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로부터 수 많은 병법가와 병법들이 난무했으나
동양의 병법 중 베스트 3를 꼽아보라면 무조건 꼽히는 병법이 있다.

하나는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이오,

또 하나는 오기(吳起)가 쓴 오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은 서양에선 근대까지 없었던 대전략의 개념을 기원전에 쓴 책에서 나타내기도 하며

조조가 주석을 달며

"내가 지금까지 수 많은 병법서를 읽어보았지만 손자병법이 가장 심오하다"

라고 평가를 내리며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며 직장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병법서 입니다.


그럼 오자병법은 무엇이냐!



때는 기원전, VS 진(秦)나라 76전 무패의 기록을 자랑하는 위나라의 명장 오기(吳起)가 남긴 책으로

위나라의 제후였던 문후(文侯)나 무후(武侯)가 묻는 말을 명장 오기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작성되어 있는데

전략위주로 쓰여있는 손자병법과는 달리 구체적으로 용병술이나 방법론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인지 전략을 논한 손자병법과 실질적인 사용법을 논한 오자병법을 같이 묶어서 읽으며

손자병법에 나온 전략을 못 알아들으면 오자병법을 읽어 왜 그랬는지 알아보는 방식으로 공부했고

그래서 흔히 손오병법(孫吳兵法)이라 이 두개의 병법을 묶어서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지연의나 역사책등에서 손오병법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데, 손자가 오나라 사람이라 

손오(孫吳)병법이라 칭한게 아니라 손자병법+오자병법이라 손오병법이라 불리는 것)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님 또한 손오병법을 즐겨읽으셨으며 이순신 장군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사필즉생 필생즉사(死必卽生 必生卽死)" 는 오자병법에 나온 "사필즉생 행생즉사(死必卽生 幸生卽死)" 에서

따온 구절로 말씀하시기 전에 '병법에 나오기를'이라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사필즉생 행생즉사(죽을 각오하면 살 것이고, 요행히 살고자 한다면 죽을 것이다.)

사필즉생 필생즉사(죽고자 하면 살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는 뜻하는 바가 정확히 일치한다.





손자병법이 그러하듯 내용이 유실이 된 부분이 많이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져내려오는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서(漢書)에 따르면 오자병법은 48편으로 구성되어있었다고 하나, 전해지는건 6편뿐으로

도국(圖國), 요적(料敵), 치병(治兵), 논장(論將), 응변(應變), 여사(勵士) 총 6편이다.


1. 도국(圖國)

도국은 어떠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기가 儒生(유생) 차림으로 병법을 진언코자 魏文侯(위문후)를 배알하였다. 그런데 문후가 "과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소." 하고 너스레를 떨자, 오기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드러나는 현상을 보면 뒤에 숨겨진 것을 짐작할 수 있고, 과거를 미루어 미래를 살필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 속뜻과 다른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주군께서는 사철 내내 짐승의 가죽에 옻칠을 하고 채색을 입히며 문양을 그려 넣게 하고 계십니다. 이런 갑옷은 겨울에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여름에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또 2장 7척이나 되는 긴 창과 1장 2척의 단창을 만들고, 수레에 가죽을 씌우고 튼튼한 바퀴를 달게 하고 계십니다. 이런 창과 전차는 보기에 아름답지도 않을 뿐더러, 사냥하기에도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군께서 이런 것들을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공격하고 방어할 만한 군사력을 충분히 갖췄다 하더라도 이를 운용할 인재가 없다면, 이는 마치 알을 품은 닭이 너구리와 싸우고, 새끼 달린 어미 개가 호랑이에게 덤비지만, 이들이 투지가 있더라도 결국 잡아먹히고 마는 경우와 같게 될 것입니다.

옛날 承桑氏(승상씨)는 덕만 닦고 군사력을 소홀히 하다가 망국의 화를 입었으며, 有扈氏(유호씨)는 군사력만 믿고 전쟁을 일삼다가 사직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영명한 군주는 이러한 사실을 거울 삼아 안으로 文德(문덕)을 닦고 밖으로 武備(무비)에 힘쓰는 것입니다. 군주로서 적의 침략을 받고도 나아가 싸우지 않는 것은 의롭다[義] 할 수 없으며, 전쟁에 패하고 나서 죽은 병사의 시신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어질다[仁]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문후는 친히 자리를 마련하고 자기 부인에게 술을 따르게 하였으며, 宗廟(종묘)로 가서 오기에게 술잔을 올려 고하게 한 뒤, 대장군으로 삼아 西河(서하)를 지키도록 하였다. 이후 위나라는 제후들과 76회의 큰 싸움을 벌여 64회의 대승을 거두고 나머지는 무승부를 이루면서 사방으로 천리나 영토를 확장하였으니, 이는 모두 오기의 공이었다.

오자가 말하였다.

