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성성에 대한 조롱과 혐오는 페미니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나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여기며 살았던 시간이 있다.
당시엔 메갈도 워마드도 없었던 시절인데 그때도 당연히 남성혐오성 발언들은 많았다.
다만 그게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탈선인지,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그걸 부추기고 유도하고 있는지
좀 더 알아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공부를 해본 결과 결론은 제목대로.
페미니즘 자체가 남성성과, 남성 위주 문화인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출을 바라는 사상이다.
페미니즘계의 남성혐오 성향은 단순히 여성을 위한 운동을 하다보니 나오는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의 폭주 수준이 아니라, 페미니즘 정신 중심에 있다.
이 시점부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걸 관뒀다.

본인이 남성 여성 모두가, 성별때문에 지워진 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살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면 안된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일단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아인도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뭐 '제대로 된 성평등은 이래야 한다' 는 의미로 말한거겠지만


2. 당신이 남자라면 페미니스트에게 절대로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을수 없다.

페미니즘은 일종의 정체성 정치다.
공산주의 혁명에서 볼수 있었던 정치 구조와 굉장히 흡사하고
한마디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당신이 누군지,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공부하고 빈틈없는 논리를 펼치더라도 당신이 남자라면,
여성으로서의 삶을 겪어 본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이 당신의 논리보다 훨씬 정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당신이 결정하지도 않은 정체성, 즉 성적 지향이나 성별 등에 의해서 논리의 당위성이 정해지는것이고
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집단 내에서 당신은 그냥 2등 시민일 뿐이다.
반대로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어도 당신의 출신 성분이 그들 입맛에 맞는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존중받고 주목받을수 있다.

페미니즘계가 LGBT나 일부 좌파 커뮤니티와 연대하는 이유도
정체성 정치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고 비슷한 논리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벤같은 곳에서는 상종못할 쓰레기 취급 받지만
반대로 생각보다 많은 커뮤니티나 일반인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가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던 정치 집단들과 비슷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흐름을 이어받아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의 입맛에 맞기 떄문이다.
그래서 일개 병신 집단 취급받는 일베와는 사회적 파급력과 지지도의 차이가 있다.


3. 당신이 메갈이라고 부르는 페미니즘은 가장 정통성있고 전형적인 페미니즘이다.

가끔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말한다.
페미니즘이 변질됐고, 외국 페미니즘은 안그런데 한국만 어떻고, 진짜 페미니즘은 어떻고
페미니즘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봤으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 단체에서 메갈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사람들을 배척한 적이 있는가?
분명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들이 있다.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연대 여부같은 부분 등

그런데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페미니즘은 정체성 정치 집단이란 점이다.
세부적인 면에서 의견이 갈릴지언정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면
내부적으로 잡음은 있더라도 일단 정체성 앞에 연대하는게 이들 집단이다.

백명의 페미니스트에겐 백개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서로 말하는게 다를지언정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확실히 연대하는게 이들이고
어떤게 진짜 페미니즘이고 어떤게 가짜 페미니즘이라고 나누는거 자체가 의미가 없다.

거기다 메갈이라고 불리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현재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주류 페미니즘이다.
처음에는 그냥 남자 싫어하고 자기가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험에 화난 어중이떠중이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정보 교류와 '공부'를 통해서 일반적인 페미니즘이 말하는 논리와 정보를 충분히 습득했다.

지금으로서는 페미니스트가 그들이고 그들이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개인에게 맡기겠지만 적어도 페미와 메갈을 따로 생각해야 한다느니
정통적인 페미니즘은 안이랬는데 변질됐다느니 하는 꼬리자르기는 하지 말자는 것

페미니스트끼리는 서로 비판같은걸 하지 않는다.
연대 자체가 페미니즘의 키워드고 그 사상의 핵심이기 때문에
당신이 페미니즘의 범위를 넓히면서 원래 의미를 흐리면
당신이 메갈이라 부르는 집단도 같이 힘을 얻을수밖에 없다.


4. 2세대 페미니즘 이후부터는 개인의 자유보다 페미니즘적 가치를 높이 둔다.

'페미 극혐, 페미는 정신병'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페미니즘의 논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건강한 비판을 하려면 이들의 논리 구조를 알아둘 필요는 있다.

1세대 페미니즘은 제도적인, 법적인 개선을 통한 여권 신장을 목표로 했다.
여성은 투표권이 없고, 여러가지 제도적인 제약이 많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았고,
그 결과 현재 법적으로는 적어도 기회의 평등을 이루게 됐다. 오히려 역차별이 존재한다는 시각도 많지만

하지만 페미니즘계는 우리 의식 속에 뿌리깊게 박힌 성차별적인 생각들 때문에
아직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여겼고
2세대 페미니즘부터는 문화적 간섭을 통한 여권 신장을 모토로 내세웠다.

예를 들어 남자인 내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마른 여자를 좋아한다' 같은 주관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분명 나의 자유이지만 페미니즘계의 생각은 이게 나의 100% 자유 의지가 아니라
그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지내온 경험의 영향을 받은 문화 인식이라고 여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건 나의 자유겠지만 이런 개인적인 선호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사회적으로는 예쁜 여자, 마른 여자 등이 선호받는 '문화'가 형성되다는게 페미니즘계의 생각이고
이 문화에 집단적으로 저항해서 바꿔놓겠다는게 2세대 이후 페미니즘의 목표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흉자(흉내자지) 소리를 들었다는 여성 인벤러 글이 화제글에 있었는데
이들이 글쓴이의 '자신을 꾸미고 치장할 자유' 보다 페미니즘의 탈코르셋 가치관을 우선으로 친 것을 보면
어떤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ps) 글을 쓰면서 가능하면 페미니즘의 조직 구조와 논리 구조를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이것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판단은 빼도록 노력했다.
페미니스트 입김이 아주 강한 게임으로 방송을 하는 사람이고
이미 그사람들 눈밖에 난지 오래긴 하지만 굳이 자극적인 행동으로 불씨를 지피고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글 중간중간에 페미니즘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지 나쁘게 생각하는지는 들어갔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이걸 보고 내가 페미니즘을 옹호하거나 여론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라 여겨지든 불상사는 없길 바라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라는 마음이다.
민주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자정 수단은 시민들의 앎이다.

페미니즘이 옳은 방향으로 바뀌어가든, 전체 시민들의 여론이 되든, 아니면 완전히 매장당하든
어느쪽으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어느 과정으로 가든 선행되어야 할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이기 때문에 장문의 글을 써본다.


1세대 페미니즘의 진실편 : http://realnews.co.kr/archives/4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