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현충일 행사 때 보훈처가 코로나 때문이랍시고 천안함/연평 해전 생존자/유가족을 초청하지 않았다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건 다들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근데 이 쯤에서 불편하지만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지요. 6.25 이후 나라 위해 몸 바치고 목숨 바친 분들이 천안함/연평 해전/연평도 포격 뿐인가? 한 사건으로 대량의 전사상자/의사상자/순직자가 발생한 대표적 사례들을 몇가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1. https://www.yna.co.kr/view/AKR20100506055800065
2010년 4월 2일, 지난 3월 26일에 북괴의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의 수색/구조를 돕던 금양 98호 어선이 수색 임무 후 조업 구역으로 이동하던 중 캄보디아 선적 화물선과 충돌해 선원 9명(한국인 7명, 인도네시아인 2명)이 모두 사망/실종됨. 이 중 시신이 발견된 것은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각 1명 뿐이고 유가족들은 시신 없이 장례를 치렀음. 놀랍게도 이 분들은 2010년 6월 8일 최초 심사에서 의사자로 지정되지 못했고('조업 구역으로 이동하던 중'은 구조 작전이 아니라는 이유),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12년 3월 29일에야 재심사를 거쳐 의사자로 지정됨.

2.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03954&plink=ORI&cooper=NAVER
1980년 1월 23일 속초 해경 소속 경비정 72정이 악기상과 장비 고장으로 인해 표류하던 중 다른 경비함인 207함과 충돌해 침몰함. 승조원 17명 전원이 실종됐으며 그 선체는 2019년에 와서야 발견되었음.

3. https://namu.wiki/w/%ED%95%B4%EA%B5%B0%20%EB%8B%B9%ED%8F%AC%ED%95%A8%20%EA%B2%A9%EC%B9%A8%20%EC%82%AC%EA%B1%B4
1967년 1월 19일, 명태잡이 어선들이 동해상 NLL을 넘어 조업하는 것을 지도하던 우리 해군 PCE-56 당포함이 갑작스런 북괴군 122mm 해안포 공격으로 침몰함. 승조원 79명 중 51명이 구조되었으나 이 중 11명이 끝내 사망하고 구조되지 못한 28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음. 천안함 이전까지 6.25 이후 단일 사건으로 우리 해군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사건으로 알려져 있음.

4. https://namu.wiki/w/%EC%9A%B8%EC%A7%84-%EC%82%BC%EC%B2%99%20%EB%AC%B4%EC%9E%A5%EA%B3%B5%EB%B9%84%20%EC%B9%A8%ED%88%AC%EC%82%AC%EA%B1%B4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1968년 10월 30일부터 120명의 무장 공비가 침투했는데, 120명을 모두 소탕(113명 사살, 7명 생포)하는데 성공했지만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 23명, 우리 군경(예비군 포함) 38명의 전사자가 발생함.

5. https://namu.wiki/w/%EA%B0%95%EB%A6%89%20%EB%AC%B4%EC%9E%A5%EA%B3%B5%EB%B9%84%20%EC%B9%A8%ED%88%AC%EC%82%AC%EA%B1%B4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 1996년 9월 18일 25명(26명?)의 무장 공비가 잠수정을 통해 침투, 공비들이 직접 처형한 11명을 제외하고 14명(15명?)의 공비 중 13명을 사살, (1명은 실종?), 1명을 생포하였음. 이 과정에서 국군에선 12명의 전사자가 발생함.

6. https://namu.wiki/w/%ED%86%B5%EC%98%81%20YTL%20%EC%B9%A8%EB%AA%B0%20%EC%82%AC%EA%B1%B4
통영 YTL 침몰 사건. 1974년 2월 22일 해군/해경 신병 훈련 과정에 있던 해상병 159기 훈련병 316명이 충렬사 참배를 마치고 YTL(항만 예인정)에 탑승해 모함인 LST-815 북한함으로 복귀하던 중 YTL이 전복, 침몰하여 훈련병과 승조원 등 총 159명이 순직함. 당시 YTL의 탑승 정원은 150명이었지만(진짜? YTL이 어떻게 생겼나 직접 본 입장에선 그 YTL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면 이 150명이 정원이란 것도 사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음.) 훈련병만 316명을 태우는 '과적'을 했고, 그 결과 파도를 피하기 위해 급선회 했다가 복원력을 잃고 침몰한 군 당국의 인재임. 대한민국 해군에서 6.25 이후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은 전투로 인해 발생한 천안함 등이 아니라 현재까지 유감스럽게도 이 '사고'임.