"옛날 나라를 잘 다스렸던 군주들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교화하고 만민과 친화를 이루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것은 人和(인화)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군주가 각별히 유념해야 할 不和(불화)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 않으면 군대를 출진시켜서는 안 됩니다.
둘째, 軍(군)이 하나로 뭉쳐있지 않으면 부대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셋째, 陳營(진영)이 단합되어 있지 않으면 나아가 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전투에 임하여 일사불란하지 않으면 결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때문에 영명한 군주는 반드시 나라의 화합을 이루고 나서 국가대사를 도모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혹시 군주 자신의 생각이 잘못일지 몰라 반드시 종묘에 고한 다음, 거북점을 치고 천시를 살펴 길조로 나타나야만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들은 군주가 자신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희생을 아까워한다고 믿게 됩니다. 이와 같이 된 후에 군주가 전쟁에 임한다면 병사들은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물러나 살아 남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무릇 道(도)란 근본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것이요, 義(의)는 마땅한 일을 실행하여 성취하는 것이며, 謀(모)란 해악을 막고 이로움에 나아가는 것이요, 要(요)는 업적을 보전하고 성과를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지도자의 행위가 도에 합당하지 않고, 그 조치가 의에 부합하지 않으면서 지위만 높게 있으면 반드시 재앙이 그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道(도)를 지켜 만민을 평안케 하고, 義(의)로써 매사를 처리하며, 禮(예)에 따라 행동하고, 仁(인)으로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의 덕을 잘 닦으면 나라가 흥성하고, 이를 소홀히 하면 나라가 쇠망하였습니다. 따라서 옛날 殷(은)나라 湯王(탕왕)이 폭군인 夏(하)나라 傑王(걸왕)을 쳤을 때 夏(하)나라 백성들은 오히려 기뻐했고,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나라 紂王(주왕)을 쳤을 때 殷(은)나라 백성들은 이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사는 바로 하늘과 민심에 순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릇 국가를 잘 다듬고 군사력을 기르려면 반드시 禮(예)를 가르치고 義(의)를 고취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알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크게는 적을 향해 공격하기에 충분하고, 작게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싸워서 이기기는 쉬워도 이를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다섯 번을 싸워 이긴 나라는 결국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요, 네 번 만에 이긴 나라는 피폐해질 것이며, 세 번 만에 이긴 나라는 覇者(패자)가 되고, 두 번 만에 이긴 나라는 王(왕)이 될 것이며, 한 번에 쳐 이긴 나라는 황제[帝]3)가 되리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여러 번 이겨서 천하를 손에 넣은 자는 드물고, 망한 자가 오히려 많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명분을 다투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익을 다투기 때문이며,
셋째는 증오심이 쌓였기 때문이고,
넷째는 나라 안이 어지럽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나라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쟁에 임하는 군대에는 義兵(의병), 强兵(강병), 剛兵(강병), 暴兵(폭병), 逆兵(역병)의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폭정을 물리치고 혼란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군대를 '義兵(의병)'이라 하고,
군사력만 믿고 정벌에 나선 군대를 '强兵(강병)'이라 하며,
분노로 인해 일으킨 군대를 '剛兵(강병)'이라 하고,
도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탐해 나선 군대를 '暴兵(폭병)'이라 하며,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동원한 군대를 '逆兵(역병)'이라 합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군대에는 각각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義兵(의병)에게는 반드시 禮(예)로써 대처해야 하고,
强兵(강병)에게는 겸양의 자세로 임해야 하며,
剛兵(강병)에게는 설득을 해야 하고,
暴兵(폭병)에게는 속임수로 응수하며,
逆兵(역병)에게는 권모술수를 써서 대적해야 합니다."

무후가 물었다.

"군대를 육성하고 인재를 등용하며 나라를 튼튼히 하는 방법에 관해 의견을 듣고 싶소."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옛날의 명군들은 반드시 君臣(군신) 간의 예의와 상하간의 법도를 세우고, 관리와 백성들이 저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하도록 하였으며, 풍습에 따라 올바르게 가르치고, 훌륭한 인대를 가려 뽑아 부족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옛날 齊桓公(제환공)은 5만의 군사로 覇者(패자)가 되었고, 晉文公(진문공)은 4만의 전위대로 자신의 뜻을 달성하였으며, 秦穆公(진목공)은 3만의 특공대로 주변 적대국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이처럼 강국의 군주들은 자기 백성들의 특성을 잘 헤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백성들 가운데 담력과 기백이 있는 자들로 한 부대[卒]를 편성하고,
기꺼이 전쟁터로 달려가 자신의 용맹과 충성심을 보이려고 하는 자들로 또 한 부대를 편성하며,
높은 곳을 잘 뛰어넘고 발이 빨라 잘 달릴 수 있는 자들로 다시 한 부대를 편성하고,
관직에 있다가 과실로 쫓겨나 다시 공명을 얻고자 하는 자들로 한 부대를 편성하며,
전에 지키던 성을 버리고 달아나 그 불명예를 씻고자 하는 자들로 한 부대를 편성하십시오.

이렇게 편성한 다섯 부대는 그야말로 군의 정예입니다. 이러한 정예들로 3천 명만 있으면 어떠한 포위망도 돌파할 수 있으며,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무후가 이렇게 물었다.

"진을 치면 반드시 안정되고, 수비에 들어가면 반드시 견고하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소."

그러자 오자가 대답하였다.

