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타인벤에서 유명한 기자분이었는데 한두달전에 퇴사하신 분 (이 소식이 전해진 후 도타인벤 초상집 분위기됨 ㄹㅇ루)

 

페이커 방송사태보고 갑갑했는지 페북에 엄청난 길이의 글을 올렸네여

 

 

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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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사건이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이제 기자도 아니겠다,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옮긴 글을 하나 남깁니다.

 

앞서 이 글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특정 집단의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LoL 부동의 원탑 선수인 페이커의 개인 방송이 그야말로 온갖 코미디 끝에 망가졌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근본을 알 수 없는 이중송출, 그로 인해 망가진 화질과 버퍼링, 게임에 대한 이해도라곤 없는 통역에 더 나아가 완장질 논란까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트위치TV는 억울한 피해자 중 하나가 됐다. 본래 트위치는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한 방에 몰려들어도 눈 하나 꿈쩍 않는 강철 서버를 자랑하는 곳인데 - 50만 명이 넘는 대회 중계방에서 렉 하나 없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 중간에 끼어든 이중송출은 버티지 못했다

 

페이커가 방송한다는 말을 듣고 트위치를 처음 켜 본 사람들 중 "아프리카보다 화질도 좋고 렉 없고 좋다더니 이거 순 쓰레기 사이트잖아?"란 생각을 한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 그야말로 자기 잘못도 아닌 걸로 재수없게 독박을 쓴 셈이다.

 

게다가 이 근본없는 이중송출 때문에 실시간 스트리밍의 장점은 모두 땅바닥에 내다 버리고 말았다. 스트리밍의 가장 큰 묘미는 팬들과 선수가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점인데, 이중송출 때문에 딜레이가 생긴 것도 모자라 페이커는 채팅방 화면을 보지도 못해 핸드폰으로 자기 방에 접속해야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누가, 뭘 노리고 이중송출을 강행한 것일까.

 

개인적으로 제일 화가 났던 일은 통역 문제였다. 여자면 롤알못도 가능하다는 것.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겜돌이'들은 아무나 좋으니 그냥 여자 한 명 갖다 앉혀놓으면 마냥 좋아라할 것이란 생각을 가지지 않고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딱 잘라 말해서 추잡하고, 구질구질하고, 극도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게임, e스포츠 쪽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여성을 꼽자면 대표적으로 이현경, 문규리 아나운서가 있다. 그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외모가 예뻐서가 아니라 - 물론 예쁜 외모도 큰 몫을 차지하지만 - 자신이 맡은 종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고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다.

 

이현경 아나운서는 각종 예능에 출연해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선수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대표적으로 스타2 선수인 김도우와의 스캔들 아닌 스캔들) 문규리 아나운서는 승자 인터뷰 중 선수의 슬픈 과거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등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두 아나운서 모두 자기가 맡은 종목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를 보였고, 모를 경우 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면 여자라고 해서 팬들이 마냥 환호하지 않는다. 일례로 과거 스타2 프로리그에서 한 여자 연예인 (또는 지망생)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팬들이 환호를 보냈는지, 질타를 쏟아냈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예전 롤드컵 당시 남자 통역사였던 초브라는 대단히 뛰어난 통역 실력 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완벽한 이해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롤드컵 최고의 통역사로 기억된다. 요컨대 능력이 있고, 게임에 대해 애정이 있다면 팬들에게는 그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단 소리다.

 

백 번 양보해서 게임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통역을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럼 중책을 맡은 이상 준비 기간에는 최대한 게임 이해도를 높이고, 그것마저 안된다면 최소한 채팅방 관리 및 게임 외적인 통역 문제라도 깔끔히 해야 했다.

 

그러나 중책을 맡고도 자신의 위치보다 감정이 앞서면서 자신의 통역을 트집잡는 이들을 마구잡이로 강퇴하고, 정작 방송의 주체인 선수를 욕하는 이들은 그대로 놔둔다면 이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각 직책마다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개인의 알량한 자존심이 그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누가 부모님 욕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성별만으로 우대를 받아 검증 없이 중책에 앉은 것도 눈꼴이 시린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 선수 아이디를 등에 업고 완장질까지 부린다? 최순실 마음에 든단 이유로 무능한 자들이 정부 요직에 앉아있는 지금 나라 꼴과 이 일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일 큰 피해를 본 사람은 페이커다. 이해 당사자들의 추잡스러운 작태로 인한 피해를 뒤집어 쓴 건 페이커인데 그는 방송이 끝날 때 "제가 더 재밌었으면 더 많이 보셨을텐데"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마지막 말이 팬들의 가슴을 찢고 소위 꼭지를 돌게 만들었다.

 

가장 유능하고, 가장 사랑받는 이는 묵묵히 할 일을 열심히 하다가 피해를 보고, 정작 밖에서 일을 망쳐놓은 이들은 책임회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지금 이 상황. 과장을 좀 보태면 나는 이 일을 전형적인 헬조선의 축소판이라고 본다. 상황이 커진 만큼 누군가가 곧 사과문을 내놓을 확률이 높지만 거기에 과연 진정성이 담겨 있을 것이며, 제대로 된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방지할 생각은 그렇게 하기가 힘든가.

 

팀의 과보호 아래에서 팬들과 제대로 된 스트리밍 소통 기회 한 번 잡기 힘들었던 페이커. 간신히 잡은 기회는 이해 당사자들의 어깃장 때문에 희대의 촌극으로 끝나버렸다. 스트리밍은 선수와 팬 간의 소통의 장이지 누가 그 자리에 끼어들어 숟가락 좀 얹고 가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잘 나가는 일에 너나 할 것 없이 숟가락을 올려대다가 밥그릇을 엎어버리는 일은 이 나라에서 지겹도록 있어왔다.

 

이제 거기 올려둔 숟가락을 내려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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