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꼬꼬마 초딩시절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작은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계셨는데 이 이야기는 그 분이 겪으신 이야기입니다
당시 그분께서는 폐병으로 상당히 몸이 좋지 않아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생겨 더이상은 마을에서 지내기가 어려워 식구들이 대충 산 속에 지어준 움막에서 닭 몇마리와 돼지 한마리를 가지고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했고 주변 잔가지들로 간신히 불을 떼고 매일아침 닭이 낳아놓은 달걀들로 대충 끼니를 떼우며 돼지도 거의 방목하다시피 키우고 간간히 오는 식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는 그런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여느때처럼 힘들게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깨 밖으로 나온 그 분은 마당 한구석에 닭들이 모여 시끄럽게 푸덕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쪽으로 다가가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하얀 거미 한마리가 닭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얀 거미는 이미 닭에게 한쪽다리가 잘려있는 상태였지만 계속 위협적으로 나머지 다리들을 움직이며 닭들과 맞서고 있었고 그 분께서는 거미보다는 혹시 거미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독에게 닭들이 죽을까 걱정이 되어 장대로 닭들을 쫓아내고 거미는 차마 손으로 만지지 못하고 장대 끝에 올려놓고 대충 나무 위에다가 올려놔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갑자기 눈앞에 뭔가가 툭하고 떨어지고 이게 뭔가 하고 내려다보니 거미줄로 둘둘 감긴 참새 한마리가 그 분 앞에 떨어져있어 순간 위를 올려다보았더니 어제 놓아주었던 그 하얀거미가 움막 지붕을 고정하기 위해 세워놓은 그 기둥에 거미집을 지어놓고는 그 분을 내려다보듯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허허, 세상에나 한낱 미물에게까지 내가 그렇게 불쌍해보였나'
그 어이없는 상황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 날 그 분은 참새를 구워먹고는 움막 주변에만 머물고 있던 행동반경을 매일매일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했고 하얀거미도 매일아침 그분이 밖으로 나올때마다 언제 잡았는지 모를 참새나 딱새같은 그런 작은 새들을 그 분 위로 떨어뜨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달정도가 지나고 그분에게 찬거리를 가져다주기 위해 오랫만에 그 분의 어머니가 움막으로 다시 찾아오셨고 이전보단 건강해보이는 아들의 모습과 하얀 거미의 행동에 놀라시며 다음날 약간의 전과 막걸리 한병을 들고 다시 움막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밥상에다 전과 막걸리 한사발을 올려놓고 그 분에게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게 하고 그 밥상을 하얀 거미가 있는 기둥 앞에다가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대충 만든 빨갛고 흰 비단천을 둘둘 감아놓은 목각인형을 꺼내 위에다가 올려놓고는 맞은편에 그 분을 세워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이 밥상을 향해 세 번 절해야 한다'
어머니의 말에 그 분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만 보자 어머니는 그 분의 등을 한번 찰싹 때리시고는
'시키는대로 어서 해'
하고 소리를 치셨고 그렇게 그 분은 밥상을 향해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발에 담긴 막걸리를 반만 마시게 하고 반은 기둥과 마당에 뿌리신 어머니는 그 분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이 거미의 이름은 백옥이고 니 색시다. 알겠지?'
하얀 거미가 보통 거미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마을의 무당에게 조언을 구했고 무당은 그 분과 거미를 결혼시키면 병도 낫고 가문에 좋은 일만 있을꺼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엉겁결에 거미와 혼인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연은 있었던지 그 분은 하얀 거미, 그 백옥과 그렇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백옥은 신기하게 평소에는 거미집에서 거의 움직임이 없다가도 그분이 밖에 나갔다고 돌아오면 마중이라도 하듯 기둥 밑에까지 내려와있었고 그 분이 어디가 안 좋아지시면 어디서 잡아왔는지 도마뱀이나 도룡뇽, 작은 뱀같은 것들을 그 분에게 떨어뜨려주었습니다
그 분도 백옥이 혹시 비라도 맞을까 거미집 위에다가 나무판으로 지붕을 만들어올려주고 나비나 잠자리, 메뚜기 같은 곤충을 잡아다가 마중해주는 백옥의 거미집 위에 붙여주었고 신기하게도 백옥은 겨울이 3번이나 지날때까지 그렇게 그 분과 살았다고 합니다
몸이 서서히 건강해지고 마음의 병도 낫기 시작한 그 분은 조금씩 마을과 다시 교류를 시작하였고 병원에서 폐병이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았을땐 예전의 밝고 건강한 사내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습니다
그 분은 너무 기뻤기에 색시에게 주기 위해 하얀 옥가락지까지 사서 움막으로 돌아왔고 거기엔 이미 백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뒤 몇날몇일을 백옥을 찾아 다녔으나 찾지 못하였고 더이상 혼자서는 살수 없었던 그분은 세간을 정리하고 산을 내려와 마을의 기름집에서 일하시다 그 집의 딸과 결혼해 4남2녀를 낳고 나름 알부자로 사시다가 여든이 넘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분이 죽기 전에 스님을 불러 유언 아닌 유언을 하셨는데
'스님 부디 제가 다음 생에는 거미로 태어나게 빌어주십시오. 거미로 태어나 거미색시 만나 다음 생에는 꼭 백년해로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분의 유품에는 낡은 하얀 옥가락지가 나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