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게임 컨퍼런스, GDC가 한국 시간으로 20일 0시부터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에 이어 온라인으로 진행한 이번 컨퍼런스에는 라스트오브어스2, 고스트 오브 쓰시마, 원신, 데몬즈 소울,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등 다양한 게임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본격적인 개막에 앞서 GDC 메인스테이지에서는 '게임 개발자들의 임팩트'라는 강연을 준비했다. 2019년 GDC 메인 키노트 강연인 '개발자의 여정'에 이은 이번 강연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게임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강연에는 팝카니발의 설립자 지바 스콧과 워너브라더스 게임즈 몬트리올의 오사마 도리아스 리드 게임 디자이너, EA의 린제이 피어슨 심즈 GM이 참여해서 각자가 준비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게임은 소통의 장", 친절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카인드 워즈'의 노력

▲팝카니발 지바 스콧 설립자

팝카니발에서 개발한 '카인드 워즈'는 플레이 방식이 특이하다. 게임이라기보다는 펜팔 커뮤니티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익명으로 메일을 보내고, 그 익명으로 보낸 메일을 누군가가 또 받아서 답장을 쓴다. 그렇게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 받고 소통하면서 스티커나 방을 꾸밀 수 있는 여러 장난감들을 얻을 수 있고, 그걸로 방을 꾸미거나 자신이 받은 스티커를 메일에 첨부하기도 하는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다.

아마 유저 다수가 이런 설명을 들으면 "이게 재미있다고?"라고 물을지 모른다. 스튜디오의 설립자인 지바 스콧 역시도 처음엔 모두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2천 명 정도 플레이하면 성공했다 싶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카인드 워즈를 즐겼고,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 '카인드 워즈'는 익명으로 유저끼리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카인드 워즈'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는 것일까? 지바 스콧은 그것이 '게임'이라는 레이블의 힘이라고 보았다. '카인드 워즈'는 관점에 따라서 게임이라기보다는 펜팔용 이메일 클라이언트나 앱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게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받아들이게 된다.

지바 스콧은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더 개방적으로 다가가는 이유를 '터부'를 깰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현실에서 차를 운전할 때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주의해서 살펴보고 가야 하지만, 게임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차를 몰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 물론 게임에 따라 게임오버가 되거나 기록이 안 나오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터부시되는 걸 비교적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는 공간임은 분명하다.

▲ '게임'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찾게 된다고

카인드 워즈가 주목한 점은 감정 표현에서 터부시되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살다보면 남들 앞에서 눈물 보이면 안 된다던가, 그런 작은 걸로 울지 말라던가, 헤프게 웃지 말라던가 하는 일종의 터부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카인드 워즈는 익명의 편지와 자기 방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풀어놓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지바 스콧은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터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나누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보았다.

▲ 현실에서 제약된 행동을 게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것이 재미의 원천 중 하나다

현실보다 비교적 제약이 덜한 만큼 종종 채팅이 지원되는 게임에서는 욕설이나 인종차별 발언 등 이슈가 불거지기도 하고, 때론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지바 스콧 역시도 이러한 문제는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궁리해왔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유저들의 리포트를 어떻게 체크하느냐 문제였다. 일단 리포트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체크, 백엔드로 넘긴 뒤 그 안건을 동료들과 함께 훑어보는 것이 그의 주 업무 중 하나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다수의 유저들이 선을 넘지 않고, 카인드 워즈에서 의도한 것처럼 서로 소소하게 소통하는 그 느낌을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수 유저들은 처음에 과격하게 속내를 털어놓다가도, 점차 화가 누그러지면서 점잖아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드물게 지속적으로 과격한 발언을 일삼기도 하는데, 그런 유저들은 카인드 워즈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했다.

카인드 워즈가 그렇게 관리될 수 있던 또다른 이유는, 이미 거친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된 다른 커뮤니티와 연계를 최대한 지양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쪽에서 유래된 거칠고 차별적인 밈도 과감하게 컷하고, 교묘하게 비꼬는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상대방의 욕설을 유도하는 수법에 대해서도 계속 추적해서 단호하게 배제하는 식으로 나아갔다.

▲ 물론 도를 넘는 유저들은 나오기 마련이고, 그에 대해서는 계속 모니터링해나갔다

이러한 조치는 사실 몇 명 안 되는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예상보다 게이머들이 그런 발언으로 제재를 받는 일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긴다거나, 유명해진다거나 그런 것 없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마련된 장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그 규칙을 지키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금세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규칙을 안 지키고 눌러앉으면서 상대방을 모욕하고 도발하는 트롤러들은 대부분이 그런 소통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고,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팝카니발 측에서도 거리낌 없이 쳐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팝카니발의 조치는 어찌보면 작은 커뮤니티 안의 독재자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카인드 워즈라는 게임을 통해서 사람들이 서로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게임이 흔히 말하는 괴짜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아니라, 개발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좀 더 폭넓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생각한 '카인드 워즈'의 의의였다.

