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총리, 그들 배후의 권력 실세가 앞장섰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뒤따랐다. 폴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11일(현지시간) 바르샤바 시내에서 펼쳐진 가두 행진 풍경이다. 안제이 두다 대통령, 마케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정의당(PiS) 대표 등 폴란드 정부 수뇌진이 극우세력과 한날, 한시, 같은 길을 따라 행진했다. 국내외에서 몰려든 극우단체들이 깃발을 흔들었다. 좌파와 야권은 행진에 불참했다. 두다 대통령은 “독립을 기념하고 화합을 강조하기 위한” 행진이라고 연설했다. 그러나 극우 득세 우려가 커졌고, 폴란드 내부 분열은 도드라졌다. 유럽 내 고립도 심화될 전망이다.





정부 수뇌진과 극우세력의 ‘공동 행진’은 뜻밖의 상황이었다. 폴란드 우파 정부는 애국주의·민족주의를 강조하고, 난민 포용 정책에 적대적이며, 유럽연합(EU)과 갈등하는 등 극우세력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노골적인 혐오 발언 등은 반대했다. 지난해 행진 때 극우파 수천명이 “순수한 피” “유럽은 하얗다” 등 외국인 혐오·백인 우월주의 구호를 외치면서 파문이 일자 두다 대통령은 “이 나라에 외국인 혐오, 병적인 민족주의, 반유태주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의 한나 그론키에비치-발츠 바르샤바 시장이 지난 7일 가두행진을 금지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는 “바르샤바는 ‘공격적인 민족주의’로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다. 독립 100주년날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폴란드 독립기념 행진은 최근 수년간 극우의 선전장이 됐다. 지난해 행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두다 등은 극우단체들과 함께 행진하면서도 나름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 극우단체들과 수백m 떨어져, 선두 그룹에서 움직였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행진에 앞서 “증오 발언이 나오거나 파시스트 상징을 꺼내는 등 레드라인을 넘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권 등은 정부가 극우파와 함께 행진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한다. 야당 의원 마르친 키에르빈츠키는 트위터에 “지난해 행진 때 나왔던 부끄러운 구호들을 기억하는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을 이들(극우파)이 대통령, 총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적었다.





극우파와의 공동 행진이 결국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U 내에서 고립만 깊어진다는 지적이다. 폴란드 정부는 사법개혁 문제로 브뤼셀과 갈등하고 있지만 실상은 유럽에서 EU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다. 2014~2020년 이 나라에 배정된 EU발전기금만 1058억 유로다. 국내 보수 유권자들과 EU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게 법과정의당 정부의 상황이다. EU는 최근 폴란드 정부가 사법부 무력화, 언론 통제 등을 통해 EU내 민주주의 기준을 위반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결과에 따라 2020년 이후 기금 배정을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