"바로 보여 드릴 수도 있는데 듣기만 하시겠습니까? 주군께서 유능한 자를 위에 앉히고, 무능한 자를 아래에 두실 수만 있다면 진지는 안정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며 관리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면 방어태세는 견고해 집니다. 또 백성들이 군주를 옳다 여기고 적국을 나쁘다 여기게 할 수만 있다면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이렇게  어떠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무후(武侯)와 오기(吳起)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요적(料敵)

요적은 상대를 아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적과 전투를 함에 있어서 기본을 설명한 편이다.

무후가 오자에게 물었다.

"지금 秦(진)은 우리의 서쪽을 위협하고, 楚(초)는 남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趙(조)는 북쪽에서 핍박하고, 齊(제)는 동쪽에서 대치하고 있소. 또 燕(연)은 우리의 후방을 차단하고 있고, 韓(한)은 전방에 버티고 있소. 이처럼 여섯 나라가 우리를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어 형세가 몹시 불리하기에, 과인은 이것이 걱정이오. 무슨 좋은 방책이 없겠소?"

이에 오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릇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은 무엇보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이미 이러한 경각심을 갖고 계시니 화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여섯 나라의 실상을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나라의 군대는 두터워 보이지만 견실하지 못하며, 진나라의 군대는 산만하여 제각기 싸우고, 초나라의 군대는 정연하여 보이나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또 연나라의 군대는 방어엔 능하지만 퇴각할 줄 모르며, 三晉(삼진)의 군대는 체제는 잡혀 있지만 실전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齊(제)나라의 국민성은 강직하고 국력도 튼튼하지만, 군주와 신하들이 모두 교만하고 사치를 즐기며 백성들에게 소홀합니다. 정치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계층 간의 대우가 불공평합니다. 진중에도 상하가 두 마음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앞은 두터우나 뒤는 허술합니다. 그래서 제가 '두터워 보이지만 견실하지 못하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리 부대를 셋으로 분리하여 그들의 좌우측을 급습하고, 후방을 위협하며 추격해 들어가면 그 진열은 반드시 허물어질 것입니다.

秦(진)나라는 국민성이 사납고 지세가 험준합니다. 정치가 엄격하며 상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서로 양보할 줄을 모르며 모두가 공명심에 불타 강한 전투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산만하여 제각기 싸운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탐낼 만한 미끼를 보여주고 유인하면 이들은 서로 이를 얻고자 장수의 지휘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이처럼 체계가 문란해진 틈을 타서 각개격파를 하고 매복공격을 가하면 틀림없이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楚(초)나라는 국민성이 여린 반면, 국토가 광대합니다. 따라서 외침이 잦아 정치가 늘 어수선하며 백성들은 지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정연하게 보이나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진지를 기습하여 기선을 제압한 뒤, 슬쩍 치고 재빨리 빠지는 전법을 반복합니다. 이때 단지 이들의 전투력을 소모시키며 지치게 만들되, 직접적인 교전은 피합니다. 이렇게 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燕(연)나라의 국민들은 고지식하고 매우 신중합니다. 또 용기를 중시하며 속임수를 잘 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방어에 능하나 퇴각할 줄 모른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적과 접촉하여 압박을 준 후, 약을 올리고 멀리 후퇴합니다. 추격하면 달아나는 척 하다가 갑자기 역습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적장은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고,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아군의 전차와 기병을 적절히 운용하여 후방을 차단하면 틀림없이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三晉(삼진)의 趙(조)와 韓(한)은 중원에 있는 나라라서 국민성이 온화합니다. 정치는 평온하지만 백성들은 거듭되는 전쟁에 이골이 나도록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장수의 권위가 높지 않고 녹봉도 아주 낮으며, 병사들은 죽음을 무릅쓰려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체계는 갖춰졌지만 실전에는 쓸모가 없다' 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막강한 진용으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며, 공격해 오면 저지하고 후퇴하면 추격함으로써 적군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지금 六國(육국)의 형세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魏(위)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부대든지 호랑이처럼 용맹한 병사가 있는가 하면, 힘이 세서 솥을 들어올리는 자도 있고, 걸음이 말보다 빠른 자도 있을 것이며, 적의 군기를 빼앗고 적장을 사로잡을 만한 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병사들은 선별하여 아끼고 우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군대의 핵심전력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가운데 각종 병기를 잘 다루고, 신체조건이 뛰어나며, 전투의지가 왕성한 자들은 반드시 직위를 높여주어야만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부모처자를 돌보아 주고,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병사들은 진지를 끝까지 사수하게 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이러한 점을 널리 헤아려 실천하신다면 두 배가 넘는 적도 능히 격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자의 말을 듣고, 무후가 말하였다.

"옳은 말씀이오."

오자가 말하였다.

