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매서운 칼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저녁부터 서울에는 한파가 들이닥쳤다. 진짜 겨울이 왔음을 느꼈다. 우연히도 이날은 신이라 불리는 '매드라이프' 홍민기와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날씨가 신의 퇴장을 노여워했는지, 퇴장한 신의 노여움이 날씨로 나타났는지. 이유가 있는 듯한 추위를 뚫고 밤 10시 서울의 어느 호텔에서 그를 기다렸다.

로비로 나온 '매드라이프'는 두리번 두리번 우리를 찾았다. 영락없는 20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북미 2부리그 소속 신생팀 골드 코인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긴다. '로코도코' 최윤섭이 감독으로 있는 팀이다. 늦은 시간까지 스크림을 하고 나온 그에게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다. "저희는 지금이 활동하기 좋은 시간이에요"라며 환한 모습을 보여줬다. 완숙한 대답이었다.

자리를 옮겨 카페로 가는 동안 그와 몇 마디를 나눴을때도 그저 건강하고 밝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음료를 주문하고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올스타전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귀국하면 팀을 쉽게 구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어렵더라고요. 그 사이에 로코('로코도코' 최윤섭)가 저를 정말 여러 번 설득했어요. 같이 하자고요. 대략 일주일 전에 계약을 하고 새로운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예전부터 '로코'가 말로 뭘 파는 건 잘했어요. 저한테 "넌 아직 빛날 수 있다"라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웃음). '로코'가 원래 일적으로 되게 프로다웠어요. 근데 이제는 인간 자체로도 괜찮아진 것 같아요(웃음). 스프링에 승격하고 섬머에 우승해서 롤드컵에 가자고는 하는데... 저는 남의 말보다 저의 신념이나 생각이 더 중요한데, 사실 '로코'가 용기를 준 게 도움이 되긴 했어요."

'로코도코' 얘기를 하면서 다소 차가운 말투였지만,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띄어졌다. 둘의 사이가 어떤지 대략적으로 짐작이 갔다. 툭툭거리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는 그런 소꿉친구. 해외 진출이 두렵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지만, '로코도코'가 있어 그런 걱정은 조금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에 임하는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교차해 있는 듯했다. 어떤 질문을 할까? 라는 한 구석의 궁금증과 곤란한 질문에 대한 각오. 조금은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가벼운 질문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에 대해 물었다.

"롤챔스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전 시즌에 준우승을 해서 정말 우승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팀원이 바뀌어서 아주 힘들었어요.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우승했을 때, 행복했어요. 반대로 아쉬웠던 때는 롤드컵에서 준우승했을 때였어요."

정상의 근처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터라, 역시 우승과 관련된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외에도 그 시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Mig, 아주부, 블리츠크랭크... 모두 팬들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있는 아름다웠던 순간들.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나 또한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가슴 벅차했고, LoL e스포츠를 사랑하게 됐으니. 감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매드라이프'가 있었다. 신은 그렇게 우리 가슴속에서 만들어졌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때마침, 팬이라며 종업원이 작은 쿠키 한 상자를 내어줬다. 화이팅 하세요! 라는 말을 덧붙이는 종업원의 얼굴에는 미소가 듬뿍 담겨 있었다. '매드라이프'로 인해 얻은 행복을 다시 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쿠키를 조금 먹고, 시계를 돌려 CJ가 처음으로 메인 스폰서가 됐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CJ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어요. 저도 정말 좋았고요. 하지만, 이후로 해외 대회에서도 부진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많이 들었던 팀이에요." 질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쁨보다는 죄송함의 표현이 많았다. 그에게 CJ는 아픈 손가락이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어려웠던 순간들에 관해 물었다. 2013년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당시 서포터 3밴을 당하며 집중 견제를 받았고, 그의 챔프 폭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서포터가 3밴을 당하면 다른 라인에서 캐리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LoL에서 서포터가 3밴을 당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사실 '매드라이프'를 빼고는 그랬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당시에는 서포터로 활용할 수 있는 챔피언이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스크림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대회에서 서포터 3밴이 나오더라고요.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서 내 기량을 잘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3밴을 당해도 저는 제 몫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대책이 더 필요하지 않았느냐고 느껴요."

"그때는 게임을 지면 모두가 못해서 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게임을 해야 좋은 팀워크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1% 정도는 아쉬움이 있네요."

고작 1%라니.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작은 수치다. 99%의 아쉬움을 표현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는 표정. 그에게서 묵묵한 리더와 팔로워의 모습이 모두 보였다.


