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에는 근거가 몇개 있어.

 라이엇이 자주 하는 말이 있지. 카운터가 불가능한 플레이는 안된다. 그냥 평범하게 맞는 말임. 강점이 두드러진다면 약점도 두드러져야함. 그게 진영에 따라서건 상대 챔피언에 따라서건 게임 진행 시간에 따라서건, 강점이 있다면 그만한 단점이 수반하는게 정상적이지.

 일단 게임을 만드는 라이엇에서 벌써 게임 설계상으로 대응 불가능한 플레이는 없도록 한다는 거임. 아 물론 안 그럴 때도 있지만 적어도 노력은 하잖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선수도 모든 분야에 모든 방식으로 모두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페이커 같이 얘는 좀 예외가 아닌가 싶은 사람도 간혹 있긴 한데 보통은 저렇지. 극도의 안정감과 극도의 캐리력을 동시에 갖춘다거나 이런건 사실 페이커도 못해. 안정감 있는 플레이나 캐리력있는 플레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겠지.
 아 물론, 한 경기 내에서 특정 선수가 안정감과 캐리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 하지만 그건 안정적이어야 할때 안정적으로 잘 플레이하다가 필요한 순간 캐리력있는 플레이로 스위치를 잘 전환하는거라고 봐야하지.
 위에서 언급한 라이엇의 지향점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인데 결국 게임 자체가 큰 이득(캐리력 있는 플레이)을 노리면 그 만한 리스크를 지니게 하려고 노력중이고, 그러면 아무래도 안정감은 떨어지니까.
 그러니까 대전제로서 캐리력과 안정감은 한순간에 공존할 수는 없다는 거지.

 그러면 생각해보자, 선수들마다 잘하는게 있고 못하는게 있어. 후니 같은 선수는 모두가 생각하기에도 안정감있는 플레이보다는 리스크를 지는 캐리력 있는 플레이를 더 잘한다고 생각할거야. 쿠로같은 선수는 상대적으로 리스크를 지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버티는 편을 더 잘하지. 본인의 선호도 있을거고.

 코치와 선수 스스로에겐 이게 일단 지표가 될거야. 누가 뭘 상대적으로 더 잘하고 더 못하는지, 이건 카드 게임에서 내 패에 있는 카드의 스탯과도 같은거야. 카드게임과 다른 점으로는 그 스탯은 선수의 노력에 따라 계속 변하며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서도 변동이 있을 수 있지. 그리고 게임처럼 명확한 수치로 표기되진 않아. 어느 정도는 감으로 알아야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어느 정도 지표가 되어주겠지.

 그럼 이제 밴픽 전략을 수립하게 될거야. 상대 패(상대 선수)를 분석해서 어떤 카드가 어떤 챔피언과 플레이에 강점을 가졌으며 어떤 플레이를 더 선호하는지, 더 자세하게는 무슨 버릇이 있는지까지도 관찰 할 수 있을거야. 저 선수는 CS를 먹을때 막타를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치려는 버릇이 있다. 라거나.

 그리고 선수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것보다 더 크게는 팀 차원에서의 전략도 분석하게 되겠지. 후반 지향을 하는 팀인가 빠른 스노우볼을 굴리는 걸 좋아하는가. 라인전을 세게 나가는걸 좋아하는가 일단 드러눕는가. 그리고 그 중 뭘 잘하는가.

 상대가 유명한 팀이며 경기 수가 많은 팀일 수록 더 정보를 얻기 쉽겠지. 어찌되었건 그렇게 분석해서 상대가 어떤 전략을 쓸지, 어떤 챔피언을 픽할지 경우의 수를 뽑아낼거야.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법을 마련해둬야겠지. 무슨 경우의 수가 들어 맞을지는 알 수 없고 그 경우의 수 자체도 무지막지하게 많을테니까.

 이건 이미 노가다의 영역이야. 우리가 RPG 게임에서 게임 내 재화를 수집하려고 노가다하는 것과 같지.
 RPG 게임 이야기가 나온김에 거기에 이어서 비유를 해보자면 MMORPG 게임에서 레이드를 성공하기 위에서는 노가다로 수집한 재화로 캐릭터 스펙을 올려야겠지. 하지만 스펙이 높다고 무조건 성공하는건 아냐. 공략의 숙련도나 내 손의 피지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하지. 하지만 적어도 고스펙의 캐릭터가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은건 사실이야.
 이것과 마찬가지야. 상대가 사용할 전략의 경우의 수와 그에 대응해 우리가 사용할 전략의 경우의 수를 많이 뽑아두면 그만큼 이길 확률은 올라갈거야.
 물론 이건 개노가다야. 하지만 상대 특정 선수의 솔랭 데이터도 분석해서 어 우르곳을 연습했네, 우리 선수에게 우르곳에게 대응하는 법을 훈련할 시간을 주면 좋겠군 하는 식으로 조금 조금씩 승리할 확률을 올려가겠지.