"敵情(적정)을 살펴서 길흉을 따지지 않고도 싸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여덟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바람이 심하게 부는 혹한의 날씨에 아침 일찍 숙영시설을 거두고 병사들의 고통은 무시한 채 얼어붙은 강을 무리하게 건너려 할 때입니다.
둘째, 무더운 여름날에 출발에 늦어 행군 도중 휴식을 취하지 못했는데도, 병사와 말의 허기와 갈증은 돌보지 않고 계속 장거리 행군을 강행할 때입니다.
셋째, 출병한지 오래되어 식량이 떨어졌으며, 그 나라 백성은 조정을 원망하고 불길한 징조가 자주 나타남에도 군주가 이를 무마하지 못할 때입니다.
넷째, 군수품이 고갈되고 땔감도 모자란데, 날씨마저 악천후가 거듭되어 현지 조달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다섯째, 병력은 적고, 수질과 지형이 나빠 병사와 말이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증원군이 오지 않을 때입니다.
여섯째, 오랜 행군 중에 해가 저물어 병사들은 지치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귀찮은 나머지 식사도 하지 않고 갑옷을 벗고 쉬려고만 할 때입니다.
일곱째, 지휘관은 무능하고 간부들은 경솔하며, 병사들은 단결되지 않아 자주 동요하고, 상호간에 협조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여덟째, 진지 배치가 불안정하고 숙영태세도 엉성하며, 지형을 높은 곳에 선정해 절반 가량이 노출되어 있을 때, 이러한 적들은 지체없이 공격해도 무방합니다.

반면에 길흉을 따져 볼 것도 없이 적과의 교전을 피해야 할 경우는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력이 풍부할 때입니다.
둘째, 군주가 백성을 아끼고, 정치를 잘 하여 혜택이 전 백성들에게 골고루 미칠 때입니다.
셋째, 상벌이 공정하고 항상 적시에 이루어질 때입니다.
넷째, 전공을 세운 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입니다.
다섯째, 병력이 많고 군비가 충실할 때입니다.
여섯째, 외교에 능하여 유사시 인접국이나 강대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교하여 우리가 적보다 못하면, 절대로 싸움을 피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승산이 있을 때 공격하고, 어렵다고 판단되면 물러선다' 는 것입니다."

무후가 물었다.

"나는 적의 외형을 보고 내면을 파악하며, 적이 전진하는 것을 살펴 그 목표가 무엇인지 짐작함으로써 승부를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싶소. 여기에 관해 조언을 들려 줄 수 있겠소?"

그러자 오자가 대답하였다.

"전진해 오는 적이 산만하고 경계가 소홀하며, 깃발이 무질서하게 움직이고 병사와 말이 주위를 자주 살피면, 한 명으로 열 명을 무찔러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주변국과 동맹관계가 돈독하지 못하고, 군신관계가 원만치 않으며, 방어진지가 허술하고, 軍令(군령)이 엄격히 시행되지 않으며, 전군이 뒤숭숭하여 공격과 후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라면 절반의 병력만으로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백 번 싸워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후가 언제 적을 반드시 공격해야 하는지 묻자, 오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공격은 반드시 적의 허와 실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 약점을 노려야 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적이 먼 곳에서 막 도착하여 대오가 정돈되지 않았으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이 식사를 마치고 전투 태세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무질서하게 달리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이 일에 시달려 지쳐 있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불리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시기를 자주 놓치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이 먼 길을 행군하여 대열의 후미가 아직 휴식을 취하지 못했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의 병력이 절반쯤 강을 건넜을 때 공격할 수 있습니다.
험한 길이나 좁은 길에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깃발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진지를 자주 이동하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장수가 병사들과 떨어져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적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적들은 먼저 정예부대를 뽑아 돌파하고 본대를 나누어 계속 몰아치되, 신속히 공격해야 하며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3. 치병(治兵)

치병은 병사를 다스리는 법에 관해 설명된 편이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용병에서 우선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소?"

여기에 吳起(오기)가 대답했다.

"먼저 四輕(사경), 二重(이중), 一信(일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오?"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기고, 말이 수레를 가벼이 여기며, 수레가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기도록 해야 합니다. 지휘관이 지형을 잘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 경쾌하게 달릴 수 있을 터이니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길 것이요, 제때에 먹이를 주면 힘이 넘치므로 말은 수레를 가벼이 여길 것이며, 바퀴 축에 기름칠을 충분히 하면 수레는 사람을 가볍게 여길 것이고, 병기와 갑옷이 예리하고 튼튼하면 병사들은 싸움을 가벼이 여길 것이니 이를 四輕(사경)이라 합니다.

나아가 싸운 자에게는 큰 상을 주고, 뒤로 물러난 자는 무거운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이를 二重(이중)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벌의 시행이 공정하고 분명하여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이를 一信(일신)이라 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헤아려 시행하는 것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전투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오?"

이에 吳子(오자)가 대답하였다.

"잘 육성된 군대라면 승리합니다."

"병사의 수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오?"

