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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리링

 “응…….”
 “고맙소, 소나. 그나마 이렇게라도 재워서 다행이군.”
 -별말씀을요.

 소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에트왈 위에서 부드럽게 춤을 추던 손을 거둬들였다. 때로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때로는 따뜻한 욕조에 푹 몸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베사리아를 어루만지던 그녀의 연주는 막 끝난 참이었다. 그녀가 에트왈을 조심스럽게 정리하는 사이 잭스는 베사리아를 소파에 눕히고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베개에 이불까지 덮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말썽쟁이 딸을 재우는 아버지와도 같아서, 소나는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지우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잭스 님.
 “끙, 놀리지 마시오.”

 가볍게 놀리는 말을 던지고선 소나는 베사리아의 깊이 잠든 얼굴을 바라봤다. 단잠에 빠진 그녀의 얼굴은 세상 모든 근심을 잊은 것처럼 편안했다.

 -너무 빠르게 주무셔서 놀랐어요……. 정말 피곤하셨던 모양이네요.
 “말했잖소, 이틀 동안 안 잤을 거라고.”
 -네에?! 그게 진짜였어요? 전 과장해서 말씀하신 줄로만 알았어요.
 “차라리 과장이었음 내가 그리 대놓고 면박을 주지도 않았겠지.” 잭스는 툴툴거리면서도 베사리아가 등이 배기지 않도록 이불을 정리해줬다. “주제에 책임감만 강해서 몸을 축내는 성격이라오. 이러다 앓아누우면 내 단단히 한 마디 해주겠다고 벼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기가 막히게 그런 불상사는 요리저리 잘도 피한다 말이지. 그래봤자 몸을 축낸다는 건 변함없지만.”
 -그거 사람만 바꾸면 그대로 다 잭스 님 이야기인 건 모르시죠?
 “…….”

 소나의 샐쭉한 핀잔에 그저 침묵으로밖에 답할 길이 없는 잭스였다. 이전 같았으면 내가 뭘 몸을 축내냐고 대들었겠지만 그러다가 소나에 베사리아까지 험한 꼴 당하게 한 전적이 있는지라……. 이럴 땐 그저 입을 꾹 다무는 게 잭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잭스는 베사리아의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가만히 등을 돌리더니 소나에게 그만 가자고 손짓을 했다. 최대한 조용하게 집무실을 나서는 둘의 등 뒤로는 베사리아의 고른 숨소리만 그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잭스…….”

 문이 닫히기 직전 들려온 그 잠꼬대가, 꼭 옆에 있어달라는 어린애의 칭얼거림처럼 쓸쓸하게 느껴졌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소나는 잭스를 살짝 쳐다봤지만 그는 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툴툴댈 뿐이었다.

 “꿈속에서까지 날 못 괴롭혀서 안달이라니, 나 참. 어찌 보면 저것도 근성이오, 근성.”
 -…그런 게 아니에요.

 역시나라고 할까 잭스의 태도는 예상하기 쉬웠지만, 소나는 마냥 한숨만 쉬면서 넘어갈 수도 없었다. 확실히 그와 베사리아 사이의 문제는 오직 자신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소나가 사이에 낄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둘의 태도가, 이런 식으로 그저 넘어가려는 둘의 태도가 어떻게 보면 문제를 질질 끌고 왔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소나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잭스의 소매를 가만히 붙잡았다.

 -잭스 님, 조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소나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잭스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베사리아의 상태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얘기할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자기가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도 말하면서 말이다.
 “……?”

 물론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꿈에도 모르는 잭스는 ‘또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