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되고 반복되는 죽음은 플레이어를 불안하게 해요"


저는 액션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반응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인지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내가 조작하는 캐릭터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며 적과 싸우고,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습니다. 스팀에 출시되는 신작 액션 게임 리스트를 눈여겨보고, 게임이 공개될 때마다 먼저 플레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해브 어 나이스 데스(Have a Nice Death)', 그러니까 '좋은 죽음 되세요'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 게임은 2022년에 출시될 예정인 기대작 중 하나로 꼽으며 작년부터 거의 1년을 기다린 게임입니다. 귀여운 비주얼로 그려진 사신 '데스'를 조작하여 지옥을 누비는 2D 액션 로그라이크로, 지난 9일 얼리억세스 형태로 스팀에 출시됐습니다. 장르부터 주인공의 비주얼까지, 여러모로 국산 인디 액션 게임인 '스컬(Skul)'을 떠올리게 하여 더욱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죠.

사전 트레일러를 봤을 때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던 귀엽고 아기자기한 비주얼은 본편을 플레이하며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지옥의 모습을 그리는데 귀여운 비주얼이라니,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의 조합이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더라고요.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 역시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사랑스럽고,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플레이어에 호의적인 캐릭터들은 물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까지 말이죠.

긍정적인 인상뿐인 게임의 비주얼과 달리, '해브 어 나이스 데스'의 게임 플레이는 전혀 귀엽지 않았습니다. 로그라이크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게임의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발견되는 아쉬운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게임이 타이틀을 통해 전면에 내세우는 슬로건과 달리 '죽음'을 반복하는 과정 역시 즐겁지 않았고요.

게임명 : 해브 어 나이스 데스 (Have a Nice Death)
장르명 : 액션
출시일 : 2022.03.09.
개발사 : Magic Design Studios
서비스 : 기어박스 퍼블리싱
플랫폼 : PC



해브 어 나이스 데스는 '좋은 죽음'을 보여줬나?


'해브 어 나이스 데스'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작품이 내세우고 있는 장르인 '로그라이크(Roguelike)'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정통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영구적 죽음(Permadeath)'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플레이 중 게임 오버될 경우, 기존에 얻은 모든 재화를 잃고 이어 하기 없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규칙이죠.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는 현시대의 게임들은 대부분 원조집의 맛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현대적 입맛에 맞게 변주를 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보통 게임 오버 이후의 결과창에서 게임을 플레이한 만큼 일정량의 재화가 축적되도록 하는 방식이 '맛집 레시피' 마냥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이는 플레이어에게 지속 플레이의 의미를 부여하고,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게끔 하는 좋은 유인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공식 대신 저마다의 변주를 부여한 게임을 로그라이크 대신, '로그라이트(Rogue-lite)'라는 별개의 이름으로 구분하곤 합니다.

해브 어 나이스 데스 역시 로그라이크를 표방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로그라이트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플레이 기록에 따라 '주괴(Ingots)'를 지급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장비를 해금하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죽음을 수차례 반복하고 끊임 없이 주괴를 축적하더라도, 이후의 플레이가 개선되는 것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주괴로 해금하는 것들은 이후 게임 플레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장비의 '선택지'를 늘릴 뿐이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시간을 플레이하더라도 게이머는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게임을 반복하게 됩니다.

▲ 내가 대체 무엇을 구매하고 있는지, 대략적인 안내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원래 로그라이크 게임이 다 그런거고, 실력을 키우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죠. 근래에 출시됐던 실력 중시의 액션 게임 '시푸(Sifu)'도 거의 똑같은 방식을 채용했었거든요.

하지만 해브 어 나이스 데스가 채용한 방식은 기존의 비슷한 로그라이트 장르의 게임들보다 더 부조리하고, 더 악랄합니다.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반복 플레이의 성장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유명한 액션 게임, '시푸'의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어려운 액션을 좋아한다면 이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어려운 게임이니, 관심이 있다면 꼭 플레이해보시길 바랍니다. 아래 최근 작성된 '시푸'의 리뷰 링크도 걸어두겠습니다.

시푸에서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경험치를 모아 무술 스킬을 영구적으로 해금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스킬의 영향력이 높지 않아 있으나 없으나 무방한 정도였지만, 상황에 따라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스킬들이 있는 것은 물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죠.

하지만 해브 어 나이스 데스에서 죽음을 반복하며 어렵사리 해금을 마친 장비와 스킬들은 게임을 플레이하고, 해당 장비를 획득할 수 있는 구역을 방문해야만 '무작위'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목록에 있는 품목을 모두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1회 플레이를 하며 한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 역시 부지기수입니다. 반복 플레이로 어렵게 쌓은 성과가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 일방적인 딜링이 가능한 유성우는 오히려 주괴 해금 스킬이 아니다

해브 어 나이스 데스의 게임 플레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은 '제한적인 체력 회복' 시스템에 있습니다. 플레이 중 피해를 입으면 체력 게이지는 회복되지 않는 상처와 부상으로 나뉘는데, 노란색 아니마와 커피 등 몇 가지 특수 아이템을 제외하면 줄어든 체력을 회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회복 아이템이 자주 나와주는 것도 아니고요. 심지어 어려운 중간 보스나 보스를 클리어해서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더라도, 캐릭터의 체력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유지됩니다. 게임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죠.

