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투기장에서 사제는 전사, 사냥꾼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천대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고놈 시절엔 벨렌의 선택 때문에 좋았다곤 하는데 그땐 제가 하스를 하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대마상 이후부터만 따진다면 사제는 확실히 구더기 중의 최상급 구더기 직업이었습니다. 전사는 초반부터 이글과 죽빨을 들고 필드 장악을 깡패로 하는 맛이 있고 사냥꾼은 2장씩 넣을 수 있는 직업 전설인 사바나 사자를 운 좋게 픽하거나 흉악한 초반 깡패인 그물거미, 과학자, 수리검포 콤보로 명치라도 빨리 후릴 수 있는 반면에 사제는 벨렌의 선택, 어둠의 이교도, 신의 권능 보호막이 전부였으며 그것들조차도 필드에 뭔가가 있어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사제의 영능은 필드를 장악해둔 상태라면 흑마법사만큼이나 고효율을 자랑하지만 너무 수동적이기 때문에 초, 중반 필드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습니다. 후반부터 사제가 영능으로 이득 교환을 하는 상황이 올 정도면 전사나 냥꾼을 제외한 다른 영능이었어도 어차피 이길 판입니다. 그에 걸맞게 효율이 좋은 카드들도 전부 필드에 깔려 있는 하수인과의 연계를 요구합니다. 이 대표적이죠. 코스트 대비 효율 좋은 제압기를 많이 갖고 있는 건 좋았지만 여전히 등급전에서 악명 높은 4공의 장벽처럼 특정 상황에선 써먹을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손에 카드만 잔뜩 들고 있는 골치 아픈 상황이 투기장에서도 자주 나오곤 합니다.

 

흑마법사와 마찬가지로 투기장 카드의 밴패치는 사제에게 큰 이득이 됐습니다. 은 너무 조건부 연계를 요구하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쓰레기 카드들이었고 이것들이 제외되면서 사제는 좋은 직업 카드를 선택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특히, 그림자 폭격수와 혼란의 제외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제는 영웅 등급 카드는 대개 투기장에서 효율이 무척 좋은 편인데 저 쓰레기들이 사라지면서 그것들을 선택할 기회가 많아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고대 신의 속삭임에서 깡스탯 괴물들과 자잘한 도발 하수인들이 여럿 추가되면서 투기장 메타가 느려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투기장에서 존엄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 늪지이끼님을 필두로 생명력이 높은 깡스탯 하수인이 많아졌고 초반에 오직 달리는 성향으로만 짜놓은 덱은 바로 결판을 내지 못하면 도발벽에 가로막혀 적 영웅의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깎지를 못하고 자멸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템포에 맞게 하수인을 내는 건 여전히 중요했지만 그런 기회를 놓치더라도 손해를 만회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단 거죠. 사람들이 늪지이끼괴물과 같은 고효율 카드를 고르면서 극어그로 성향의 덱은 줄어들었습니다. 어떻게든 게임을 중후반으로 끌고 가는 게 중요한 사제로선 그나마 숨통이 트인 셈입니다. 그러나 고대신과 카라잔은 도적과 법사들의 천국이었고 그들은 초반부터 사제가 내는 하수인을 아주 쉽게 썰어버릴 수 있는 깡패들이었습니다. 사제는 연계를 요구하는 카드들을 깡으로 내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망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법사가 불땅차에 선택 보정까지 받고 있어서 사제가 아무리 유리한 교환을 하면서 후반으로 끌고 가봤자 불땅차 몇 장에 1:2 교환을 계속 당하고 나면 거지가 되기 십상이었죠.

