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리자드 디아블로팀 '브라이언 킨드래건' 수석 작가

게임 스토리와 액션의 몰입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이야기를 중시하다 보면 액션에의 몰입감이 떨어질 수 있고, 반대로 액션성에 비중을 두고 개발을 하면 게임 스토리가 부실할 수가 있다. 양날의 검처럼 상반된 성격의 두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이 휼륭한 게임을 만드는 비결이다.

디아블로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해왔다. 블리자드 디아블로팀 수석 작가인 '브라이언 킨드래건(Brian Kindregan)'은 3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CGDC(중국 GDC)에 참가, '복잡한 일을 풀다:액션RPG 속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디아블로3 스토리를 구축하면서 겪었던 고민과 문제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도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특히, 디아블로3 발매 이후 확장판인 '디아블로 3 : 영혼을 거두는 자'를 출시하면서 어떠한 부분을 개선했는지 집중 조명했다.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그는 '고르디우스의 매듭(The Gordian Knot)'을 언급, 게임 속 스토리 구현과 뛰어난 액션 시스템을 동시에 구현하는 건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복잡한 문제라고 표현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The Gordian Knot):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칼로 잘랐다고 하는 전설 속의 매듭이다.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의 속담으로 쓰이고 있다.(※출처: 위키백과)

게임의 장르와 성격에 따라 게임 속 스토리의 중요도가 결정된다. 스토리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도 스토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장르에서는 스토리가 매우 중요하다. 유저 역시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게임을 즐긴다.

액션RPG는 어떨까? 플레이어는 액션RPG에서 일정 수준의 스토리텔링을 기대한다. 하지만 게임플레이를 방해하는 내러티브는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액션 게임이라도 '맥락(Context)'이 없는 게임은 유저에게 '도식표'와 같다. 그렇기에 긴장감 넘치는 액션RPG라고 해도 '스토리'는 필요하다는 것.



"사람들은 모두 '맥락'이 있는 콘텐츠를 좋아합니다. 설령 자신들은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 조차 말이죠. 스토리 없는 액션RPG를 하면 남는 건 공허감 밖에 없습니다.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요"

음악과 아트, 스토리 각각의 요소가 모두 게임 스토리의 맥락을 형성하는데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이다. 스토리가 있어야만 맥락을 위해 구현해 둔 음악과 아트가 제 역할을 한다.

가령 '티리엘'을 생각해보자. 티리엘은 디아블로 세계관을 상징하는 주요 캐릭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팀은 다른 어떠한 캐릭터보다도 '티리엘'의 외형과 관련 사운드를 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난 그래픽과 연출, 사운드가 있다 하더라도 '스토리'가 빠진다면 '티리엘'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0가 된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점이 '디아블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게임'이라는 부분이다.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잡아서 단시간 내에 남들보다 좋은 장비를 맞춰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의 전투 시스템을 빠른 템포로 구현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3'에서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녹여내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액션에 신경을 쓰게 되면 반복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유저는 이에 쉽게 질려버린다. 많은 개발사들이 반복적 스토리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형적인 스토리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새로운 문제점을 낳는다.

"스토리를 위해 게임플레이를 타협할 것인가? 혹은 게임플레이를 위해 스토리를 무난하게 갈 것인가? 최고의 중간점을 찾기 위해 개발자들은 엄청난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라도 좋지 않다면, 플레이어에게는 나쁜 경험으로 남게 됩니다"


그는 새로운 도전으로 '플레이어의 캐릭터와 연관짓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시네마틱 영상에서 케리건이나 짐 레이너를 통해 게임스토리를 보여준다. 인게임 내에서 이 캐릭터를 직접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네마틱 영상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게임 세계와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디아블로3에서는 주인공의 얼굴이 없었다. 직업도 6개나 되고, 어떠한 장비를 장착했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모습이 서로 다르다. 가령 헬멧을 쓰지 않은 유저가 헬멧을 쓰고 있는 캐릭터를 영상에서 본다면, 자신의 캐릭터와 매칭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어렵다는 것.

주인공 캐릭터는 배제하되 데커드 케인이나 티리엘 등 디아블로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을 트레일러 영상 속에 녹였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용병(Hired muscle)'으로써 디아블로3 세계 속에 몰입했다.



보다 나은 스토리텔링을 위해 디아블로 개발팀은 지금까지의 디아블로 시리즈를 참고했다. 1996년에 출시된 '디아블로'에서는 성우의 목소리 톤과 분위기, 스토리를 조합해 스토리를 전달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전투에만 임할 수 있었다.

디아블로2 역시 전작과 유사한 방식을 채택했다. 기존 스토리 전개 방식에 더욱 넓어진 범위를 가미해 전작에 비해 풍부해진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디아블로3로 오면서 개발진들은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독백이 아닌 두 캐릭터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 인게임 스크립트 씬도 다수 도입했다. 나아가 '추종자'라는 시스템을 도입, 새로운 방식으로 스토리에 접근했다.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던 부분도 있는 반면 의도와는 다르게 작용한 실패요소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디아블로3의 확장팩인 '영혼을 거두는 자'가 등장했다.

"우리는 디아블로3에서의 실험을 재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을 확장판 개발에 모두 적용했어요. 기존 디아블로3에는 없던 새로운 요소를 도입해보기도 했고요. 물론 모든 도전이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요"

브라이언 킨드래건 작가는 게임 내 이벤트 씬과 관련해 "완벽한 퀄리티로 구현할 게 아니라면 없는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예시로 그는 '케인의 죽음(The death of Cain)'을 거론했다.


"내부에서는 '이정도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케인의 죽음을 표현했습니다. 다른 핵심 콘텐츠가 많았기에 크게 비중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게이머들이 혹평을 하더라고요. 차라리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 전달하는게 임팩트가 더 있었을 법 했죠"

이와 관련해 그는 "Less is more"이라고 표현했다. 스토리와 관련해 어줍잖은 부분이 많이 들어가는 것 보다는 없는 편이 낫다는 것. 스토리를 설명하는 이벤트 씬이 없다면, 적어도 플레이어는 그 소식을 머리 속 상상으로 그려낼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줄거리(Plot)'에 대해 말했다. 줄거리는 다른 요소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쉽게 변경할 수 없으며, 줄거리를 변경하고 싶을 때는 다른 게임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토리와 게임플레이의 중간 타협점을 찾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초창기 게임들은 '스토리'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고 개발되었다. 하지만 액션 RPG는 최종적인 게임의 형태가 되었다.


'스토리와 게임플레이, 어느 쪽을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에서부터 도출된 결과는 '스토리 모드와 어드벤처 모드를 별도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한 쪽 모드에서 느꼈던 부족함을 다른 모드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Antagonist)은 내러티브 속에서 핵심 캐릭터이다. 디아블로3에서는 '디아블로'가, 확장판에서는 '말티엘'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요소를 강조하는 것이 게임 스토리를 부각시킨다.

경험에 입각한 규칙, 부족한게 많은 것보다는 낫다는 교훈, 줄거리를 대표하는 캐릭터, 스토리 모드와 어드벤처 모드, 적대적 관계의 주요 캐릭터 설정을 모두 조합해 게임 속에 녹여야 한다. 그것이 브라이언 킨드래건 작가가 말하는 '액션RPG 속 스토리와 게임플레이 최적의 타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