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위는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최대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9일부터 12일 10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과 지방 주요 도시에서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대통령 최측근이자 "친구"로 통하는 최순실을 포함한 모든 측근들의 범죄 혐의들에 대한 즉각적인 수사를 요구했다.
이번 시위 참가자들은 지난 80년대 민주항쟁 시기를 대표했었던 노래들을 불렀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권위주의에 맞섰던 자랑스러운 투쟁들을 기억해 내었고, 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던 과거 속의 "큰 변화의 시기"로 돌아갔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번 시위는 국가적으로 큰 갈등과 폭력이 수반돼곤 했던 과거의 대규모 시위들과는 달리 "촛불 혁명"이란 표현 그대로 별다른 인명피해도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의 주요 정치적 변화와 민주적 발전에는 국민들의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60년 4월 혁명은 수백 명의 희생을 초래했으며, 이 중 대다수는 대학생들이었다.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으로 시위에 나선 이들 중에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고 사망한 사건은 국민들의 분노를 크게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이승만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1987년 고문 치사사건의 희생자인 서울대학교 학생 고 박종철군과 대규모 시위 중 사망한 연세대학생 고 이한열군은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대표적인«순교자»가 되었다. 이들이 흘린 거룩한 피는 당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켰으며, 시위대를 정부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게끔 이끌었다.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대통령임기 5년이 국민입장에선 참 긴 시간이다. 두번이면 세대가 바뀌어버리니까. 아직 한참 어리고 이른 나이지만
다음세대를위한 투표란 생각도 해봐야하는것 아닐까 하고말이죠.
그래서 적폐청산or적폐세력이 싫어하는것.
최우선의 기준으로두게되었습니다.
왜!
우리의 선배님들중엔 얼굴도모르는 후세대를위해 나라를위해 희생하신분들이 계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