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이후 이야기, 저주받은 사마씨 비극의 진왕조

http://www.inven.co.kr/board/webzine/2097/1201627?iskin=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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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시대를 끝낸 사마씨의 진(晉)나라에서

백치와 요절한 황제들만 즉위한 저주 이후

그 사마씨의 진(晉)나라를 끝장 내고 이어진

남조 유씨의 송(宋)나라 이야기입니다.

후대에 등장하는 고려시대 중국의 송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유송(劉宋)이라고도 부르죠

제목에 19금을 붙인 이유는

이 왕조의 경우 독특하게 그냥 역사 이야기를 할 뿐인데

졸지에 고어, 호러, 엽기 시나리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왕조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 하면 막장 왕조입니다

보통의 국가라면 폭군 황제가 1명, 2명 등장하는데

남조 송나라의 경우 그냥 죄다 폭군인 나라죠

등극한 황제 9명 중에 6명이 폭군인 괴랄한 국가로

즉위한 황제들이 주로 하는일이

살인, 폭행, 강간, 윤간, 수간, 고문, 납치강금 입니다

행적을 축약하면

남자 친척은 고문, 난도질해 죽이고

여자 친척은 예쁘면 겁탈한다

(머리에 야동 1테라 외장하드를 쓴 황제 유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처음 부터 막장은 아닙니다

사마씨의 진(晉)나라를 끝장내고 남조 송나라를 개국한

초대 황제 유유는 전형적인 영웅이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자기계발 스토리의 그 주인공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다 결국 성공한 사람입니다

마치 한나라 유방과도 흡사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로

제갈량이 꿈꾸었던 북벌을 실제 달성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과거 중원을 잃고 촉땅이나 강남으로 밀려난 국가 중에

촉한의 제갈량, 동진의 환온과 같은 인물들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하여 중원을 되찾고자 그토록 노력했지만

전부 실패하였죠

하지만 유유는 그 꿈을 실제 이뤘습니다

동진(晉)의 장군으로 북벌을 나서서 장안성과 낙양성을 회복하고

북벌을 성공시킨 기염을 토합니다

(남북조 시절 남조 최대 영토를 차지한 송나라)

다만 반전이 이 북벌의 목적은 중원수복과 부흥이 아니라

전공을 세워 황제가 되는 거였음으로

딱 여기까지! 만 하고

회군하여 동진의 사마씨를 협박해 선양을 받아 즉위하니

사마씨의 뒤를 이어

개국한 나라가 남조의 송나라입니다.

그리고 즉위하며 황제 자리를 선양해 준

사마씨들은 모조리 도륙하여 씨를 말려 버렸죠.

이전 왕조시절 선양받는 대신 살려줘서 먹고 살게 해주던 미풍양속은

이때 끝장이 나게 되었습니다

송무제 유유에게 가장 큰 고민은 자식 농사였습니다

유유 자신이 젊어서 전쟁터를 떠 도느라 늦게 자식을 보았기에

아들들이 전부 어린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왕조의 미래를 책임 질 태자가 멍청했거든요

하는 일이 이토질 하는 우리 모습 마냥

그냥 죽어라 노는거 말곤 없었습니다

유유 본인도 이걸 알아서 태자를 폐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을 정도인데

그래도 신하들이 잘 보좌해 줄것이라 희망을 품고

황제 자리를 결국 물려 주게 되었으니

그가 2대 황제 유의부입니다

그리고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를 알려주며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쳐 놀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유유가 북벌을 하여 정복한 중원의 낙양 등 영토가

아들 유의부 때 전부 날아가 버렸고

유의부는 취미가 채찍으로 사람을 패는 것이고

하는 일은 궁궐에 술집을 만들어 술장사 놀이를 하는게 일이죠

보다 못한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유의부를 폐하여 연금했고

곧이어 죽이러 사람을 보내니 살려고 도망치다 붙잡혀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나이가 고작 18살이었죠

이때 신하들의 추대로 오른게

남조 송나라에서 그나마 멀쩡한? 황제 유의륭입니다

3대 황제 문제 유의륭이죠

사실 이때 유씨 황족들의 괴상한 가족력이

조금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개국 황제 유유의 자식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정상적인 애가 없었는데

태자인 유의부가 15세에 즉위하여

포악하고 무능했던 것은 알려졌고

그 동생인 유의진의 경우

12세에 북벌군 총사령관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일단 유유가 대체 뭔 생각으로

12살 애한테 이런 직책을 줬는지도 미스테리지만

놀라운건 12살 짜리가 그 와중에 한 짓이

전쟁터에서 학살과 약탈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유의부를 죽일 때 같이 죽였습니다

형들이 이 지경인데 동생은 그럼 멀쩡한가?

