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적은 ‘사리’(私利, self-interest)와‘ 사리의 추구'라는 말의 의미를 곡해했다. 그는 경제생활을 할 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했지 부정적 의미에서의 탐욕과 이기적 행동까지 정당화한 적은 없다. 온갖 수단을 다 써가며 치부에 바쁜 불쌍한 인간들이 애덤 스미스를 그 방패막이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많은 스미스 추종자들이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어리석고 부도덕한 것으로 몰고 간다. 원인은 스미스의 주장에 대한 오해와 의도적 오역에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적 효율은 시장이 완전 경쟁적인 경우에만 유효하다. 독과점 시장은 경쟁이 제한적이라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소위‘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것이다‘. 공해’(公害) 같은 외 부비경제가 존재하거나 시장 정보가 불완전할 경우 시장 실패가 발생하기도 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정부의 세 가지 책무를 말했다. 국방, 법질서 유지와 함께 공공기관과 공공사업을 설립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사업은 공원과 교량 건설, 상하수도 사업 등이 포함된다.

스미스 이후 그를 따르면서도 그 이론을 변용한 19C고전파 경제학자들도 중앙은행 국유화, 아동 의무 교육, 아동 노동 금지, 작업장과 신상품에 대한 안전기준 설정 등이 정부책임임을 강조했다.

작금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 규제 철폐 주장의 근거를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방임주의에서 찾으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을 금융 시장에 적용하려 한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정부는 금융사기와 투기적 공황으로부터 일반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으니 지하에 있는 애덤 스미스가 통곡할 일이다. 스미스가 관찰한 시장은 자율적으로 작동하면서 기술혁신의 촉진, 인간 욕구의 충족, 낭비의 최소화, 탐욕스러운 기업의 규제, 그리고 민중의 부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다. 이 시장기구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온 <국부론> 의 그 유명한 언명이“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이나 양조장,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 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미스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 하는 성향 이외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 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과 부당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능력을 본성적으로 타고 났다고 믿었다. 그는 이들 능력이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이러한 공감과 분노의 능력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사람들의 복지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마련하기를 원했다.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거시적 틀을 각종 사회적 제도장치로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애덤 스미스가 18C 자유방임주의의 큰 틀에서 사유 재산권의 강화, 수입상품에 대한 관세 축소, 봉건귀족의 특권 철폐, 노동 길드 해체, 국가가 인정한 생산과 유통에서의 독점체제 해체, 금융업자에 대한 적대 시정 등을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기업가들을 불신했다. 그들이 지나치게 탐욕스럽다는게 이유였다. 그럼 스미스가 믿은 것은 누구일까?

바로 소비자였다. 애덤 스미스의 추종자이면서 자신 또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두가 된 경제학자 미제스는 이를‘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말로 표현 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를 계승하겠다고 나선‘ 신자유주의학파’ 혹은‘ 시카고 학파’라 불리는 이들이 <국부론>이‘ 시장 실패’와‘ 국가 개입의 필요성’‘ 사회 보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히 얘기했음은 외면한다. 시장의 효율성, 자율성만 강조하고 국가는 경제 개입에서 손을 떼라고 반복해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자본이 마음 놓고 탐욕을 부리는 시대가 온다. 자본의 탐욕은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80년대 초반부터 제3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경제 위기에 내몰린다. 이후 이들 나라에 IMF는 구제금융을 하고 일련의 경제개혁조치들을 권고한다. 미국이 자본주의 체제 의‘ 성공 모델’ 국가로 지정 육성한 한국도 결국 98년 외환위기를 겪는다. 신자유주의 사조와 그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제도 개편이 전세계로 확산됐고 우리나라도 98년 외환위기 결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제도를 채택해야 했다.

공산권은 완전히 몰락했고 자본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가, 아니‘ 야수 자본주의’가 다시 지배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가 작 금의 상황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아담 스미스는 중상주의에 기반한 과도한 국가 개입을 비판했다.

탐욕으로 물 든 지배계층을 인정한 채로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개인이 공공사업을 장악했을때 발생할 수 있는 사적 요금의 비합리성을 우려했다. 그가 말하는 시장의 자유란 이미 시장을 장악한 채로 온갖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자산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소자본들이 보다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작은 소자본들이 활발하게 활성화되면 결국에는 모든 국민들에게도 이득이 돌아가리라는 믿음으로 시장의 자유를 말한 것이다.

경제활동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자기 이익에 따라, 혹은 이를 위해 자유롭게 행동하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규제철폐의 논리로 쓰이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아젠다다.

스미스는 개인적 성격의 자기애가 사회적 성격의 집단 이익이 되려면 사회의 여러 제도가 분권적이고 경쟁적이며 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처럼 경제가 독과점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하기 힘들다. 출간된 지 238년이 된 <국부론>은 구시대의 이론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지녔던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종길 기자.

출처는 어디 신문지인데....PDF자료임

2014년6월4일 수요일

그린경제라는 신문지에 김종길이라는 기자분이 적으신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