"만약 군법과 지휘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상벌이 불공정하다면, 병사들은 징을 쳐도 멈추지 않고 북을 울려도 나아가지 않을 터이니, 백만 대군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른바 잘 육성된 군대란 평상시에는 예절이 깎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이 당당하여 공격에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면 쫓아오지 못합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좌우 이동이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면, 설령 부대가 단절되더라도 진을 유지하고, 분산되어 있더라도 대오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상하가 동거동락하고, 생사를 함께 합니다. 이러한 군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을 모르므로 어디에 투입해도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父子之兵(부자지병)'1) 이라 합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행군의 원칙은 전진과 정지의 법칙을 어기지 않고, 식사 때를 놓치지 않으며, 인마의 힘을 탈진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장수의 명령이 권위가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명령이 서야 잘 육성된 군대가 됩니다. 만약 전진과 정지가 무질서하고, 식사 시간이 부정기적이며, 인마가 피로해도 쉬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령이 서지 않은 이유입니다. 장수의 명령이 무너지면 그 부대는 평소에도 질서가 문란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패하게 됩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전쟁터란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습니다.2) 훌륭한 장수는 그 임전 태도가 마치 물이 세어 침몰하는 배나 불에 타 무너지는 집에 있는 사람처럼 결연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모가 뛰어나고 용맹스러운 적과 맞붙어 싸울지라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고로 용병에 있어서의 가장 큰 병폐는 주저함이요, 전군을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구심을 갖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군인이 전사하는 것은 통상 전투기술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전투에서 패하는 것은 전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병에는 교육과 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전투기술을 배우면 열 명을 가르칠 수 있고, 열 명은 백 명을, 백 명은 천 명을, 천 명은 만 명을, 만 명은 전군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3) 전술에 있어서는 먼 곳에서 오는 적을 기다리고,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적이 허기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圓陳(원진)을 갖추다가 方陳(방진)으로 바꾸고, 앉았다가 일어서고, 가다가 멈추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고, 전진하다 후퇴하고, 나누었다 합치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등 매번 변화하면서 훈련시키고 나서 여기에 숙달이 되면 비로소 병기를 다루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장수가 해야 할 일입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전투훈련 요령은 이렇습니다. 키가 작은 자는 창을 들고, 키가 큰 자는 활을 들며, 힘이 센 자는 깃발을 들고, 용감한 자는 징과 북을 들게 하며, 허약한 자는 잡일을 시키고, 영리한 자는 참모로 씁니다. 예하 부대간에는 서로 협력체제를 유지하여 서로 지원하고 보호하게 합니다.

부대 통제신호는 북을 한 번 치면 병기를 갖추고, 두 번 치면 陳法(진법)을 행하고, 세 번 치면 식사를 하고, 네 번 치면 출동채세를 갖추며, 다섯 번 치면 대열을 갖춥니다. 이렇게 해서 각 부대의 북소리가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에 비로소 軍旗(군기)를 세우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三軍(삼군)이 전진하고 멈추는 데에도 원칙이 있지 않소?"

吳起(오기)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조와 용두의 지형은 피해야 합니다. '天?(천조)'란 큰 계곡의 입구를 말하며, '龍頭(용두)'는 큰 산의 산기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진을 쳤을 때는 반드시 왼쪽에 靑龍旗(청룡기), 오른쪽에 白虎旗(백호기), 앞쪽에 朱雀旗(주작기), 뒤쪽에 玄武旗(현무기)를 꽂아 방위를 표시하고, 중앙에 招搖旗(초요기)를 세워 지휘소로 삼습니다. 전투에 임할 때에는 바람을 잘 살펴서 바람이 적을 향해 불면 함성을 지르며 공세를 취하고, 역풍이 불면 진지를 견고히 하여 수비를 해야 합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군마를 사육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어떻소?"

이에 吳起(오기)가 대답하였다.

"말은 거처를 편안케 하고, 먹이를 제때에 주며, 배가 고프거나 부르지 않도록 양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겨울에는 마굿간을 따뜻이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주며, 털과 갈기를 잘 깎아주고 발국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눈과 귀는 잘 덮고 가려서 놀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달리는 것을 연습하며, 나아가고 멈추는 것을 훈련시키고 사람과 말이 친숙해진 후에 써야 합니다. 안장, 굴레, 재갈, 고삐 등의 마구는 반드시 온전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말은 부리다가 손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처음 사육할 때 손상되며, 먹이가 모자랐을 때보다 너무 많이 먹었을 때 탈이 나는 법입니다. 먼 길을 갈 때는 종종 내렸다가 타도록 해서 차라리 사람이 피곤할 지언정 말을 지치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처럼 말이 항상 여력을 갖도록 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치에 밝은 자만이 천하를 누빌 수 있는 것입니다."


4. 논장(論將)

논장은 지휘관인 장수로서 갖추어야할 덕목과 적장의 능력을 알아보는 것의 중요함을 담고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文(문)과 武(무)를 겸비하는 것은 지휘관의 요건이요, 剛(강)과 柔(유)를 겸용하는 것은 용병의 요건입니다. 사람들이 장수를 논할 때 흔히 勇(용)만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勇(용)은 지휘관의 덕목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勇將(용장)은 무턱대고 적과 싸우려고만 하는 법입니다. 경솔하게 싸울 줄만 알고 득실을 살필 줄 모른다면, 훌륭한 장수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수가 늘 새겨야 할 사항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理(이), 備(비), 果(과), 戒(계), 約(약)이 그것입니다. 理(이)란 많은 병사들을 적은 인원 다루듯 지휘하는 '통솔력'이고, 備(비)는 문 밖에 적이 있는 것처럼 대처하는 '준비태세'이며, 果(과)란 적과 싸울 때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과감성'이고, 戒(계)는 전투에 이겨도 마음이 전투를 시작할 때와 같은 '신중성'이고, 約(약)은 군령이 간단명료하여 복잡하지 않은 '간결성'을 뜻합니다.

