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경전이 성경(영어로는 The Bible)이라는 점은 아마 다들 알고계실 겁니다.

이 성경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쓰여진 수십 권의 책들을 하나로 엮은 경전입니다.

흔히 교회에서 성경은 신의 의지에 따라 쓰여졌으므로 누락이나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만,

사실 그 구성은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죠. 개신교가 66권으로 가장 적고, 카톨릭의 경우 73권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기준으로 잡는 원본이 다르기 때문인데, 개신교의 경우 유대인의 언어(히브리어)

로 쓰여진 판본을 기준으로 잡은 반면 카톨릭은 그리스어 판본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허나 어차피 차이가 나는 부분은 거의가 구약에 해당하는데다가 나머지 66권과 내용상 딱히 충돌하는 것도 아니기에

개신교측에서도 나머지 7권을 크게 배척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 묘사한 4권의 '복음서'(Gospels of Matthew, Mark, Luke, John)에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 마을 근교에서 굉장히 오래된 기독교 고문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3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들은 로마의 국교가 되기 전의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사용하던 것들인데,

이 중에는 현대의 성경은 물론 외경에도 포함되어있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문서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무려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복음서'가 두 권 포함되어있었지요.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었으면 성경에 포함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경전을 보완한다는 것 자체가 경전의 완전무결성을 무너뜨리는 행위이기도 하거니와

이 두 권의 복음서(Thomas와 Philip)는 기존 4대 복음서와 상당히 중요한 부분에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도마의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어록을 정리해놓은 책인데, 이 책의 특징은 개인 수양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본래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그 특유의 하향식 구원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세보다 나은 내세'를 추구하는 것은 웬만한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지만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것이 인간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것과는 달리

기독교의 구원은 철저하게 신을 통해 이루어지며 인간의 역할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원죄가 있는 인간은 절대 스스로 구원에 도달할 수 없으며 오직 신에 대한 믿음의 여부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헌데 도마복음은 각 개인의 내적 수양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왕국은 너의 안에 있으며, 동시에 밖에 있다.'

'네 안에 있는 것을 이끌어내면 그것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를 파괴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기독교보다는 오히려 불교나 도교의 가르침과 흡사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믿음보다 통찰을 강조하여 '오직 믿음만이 구원의 길'임을 강조하는 요한복음과 직접적으로 충돌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복음서가 요한복음임을 감안하면 이는 굉장히 의미가 크지요.

도마복음의 그리스도는 신이라기보다는 통찰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일종의 계시와 같은 느낌이 강하니까요.


한편 '필립의 복음서'는 '결혼'의 개념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진실과 지식, 신과 인간. 이러한 관계들을

모두 결혼과도 같은 일종의 융합으로 보는, 제법 독창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지요.

이 복음서가 문제시되는 점은 어떤 의미에선 위의 도마복음에 비해 지엽적인데,

바로 그리스도의 추종자 중 하나인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동반자(koinonos)'라고 표현한 부분입니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동반자 막달라 마리아. 이들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하였다'

기존의 4대 복음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제외하면 그리스도의 가족관계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데에 반해

필립의 복음서에는 동반자와 여동생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10년 전에 대유행했던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에 언급되기도 했던 부분이지요.


뭐 이렇게 설명했지만 사실 위의 두 복음서가 기존의 복음서에 포함되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제법 차이가 있는데다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부분들 역시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충돌하는 내용들이 시사하는 중요한 가능성이 하나 있습니다.

초기 교회, 초기 기독교의 이론과 교리는 하나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이지요.


지금의 기독교는, 좋게 말하자면 올곧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당히 경직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일신 종교의 속성에 특유의 하향식 구원론, 그리고 '믿음'의 절대성 탓에 유도리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요.

그 덕분에 제 1의 종교이긴 하나 세계적으로 기독교인의 수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만약 이러한 문서들이 시사하는 '가능성'을 통해 약간이라도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과정은 다소 복잡할지언정 결과적이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