유의륭이 병이 들어 동생 유의강에게 정사를 맡겼더니

한다는 짓이 역적모의입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옹립한 것이라 어쩔수 없다고


관대히 용서해 줘서


그냥 살려주고 유배를 보냈습니다

근데 그 유배지에서 또 역적 모의를 하다 걸립니다 

 

또 관대하게 용서해 줘요

근데 막상 북벌을 앞두고 원정을 가려니

뒷통수가 너무 불편한거죠

결국 죽여 버립니다.

유의륭의 형제들이 이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유의륭은 내치를 잘했습니다

그의 집권 기를 원가의 치지라 부르며

이후 벌어진 생지옥 속에 살아가던 백성들이

그래 그땐 좋은 시절이었다

칭송하던 황제입니다

다만 그의 아주 작은 단점...

자기가 병법의 천재라 여겼다는 걸 빼면 말이죠

어느정도 신묘한 병법을 구사했는가 하면


낙양 원정군을 조직해 북벌을 보냈는데

수도에서 무려 1,400km 떨어진 지역에서 싸우는

낙양 원정군 지휘를 본인이 직접 하였습니다.


가장 빠른 역마로 서신을 전달해도

5~6일 걸리는 거리를 말이죠

그니까 적이 공격하면 공격도 수비도 못하고

그냥 쳐맞다 5일 뒤에 명령이 도착하면 움직인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기발한 원정으로

3번에 걸친 낙양 원정군은 모두 도륙당해 전멸했고

엄청난 규모로 개삽질을 한 전쟁의 피해로 인해

황하에서 양자강 사이에 있는 약

 500km 구간의 전 지역이

초토화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유유가 자식농사를 망쳤듯

유의륭도 그놈의 빌어먹을 유씨 황족놈들을 낳았죠

일단 장남인 태자는 개망나니고

둘째 아들은 넷쩨 딸인 여동생이랑 근친상간을 했습니다

유의륭이 이를 알고 빡쳐서 이를 어쩌나 고민하니

이 아들들이 반성은 커녕

이젠 옥으로 아버지 모습을 조각해

 땅에 뭍고 저주를 합니다


........


아놔 이 자식들 결국 죽여야 하나 고민하니

이젠 아버지 보고 그런 힘든 고민하시지 말라고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 옵니다

그렇게 유의륭은

쳐들어 온 아들의 칼날을 책으로 막다

손가락이 다 잘려나가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태자가 친 아버지를 죽여 버린

패륜살인입니다

그태자 유소는 이후 얼마 안되어 쫒겨났기에

비정통 취급을 받아

그냥 원흉 소라 불리워집니다

그때 태자를 쫓아낸게 셋째 아들 유소입니다

셋째가 궁궐로 쳐들어와 태자 유소를 죽이고 황제가 되니

4대 효무제 유준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들을 응징하고 황제가 되었는데

그저 가만히 있으면 유씨 황족의 혈통이 아니죠

태자 유소의 아내 은씨를 비롯해

4명의 아들 1명의 딸을

둘째 동생 시흥왕의 아내를 비롯해

3명의 아들 포함

그리고 그들의 일가친척 식솔 가솔 죄다 잡아다

잔인하게 고문하며 채찍으로 때린 후

상처에 독주를 부어 죽여 버립니다

참고로 태자 유소의 나이가 29살이었고

동생 시흥왕은 그보다 어렸으니

그들의 자식들은 고문당해 죽임을 당할 때

어린이와 유아들이었단 이야기입니다.

이때 형수인 은씨와의 대화가 가관입니다

은씨: "싸움은 니들끼리 했으면서 나는 왜 죽여?"

