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의도, 그걸 가리는 수많은 오류


어둠 속에서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는 적으로, 혹은 주인공으로 수많은 창작물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게임에서도 악마성 드라큘라나 대전 격투 뱀파이어 시리즈 등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죠. 특히 최근에는 '뱀파이어 서바이버'가 간단한 플레이로 손 떼기 어려운 몰입도를 보여주고 'V라이징'이 생존 게임으로 색다른 재미를 전하며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게임의 흥행을 그렸습니다.

'V라이징'과 비슷한 시기 현대 시대 뱀파이어물 중에서는 단연 으뜸으로 꼽히며 어반 판타지의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월드 오브 다크니스(World of Darkness, WoD)' 기반 게임 2개가 출시됐죠. 뱀파이어 게임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커졌죠.

특히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블러드헌트'가 배틀로얄로 전투에 초점을 맞췄다면,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 스완송(스완송)'은 진득하게 이야기로 승부하는 RPG로 WoD만의 세계. 나아가 현대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한껏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죠.

그리고 실제 게임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노력이 잔뜩 드러나 있긴 합니다. 다만, 게임을 어설프게 만드는 여러 요소가 함께 뒤엉키며 그 의도만 겨우 느낄 수 있다는 단점이 워낙 크게 부각된 느낌이고요.


게임명: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 스완송
장르명: RPG / 어드벤처
출시일: 2022. 05. 19.
리뷰판: R.1.1.51082
개발사: 빅 배드 울프 스튜디오
서비스: 네이콘
플랫폼: PC / PS / Xbox
플레이: PS5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스완송은 액션 요소가 거의 없는 게임입니다. 전투라 부를 만한 요소도 없죠. 일종의 3D 어드벤처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스완송을 가장 명확하게 가늠하게 하는 특징은 바로 RPG 요소입니다. 즉, 캐릭터 자체에 몰입하고 성장시키는 WoD의 TRPG 요소를 이어 대화로 모든 걸 풀어가죠. 굳이 따지자면 이런저런 요소 다 담아 이머시브 심에 가까웠던 이전의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게임보다는 '디스코 엘리시움'에 더 가까운 형태가 된 겁니다.

또 대화 외에도 능력치를 올리고 잠겨있는 문을 따 새로운 힌트를 얻거나 컴퓨터를 해킹할 수도 있고 대화나 지역 탐색에서 활용하는 클랜과 분파 별 특수 능력 '디시플린'을 강화해나가기도 하고요. 특히 세 명의 주인공이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능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꽤 다양한 능력 활용을 보여줄 수 있도록 구성됐습니다.

▲ 우아한 뱀파이어는 문제를 대화로 해결합니다

문제는 대화를 중심으로 한 핵심 게임 플레이, 주인공과 주변 세계에 푹 빠져들 텍스트 중심의 이야기, 그리고 뱀파이어만의 특수한 능력을 활용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 영역 모두 꽤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화 기반의 진행과 그걸 방해하는 그래픽

핵심으로 다가가는 지역에서의 추리와 퍼즐 풀이도 중요하지만, 게임의 중심은 대화입니다. 플레이어는 어느 주인공을 맡아 플레이하든 캐릭터의 능력들은 대개 이 대화와 연관되어 있죠. 체스트샷, 혹은 얼굴을 쭉 당겨 화면에 잡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흥미진진해야 할 구간에서 몰입된 감정이 픽 식어버리죠. 바로 그래픽 때문입니다.

게임의 전체적인 광원이나 피사계 심도 등 주변 효과 부분은 불평 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서사에 몰입하도록 하는 인물들의 모델링과 텍스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매끈하기만 한 인물 묘사는 PS5, XSX이라는 9세대 게임으로도 출시됐음에도 한참 모자란 수준입니다. 여기에 무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갑자기 표정이 바뀌는 구간은 아쉽다라는 감정을 넘어 불쾌감을 줄 정도고요.

