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수들의 뛰어난 피지컬과 화려한 스킬 연계로 이뤄지는 한타 싸움이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잘하느냐 못하냐에 따라서 피지컬 차이와 글로벌 골드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밴픽 전략과 운영 방법이다.

핑크와드 코너는 2015 스베누 LoL 롤챔스 코리아 섬머에서 치열함이 느껴지는 명승부 혹은 밴픽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경기를 선정하여 보이진 않지만, 게임 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밴픽 전략, 전술과 운영에 대해서 다룬다.

오늘 선정한 경기는 지난주 가장 뜨거웠던 경기다. 밴픽부터 전략 그리고 전술까지 모든 것이 다 나온 종합 선물 세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의 예상을 뒤엎어 며칠 동안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CJ 엔투스와 SKT T1의 3세트를 분석해보겠다.


■ 밴픽에서 시작된 전투 그리고 CJ 엔투스가 웃었다.

밴 단계에서 CJ 엔투스의 노림수가 돋보였다. '마린' 장경환의 모스트 챔피언이자 탑 1티어 챔피언들인 마오카이와 럼블을 묶고 SKT T1이 라이즈에 대해 욕심을 낼 상황을 만들었다. SKT T1은 라이즈를 풀어도 CJ 엔투스는 가져가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라이즈를 선택해 탑부터 주도권을 잡아 15연승을 달성하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라이즈가 탑 1티어로 자리잡은 이번 시즌 내내 CJ 엔투스는 한 번도 탑에서 라이즈를 꺼내 들지 않았다는 근거를 기반으로 한 선택이었다.

▲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

SKT T1은 2세트에선 라이즈를 밴 했다. 그러자 '샤이' 박상면의 쉔이 날뛰었다. 3세트 시작전 SKT T1의 코치진과 선수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라이즈를 살려도 CJ 엔투스는 안 쓸 거야 그냥 쉔 밴 하자'라고, 그 생각을 읽은 듯 박상면이 라이즈를 꺼내 들었다.

SKT T1의 입장에서는 밴픽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아니 박상면이 탑 라이즈를 한다고? 대부분 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SKT T1은 당황하지 않고 대회 경험이 적은 '트릭' 김강윤이 2세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렉사이를 뺏어왔다. 코르키는 '뱅' 배준식의 필승 카드이자 '삼위일체'가 나왔을 때 가장 강력한 원거리 딜러다. SKT T1의 강점인 초중반 스노우 볼을 굴리는데 가장 최적화된 원거리 딜러다.

▲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

CJ 엔투스가 코그모와 아지르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페이커' 이상혁의 트위스트 페이트(이하 트페)가 나왔다. 이 선택엔 2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상대가 어떤 챔피언이든 반반 싸움 이상을 할 자신 있는 이상혁의 자신감. 두 번째는 생존기가 없는 라이즈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게임을 터트리겠다는 픽이었다. 마오카이와 럼블이 밴 당한 상황에서 '마린' 장경환은 문도 박사라는 수동적인 픽을 골랐다. 라이즈를 상대로 나쁘지 않은 픽이지만 장경환과 SKT T1에게 어울리지 않는 픽이다.

▲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

SKT T1의 하나하나 챔피언을 봤을 때 굉장히 좋아 보였다. 코르키는 SKT T1의 강점인 스노우 볼을 만들 수 있는 챔피언이고, 렉사이는 적의 픽을 뺏어옴과 동시에 '벵기' 배성웅의 베스트 챔피언이다. 트페는 라이즈를 말리게 해 경기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울프' 이재완의 알리스타는 말할 것도 없다. '마린' 장경환의 문도 박사도 성장할 수록 라이즈를 상대로 주도권을 가질 수도 트페와 타워 다이브를 할 수 있는 좋은 챔피언으로 보였다.

그런데 전체적인 그림을 보자 뭔가 이상했다. 코르키가 강력한 타이밍에는 문도 박사가 성장해야 하고 트페도 아지르에게 라인 주도권이 밀리는 챔피언이다. 그렇다. SKT T1이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스노우 볼 굴리기의 첫 단계인 스노우 볼 생성이 불가능한 조합이었다. 첫 단추부터 SKT T1은 주포 하나를 떼고 시작했다. 반면 CJ 엔투스는 상대 조합을 잘 받아칠 수 있는 카드들로 강력한 한타 조합을 완성했다.


■ 하지만 역시 SKT T1은 강했다.

CJ 엔투스가 분명히 밴픽에서 앞섰고 조합을 잘 짰다. 누누와 브라움이 단단하게 앞에서 버텨주고 딜러들과의 시너지도 좋은 조합을 만들었다. 라이즈는 웬만한 조합에서 무난히 성장 한다면 상대에게 악몽을 선사할 수 있는 챔피언이다. 거기다 라이즈가 초반부터 킬을 먹고 성장에 가속이 붙었다.

자칫 문도 박사가 완벽하게 말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SKT T1은 정말 뛰어난 판단을 내렸다. 자신들이 손해를 봐도 문도 박사가 크지 못하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라이즈를 계속 아래로 불러 문도 박사의 성장 시간을 벌었다. 만약 SKT T1이 아니라 다른 팀이었다면 '탑 라이너 간의 성장 차이가 나니까 당분간 성장에 집중해 후반을 노리자'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라인전 성립이 안 되는 탑 라인전에서 성장 격차가 점점 벌어져 한타에서 탑 라이너의 격차로 패배했을 것이다.


▲ 팀원의 희생으로 성장한 문도 박사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클릭시 확대).

'코코' 신진영의 아지르와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몇 차례의 슈퍼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면 CJ 엔투스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챔피언의 상성에서 밀려 라인 주도권을 쥘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운영을 보여준 SKT T1은 국내 최강임이 틀림없다.


■ SKT T1의 아쉬운 점...

SKT T1의 아쉬운 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밴픽 단계에서 '샤이' 박상면은 라이즈를 하지 않을 거야' 라는 방심이다. 박상면의 라이즈가 나오자 SKT T1의 밴픽이 꼬였고, 초중반 스노우 볼을 만들 수 없는 조합밖에 할 수 없었다.

▲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

두 번째는 마지막 한타에서 나온 두 번의 실수다. 먼저 '울프' 이재완의 알리스타가 점멸과 함께 배후를 진입한 상황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 완벽함은 일 초 뒤 브라움을 밀며 아쉬움으로 탈바꿈했다. 이어서 더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했다. '페이커' 이상혁이 아지르를 보고도 사거리 안으로 파고들어 허무하게 전사했다. 만약 트페가 아래 방향으로 움직여 코르키와 함께 앞 라인을 공략했다면 SKT T1이 '드래곤의 위상'의 힘으로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패배가 꼭 독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한 예방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SKT T1은 너무 오랫동안 이기기만 했다. 패배를 교훈 삼아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면 다시 한 번 세계 왕좌에 SKT T1이라는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