결국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체력이 부족해서 죽으면? 게임을 플레이하며 모았던 모든 재화를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플레이어에게 남은 것은 사용처도 불분명한 주괴 조각 몇 조각이 전부죠. 특정 방법으로 적을 제압하거나 스테이지를 완수하면 체력을 채워주는 것은 물론, 게임 오버 당한 스테이지를 계속 반복해서 플레이할 수 있고, 여기에 주인공이 70살이 될 때까지 수십 번에 달하는 재도전의 기회까지 줬던 '시푸'가 상대적으로 쉬운 게임처럼 느껴지는 놀라운 상황입니다.

▲ 기믹도 모르는 보스전을 앞두고, 절반 이하의 체력으로 임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해브 어 나이스 데스가 시푸처럼 순수하게 어려운 게임인 것은 아닙니다. 아니, 사실 게임 자체는 어쩌면 쉬운 편이죠. 만약 운 좋게 맵 전체를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대규모 사기 스킬을 초반부터 획득하고, 운 좋게 특수 회복 아이템을 필요할 때마다 획득했으며, 운 좋게 높은 레어도의 대미지 증가 보너스를 연달아 뽑았다면, 이전까지 어렵게 플레이한 것이 다 뭐였나 싶을 정도로 쉽게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행운이 몇 번 겹쳤다면, 사실 오래 반복할 필요도 없죠. 한 번의 도전으로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요. 사실 게임에 등장하는 적의 기믹이 특별히 복잡하거나,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인 것도 아니거든요.

해브 어 나이스 데스는 획득할 수 있는 재화나 보상만 다를 뿐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스테이지 구성, 그저 운에 맡겨야 하는 장비 획득 기회, 여기에 제한적인 체력회복 시스템을 적용하며 어쩌면 단순하고 짧게 끝낼 수 있는 콘텐츠를 억지로 늘리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사신 CEO가 죽음 주식회사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전 부하직원들을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참교육한다는 독특한 컨셉을, 누구라도 빠져들게 할만한 매력적인 비주얼로 풀어내고도 '좋은 죽음'을 선사한다는 이름값을 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게 느껴집니다.

▲ 만담처럼 유쾌한 캐릭터들의 대화와 매끄러운 비주얼까지, 보는 맛이 뛰어나기에 더욱 아쉽다

해브 어 나이스 데스가 지금보다 더 유쾌한 '죽음'을 반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 플레이 중 보너스로 획득하게 되는 공격력, 방어력, 최대 마나, 최대 체력 수치를 죽음 보상인 '주괴'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구매에 필요한 주괴의 양을 대폭 늘리고, 강화할 수 있는 수치를 최대 '5' 정도로 미세하게 잡는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는 반복되는 죽음에도 보람을 느끼고, 결국 '행운'이 없으면 깨지 못할 것처럼 느꼈던 구간을 본인의 실력 만으로 클리어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구매는 1회차에 한정하고, 2회차부터는 강화 없이 실력으로만 플레이할 수 있는 별도의 난이도를 넣는 거죠. 마침 게임 내에 존재하는 '저주' 시스템을 처음부터 하나씩 적용하며 난이도를 더하는 방식도 좋을 것 같네요.

추가 스테이지와 추가 보스 등 게임을 더 오래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업데이트 콘텐츠는 앞으로도 계속 추가될 예정이므로, 여기에 게임 속 '죽음'이 더욱 의미를 갖게 만드는 몇 가지 사소한 변화 정도가 더 추가된다면 더 대중적이고, 즐거운 게임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이 아직 얼리억세스 상태이므로, 여러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방식으로 변화하는 모습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고요.




'해브 어 나이스 데스'는 얼리억세스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로선 쉽게 구매를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닙니다. 여러 군데에서 아직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미완성된 게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캐릭터의 평타 모션 중 가끔 부드럽게 연계되지 않는 대시 조작과 벽 끼임 등 플레이를 매끄럽지 못하게 하는 몇 가지 버그들, 그리고 번역되지 않은 상태로 출력되는 대사 등입니다. 두 가지 모두 전체 게임 경험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로 부정적인 이슈는 아니지만, 추후 정식 버전이 출시됐을 때는 모두 개선되어야 하는 요소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 정말 작은 단차인데, 이런 턱에 걸려서 '턱턱' 막히게 되는 경우가 정말 잦습니다

▲ 캐릭터들의 대화가 참 유쾌하고 재밌는데, 번역이 안된 문장도 다수 출력되는 상황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은 개선한다면, '해브 어 나이스 데스'는 로그라이크 액션 장르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게임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아쉬운 점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게임의 비주얼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고,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어떤 배경이, 어떤 보스가 등장할지 궁금해하며 계속해서 게임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투덜투덜하면서도 마지막 보스를 격파할 때까지 좀처럼 게임을 놓지 못할 정도였거든요.

스팀 얼리 억세스 기념으로 별도의 할인 행사 등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당분간은 빠른 버그 픽스와 업데이트를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도통 출시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실크송' 소식에 지쳐 얼른 새로운 액션 로그라이크를 플레이하고 싶은 유저라면, 앞으로 더욱 개선될 모습을 보여줄 이 게임도 함께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액션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앞서 출시된 여러 선례들을 참고삼아 점점 더 '좋은 죽음'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