 이런 식으로 우선 코치와 선수들이 경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싸움을 시작해. 나는 이 단계에서 이미 많은 것이 결정난다고 생각해.
 물론 게임이 시작되고 나면 코치나 코치가 짠 밴픽 전략은 그 게임에 아무 관여도 할 수 없어. 선수들의 플레이에 달렸지. 뜻밖의 하드 쓰로잉이나 하드 캐리는 그 영역 밖의 일이며 예측 가능한 변수도 아냐. 우연찮게 던지는 선수가 적 선수이길 빌어야지. 그건 미리 예측하기엔 너무 변수가 많으니까.

 하지만 판을 누가 잘 깔았나는 큰 차이지. 페이커가 아무리 엄청난 플레이어라고 해도 상대가 스탯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선수가 아닌 이상 인게임 픽밴에서 서로간의 장단점이 달라서 상성으로 크게 지고 들어가는 상태로는 유리함을 점할 수 없어. 저 위에서 말했다시피 라이엇이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그게 정상이야.
 그리고 현 상황에서 높은 티어에 군림하는 선수들 간에는 스탯이 상성을 무시할 정도로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해. 그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그 스탯 자체도 명확하게 제시되는게 아니며 그때 그때의 컨디션이라는 변수 덕에 실시간으로 변동할테고. 그러니 아무래도 선수의 손놀림보다는 캐릭터 자체의 상성이 우위인 경우가 많지. 그걸 뒤집는게 슈퍼플레이인것도 그래서고.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양팀의 코치진이 밴픽 준비를 비슷할 정도로 노력하지 않고 한쪽이 꽤 소홀했다거나 하면 조금씩 차이나는 양팀 선수의 스탯과는 관계없이 이미 경기가 반절이상 결정난거나 비슷한 상태일 수도 있지. 리프트 라이벌즈 정도가 적당한 예시일까.

 강팀이 한번씩 약팀에게 의문패를 당하기도 하는게 그래서라고 생각하면 될것 같아. 사전에 판을 까는 작업은 개노가다야. 하지만 코치도 선수도 사람이지. 시간도 한정되어있고 피로를 느끼기도 할거고, 경우에 따라선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경기에 노력을 할애해야 할 수도 있어. 사전 밴픽 전략을 짜는 노력과 시간도 아껴 써야할 귀중하고도 한정된 자원이야.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게 프로정신이긴 하겠지만 정말로 문자 그대로 언제나 최선을 다 할 수는 없지. 의문패를 당한 강팀은 상대적으로 판 깔기를 통한 우리팀 승률 올려놓기 작업을 덜한거고, 예상 밖의 승리를 한 팀은 그런 작업을 열심히 한거라고 생각돼. 결과는 그렇게 올라간 약팀의 승리할 확률이 해내고야 만 것이고.
 아, 물론 기적같은 영감이 하늘에서 춤추듯 내려와 이거면 되겠다하고 한방에 전략을 정해버렸을 수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안 그렇겠지.

 아주 길었지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렇기 때문에 프로리그에서의 롤은 준비하는 자의 편을 들어주는(그럴 확률이 높다 뿐이지만) 게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는 그 준비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지. 기껏해야 개개인 선수의 솔랭 전적을 보고 저런걸 다 연습하네? 하고 기억해두는 정도. 사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도 그런 분석이 직업이 클템이나 김동준 해설 정도 뿐일거고.
 심지어 팀 차원에서 그런 정보의 노출은 최선을 다해서 막으려고 할거고. 정보가 노출되면 해야할 노가다가 늘어날테니까.
 이변이라는 것은 사실 그런 바탕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모든 경기를 까봐야하는 이유가 게임 시작 전 저 물밑 작업에 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까고 말해서 그룹 스테이지에서 과연 LCK 팀들이 저짓을 죽도록 했을까?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서라도 상대적 약팀에게는 덜하겠지. 심지어 상대적 약팀이 신생팀이면 정보가 적어서 분석하기도 힘들어. 전력을 숨겨서 비겁하다, 프로의식이 없다가 아니라 그냥 불가능한거야. 목표는 우승이지 당면의 승리가 아닐테니, 버릴건 버리고 취할건 취하겠지.

 그러니 앞으로의 토너먼트도 정말로 까봐야 알거야. 토너먼트 첫 경기의 이변도 결국 삼성의 독한 준비가 지분이 크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난 SKT의 팬으로서 SKT를 믿는다. 진지하게 전력을 다하는 SKT의 노가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야. 꼬마 코치는 지금도 어떻게 미스핏츠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지 않고 우리가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더 나아가 얼마나 RNG에게 정보를 숨기고 미스핏츠에게 승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삼성도 조금이라도 더 승률이 높은 전장에 우리 선수들을 내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겠지.
 리라 때처럼은 안할거라고 믿는다.

 일단 한국팀 화이팅!

+ 사족으로 롱주의 태만함을 지적하거나 그런 이야기는 애초에 아니야. 시험공부도 이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경우가 있고 그러니, 미리 준비하면서도 이걸 얼마나 준비해야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롱주가 아쉬웠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될 수 있어도 결함이 있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니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그건 그 또한 롱주측의 노력도 무시하는 처사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