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월드 클래스'로 불리는 게 아닌가 보다. 세계 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던 LPL 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서머 스플릿 초반에 부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롤드컵이 다가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중 탑 라이너들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이들의 기량 변화가 팀 스타일의 완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LPL 팀과 탑 라이너가 추구하는 방향이 엇나간 듯한 인상을 줬다면, 어느덧 서로 조율해가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 자신만의 색이 강한 LPL 최고의 탑 라이너들이 성적을 위해 팀이 스타일에 녹아들고 있다. 반대로, 탑 라이너 특유의 존재감을 팀적으로 잘 살려내는 경우도 있었다.

빅매치로 가득했던 지난 18일 경기는 이런 양상을 잘 보여준다. 8위 쑤닝이 JDG를 4위로 끌어내리고, 12위인 RNG마저 LPL 단독 1위 EDG를 꺾는 결과가 나왔다. 이번 LPL 서머 순위만 보면 대이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 세계 대회에서 RNG-쑤닝 등이 거둔 성적을 고려해보면 이상한 결과는 아니다. 이런 LPL 강팀 간 대결의 승부에 탑 라이너들의 변화가 크게 다가왔다.






■ FPX '너구리' 장하권

대표 경력 : 2020 롤드컵 우승

2021 LPL 서머 개인 KDA : 2.8

현 팀 성적 : 8승 3패 2위

현 팀 중심 : 미드-정글 '도인비-티안'

■ '너구리' 최근 7월 전적 <챔피언(승/패) - KDA vs 상대>

제이스(승) - 4/2/6 vs TES -17일
그웬(승) - 5/2/5 vs TES
제이스(승) - 8/1/4 vs RA - 12일
제이스(패) - 2/5/3 vs RA
레넥톤(승) - 5/1/7 vs RA
비에고(패) - 3/6/4 vs BLG - 7일
세트(승) - 3/1/5 vs BLG
세트(패) - 2/9/1 vs BLG

먼저, 2020 롤드컵 우승자인 '너구리' 장하권의 최근 경기를 살펴보겠다. 현 2위로 준수한 성적을 내는 '너구리'도 7월 초만 하더라도 아쉬운 플레이로 강판당한 경험이 있다. 비리비리 게이밍(BLG)전에서 1:2로 패배하고, 다음 경기 주전 로스터에서 제외되면서 위기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BLG전에서 패배할 때만 하더라도 '너구리'는 크게 방황했다. 라인전 단계에서 말린 상황을 교전과 킬로 극복해 보려는 플레이가 '너구리'의 발목을 잡았다. 상대 역시 이런 '너구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집중 견제에 성공하면서 탑 라인에 큰 구멍을 낸 경기였다.

다행히 다시 돌아온 '너구리'는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무리하게 라인전에서 1:1 승부를 보기보단 팀원들의 활약할 수 있도록 힘을 뺐다. 이는 최근 탑 e스포츠와 대결에서 잘 드러났다. 2019 롤드컵 우승 당시 FPX의 승리 공식이었던 미드-정글이 영향력을 봇 교전부터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너구리'가 무리하지 않아도 승리하는 경기가 나왔다.

딜러 챔피언을 잡은 '너구리'는 그동안 초반부터 스노우 볼을 굴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는 듯한 경기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 '티안-도인비'가 살아나면서 영향력을 다른 라인에도 행사하면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치 작년 담원에서 '너구리'가 시즌 후반부터 오른을 꺼내며 팀 색깔에 맞췄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을 팀에 맞출 만한 여유를 찾아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너구리'의 한타와 딜 능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너구리'는 TES전 1세트에서 그웬을 선택해 라인전 단계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상대 다이브를 받아내면서 조용히 있던 '너구리'는 한타 활약으로 MVP까지 선정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과 FPX라는 팀 색깔의 합의점을 찾은 듯한 경기로 7월 초반 부진을 털어냈다.






■ 쑤닝 '빈'

대표 경력 : 2020 롤드컵 준우승

2021 LPL 서머 개인 KDA : 3.1

현 팀 성적 : 6승 5패 8위

현 팀 중심 : 탑-정글 '빈-소프엠'

■ '빈' 최근 7월 전적 <챔피언(승/패) - KDA vs 상대>

카밀(승) - 6/4/11 vs JDG -18일
카밀(승) - 7/1/2 vs JDG
카밀(패) - 6/4/5 vs RW - 14일
피오라(승) - 2/2/3 vs RW
피오라(패) - 1/3/2 vs RW
카밀(승) - 1/2/7 vs TES - 11일
아칼리(승) - 6/0/4 vs TES

작년 롤드컵부터 탑 라인의 '칼챔' 로망을 실현하는 선수 '빈'이다. 최근 더 확고하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팀과 함께 플레이의 완성도를 높였다. 많은 탑 라이너들이 여전히 레넥톤-비에고와 같은 뭉툭한 '둔기'와 같은 챔피언을 기용할 때, '빈'은 여전히 칼끝으로 승부를 보는 검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빈'의 예리한 승부수는 '소프엠'과 함께 완성했다. 작년 롤드컵 쑤닝의 경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소프엠' 역시 기상천외한 교전과 다이브 플레이를 할 줄 아는 공격수다. 서머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빈-소프엠'의 공격이 예리하게 들어가지 않았는데, 최근 경기에서 날카로움이 배가 됐다.