효무제 유준: "넌 아비(유의륭) 죽인 역적놈(유소)의 계집(마누라)이니까."

그래 여기까지도 아비를 죽인

역적을 처벌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나

이후 벌어지는 살육은 말 그대로 황족 사냥입니다

효무제 유준의 경우 성욕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사촌동생들과 근친상간은 그냥 일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머니와 밤을 새는 일이 많아

어머니와 간음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죠

패륜아 태자를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운

(사실 이 집안에서는 대체 누가 패륜이 아닌지 구분이 안되지만...)

유의선은 형주로 나가 변방을 10년간 지키고 있었는데

효무제 유준은

그 사이 도성에 사는 유의선 딸

즉 사촌 여동생들을 납치한 후 붙잡아

궁궐에서 간음을 하였습니다

이름도 은씨, 사씨로 고쳐 부르며 위장하고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당연 죽였죠

결국 숙부에게 이 사실이 발각되자

너무 죄송한 마음에 먼저 선수 쳐서

숙부의 집안을 멸족 시켜 버렸습니다

공을 세운 숙부도 이렇게 취급하는데

그의 동생들이 멀쩡할 리가 없죠.

일찍이 아버지 유의륭이 개망나니 자식 중에

그나마 멀쩡하다 여긴

여섯째 아들 유탄의 경우

말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쳐들어가


동생을 붙잡아 일족을 멸족시켜 죽였고

그의 일당 1천명을 비롯해

그가 주둔한 광릉성의 백성들 까지

단지 유탄이 사는 성에 살았단 이유로

모조리 학살해 버렸습니다

10남 유무 14남 유휴무 등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일족이 도륙당해 죽임을 당했죠

참고로 유의륭의 자식이 무려 18명이 있었지만

남조 송나라의 이런 환경 속에 유의륭의 자식은

단 한명도 생존 못하고 전부 멸족 당해 대가 끊어졌으니

대체 얼마나 죽어나갔는지 알수 있죠

그리고 이 효무제는 유씨 황족 가문의 성품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일화를 남겼습니다

개국 황제인 유유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개고생을 하였고 남의 집 종살이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유유는 국가를 창업하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를

후손에게 알리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

궁궐 안에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남의 집 종살이 할때 쓴 새끼줄이며 등롱 등을 전시하며

후손들이 이를 보고 깨달아 성군으로 자라나기를 바랬죠

효무제 유준은 황제가 된 후 궁궐에서

이런 창업 군주인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고

감동하여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할아버지 유유의 초상화를 가르키며)

저 노인네는 비천하고 더러운 농사꾼에 불과한데

감히 이런 황궁에 섞여 있다니 너무 과분한 짓 아닌가!"

개국 황제의 소박한 소망은

이처럼 훌륭하고 모범적인 막장 가문의 후손에 의해

싸그리 뭉개지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그의 시호가 무려 효무제입니다

효도 할 효 孝 무제

효무지 유준이 술과 여색 살인을 즐기다 35세로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이 즉위하니


5대 전 폐제 유자업입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저 사진의 인물 나이가

풋풋하고 순수한16살 소년입니다!! )

효! 무제 시호를 받은

아비를 쏙 빼닮은 유자업은

즉위 하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왕태후가 병으로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죽기전 아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유자업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16살의 효성스런 아들 유자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자가 있는 곳에는 (곧 뒤질거라) 귀신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귀신 있는 곳에 왜 가냐?"

진심어린 아들의 패드립을 들은 왕태후는 충격 먹고

내가 어쩌다 저런 자식을 아들이라고 낳았느냐며

자신의 배를 가르겠다고 절규하다 통한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자업은 어려서 총명하고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가 역사를 좋아했던게

무슨 선대의 미담과 교훈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조조가 전임 황제의 무덤을 도굴하기 위해 만든

도굴꾼 관직 발구중랑장

백성들의 무덤을 도굴하기 위해 만든 모금교위 등에

흥미를 느껴서 즐겨 읽었단

아주 작은 차이가 있죠

그 때문인지 즉위 후 바로 하려고 한 행동이

자기 아버지 효무제 유준의 무덤을 도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신하들이 기겁을 하며 말렸고