일단 출전명령을 받으면, 집에 알리지 않고 나아가 적을 무찌른 후에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지휘관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출전하는 지휘관에게 명예로운 죽음은 있을지언정 수치스러운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전투의 승패를 가늠하는 요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가 氣勢(기세)이고, 둘째가 地勢(지세)이며, 셋째가 用兵術(용병술)이고, 넷째가 戰鬪力(전투력)입니다.

백만 대군이라 하더라도 그 위용과 사기는 지휘관의 역량에 좌우됩니다. 이를 '기세'라 합니다. 길이 좁고 험하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지형은 열 명이 지켜도 천 명의 적이 지나가지 못합니다. 이를 '지세'라 합니다. 첩자를 잘 이용하고 기동부대를 적절히 운용하면 적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고, 군신상하간을 반목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용병술'이라 합니다. 전차나 배를 튼튼하게 만들도 잘 손질하며, 병사들에게 전투기술과 진법을 숙달시키고,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조련하는 것을 '전투력'이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잘 아는[智] 자라야 지휘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2)

여기에 지휘관이 위엄[威], 덕망[德], 어짊[仁], 용기[勇]을 갖추게 되면 부대를 잘 통솔하고,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부하들로 하여금 추호의 의구심도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명령을 내리면 부하들은 이를 어기지 않으며, 그 장수가 있는 곳에는 적이 감히 덤비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얻으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떠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인물을 훌륭한 장수라 하는 것입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무릇 북과 징과 방울은 병사들의 귀를 통해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며, 각종 깃발은 눈을 통해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고, 군령과 형벌은 마음을 통해 복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로 전달되는 소리는 뚜렷해야 하고, 눈으로 전달되는 색은 분명해야 하며, 마음으로 전달되는 형벌은 엄정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나라는 필경 적에게 패망하고 맙니다. 따라서 이르기를 지휘관이 명령하면 어디든지 따라 이동하고, 지시하면 죽더라도 전진한다 하였습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전투의 요결은 반드시 먼저 敵將(적장)이 어떤 인물인지 판단하고 그 능력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적의 모습에 따라 수단을 강구하면, 힘들이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적장이 만약 어리석고 남을 잘 믿는다면 속임수를 써서 유인합니다.
탐욕스럽고 명예를 가볍게 여기면 재물로 매수합니다.
변덕이 심하고 책략이 없으면 피로하게 만들어 곤경에 빠뜨립니다.
상관은 넉넉하고 교만한데, 부하들은 궁핍하고 불평하면 그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진퇴에 결단력이 부족하여 부하들이 믿고 따르지 못하면 놀라게 하여 도망치게 합니다.
병사들이 지휘관을 경시하고 향수에 젖어 있으면 평지를 차단하고 험지를 열어놓아 요격합니다.
진출은 용이하나 퇴로가 어려운 적은 계속 전진하도록 유도합니다.
전진하는 길은 험하고 퇴로가 평탄한 적은 근접하여 공격합니다.
적이 지내가 낮은 습지에 있어 물이 잘 빠지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리면 水攻(수공)을 씁니다.
적이 벌판에 있고 잡초가 무성하고, 바람이 자주 불면 火攻(화공)을 씁니다.
적이 장기간 주둔하여 병사들이 나태하고 전투태세가 허술하면 기습을 가합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양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적장에 대해 전혀 모를 때, 그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이에 吳起(오기)가 대답하였다.

"신분은 낮으나 용감한 자에게, 약간의 정예병을 딸려 보내 시험해 봅니다. 이들에게는 전과를 올릴 필요 없이 그저 도망쳐 오도록 지시하고, 쫓아오는 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때 만약 적군의 행동이 짜임새가 있으며, 추격을 하면서도 못 미치는 척하고, 미끼를 보아도 모르는 척하며 말려들지 않는다면, 그 적장은 智將(지장)이 분명하므로 섣불리 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만약 적의 부대가 소란스럽고 군기가 무질서하게 날리며, 병사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병기를 아무렇게나 잡으며, 기를 쓰고 추격해 오거나 미끼를 보고 혈안이 되어 달려든다면, 그 적장은 어리석은 자임이 분명하므로 적병이 아무리 많아도 능히 무찔러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5. 응변(應變)

응변은 상대나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할 점을 다루고 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전차와 말이 모두 튼튼하고 지휘관과 병사가 모두 용맹무쌍한데, 갑자기 적과 조우하여 질서를 잃고 대오가 흐트러지면 어떻게 하오?"

吳起(오기)가 이에 대답했다.