 

어썸한 밴브로드께서 카라잔으로 내주신 신규 카드들은 그래도 꽤 쓸만한 편이었습니다. 만찬의 사제는 3/6 스탯 자체가 사제에게 너무나 좋았고 칠흑색 비숍은 조차도 좋은 평가를 받는 투기장의 특성상 어지간하면 기본은 해주는 효자였습니다. 최초로 밴카드 목록에 올른 어썸 그 자체이신 정화는 빼고요. 그래도 법사와 도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사제는 가젯잔이 패치될 때까지 숨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사제에게 "대혁명"을 일으킨 신규 카드들입니다. 가젯잔 이후 투기장에서 사제의 티어가 급등한 건 순전히 이들 때문이며 이 카드들만 분석해도 지금의 사제를 전부 파악할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1. 비밀결사 갈퀴사제

 

 

단언컨대 이 카드는 그냥 잘못된 카드입니다. 최소한 영웅 등급은 했어야 할 카드입니다. 아니, 하다 못해 희귀라도 됐어도 좀 나았을 겁니다. 이런 미친 게 일반에다가 픽률 보정도 똑같이 받고 있으니 하스스톤 개발진에서 투기장 밸런스는 눈꼽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투기장에서 가 좋은 하수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기계 종족값도 있긴 하지만 패널티 없는 3코 3/4 스탯은 다른 카드보다 너무 우월하기 때문이죠. 갈퀴사제는 이 스탯을 똑같이 갖고 있는데 무려 전투의 함성으로 생명력 3 버프를 줄 수 있습니다. 어둠의 이교도도 동일한 수치의 버프를 줄 수 있긴 하지만 죽음의 메아리라서 필드가 비워진 상태에서 정리당하면 그냥 3/4로 끝납니다. 갈퀴사제는 어지간하면 버프를 주고 나갑니다. 그렇다고 깡으로 못 내는 카드도 아니고요. 투기장에선 3코 3/4 그 자체가 그냥 좋은 겁니다.

 

갈퀴사제 때문에 사제를 상대하는 모든 직업은 사제가 1~3코 타이밍에 내는 모든 하수인을 반드시 짤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밸렌의 선택이나 신의 권능 보호막 때문에 그런 플레이를 강요받고 있었는데 그것들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죠. 최근에 투기장을 많이 한 유저라면 사제가 먼저 깐 2코를 짜를 수단이 없어서 턴종료를 누르는 순간 자신의 패배를 예감하게 될 겁니다. '그래, 아마도 갈퀴사제를 내겠지. 피3이 늘어날 거야. 난 망했어.' 그리고 현실이 됩니다. 짜를 수단이 있는데도 같은 게 나와서 못 쓴다면 무력감은 배가 되죠. 이 카드는 초반에 이렇게나 강력한데 후반에 드로우되더라도 존재감이 넘칩니다. 그때부턴 생명력 +3 버프를 거의 확정적으로 줄 수 있으니 총합 3코 10 스탯이라는 괴물로 등판하거든요. 투기장 사제의 플레이는 덱 짤 때 갈퀴사제를 몇 장 집었냐랑 멀리건에 들고 가는가? 3코스트 타이밍에 오른쪽에서 드로우되는가?의 요소가 게임 승패의 절반을 결정짓는다고 보면 됩니다. 예외도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갈퀴사제 덕분에 사제는 초반 필드를 장악하기가 더 쉬워졌고 기존에 있던 카드들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사제의 필드는 광역기에도 쓸리지 않을 만큼 튼튼해졌습니다.

 

 

 

 

이 미친 러쉬를 감당하지 못한 상대들은 멘붕을 하고 말았습니다.

 

2. 광기의 물약

 