하고픈 것을 못해 분이 안풀렸는지 무덤에 똥을 뿌렸다고 하죠

대신 계모인 은귀비의 무덤을 파해쳤습니다

유자업이 이 처럼 그저 단순히 불효막심한 놈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가 아비를 능가하는 진정 미친놈이었단 것이죠

우선 무덤을 도굴한 은귀비의 10살 짜리 아들 유자란을 붙잡아 죽이죠

웃긴게 유자란이 이복동생인 동시에 육촌 동생입니다

그 은귀비가 사실은 앞서 언급한 효무제 유준이 납치한 사촌동생

유의선의 딸이거든요 유씨인데 은씨로 고쳐 위장한 것이죠

근친상간이 하두 벌어지다 보니 벌써 족보가 꼬인거죠

그리고

고작 16살에 즉위 한 어린 소년 유자업은

집안에 있는 유의공이란 작은 할아버지 어르신의 존재가

어린 마음에 너무도 부담스러워

어느날 작은 할아버지집에 그냥 쳐들아가

그 일가족과 식솔을 모두 도륙해 버렸습니다

그때 유의공의 4명의 아들이 함께 죽임을 당했는데

사지가 잘려지고 내장이 파헤쳐 지며 눈알이 모두 뽑혀서 죽임을 당했죠

유자업은 이들의 눈알을 뽑아서 꿀에 절여 담가

귀신눈깔 떡이라 불렀습니다

이어 고모를 황궁으로 불러서 강간하고 강금하였으며

이런 부끄런 사실이 알려지면 안되니

고모부와 그의 가족들은 모조리 도륙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순서

아직 살아남아 있는 숙부들을 잡아 고문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중 유욱, 유후인, 유후악 3명의 숙부가 살이 좀 쪘었는데

조카인 유자업 황제는 이들을 붙잡아

진짜 돼지처럼 돼지 우리에 넣어 사육을 시작했습니다

숙부들에게 각각 이름도 붙여 주었죠

"살인왕" "돼지왕" "도적왕"

하루는 유자업이 "돼지왕" 유욱을 죽이고자

정말 돼지를 잡듯 나무 봉에 손과 발을 묶어 들고 나가려 하자

유후인이 유욱을 살리고자 재빠르게 기지를 부려

"지금 돼지를 잡으면 안되고 황태자가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에 잡아 축하를 해야합니다"

다급히 외쳤고!!

 

그 말이 그럴싸 하게 들려서 유자업은

"그래 아껴두었다 나중에 돼지를 잡아야지"~ 하며


숙부 유욱을 잡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그 밖에 유자업은 자신의 친 여동생

산음공주와 근친상간을 즐겼고

돼지 우리게 같혀 있는 유후인의 어머니 양씨를

잡아 끌고와 음란한 성추행을 강제로 하였며

신하들을 시켜 윤간 하도록 하였습니다

황족 일가 친척 신하들과 간음을 하는건

이젠 따로 언급안해 될 거의 일상이었죠

역덕후인 유자업은 역사책을 보다

역사를 보니 주로 셋째 아들이

총애를 받고 대를 잊더라? 라며

황족 중에 셋째 아들을 그냥 이유없이

 붙잡아 죽이는 경우가 있던가 하면

황족 중에 그나마 멀쩡한 황족 유창이

지극히 순진한 이유인

"신임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려" 수도로 오려고 하자

저 놈을 죽이면 왠지 폼이 날거 같다는

지극히 유자업스런 이유로

붙잡아 죽이러하였고

유창은 이를 알고 가족들을 버리고

북위로 망명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다른 황족을 죽이듯

잔인하게 고문해 도륙 하였죠

아이러니가 훗날 남조 송나라의 유씨 황족이

 죄다 멸종하게 되었는데


이때 북위로 도망쳐 목숨을 건친

유창이 유일하게

유씨 혈통을 보존하여 제사를 잊게 됩니다 ㅡㅡ;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위에 장황하게 언급한 수 많은 엽기적인 미친짓들이

고작 즉위 1년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16살 소년이...