"통상 전장에서는 낮에는 깃발을 지휘수단으로 삼고, 밤에는 징, 북, 피리를 신호로 삼습니다. 가령 기를 왼쪽으로 휘두르면 병사들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오른쪽으로 휘두르면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또 북을 치면 전진하고, 징을 치면 정지합니다. 그리고 피리를 한 번 불면 행군하고, 두 번 불면 모입니다. 신호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군법에 따라 규율합니다. 만약 전군이 장수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고 병사들이 명령에 철저히 따른다면, 어떠한 적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고 아무리 견고한 적진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만약 적이 아군보다 수가 많을 때는 어찌하오?"

吳起(오기)가 이에 대답했다.

"평탄한 지형을 피하고, 험한 지형에서 적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하나로 열을 치는데는 좁은 곳이 가장 좋고, 열로 백을 치는 데는 험한 곳이 가장 좋으며, 천으로 만을 치는 데는 막힌 곳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소수의 병력이 있다고 할 때, 이들이 좁은 길에 있는 적에게 갑자기 징과 북을 울려댄다면 적은 아무리 병력이 많다 해도 혼비백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대를 거느리면 평지를 차지해야 하며, 소부대를 거느리면 험지를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적은 병력이 많은데다 훈련도 잘 되어 있고, 지형마저 우위를 점하여 전후좌우로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으며, 진지는 견고하고 무기도 강력하오. 군대의 위용을 보면 후퇴할 때는 마치 산이 움직이는 것 같고, 공격할 때는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하며, 게다가 식량도 충분하오. 이러한 적과는 오래 대치하기가 어려울 터인데 어찌 해야 하오?"

그러자 吳起(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단순히 외형적인 힘으로 대응하지 말고 전술을 써야 합니다. 먼저 1천대의 전차와 1만의 기병을 준비하고 여기에 따라 보병을 편성한 다음, 5개의 부대로 나누어 각각 배치합니다. 아군이 5개 방향으로 포진해 있으므로 적은 틀림없이 당혹하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심하게 될 것입니다. 적이 만약 수비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재빨리 첩자를 침투시켜 그들의 의도를 염탐하는 한 편, 사신을 보내 협상을 병행합니다. 적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므로 진형을 풀고 철수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적이 거부하여 사신을 죽이고 문서를 불태운다면, 즉시 5개 부대를 움직여 공격합니다.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추격하지 않고, 도중에 밀리는 것처럼 물러섭니다. 이와 같이 패한 척하면서 적이 쫓아오면 서서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공세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 부대는 적의 선두를 견제하고, 한 부대는 적의 후방을 차단하며, 두 부대는 은밀히 기동하여 적의 좌우를 급습합니다. 이처럼 5개 부대가 번갈아 공격하면 반드시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한 적을 치는 법입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적군이 우리 진영으로 육박해 오는데, 퇴로는 끊기고 아군은 매우 두려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吳起(오기)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우선 적군과 아군의 병력을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아군이 적보다 많다면 병력을 분산하여 적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아군이 숫적으로 열세일 때는 병력을 집중하고 임기응변의 전술로 대처해야 합니다. 변칙공격으로 의표를 찌르며 여유를 주지 않는다면 적이 다수라 해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계곡에서 적과 조우했는데 지형은 험하고, 병력도 열세라면 어찌해야 하오?"

吳子(오자)가 대답하였다.

"구릉이나 골짜기, 깊은 산이나 넓은 늪지와 같은 지형에서는 빠른 속도로 벗어나야지 절대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만약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쳤다면 반드시 북을 잡고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여 적이 당황하도록 하고, 射手(사수)들을 전진배치하여 활로 쏘아 죽이거나 사로잡습니다. 이때 적진의 움직임이 어떤지 유심히 살펴서 무질서하다면 주저없이 공격해야 합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좌우에 높은 산이 있고, 지형이 아주 협소한 곳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쳐 공격도 후퇴도 여의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오?"

吳起(오기)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를 谷地戰(곡지전)이라 합니다. 이때는 병력이 많아도 쓸모가 없으므로, 유능한 병사들만을 가려 적과 상대해야 합니다. 몸이 날랜 병사들에게 예리한 무기를 주어 앞에서 싸우도록 하여, 적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전차와 기병은 분산시켜 사방에 숨겨두고, 멀찍이 간격을 띄워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합니다. 적은 필시 진지를 강화하느라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본대는 대열을 갖추고 유유히 빠져 나와 산 밖에 진을 칩니다. 이렇게 되면 적은 틀림없이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때 전차와 기병을 움직여 계속 공격을 가함으로써 적에게 숨돌릴 여유조차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곡지전의 요령입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만일 물이 많은 늪지에서 적과 만나, 전차와 기병이 수렁에 빠지고 배도 없어 진퇴가 곤란할 때는 어떻게 하오?"

吳起(오기)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를 水戰(수전)이라 합니다. 이때는 전차나 기병이 쓸모가 없으므로 그대로 두고, 우선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살펴서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어느 곳이 넓고 좁은지, 어디가 깊고 얕은지를 낱낱이 알고 난 후에 적의 의표를 찌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적이 만약 물을 건너면 절반 정도를 건너갔을 때 공격합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연이은 비로 땅이 진창이 되어 말과 전차를 기동할 수가 없는데, 적에게 사방을 포위당하여 전군이 동요할 때는 어떻게 하오?"