대사와 입모양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대형 게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 캐릭터 중심의 많은 3D 게임이 음성과 캐릭터의 립싱크를 유사하게 맞추고 있는데요. 스완송도 이 부분을 지키려고 했지만, 조금만 빠르게 발음하는 단어가 나오면 이걸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는 금붕어 연출이 플레이어의 맥을 빼놓죠.

▲ 놀랍게도 PS5로 출시되는 게임의 모델링. 입과 안 맞는 대사는 덤입니다

이러한 모델링과 묘사 연출의 부족함은 세 명의 주인공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들은 종종 어색한 움직임으로 이야기 즐기며 겨우 끌어올린 집중도를 깎아내립니다. 사실 오래 플레이할 것도 없이 게임 시작하자 클로즈업된 에멤의 머리칼이 목을 뚫는 장면을 보자마자 그걸 느낄 테고요. 주인공이 이러니 그저 지나가는 NPC의 경우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픽이 게임의 전부는 아닙니다. 스완송의 그래픽이 수세대 전 게임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대화를 기반으로 한 RPG 지향 작품인 만큼 게임 진행과 다양한 힌트 제공이 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플레이어가 이 대화에 집중하게 되니 그 부분에서 충실하지 못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데포르메 없이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하다 보니 2D, 혹은 개성 있는 연출로 부족함을 덮는 게임보다 3D 연출의 아쉬움도 커지고요.

▲ 게임 시작부터 목을 뚫고 나오는 머리



세계관과 TRPG로 게임 맛을 덜어낸 플레이

워낙 탄탄하게 마련된 원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큼 도심 속 뱀파이어의 스토리 묘사와 어둑한 분위기는 게임 곳곳에서 잘 묻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를 전달하는 방식까지 WoD의 TRPG 형식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 걸리는 부분이고요.

마치 스타워즈 오프닝을 보듯 텍스트로 죽 나열되는 도입부. 그리고 이야기는 별다른 설명 없이 이미 발생한 사건과 인물들을 쉴새 없이 등장시킵니다. 또 그들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과 고유 명사까지 쏟아내며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죠.

TRPG에서 룰북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코덱스가 게임 안에 구현되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왜 이런 식의 전개가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설정과 세계관, 자세한 분파 별 특징이 담긴 룰북처럼 코덱스에는 게임 속 고유 명사나 인물의 설명이 너무나도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걸 보고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분명 등장인물 간의 관계, 호칭, 대하는 태도, 갈등 등 많은 부분을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고, 게임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쓰이지 않는 내용들까지 담고 있죠.

보통 상상의 영역이 더해져 이야기가 전개되는 TRPG는 룰북에 대한 상세한 인지가 있어야 그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틀에 맞춰 정해진대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 아니다보니 배경 지식을 정확히, 풍부히 알아야 다양한 상황에 맞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거죠.

▲ 빼곡한 텍스트와 깨알 같은 스크롤 바, 이걸 봐야 이해가 좀 편합니다

반면 비디오게임. 특히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은 분기가 다양하게 존재한들 게임 진행은 어디까지나 개발자가 정해둔 흐름으로 흘러가죠. 그래서 설명이 가득한 해설보다는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게임플레이 자체에 집중하게 되고요. 그래서 스완송처럼 관계나 이야기는 설정집으로 대신하고 그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형식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 특성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같은 전개가 오히려 낫다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세계에 몰입하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주역 인물들이 게임에서 처음 등장하니 결국 설정집을 다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건 똑같죠.

여기에 아무리 세계적으로 어반 판타지 TRPG에 그 이름을 크게 남겼다고 한들 이쪽 분야는 오늘날에도 국내 게임 팬들에게 주류 문화로 소비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뱀파이어라는 소재, 대화 기반 RPG라는 콘셉트만 보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죠. 결국 플레이어가 많은 부분 유추를 통해 인지해야 하고요.

분명 선택에 따른 다양한 분기, 매력적인 세계관의 적절한 활용이 있긴 하지만, 이 내러티브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게 스완송의 결점으로 남아있습니다.

▲ 진짜 나만 모르는 거였나?