이 외에도 1.21 사태 등 무장 공비 토벌 중 십수명 이상의 군경 사상자를 낸 사건이 더 있고, 규모/경위/전사자 신상 등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과거 6.25 이후로도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 간 교전으로 꾸준히 사상자가 나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북파 공작 중 전사한 인원에 대해선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더욱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또한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등 민주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던 시절, 시위대 뿐 아니라 전의경들 중에서도 사상자가 있었지만(부상자가 존재했음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만 사망자의 존재는 알음알음이라 정확하진 않음.) 역시 정확한 집계는 알려지지 않았죠.(부상자의 경우 특히 죽봉 파편이 안면 보호용 철망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실명되거나 화염병에 의해 중화상을 입는 등 중상자/후유 장애의 비율이 높았구요.) 앞선 사례들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복무 중 사고사(자살 포함), 의병 전역 하는 경우는 매년 꾸준히 사망자만 수십명(옛날에 비해 정말 많이 줄어들은 게 이 정도. 예전엔 똥군기 등으로 인한 총기 난사만 매년 한건 이상씩 터졌음.)씩 나오고 있습니다.

자, 이 모든 사건들에 비해 연평 해전/천안함 사건이 특히 더 부각되고 대접(코로나 사태로 인해 행사 참석 인원수 자체를 크게 제한해야 하는 상황에서 별도로 인원을 참석시키거나, '서해 수호의 날'을 별도로 지정해 기념하는 등)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댈 수 있나요? '최근에 일어났다' 빼고요.

천안함/연평 해전 그 분들의 희생이 다른 것에 비해 열등하다거나, 그 분들에 대한 보훈이 충분하고 합당하다거나, 유족들이 이기적으로 잘못 행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보훈처가 머저리들 소굴인 것과 별개로, 하지만 유독 이들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는 것에 어떤 함의가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천안함과 연평 해전이 부각되는 게 마치 박근혜 정부 때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 당시 유관순이 교과서에 없음을, '주체사상'이란 단어가 교과서에 실림을 부각하던 것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맥락과 원칙은 숨기고 특정 항목만 부각시켜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죠.

물론 현 정부 여당을 비롯한 범진보 세력과 그 지지자들이 예전에 천안함 사건/연평 해전에 대해 저지른 잘못은 작지 않습니다. 특히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시하며 보수 정권에 대한 비난 소재로만 활용하거나 사건에 대한 이해 없이 생존 장병들을 패잔병으로 모는 등의 행위는 백번 천번 사죄해 모자라죠. 현 정권에 와서도 기껏 오찬에 천안함 연평 해전 유족들 모셔 놓고 김정은 상판떼기 들어간 공보 자료 뿌렸다가 욕만 더 얻어 먹는 등 해서 안 될 실수 하기도 했죠. 하지만 정작 보수 세력들과 군은 천안함/연평 해전 당사자들에게 합당한 보훈과 예우를 시행했었나요? 앞서 언급한 수많은 다른 전사/순직자들께는 그만한 대우라도 했나요? 보수 언론들은 옆구리 찔러 절 받는다고 씹어대고 앞서 언급한 치명적 의전 실수 같은 사고도 있었지만 여러 기념식 때 천안함/연평 해전 당사자들께 현 정부 만큼이라도 의전과 예우를 제공했나요? 개헌 논의는 몇 차례 나왔지만 헌법재판소에서조차 문제 있다고 지적한, 박정희가 베트남 참전 유공자들 배상금 주기 아깝다고 국가배상법 개정 시도 했다가 대법원에서 사법 파동으로 저지 당하고 결국 유신 헌법 만들 때 아무도 손못대게 헌법에 때려 박은 게 아직껏 전해지는 헌법 29조 2항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폐지에 대해 보수 정당에서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인 적이 있나요? 이에 대한 대답이 무엇일지는 아마 잘 아시겠죠.

그런 주제에 뭣만 하면 천안함 연평도로 정치 공세를 펼치는 이 상황이 과연 정상일까요? 전사자들을 정치 공세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영면을 이루게 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남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