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


 “집중해라.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베인이 그녀의 은화살만큼이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나에게 일침을 내뱉었다.


 멍하니 에뜨왈의 현만 만지작거리던 소나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은 딴 세상에 가 있는지 소나의 표정은 멍한 상태 그대로였다. 잔뜩 짜증이 난 베인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지금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소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천재적인 음악가로 명성이 드높긴했지만 정작 그녀가 '왜' 악보 따위의 도움이 없이도 독창적이고 뛰어난 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있다해도 '천재니까 그렇지 않아?'라는 반문에 납득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겨우 '천재'라는 적당한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엔 굉장히 특별했다. 그녀는 주변 생명체들의 감정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귀가 좋다는 의미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일종의 공감각적 능력이었다. 소나는 오랫동안 훈련한 소믈리에가 포도주의 맛을 분별하듯 감정을 예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분석해 하나의 음계를 만들고, 에뜨왈을 통해 그것을 연주했다.


 때로는 그녀 자신의 감정을 연주하기도 했다. 생애 처음 첫눈을 본 경외와 기쁨, 양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저택의 현관에서 느꼈던 웅장함, 첫 콘서트에서 자신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기쁨 모두가 음악으로 엮어져서 그녀 안에 오롯이 새겨져있었다. 수천 장에 이르는 악보가 그녀 안에 내재되어 있는 셈이었다…그러나 이 능력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 능력의 단점은 사람이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가 없듯 그녀의 의지로 조절이 안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저, 소나라는 소녀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오.]


 바람결에 실려온 희미하고도 묵직했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소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잭스-그는 소나가 알게모르게 동경해오던 챔피언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10년 전 어느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10년 전, 전쟁학회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창설, 용맹한 전사들인 ‘챔피언’들을 통해 대리 전쟁을 치루게함으로서 발로란 대륙에 불완전하게나마 평화를 가져다줬다. 말 그대로 살과 피가 튀고, 온갖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 한가운데의 모습이 온 발로란 대륙에 생중계되었고 신분과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리그에 열광했다.


 어린 소나는 리그가 싫었다.


 서로를 죽일 듯 싸우는 챔피언들의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폭풍들은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거칠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그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그에 의무적으로 참관해야하는 경우가 잦았고, 소나는 텅 빈 저택에서 고독 속에 덜덜 떨기보단 차라리 양어머니를 따라오는 쪽을 택했다. 리그가 격렬해지면 질수록 소나는 부벨로 공작부인의 품속에 파고들었고 공작부인은 계속해서 소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심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적어도 소나에게만큼은 리그는 행사가 아니라, 지옥 그 자체였다.


 그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도, 소나는 리그의 관중석에서 양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관중석은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탕이었다. 사람들이 함성을 한 번 지를 때마다 그녀의 몸이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움찔거렸다. 그순간이었다.


 [자, 드디어 잭스 선수가 학회의 규제 후 첫 출전을 했는데…어, 어? 저게 뭐죠? 잭스 선수가 지금 가로등을 들고 있습니다! 렉섬벨 해설자님, 저거 가로등 아닙니까?]

 [아…네. 규제 후 잭스 선수에게 공식적으로 허락된 무기 중 하나가 가로등이긴 한데 설마 그걸 들고 나올 줄은 저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전 맨손으로 출전하거나 출전을 거부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아, 잭스 선수! 용맹하게 적진으로 돌격합니다! 순식간에 더블 킬을 달성하는 잭스 선수! 하하, 정말로 가로등을 잘 다루는군요. 이거 학회가 잭스 선수에게 규제가 아니라 도움을 준 것 같은데요?]


 순식간에 관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관중석을 지배하던 어두운 광기들이 일순간 바람에 재 날리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던 중압감이 사라지자 깜짝 놀란 소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바라봤다. 정말로 거기엔 해설자의 말 그대로, 황동제 가로등으로 상대를 반쯤 죽여놓는 잭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적 챔피언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얻어맞고 있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자 관중석엔 한 번 더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느샌가 어린 소나의 입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지은 미소였다.


 그리고 10년 후, 소나는 챔피언으로서 전장에 참가했다. 챔피언이 된 데에는 에뜨왈의 숨겨진 힘을 끌어내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잭스를 대등한 위치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도 그에 못지않게 컸다. 그렇게 해서 오늘 드디어, 소나는 동경하던 챔피언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생명체라면 응당 느껴져야 할 감정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는 몇 번이나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다른 챔피언들이 내뿜는 감정의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건 아니었다. 그리고 소나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한걸음 내딛는 순간, 잭스는 등을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소나라는 소녀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오.]

 ‘…….’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나는 발을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잭스가 그 말을 할 때 소나는 처음으로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는 슬픔과 자책감의 소리가 희미하게 딩딩거리며 섞여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울면 나중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것처럼 잭스의 그 감정은 풀 한 포기조차 없는 메마르고 갈라진 황야를 연상케했다. 그것은 소나 자신은 살면서 결코 느끼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었던 빛바랜 절망이었다. 음에 대한 해석과 함께 잭스에 대한 호기심이 눈덩이 불어나듯 소나의 안에서 커져갔고-소나는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깊이 집중해서 하나의 음계를 만들고 있었다. 잭스에 대한 음계였다.


 그래서일까.


 아까부터 아군의 방어 포탑에서 나는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도,

 협곡에서 항상 들려왔던 소리가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도,

 그리고 베인이 선 채로 정신을 잃었다는 것도,

 소나는 끝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전쟁학회와 챔피언들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러나 급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