이다


Q.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만약 TS프로젝트가 예상대로 개발되고, 좋은 수익을 거둬 성장 모멘텀이 되어 준다면, 그 다음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의 정립된 세계관을 만들고 싶다. 마블 유니버스가 여러 미디어로 소화되지만, 결국 기반이 되는 세계관은 하나인 것 처럼 TS프로젝트의 배경을 기반으로 여러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RPG든, 액션이든, 격투 게임이든 말이다.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니 그 단계까지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언제쯤 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느낌이 좋다. 그간 수없이 게임을 만들어오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도 지금처럼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다.

▲ TS프로젝트의 '유니버스'는 정성환 대표의 궁극적 목표다.


Q. 감히 지금의 마음을 짐작하자면, 기대와 부담의 중간 정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26년 차, 새로운 도전을 진행 중인 지금, 어떤 마음인가?

무조건적인 성공은 믿지 않는다. 그럴 수록 혹시나 실패했을 때 더 아플 것 아닌가?(웃음) 그래도, 어딘가엔 분명 우리가 만든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할 게이머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 게임은 수정과요, 식혜다. 세계에서 제일 잘 팔리는 음료는 콜라겠지만, 누군가는 콜라보다 식혜를 더 좋아하지 않겠나?

이전에 '히어로즈리그'를 서비스하던 시절엔, 참 유저들과 끈끈한 관계로 지냈다. 개발자와 게이머가 게임 밸런스로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그러다 져서 다음 업데이트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게이머분들의 경조사도 챙겨주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유명 게임에 비하면 분명 적은 분들이 하던 게임이고, 그 마저도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게임이지만, 그때 우리는 게이머와 '공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모두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잘 안 되면 뭐 실망하긴 할 거다. 그래도 미끄러져봐야 이전만큼 힘들까? 난 이미 온갖 쓴 맛을 봤고, 어지간한 실패는 쿨하게 넘길 수 있는 비범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다.(웃음)


Q. '히어로즈리그'때부터, 게임테일즈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다. 시간이 꽤 흐른 만큼 다음 게임을 내놓을 때면 꽤 오랜만에 그들과 만나게 될 건데, 미리 인사차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참 놀랍게도, 히어로즈리그 이후 아직도 가끔 소식을 묻는 분들이 계신다. 아마 다음에 만들 게임이 그 분들의 마음에 들 만한 게임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게임을 만들고, 더 많은 게임을 만들고, 더 다양한 게임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다 다시 그 분들을 만나고 그 분들이 원하는 게임을 알게 된다면, 설사 조금 늦었다 해도 반드시 그 분들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 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게이머와 함께 게임을 만들어가는 그 시절의 경험을 되돌려보고 싶다. 부디 지금의 이 마음이, 당시 우리에게 소중한 힘이 되어 주었던 게이머 분들께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