吳起(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차는 보통 비가 오고 습하면 쓰지 않고, 맑고 건조할 때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형은 높은 지대를 선택하고 저지대를 피해야 합니다. 전차를 운용할 때에는 전진하건 멈추건 간에 반드시 이러한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적이 만약 전차를 움직일 때는 그 바퀴자국을 추적하면 됩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갑자기 匪賊(비적)들이 들어와 아군의 곡물을 노략질하고 가축을 탈취할 때는 어찌하오?"

吳起(오기)가 대답하였다.

"비적이 들어오면 우선은 그들의 전투력이 강한 점을 고려하여 수비를 강화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약탈을 마치고 철수할 때는 필경 짐이 무겁고, 혹시 공격을 받을까 마음도 불안하여 빨리 빠져나가는 데만 급급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적의 대열은 간격이 벌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때를 노려 추격해서 공격하면 비적들을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吳子(오자)가 말하였다.

"적국을 공략한 후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먼저 각 궁으로 들어가 관속을 통제하고 모든 기물을 접수합니다. 군대가 주둔할 때에는 함부로 양민들의 나무를 베거나 집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며, 곡식을 약탈하고 가축을 도살하거나 재산을 불태우지 않도록 하여, 백성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투항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이를 받아주고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6. 여사(勵士)

여사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담고 있는 편이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소?"

吳起(오기)가 이에 대답하였다.

"그것은 군주가 해야할 일인지라 신하인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는 군주가 포고령을 내렸을 때 백성들이 기꺼이 따르고, 나라가 동원하면 기꺼이 나아가 싸우며, 전투가 벌어졌을 때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를 갖춘다면 군주는 승리를 확신해도 됩니다."

武侯(무후)가 물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군께서 공이 있는 모든 자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시고, 공이 없는 자도 격려하십시오."

이에 武侯(무후)가 종묘의 뜰에 자리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세 줄로 앉히고 잔치를 열었다. 전공이 탁월한 자들은 앞줄에 앉혀서 고급 기물과 최고의 음식을 올리고, 약간의 공이 있는 자들은 가운데 줄에 앉혀서 조금 못한 기물과 음식으로 상을 꾸몄으며, 공이 없는 자들은 뒷줄에 앉히고 평범한 식탁을 차렸다. 그리고 연회가 끝나고 나가려 할 때, 유공자에게는 다시 賞給(상급)을 하사하였다.

문밖에 있는 그들의 부모처자에게도 상을 내렸는데, 이 역시 전공에 따라 차등을 주었다. 또 戰死者(전사자)가 있는 집에는 해마다 사신을 보내 그 부모를 위로하고 상급을 내림으로써 국가가 항상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였다.2)

이러한 일들을 시행한지 3년이 지났을 때, 秦(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西河(서하)를 침범하였다. 위나라의 장정들은 이 소식을 듣자 동원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스스로 갑옷을 입고 달려가 용감히 싸웠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秦(진)나라를 격퇴한 후 武侯(무후)가 오기를 불러 말하였다.

"그대가 지난 번 가르침을 준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소."

그러자 吳起(오기)가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 사람에게는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고, 원기는 왕성할 때와 침체될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군께서 시험삼아 제게 전공이 없는 자 5만을 주십시오. 제가 그들을 이끌고 적과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천하에 위신이 떨어지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한 명이 벌판에 숨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천 명이나 되는 인원이 그를 쫓는다 해도 겁먹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도적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명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면 천 명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5만의 군사를 죽기로 작정한 도적처럼 만들어 싸움에 임하면 아무도 상대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에 武侯(무후)가 승낙하고 별도로 전차 5백과 기병 3천을 딸려 보냈더니, 과연 秦軍(진군) 5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이는 바로 군사들을 잘 독려한 결과였다.

싸우기 바로 전 날, 오기는 전군에 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적의 전차와 기병과 보병을 맞아 싸워야 한다. 만약 우리 전차가 적의 전차를 사로잡지 못하고, 기병이 적의 기병을 사로잡지 못하고, 보병이 적의 보병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설령 적군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들의 전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3)

이에 전투가 벌어지자, 더 이상 명령이 없었는데도 그 위세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자료내용 위키 펌)



이처럼 오자병법(吳子兵法)은 전략이 아닌 실질적인 용병술이나 그 방법등에 관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알려진 그의 생애에서 보여지는 냉정한 모습과는 달리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지면 도망치더라도 같은편이 죽이는 것이 당연했던 고대에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을 세우지 못한자를 격려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병사의 등에 종기가 나자 오기(吳起)가 직접 고름을 빨아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둥

단순히 냉철한이다 라는 평가에 조금 의구심이 남기도 한다.

참고로 종기 빤건 이 병사 엄마가 전해 듣고 울며 말하길

"내 남편도 그래서 죽을각오로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었는데, 이젠 내 자식의 종기를 빨았으니 내 자식도 죽겠구나" 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있다.


심심하면 오자병법의 내용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은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