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씀드리면 데뷔를 못 했기 때문에 '준프로 게이머' 가 맞네요.


어제 인성이란 주제로 게시판이 좀 핫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인성은 정말 중요합니다. 겸손이란 것은 스스로가 개성있는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거든요.



제 얘기를 짧게 해드릴게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에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를 꿈꾸며 게임에 제 학창시절을 다 걸었던 사람입니다.

2년간 노력한 덕분에 커리지 대회라는 곳에서 준프로게이머 라이센스를 땄고

그 해 한빛스타즈 라는 팀에 들어가게 됬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들이 되게 좋지 못했습니다.

배틀넷에서 소위 말하는 키보드 워리어 or 노매너 유저였거든요.


각 종 명문클랜들을 철새 처럼 여럿 돌아다녔고

게임 부심이 엄청나던 때라 나이가 많든 적든 나보다 게임을 못하면 마치 제가 골목 대장마냥

말도 못되게 하고 비싼 척을 많이 했었어요.


근데 참 불운(?)하게도 한빛스타즈에 들어간지 한 달채 되지 않았던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OO 클랜의 숙소에서 잠시 지냈을때 사이가 안좋았던 무소속 프로게이머가 한빛 스타즈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게이머는 한빛 스타즈의 숙소에서 생활을 했고

저는 온라인 연습생 이라는 신분으로 온라인 상에서 연습을 했던 상태라

당연히 저보다 감독,코치와 더 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게이머 덕분에 팀에서 방출을 당했습니다.



'난 아직 어리니까' 라는 정신 승리를 하면서 배틀넷 생활을 했고

다음 팀은 스파키즈가 되었어요.

저는 프로토스 유저였는데 스파키즈 팀에서 프로토스만 6명을 테스트 본다고 했고

스파키즈 팀 숙소에서 저를 포함한 6명의 프로토스 유저들이 테스트를 보게 되었어요.


성적은 제가 제일 좋았어요 정말로

근데 숙소에 합류하게 된건 제가 아닌거죠.

또 온라인 연습생 신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되게 분했습니다.

실력은 분명 쟤네들 보다 내가 더 우위이고 배틀넷 상에서 인지도 역시 내가 더 우위인데 왤까? 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그러다가 저를 스파키즈 팀에 소개 시켜준 인맥 넓은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저한테 매너 좀 키우라고 하더군요. 배틀넷에서 소문이 너무 안좋다고.


저는 그게 컨셉이었어요.

당시 스타1 프로게이머들은 괴짜 라는 캐릭터들이 많았고 저는 그런 선수들처럼

세레머니도 유쾌하게 하고 인터뷰 할때는 약간 건방져보이더라도 자신감 넘치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던거였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그게 아니었어요.


축구로 치면 즐라탄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데파이 랄까.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한참 할 때, 프로토스 유저인 아마추어와 준프로게이머 들을 상대로

웨스트서버 3대 토스라는 칭호가 있었는데

저는 그 안에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 그만큼 실력은 알아줬지만 기본적인 겸손함과 예의는 그에 미치지 못했던거였죠.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흘러 마지막 팀은 CJ 엔투스 였는데

당시 CJ 팀의 2군 숙소는 '철창' 이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집은 참 좋았는데. 그 좋은 동네와 집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게임만 한다고 해서 '철창' 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팀에서는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 친했던 형들이 한 두명씩 프로게이머 꿈을 접기 시작해버려서

괜히 저까지 마음이 싱숭생숭했었었는데, YGOSU 사이트(당시에는 순수한 스타 커뮤니티 사이트였음) 에서

과거에 제가 썼던 글들 혹은 노매너 짓들 등등이 우연찮게 다시 언급이 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그 날 코치에게 엄청 혼나고 다음 날 그냥 게임을 접어버렸습니다.

자만심과 비싼척, 그리고 예의가 없는 행동들은 게임을 시작하고 끝날때까지 평생 저의 수식어 처럼 따라다녔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역시 데뷔도 못해보고 모두 게임을 접었습니다.

데뷔를 했다 한들 각 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그 선수의 배틀넷 시절 짤들이 돌아다녔고

그러한 흑역사를 모른 채 했던 당사자 게이머들은 수습할 기회도 없이 다 사라져버렸죠.



그래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실력이 전부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일침을 가하자면,

팀이든 그룹이든 현재 당신이 최고여도 당신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당신보다 조금 못미치는 수준의 사람이

겸손할 줄 알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면 당신은 실력을 떠나서 그 사람과 견줄 기회도 없이 곧바로 팽 당하게 됩니다.

왜냐? 결국 선수를 기용하는 건 감독이고 스폰서입니다. 어른들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주지 않아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세월이 흘러 요즘은 피쉬서버를 몇 개월에 한번 꼴로 들어가는데 과거에 제가 썼던 아이디로 들어가면

아직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길래 배틀넷에서 내가 이정도 위치까지 오르긴 했었구나 라고

생각이 들긴 하네요. 그런데 왜 그런 행동들을 했을까 라며 어리석었던 제 자신을 또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10년만에 마우스 패드를 교체했어요 ㅋㅋ

별로 신경을 안썼는데 오버워치 좀 더 잘해보고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꿨습니다.

10년된 KESPA 마우스 패드를 버리면서 문뜩 과거에 취해 이런 글을 남겨봅니다.

저는 20대 후반이 되었고 스타 이후에 게임과 거리를 두며 지내다가 오버워치 하면서

다시 블리자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ㅎㅎ



아! 재밌는(?) 일화 하나 얘기 해줄게요.

제가 소속되었던 클랜이 당시 웨스트에서 제일 잘나가는 클랜 중 하나였는데

어떤 중학생 꼬꼬마가 유망주 제도로 가입신청을 했고 테스트를 제가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해드렸다시피 당시의 저는 좀 그런 놈이어서 그 중학생한테 모진 말을 했고

클랜 간부들한테는 '쟤 못 하니까 받지마라' 라고 대놓고 말하면서 탈락을 시켰었어요.


근데 며칠 뒤에 저희 클랜만큼 잘나가는 클랜이 있었는데 거기에 그 중학생이 가입했단 소릴 듣고는

어리다고 아무나 막 받네 라며 비아냥 거렸었는데..ㅎㅎ



게임도 접고 시간도 더 흘러서 제가 군대 전역하고 오랜만에 클랜 형들을 만나면서 소주 한 잔 하다가

당시 클랜 간부였던 형이 그러더군요.ㅋㅋㅋ

"걔 이영호 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