2014년 CJ에 큰 위기가 왔었다.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가 2013년 말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로도 팀원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매드라이프'는 진짜 팀의 리더가 됐다.

"팀원들이 자주 바뀌었어요. 특히,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클템' 형이 나가면서 굉장히 힘들었죠. 저는 프로기 때문에 '꼭 이겨내야 한다'고 마음을 곱씹으며 해왔지만, 아쉽게 잘되지 않았어요. 팀원들의 교체가 많이 컸어요. 올해도 느낀 것인데, 교체가 자주 되는 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2016 스프링 때, 초반에는 대부분 제가 오더를 했어요. 신생팀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죠. 하지만, 벽에 부딪혔고 오더를 다 같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방향을 수정했는데도, 대회는 물론 스크림에서도 별로 좋지 못했죠. 자신감이 많이 결여됐었어요. 내가 책임지고 했더라면 더 좋지는 않았나라는 후회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제가 베스트를 해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내 플레이도 집중을 못 했고 오더에도 집중하지 못했어요."

2016 섬머, CJ 엔투스 부진의 화살은 대부분 '매드라이프'를 향했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는지 미움도 거셌다. "제가 베테랑이고,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못하면 제 탓입니다' 했어요. 비판은 그에 따른 대가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결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다. 결론은 자신의 탓이었다. 신이라 불렸던 게임에서는 최고를 내려놨지만, 인간 '매드라이프'의 마음만은 여전히 결코 작거나 적지 않았다.


어쩌면 리더라는 왕관이 버거웠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장기를 두는 사람이 아닌 장기 말이 더 어울렸다. 그것도 가장 위협적인 車(차). 성적을 봐도 그런 역할에 충실했을 때 가장 빛났다.

"성격적으로 내성적이고, 팀이 성적이 좋았을 때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보좌해주는 식으로 플레이할 때가 게임이 가장 잘됐고, 그것에 익숙했어요.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팀들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는 지휘관이 되어야만 했다. 정예병으로 구성된 군대가 아닌, 햇병아리 신병들로 구성된 팀의 지휘관. 그 위에 명문 팀이라는 무게를 짊어졌다. 또, 신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그를 얼마나 옭아맸을까.

"솔직하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받고 싶어서 받은 칭호도 아닌데' 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감사한 칭호에요. 다시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하고,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요."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프로'다운 자세를 끝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그 '프로'라는 의미 때문에 그에게 강등은 더욱이나 뼈아팠다고 한다. "처참하고 숨고 싶었어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살기 싫었던 날이었어요. 프로로서 수치스럽고 불명예였습니다"고 말하며 힘들었던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CJ 엔투스는 그가 남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신도 나이를 먹는다. 이제는 어느새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해외에서의 경험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해외를 선택했다.

오랜 숙소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숙소를 떠날 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팀을 나오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미 끝난 계약이고 뒤돌아봤자 여러 감정만 들 뿐이니까요. 앞을 보려고 했습니다. 이런쪽으로 내성이 쌓이고 싶지는 않지만, 예전에 '클템' 형이 나갔을 때, 상면이 형과 펑펑 울었어요. '빠른별'은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죠. 그런 경험들 때문에 내성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25살 청년 '매드라이프'에게 벌써 이별에 내성을 선물했다.



아직 날씨는 차갑다. 그러나, 만물의 섭리가 그렇듯이 봄은 찾아온다. 필연적으로. 1세대 프로게이머 '매드라이프'도 새로운 봄을 맞이해야만 한다. 그에게 새로운 봄은 어떤 것일까?

"초심을 그대로 가져가긴 힘든 것 같아요. 매년 초심을 생각하고 찾으려고 했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해왔던 것이 있어요. 경험을 녹여서 활용해야해요. 그리고 이제는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 기량도 당연히 녹슬지 않게 노력해야겠죠.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래도 당연히 목표는 승격과 우승입니다."

팬들에 대한 얘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아쉬운 작별 인사였다.

"한국 팬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너무 보고싶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남을까 고민도 했었어요. 하지만, 제 미래를 위해서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멀리 떠나는데, 한국에 있던 5년 동안 힘이 되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힘을 담아 미국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입지를 굳혀 북미 대표로 올스타에도 나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계속 응원 부탁드립니다"

골드 코인 유나이티드는 '로코도코'를 중심으로 코칭 스태프가 3명이 포진되어 있고, 팀원들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그가 직접 전했다. 새로운 팀에서 어쩌면 '매드라이프'가 다시 강력한 장기 말, 車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사진 : 박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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