궁중에서 살인을 너무 일삼다 보니

이러다 우리도 다 죽겠다 여긴 환관들이 몰래 유자업을 죽여서

그의 미친 폭정이 다행스럽게??...중단이 되게 되었습니다

(중국 드라마 봉수황에 나오는 전 폐제 유자업, 글로 써도 그냥 심의에 걸리는 인물인데

이게 대체 드라마로 재현하는게 가능한가? 했더니 상당히 순화하고 미화하였다고 하네요 ㅡㅡ;;)

유자업이 1년 만에 갑작스런 죽임을 당하자

신하들이 모여서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였는데

그가 돼지우리에 같혀

하마트면 진짜 돼지처럼 잡힐 뻔 했던

돼지왕 유욱입니다

6대 명황제 유욱

(온순하고 복스러운 인상의 6대 명제 유욱)

유욱이 황제로 옹립 된 이유는

그가 유씨 황족 중에 가장 온화하고 착하고 순하다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 2대 황제 유의륭이

아들 중에 유욱만은 단아하고 온화하다 하여 총애했을 정도죠

그런 온화하고 유순한 유욱이 황제에 즉위하자..

무슨 가문에 숨겨진 살육의 본능이 눈을 뜨기라도 한것인지

가장 온순하고 유하다는 유욱에 의해

이전에 없던 말 그대로 학살의 대향연이 벌어졌습니다

일단 전 황제인 유준의 아들 28명이 전부 끌려나와

그의 식구들 식솔들 포함하여 대대적으로 도륙을 당했고

이어서 유씨성을 가진 형제 친인척들을

차례 차례 도육하기 시작하습니다

그 중에는 과거 돼지우리에 함께 같혀 핍박을 받을 때

함께 고생하고 기지를 발휘해 유욱의 목숨을 구해 준

유후인과 그의 가족들도 포함되었죠

그렇게 유씨 성을 가진 황족들은

가장 온화하고 순하며 착하다고 소문이 난

유욱의 손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전부 씨가 말려졌습니다.

앞서 북위로 도망을 간 유창과

병약 하여 제외된 유후범을 제외하고는

전부 죽임을 당하였기에

유욱 본인만 생존하게된 것이죠

이런 반전매력의 유욱은

돼지왕 별명 답게 폭식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복상사도 아닌 복창증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즉 너무 많이 쳐먹어서 죽은거죠

그의 나이 32세의 일입니다

(7대 후 폐제 유욱)

6대 명제 유욱의 뒤를 이어 즉위한게 장남인

7대 후폐제 유욱(동명인데 한자가 다름)입니다

6대 명제 유욱이 밥을 하두 쳐먹다 복창증으로 일찍 죽는 바람에

장남인 후폐제 유욱은 고작 10살의 나이에 즉위를 하였습니다

보통의 왕조국가에서

어린 황제가 즉위를 하게 되면

그것이 곧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되는데

하지만 우리의 막장 왕조 송나라의 경우

천만다행으로 즉위한 황제가 너무 어려서

국가적 차원의 살육과 전면적인 도륙을

아주 잠시 모면 할수 있었습니다...ㅡㅡ;;

하지만

그의 성도 결국 유씨인지라...

결국 15세가 되자..

유감없이 다시 일족의 모범적인 행동을 실천하게 됩니다

어느날 수행원들을 무장을 시키고

궁궐 문을 나서더니

갑자기 수도 건강 성내에 계엄령을 선포하고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지금부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라!"

수도 한 복판에서요..

네....그렇습니다

앞서 전폐제 유자업의 경우

패륜아, 근친상간, 일족을 죽이는 방법의 잔인함 등으로

그 악명을 떨친 평범한? 황제였다면

역대 폭군들과는

그 질과 차원이 전혀 다른

말 그대로 미친 살인귀 사이코패스 황제였던 것입니다.

일국의 수도이자 황제의 궁궐이 있는 도성 건강성은

무슨 몽골족의 침략을 받은 것도 무슨 함락이 된 것도 아닌데

황제의 즐거운 놀이로 순식간에 살육과 학살의 공간이되어

사람들이 이유없이 거리에서 죽어나갔고

집들 마다 문을 잡그고 숨어 지내며

거리에 인적이 끊어지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고작 15살...

