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워라.

 부하된 자로서 상사에게, 하물며 한낱 인형이 인간에게 향해도 괜찮은 감정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스프링필드가 자신의 지휘관에게 품은 감정은 그런 것이었다.

 대충 세상이 망하고 난 뒤, 그따위 설명이 꼭 들어맞는 세상은 꽤나 잔혹한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도 그녀의 지휘관은 퍽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시궁창을 전전하던 소년은 테러단체에게 납치 당했다. 뒷배 없는 천애고아는 그렇게 소년병이라는 지칭조차도 아쉬운 총알받이로 전장을 전전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장 속 그를 부려먹던 테러리스트가 죽어가는 와중에 PMC─그리폰&크루거에게 구출되었다. 하지만 그 PMC마저 상황이 그야말로 개판으로 돌아가니, 보호하고 있던 열댓 먹은 소년마저 말단 지휘관에 앉혀버린 것이다.

 더욱이 가여운 것은, 그 소년이 군말하나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 직책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라. 스프링필드는 익숙한 듯 진하게 내린 커피를 주문하는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가 마시는 시럽도 타지 않은 씁쓸한 커피가 사춘기의 치기라면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을터지만, 맛있냐는 다른 인형의 질문에 제 나름 건네는 농담이 몇 년 전에 마시던 진흙탕물보다 낫다는 것이라면, 과연 그녀조차도 얼굴에 경직된 웃음을 띄우는 것이 한계였다.

 커피를 받아든 채 집무실로 돌아가는 지휘관의 뒷모습을 그녀는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다. 전쟁통에 한낱 총알받이를 챙겨주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한창 자랄 시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해 발돋움해도 그녀의 가슴께에 올까말까한, 지휘관의 그 왜소한 뒷모습은 그리폰의 제복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휘관이 쓰디 쓴 커피를 주문하는 날이면, 그 여린 몸뚱이를 이끌고 밤늦게까지 집무를 보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날은, 그녀가 카페를 정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따뜻한 음료를 더 만들어 들고 가는 날이기도 했다. 

 방금 만든 밀크티와 머핀이 식을새라 지휘관의 집무실을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바빴다. 어둑어둑한 복도 속에서 집무실은 아직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지휘관 님, 잠깐 쉬세요."

 문 여는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던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정하여 사람 여럿 홀릴 수도 있을 그 얼굴에 떠있는 표정은, 아쉽게도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잘 먹을게요."

 짧게 그리 대답한 그가 스프링필드에게서 간식거리를 받아들었다. 제법 큰 머그컵을 양손에 들고 밀크티를 홀짝거리는 모습은, 그나마 다행히도, 그 외모에 맞는 귀여움을 갖추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만 뺀다면.

 침묵이 감돌았다. 과거 때문일까, 지휘관은 말이 없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벽이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에 감정이 떠오르는 것조차 보기 힘들었다. 가끔 웃으면 좋을텐데. 나잇대에 걸맞는 건방진 웃음이라도 꽤나, 아니 상당히 어울릴 것이 분명했다.

 머핀을 깨작이던 지휘관의 뺨에 빵가루가 붙었다. 손이 가지 않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늦은 밤이라 피곤한걸까.

 "빵가루가 묻었어요. 떼어드릴게요."

 평소라면 거절했을테지만, 왠일인지 그는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왠지 기뻤다. 손이 가지 않아 오히려 걱정스럽던 아이가 응석을 부린다면 이런 느낌일까. 인형인 그녀에게 아이가 있던 경험은 없지만.

 "스프링필드 씨랑 있다보면,"

 얌전히 그녀에게 뺨을 맡기던 그가 불쑥 그리 말했다. 홀짝, 그가 다시 밀크티 한 모금을 마셨다. 그녀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머니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요."

 잠깐 머뭇거리던 그가 그리 툭 내뱉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 울컥 튀어나왔다. 

 충동적으로 끌어안은 지휘관은 그녀의 예상대로 그녀의 가슴께까지 밖에 오지 못했다. 왜소한 그 어깨에 짊어진 과거는 얼마나 무거웠으련지. 지휘관은 가만히 그녀의 품 안에 안겨있었다. 인형이래도, 그 품은 꽤나 따스했다. 그가 그녀의 옷깃을 살며시 잡았다.

 잠시 후, 품 안에서 떨어진 지휘관은 다시 머그컵을 홀짝였다. 잠깐 보이는 그 뺨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과연, 이게 모성애일까요. 그녀가 빙긋 웃음지었다.

 "엄마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그건 싫네요."

 그가 픽 웃었다. 처음보는 웃음이었다. 그녀의 생각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 꽤나 홀릴 모습이었다. 적어도 그녀, 인형인 그녀가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은 접어두더라도, 는 그의 미소에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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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저스트 킬드 어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