JDG와 대결 장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상대 역시 협곡의 전령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기 위해 올라오고, '카나비' 서진혁이 전령 사냥을 거의 마친 상황이다. 하지만 '카나비'가 사냥을 마치기 직전에 '빈-소프엠'이 파고들어 JDG의 계획을 무너뜨렸다. JDG의 헛점이 존재하는 찰나의 타이밍을 찌르고 들어간 것이다. 순간적으로 암살과 어그로 핑퐁이 가능한 카밀이었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상대 JDG 역시 '카나비-줌'이라는 정글-탑이 에이스 역할을 맡는 팀이지만, '빈-소프엠' 중심의 예리한 공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물론, 쑤닝과 '빈' 역시 이런 플레이를 완성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무리한 다이브를 시도하다가 잘리기도 했고, 잘 풀어간 RW전 3세트를 한 번의 실책과 상대의 백도어로 허무하게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로 시즌 내내 칼을 벼려온 만큼, 쑤닝의 한 합은 올해도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 2주 연속 LPL 주간 MVP '샤오후'

■ RNG '샤오후'

대표 경력 : 2021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우승

2021 LPL 서머 개인 KDA : 3

현 팀 성적 : 5승 5패 12위

현 팀 중심 : 탑-정글 '샤오후-웨이'

■ '샤오후' 최근 7월 전적 <챔피언(승/패) - KDA vs 상대>

문도 박사(승) - 2/0/7 vs EDG - 18일
제이스(승) - 3/1/6 vs EDG
그웬(승) - 5/0/3 vs V5 - 15일
그웬(승) - 1/1/5 vs V5
비에고(승) - 7/0/6 vs IG - 10일
비에고(승) - 7/4/4 vs IG
비에고(승) - 4/4/8 vs LGD - 7일
비에고(승) - 8/2/6 vs LGD
그웬(패) - 5/6/3 vs 쑤닝 - 4일
리 신(패) - 1/3/5 vs 쑤닝

7월 전후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준 탑 라이너는 '샤오후'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리 신-나르-그라가스와 같은 챔피언으로 맡은 이니시에이팅 중심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웬-비에고와 같은 후진입 딜러 챔피언으로 먼저 교전을 걸다가 넘어졌고, 과도한 스플릿 푸쉬로 상대에게 킬을 헌납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1승 5패의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새로운 챔피언과 메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7월 7일 LGD전부터 '샤오후'는 이전 쑤닝전과 확연히 다른 경기력으로 등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이 강한 타이밍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경기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때 교전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지 정확히 맥을 짚고 있었다. 한타 때 합류 타이밍과 어그로 핑퐁 능력 면에서 확실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다. 성장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상대 공격을 받아치는 역할을 맡더니 성장을 마치고 후진입한 딜러의 능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가장 최근 열린 EDG전에서 RNG는 특유의 '줄건 줘' 운영을 시전했다. 안 좋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RNG는 승리를 위해 드래곤은 과감히 포기하는 선택을 내렸다. 대신, 자신들이 충분히 성장을 마쳤을 때부터 180도 달라진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심을 사이드를 미는 '샤오후'의 제이스가 잡아주면서 불리한 경기를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

▲ 후진입하기 시작한 '샤오후' 그웬(출처 : LPL ENG)

마지막 상대인 EDG는 딜러진의 무력으로 LPL 단독 1위를 달리는 팀이다. 그런데도 RNG표 운영에 딜러진 힘이 빠지곤 했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RNG전만 되면 탑 '플란드레'와 미드 '스카웃' 이예찬이 억지로 교전을 열다가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RNG가 영리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타이밍으로 갈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직하게 버티다가 싸우는 전략은 약점이 드러나면서 최근 잘 통하지 않는 전략처럼 평가받는다. 하지만 RNG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벌 만한 플레이를 조금씩 섞을 줄 아는 팀이다. 탑 라인만 미는 것 같은 '샤오후'의 제이스가 필요할 때 정글러 '웨이'에게 붙어 미드 로밍에 성공하기도 한다.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운영에 '샤오후'가 감초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2021 MSI를 우승 후 '샤오후'는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LPL 탑 라이너들과 대결"이라고 말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현시점에서 LPL에 세계적인 커리어를 지닌 탑 라이너들이 모인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스타일도 다양해 LPL에서 탑 라이너로 살아남는 것부터 힘든 수련과 같다.

그런 LPL 탑 라이너들이 이번 서머도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탑 라이너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크게 엇갈리는 경기도 나오고 있다. 탑에 딜러가 주로 서는 메타가 찾아온 만큼 한끗 승부가 이어지는 상황. 앞으로 롤드컵으로 향하는 LCK 팀 입장이라면, LPL 탑 라이너들의 행방을 경계해야 할 듯하다.

이미지 출처 : 라이엇 게임즈, LPL 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