한창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소년황제는

궁궐에서 각종 연장과 도구를 스스로 제작하는 걸 즐겼고

그렇게 만든 연장으로 사람을 붙잡아 와서 썰고 조각내며 놀았죠

자신이 만든 연장들을 매우 아끼어

꼬챙이 송곳 망치 톱 등에 각각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니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항상 쇠몽둥이를 옆에 끼고 살았는데

매일 그 쇠몽둥이로 사람을 패서 죽여야 그후 밥을 먹었고

그 쇠몽둥이로 사람을 패서 죽여야 그후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대체 이게 역사인지 고어, 호러 소설인지 구분이 안가는

미친 행동을 워낙 많이 했는데

몇가지 사례를 언급하면

도성 안에 심발이란 사람이 부자란 소문을 듣고

그 집에 쳐들어가서 심발 앞에서 재미삼아

가족들을 차례 차례 잔인하게 도륙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고

반쯤 미쳐버린 심발이 어린 소년 황제에게

너는 걸주와 같은 폭군이다 반드시 천벌을 받을거다 외치니

감히 황제게에 욕을 했다는 이유로

몸을 말 그대로 조각 조각 잘라내어 천천히 죽였죠.

길을 가다 사람을 잡아 죽인 후

안고 있던 아기를 해체해서 젖갈로 담그는가 하면

승려를 붙잡아 몸을 해체한 후

죽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재며 관찰하는 행동까지

황제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도 없거니와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상조차 못하는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의 살인을 즐겼던

말 그대로 살인귀였습니다

오직 살인에만 취미를 가진 개념 없는 초딩이란게

자신을 보호하는 소도성이 궁에서 잠이 들자

자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배가 나왔단 이유로 그 배를 과녁 삼아 활을 쏘며 놀았고

다행히 화살 촉이 없어 살아 남은 근위대장 소도성은

잠에서 깨어나 공포에 치를 떨며

조만간 죽을지 모른단 공포로 역모를 계획하게 됩니다

아니다 다를까 시중을 들던 양옥부에게

칠월칠석날 밤에 뜬금 오늘 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는지 확인해서

내일 보고하라 안그럼 죽는다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렸고

다음 날 죽는게 기정사실이 된 양옥부가

그날 밤 후 폐제 유욱을 죽여 그 목을 소도성에게 바치니

그가 훗날 제나라를 건국하는 고황제 소도성입니다

후 폐제 유욱이 죽었을 때

남조 송나라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수도 건강의 주민들은 이제 살게 되었다며

(무슨 비유가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건진 경우니,,.,)

눈물 흘리며 기뻐했다고 하니

말 다한거죠

심지어 송 명제 유욱이란 온화하고 순박한 황제가

유씨 성을 가진 황족들을 모조리 죽여서

이미 황족의 씨가 말랐기 때문에

송나라는 사실상 끝장이 난 상황이 되었습니다

앞서 2명의 황족이 유일하게 남았는데

북위로 도망간 유찬과

병약하여 목숨을 건진 계양왕 유후범입니다

그의 아들 유준을 황제로 옹립하였는데

그 11살 짜리 꼬마가

송나라 마지막 황제 순황제 유준입니다

일설에는 유씨 황족 중에 가장 개념 있는 황제였다라고도 하는데

사실 이놈의 혈통은 믿을 수가 없죠

아직 안커서 그렇지 그도 15살이 되면 뭐로 변신할지는....

소도성이 선양을 받기 위해 임시로 옹립한 황제였을 뿐이고

선양을 소도성이 강요하자

고작 어린 꼬마인데도

황제의 체통을 지킨다며 이를 거부하고 버티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선양을 강제하게 되고

순황제 유준이 궁궐로 도망을 치자

소도성은 폭력을 써서라도 끄집어 잡아오라 시켰고

숨어 있다가 결국 잡혀 온 꼬마황제는

울며 불며 다름과 같이 말했습니다

"결국 날 죽일거지!!"

이에 대답하길

"그냥 집만 다른 곳으로 조용히 옮긴다고 생각 하십쇼

과거 유씨들이 사마씨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황제 자리를 넘기는 선양 의식이 끝나고

그 말을 따라 과거 개국 황제 유유가 동진의 사마씨를 처리하였듯

꼬마 황제 유준을 포함 유씨성을 가진 마지막 혈족들은

모조리 색출되어 몰살 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