다분한 다회차 요소와 1회차도 버거운 시스템

대화 외의 추리와 탐색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의 만듦새도 아쉽습니다. 퍼즐의 형태는 나름 다양하지만,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 꽤 답답하죠.

보통 비슷한 장르의 게임은 명확한 목표 아래 세부적인 목표를 주고 이를 달성했는지 확인하도록 합니다. 때로는 대략적인 미니맵의 마커로 진행 방향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스완송 역시 게임의 목표가 주어지기는 합니다만, 대개는 스토리 상의 목표로 해결 방법이 모호한 것들입니다. 머릿속으로 지역을 직접 떠올리고 두 발로 뛰며 해결법을 찾아야 하죠.

▲ 와! 놀라운 오프닝(진짜로)

지금 파트 클리어까지 얼마나 진행했는지도 마땅히 표시되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인 것이 해당 지역에서 플레이어가 클리어를 위해 필요한 힌트, 정보를 모두 얻었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 얻었겠지 싶어 지나간 장소에 다시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 초점을 이리저리 옮기며 놓친 아이템이 있나 없나 다시 벽을 훑으며 다녀야 하죠.

이것 역시 의도는 분명합니다. 게임에서는 대화나 잠긴 열쇠를 따는 등의 다양한 추리, 탐색 과정에 높은 필요 능력치를 요구합니다. 즉, 1회차에서는 일반적인 플레이로는 획득할 수 없는 정보, 이길 수 없는 대화 상대라는 뜻이죠. 반대로 말하면 다회차에서는 확보한 능력으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전에 보지 못한 이야기, 새로운 엔딩을 보도록 한 거죠. 실제로 그 부분에서는 훌륭한 모습을 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고요.

파트 종료 후 나오는 점수표도 플레이어가 어떠한 선택을 더 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고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힌트를 주며 다회차 유도하는 플레이 요소를 숨기지 않고 있죠. 하지만 초회차에 익힐 수 있는 능력치는 한계가 있고 필요한 능력치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 탐험도,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되어 경험치 얻기도 버겁습니다.

▲ 자물쇠 따기 찍으면 꼭 해킹 안 찍어서 아쉬운 파트더라

몰입감 떨어트리는 그래픽과 고유명사, 설명 없는 인물에 쉽게 빠져들기 어려운 내러티브 역시 다회차 플레이의 의지를 꺾습니다. 여기에 뭘 해야 클리어 가능한지조차 제대로 설명해주질 않으니 여러 번 플레이할 의지가 쉽게 생기지 않는 게임이 됐죠.

보통 분기가 다양하고, 여러 탐험 요소를 제공하는 게임들은 메인 줄기의 목표는 명확히 잡아주고 나머지는 추가적인 요소로 만들어둡니다. 뭘 해야 할지는 정확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제시되지 않은 것들이 추가적인 요소라는 걸 알 수 있도록요.

스완송은 내가 얻은 정보, 아이템이 진행에 꼭 필요한 건지 아닌지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또 버그 탓인지 종종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고요. 이때는 해당 파트를 재시작을 해야 하는데 따로 중간 저장 등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이미 진행한 부분이라도 파트를 클리어한 부분이 아니라면 텍스트 넘기기도 안 돼 지루한 이야기를 다시 들어야해 게임 진행의 의욕을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대화를 통한 대결이나 RPG 요소를 통한 탐험 파트의 구분은 개발사 빅 배드 울프의 전작 '더 카운슬'에서 이미 구현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그래픽이나 모델링 부분에서는 혹평받았지만, 시스템 자체만큼은 호평이 많았죠.

그 위에 WoD 세계관을 덧입힌 만큼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과 게임 플레이. 그리고 크게 발전 없는, 어떤 부분에서는 더 부족해 보이는 그래픽은 그런 요소들을 가려버리고 말았고요.

여러 결점을 견딘다면 게임이 강조하는 다양한 전개, 엔딩 등 빠져들 수 있을 만한 이야기는 나름 튼튼합니다. 그래서 그 아쉬움은 더 크고요. 이번의 아쉬움이 매력적인 WoD의 텍스트 기반 게임을 한국어로 만날 마지막 기회로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