▲ 기능이 제한된 SNS앱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게임이었기에 더 폭넓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다



■ 게임 개발: 자신의 경험을 승화하고, 교류하며 이해하는 위대한 과정

▲ 워너브라더스 게임즈 몬트리올 오사마 도리아스 리드 게임 디자이너

워너브라더스 게임즈 몬트리올의 오사마 도리아스 리드 게임 디자이너는 강연 시작에 앞서 자신의 출생에 대해 소개했다. 이름에서 보다시피, 그는 아랍계 캐나다인이다. 바그다드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는 무슬림이지만 신앙과 별개로 게임이나 만화를 좋아하고, 정크푸드를 즐기는 등 아랍계로서나 캐나다인으로서나 정체성의 문제를 딱히 겪지는 않았다.

그가 게임, 미디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계기는 80년대 할리우드 액션 영화부터 이어진 아랍계 사람들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엑스맨'에서 차별받는 이들을 조명하는 방식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그렇게 의미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편견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업계를 전전하던 그는 던전 헌터4의 내러티브 디렉터가 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회사에서 요구했던 것은 사람 VS 악마라는 전통적인 이분법 구도의 게임이었는데, 여기에 자신이 타자로서 차별받거나 백안시되던 경험을 풀어놓은 것이다.

던전 헌터 시리즈에서 카나쉬는 인간과 싸우던 종족인데, 그는 그 종족에 주목했다. 그래서 4편에서는 인간과 함께 협력해 악마를 물리치는 종족으로 설정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적인 '타자'나 악이 아닌, 타자화된 누군가라는 걸 조명하고자 내러티브를 설계해갔다. 다른 매체와 달리 게임은 유저가 직접 그들과 협력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그간 생각해왔던 바를 더욱 생생하게 체감하게끔 하는 툴이었다.

▲ 아랍계 캐나다인으로 사회에서 타자였던 그는 그 경험을 게임에 녹여내

▲ 인간과 카나쉬가 악마에 맞서기 위해 서로 협력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실제로 그는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서 게임 속에 녹여낸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GTA의 선임 테크니컬 게임 디자이너도 택시 운전사였던 아버지의 일화에서 프랭클린이 다운타운 캡 회사를 구매하는 에피소드를 생각해냈다. 산타모니카의 아담 돌린 내러티브 디자이너는 배 위에서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하는 대사 중 일부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트위터에 적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는 것이 꼭 좋은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니다. 실제로 게임 개발자 중에서는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막연히 자기 여자친구 이름을 캐릭터에게 넣은 뒤에 후회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 그뿐만 아니라 많은 개발자들의 자신의 경험을 게임에 녹여내곤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이들과 게임을 즐기고 같이 개발도 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몰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넣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처음 게임을 만들었을 때 그러지 않았나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안 되겠지만 일단 재미있어보면 해보고, 안 되면 방법을 찾아가고 씨름하는, 그런 과정이 아이들과 게임을 개발하면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과 만든 게임은 36종의 카드로 승부를 겨루는 카드 게임과, 나쁜 로봇들을 재우고 증발시켜버리는 아주 간단한 2인용 플랫포머였다. 그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를 알게돼 딸은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고자 하고 있으며, 아들은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듯 게임 개발은 게임을 만든다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행동이라고 도리아스 디자이너는 강조했다. 자신의 경험을 승화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재미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뜻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면서

▲ 아이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알려줄 수 있었다



■ 심즈 GM이 바라본 게임 개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경험"

▲ EA 린제이 피어슨 심즈 GM

마지막으로 린제이 피어슨 심즈 GM은 심즈4의 사례를 통해 모든 플레이어들을 포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소개했다. 그 모든 기본은 우리 모두가 게이머라는 전제부터 시작된다. 다 같은 게이머인 만큼 어느 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모두가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불쾌하지 않으려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EA의 프랜차이즈 시리즈 중 하나인 '심즈'는 이와 관련해 2000년부터 줄곧 고민하면서 발전해온 시리즈다. 시리즈가 가면 갈수록 다양한 인종 및 성향을 담아냈고, 그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모든 성향과 인종, 문화가 동등하게 가치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 게임은 남녀노소 인종 구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다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던 건, 지위 여하에 상관 없이 열린 마음을 갖고 호기심을 갖자는 심즈 개발팀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해서 "이런 기분 나쁜 피드백이 있구나"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심즈4에서 '겨울 이야기' 확장팩을 처음 냈을 당시, 신사 참배 및 욱일기를 연상하는 디자인 때문에 한국 유저들에게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건에 대해서 언급했다. 심즈 개발팀은 이러한 피드백을 존중해 신사 참배 콘텐츠를 제거하고, 욱일기를 연상할 수 있는 디자인들을 전면 수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 한국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심즈4 겨울이야기의 신사 참배 및 욱일기 요소를 수정했다

이처럼 게임 개발자들도 신이 아닌 사람인 만큼 때로는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즈 개발팀에서는 언어든 성별이든 성향이든 문화권이든 숨어있는 의미를 캐치하기 위해 계속 플레이어들에게 질문하고, 개발팀 내에서도 항상 이에 대해 논의하면서 어떤 것이 올바르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지 계속 캐치해나가고 있다.

피어슨 GM은 이처럼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 자체가 사람을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며 배워가면서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심즈 개발팀뿐만 아니라 EA에는 다양한 인종,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적 아래에서 경험을 나누고, 교류하고 있다. 게임 개발이란 그런 과정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창작 활동이자, 그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 게임 개발은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고 같이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