코스트가 낮고 효과도 소소해보여서 크게 주목받는 카드는 아닙니다만 저는 이것 또한 투기장 사제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투기장의 특성상 공격력 2이하의 하수인은 초, 중, 후반 언제라도 필드에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카드는 발동만 되면 대부분의 경우에 1:1 교환을 보장해준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상대 하수인 하나를 훔쳐서 그걸 그냥 박아서 죽이기만 해도 1:1이죠. 동반자살에 성공시키면 큰 이득이고 거기에 죽메라도 껴있다면 투기장 이득의 끝판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카드로는 이미 가 있었습니다. 허나 이건 희귀인 데다가 코스트가 4나 된다는 게 부담스럽죠. 광기의 물약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코스트가 1밖에 안 든다는 겁니다. 이렇게 가벼운 카드로 "이득보는 교환을 하고도 내가 다음에 할 수 있는 행동에 별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고승존으로 올라갈 수록 사제의 상대방은 초반 필드에서부터 갈등을 일으킵니다. 당신이 1턴에 간식용 좀비나 화염 임프를 깔았거나 동전을 써가면서 2/3 혹은 3/2 스탯의 하수인을 내뒀다고 칩시다. 사제가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면 비슷한 스탯의 카드를 추가로 깔고 압박을 넣어야겠죠. 그런데 사제가 물약을 써서 단숨에 1:2 교환을 해버린다면? 초반부터 템포와 카드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2/3과 3/2를 같이 깔아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머리를 싸매게 되는 거죠.

 

이 카드는 갈퀴사제와 마찬가지로 후반에도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공격력 2이하의 조건부 미드 하수인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허수아비 골렘, 유령 들린 거미, 황혼의 소환사, 전리품 수집가처럼 유용한 죽음의 메아리 효과를 가진 카드들을 얼마든지 탈취할 수 있습니다. 공격력이 2가 아니더라도 축소술사와의 연계가 가능하단 점도 우수하죠.

 

3. 비밀요원 나가신다!

 

 

저리 비켜라! 등급전에서도 깡패로 악명 높은 이 카드 역시 투기장에서의 존재감이 무지막지합니다. 투기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깡스탯인데 이건 5코 존엄으로 평가받는 랑 스탯이 똑같은데 지가 용족까지 달고 있습니다. 카라잔 카드들이 픽률 보너스를 받던 시기엔 를 필두로 나만의 용덱을 짜는 덱이 쉽게 고승으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제는 용족 시너지를 받을 수 있게 덱을 짜는 게 다른 덱보단 쉬운 편입니다. 비밀요원은 그냥 용족 그딴 거 고려하지 않고 뽑아도 우수한 카드인데 고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용 시너지도 받을 수 있게 덱이 조절되는 역할을 해줍니다. 물론 투기장에선 훔쳐올 수 있는 카드가 전부 고효율은 아닙니다. 발견하더라도 3장 전부 투기장다운 똥카드만 집힐 가능성도 있죠. 그러나 뭘 가져오더라도 비밀요원은 최소 1:1 교환을 보장해주는 철밥통이며 상대방의 이득 계산을 매우 꼬이게 만듭니다. 자기 덱에 광역기가 남아있다면 계산은 훨씬 더 복잡해지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등급이 희귀라는 것뿐입니다.

 

4. 비밀결사 노래도둑

 

 

소개된 카드 중에 "그나마" 평범한 카드입니다. 투기장에선 등급전만큼 제압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들고 있으면 유용한 건 사실입니다. 침묵은 가장 천대받는 특성입니다.  갓갓 갓갓갓님을 수호해주던 빼미가 비비의 심판을 받은 뒤에 투기장에서 쓰이는 침묵은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침묵을 가진 카드들은 그 자체만으로 효율이 별로거나 스탯이 떨어지는 편이었죠. 비밀결사 노래도둑은 5코 노패널티 최고 스탯인 5/6에 약간 못 미치지만 그 약간의 패널티만으로 침묵을 얻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깡스탯이 나쁘지 않아서 골랐더니 운 좋게 침묵까지 쓰게 되더라 싶은 상황이 나오게 되는 거죠. 지금 투기장에선 성기사의 떡대 버프 컨셉이 꽤 강력합니다. 게임 시작부터 손으로 방망이를 날려대는 들은 보는 것만으로 혐오감을 유발하죠. 비밀결사 노래도둑은 조금 무겁긴 하지만 떡대 버프를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제압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같은 사제를 상대로도 매우 효과적이죠.

 

 

5. 필드를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광역기와 고효율의 영웅 등급 카드

 

 

파헤쳐진 악은 역캐리 가능성이 있고 5코 3데미지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좋다고 볼 순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제를 상대할 때 신성한 폭발 정도만 고려하는 편이죠. 용숨결이나 빛폭탄은 한 번 뜨면 필드가 초토화되는 흉악한 위력을 갖고 있지만 같은 게 나오지 않았다면 영웅 등급이라서 상대방이 그것까지 일일이 생각하면서 하진 않습니다. 전사를 상대할 때 난투를 전혀 생각도 안 하듯이 말이죠. 이 점은 사제의 단점임과 동시에 강점이 됩니다. 고르기 쉽지 않다는 건 상대 또한 예상을 못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손에 들고만 있다면 매우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앞서 말한 쓰레기 영웅 카드 두 장이 밴처리되면서 사제는 위와 같은 영웅 카드를 들고 있을 가능성이 이전보다 약간이나마 커졌습니다.

 

 또한 용숨결이나 빛폭탄만큼은 아니더라도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카드들이죠. 이제 사제는 예전의 흑마처럼 쓰레기 직업 카드들을 선택지에 놓고 끙끙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덱이 한 층 강력해진 사제들은 이전부터 자신을 사냥감으로 여겨오던 마법사와 도적들을 상대로 반격에 나서고 있습니다. 마법사의 눈보라와 불기둥, 불땅차와 같은 카드들은 후반이 되어야 빛을 보지만 마법사는 화염포나 마나지룡, 불안정한 차원문 정도가 아닌 바에야 초반부터 사기를 치는 카드들은 거의 없습니다. 사제가 갈퀴사제로 필드 굳히기에 나서면 그냥 무력하게 필드를 내주는 수밖에 없단 말이죠. 필드를 굳힌 사제는 하수인들의 생명력을 점점 높여나가고 후반이 되더라도 불기둥으론 필드를 청소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맙니다. 도적은 그나마 상황이 더 낫습니다. 기습, 요원, 절개, 전멸의 비수 등으로 2, 3코에 나오는 사제의 자잘한 하수인들을 바로바로 잘라줄 수 있고 해적단원처럼 살아만 있으면 큰 이득을 안겨다주는 초반 하수인을 바로 깔아서 사제에게 수동적인 행동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갈퀴사제 러쉬가 시작되면 감당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1티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흑마법사를 상대로는 광역기각만 조심하면 됩니다. 흑마법사 또한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공허소환사 정도가 아니면 사기를 치는 게 쉽지 않고 3코스트 흉악범인 임프두목에 맞먹는 갈퀴사제를 사제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사제는 임프두목을 가장 깨끗하게 제압할 수 있는 고통을 갖고 있죠. 그렇게 초반부터 필드를 튼튼하게 다져서 흑마가 광역기를 쓰더라도 별 영향이 없게 만들어놓은 다음에 명치를 후리면 흑마는 생전을 몇 번 써보기도 전에 무너질 겁니다. 그러나 사제는 적 영웅에게 결정타를 넣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필드가 한 번 쓸려나가면 그것을 다시 복구하기 매우 어렵고 명치를 달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흑마법사의 체력을 겨우 5~10, 심하게는 3 정도만 남겨놓고도 그걸 마무리를 못해서 터지는 굴욕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6. 그러나 카드 운이 너무 중요하다.

 

이렇듯 사제가 이전보다 강해진 건 확실하지만 카라잔의 제이나나 지금의 흑마법사처럼 만인의 OP 영웅 취급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 둘은 핵심 카드가 없더라도 영웅 능력의 단일 효율이 우수하며 직업 하수인들은 단독으로 나가더라도 밥값은 하고 언제나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카드빨을 잘 받으면 12승을 하이패스로 뚫을 수 있는 직업이지만 평균 승수까지 우수한 직업은 아닙니다. 다른 무엇보다 3코스트 카드진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갈퀴사제, 이교도, 밸렌의 선택을 많이 집지 못하면 그만큼 힘이 쭉 빠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가젯잔 카드의 픽률 보정이 풀린다면 사제 열풍은 거품처럼 금세 꺼져버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