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동안 이어진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5가 SKT T1(이하 SKT)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한국의 롤드컵 3연패이자 사상 최초로 롤드컵 2회 우승 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013년 SKT T1 K의 멤버들 중 남은 사람은 '페이커' 이상혁과 '벵기' 배성웅 둘 밖에 없었지만 SKT는 바뀐 전력을 가지고도 또 한 차례 롤드컵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룩했다.

예전부터 세계 최고의 미드란 소리를 듣던 이상혁은 이번 롤드컵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특히 결승전 마지막 4세트에서 라이즈를 골랐을 때는 같은 팀원조차 보지 못한 킬각을 보면서 룰루를 솔로킬하고 온 맵을 휘저으며 그야말로 자신의 독무대를 만들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성까지 갖춘 이상혁이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 솔로랭크 1위, 화려하게 나타난 신성


이상혁은 데뷔 때부터 대단히 화려했다. 당시 '고전파', '장병기마스터', '광진이야' 등 솔로랭크 3대장을 한 데 모으면서 기대를 받았던 SKT 소속으로 출전한 이상혁은 아이디를 '고전파'에서 '페이커'로 바꾸고 올림푸스 롤챔스 스프링 2013에 참가했다.

일부 팬들은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솔로랭크 유저가 프로 무대에서 얼마나 잘 하겠느냐'는 우려를 표했지만, 이상혁은 화려한 플레이로 이런 우려를 단번에 종식시켰다. CJ 블레이즈와의 데뷔전에서는 라인전이 센 챔피언도 아닌 니달리로 강찬용의 카직스를 솔로킬했고 MVP 블루와의 경기에서는 당시 프로 경기에서 보기 힘든 챔피언이었던 르블랑을 꺼내 20분 내내 사방에서 킬을 만들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SKT는 결승전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데뷔 무대에서 3위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고, 이상혁은 결승전에 진출한 선수들보다 더 강하게 팬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진 핫식스 롤챔스 섬머 2013에서 이상혁은 더 넓어진 챔피언 풀을 자랑하더니 4강에서 자신을 계속 괴롭히던 '다데' 배어진이 속한 디펜딩 챔피언 MVP 오존을 넘어섰다. kt 불릿츠와의 결승전 5세트에서는 체력이 1/3도 남지 않은 제드로 풀체력의 '류' 류상욱의 제드를 솔로킬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 장면은 2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의 명장면이 됐다.

▲ 넌 자유의 몸이 아냐,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롤드컵 시즌3에 참가한 이상혁은 매 경기마다 라인전에서 지는 일이 거의 없었고, 미드 리븐이라는 참신한 카드까지 꺼내들어 상대를 족족 쓰러뜨렸다. 4강 나진 블랙 소드와의 대결에서 '나그네' 김상문의 그라가스에게 상당히 고전을 했지만 자존심을 접고 4, 5세트에서 그라가스를 밴하면서 오리아나로 게임을 하드캐리, 팀을 롤드컵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로얄 클럽은 이상혁을 견제하기 위해 오리아나를 밴하고 미드를 집요하게 갱킹했지만 그 정도로 이상혁을 막지는 못했다. SKT는 이상혁을 포함한 전 라이너들의 압도적인 기량을 바탕으로 첫 진출한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팀을 창단한 지 불과 약 6개월 만의 일이다.

WCG 4강에서는 삼성 블루의 미드라이너 '폰' 허원석에게 완전히 밀리면서 자존심을 구겼으나 이어진 판도라TV 롤챔스 윈터에서 삼성 블루를 격파하며 완벽하게 복수에 성공했다. kt 불리츠와의 4강에서는 롤드컵에서 큰 재미를 본 미드 리븐을 꺼내 류상욱을 또 압도하면서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도 배어진을 게임 내내 솔로킬하면서 찍어눌렀다. 그리고 결과는 롤챔스 윈터 무실세트 전승우승. 그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가 없어보였고, SKT의 전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 무너지는 전설, 쇠락한 챔피언

그러나 다음 시즌인 핫식스 롤챔스 스프링 2014 시즌, 연승을 거듭하던 이상혁과 SKT T1 K는 형제 팀인 SKT T1 S에게 연승이 끊겼고 이와 관련된 악성 루머에 시달리면서 팀의 전체적인 기량까지 크게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이상혁의 플레이는 뛰어났지만 안정감은 부족했고, 바뀐 메타에 적응을 하지 못한 듯 불안불안한 경기를 펼치다가 8강에서 삼성 오존의 불도저 메타를 막지 못해 1:3으로 패배, 탈락하고 말았다.

NLB에서 SKT T1 K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한참 열세인 프라임 옵티머스를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상혁만이 상대의 챔피언들을 하나 둘 암살하면서 힘겹게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4강에서 CJ 프로스트에게 패배했다. 이 경기에서는 이상혁도 제 기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고 그저 계속해서 상대의 집중 견제와 갱킹에 당해 죽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혁의 폼이 바닥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LoL 올스타전에서 프나틱을 만나 제드를 선택한 이상혁은 바론을 가져가는 상대에게 단신으로 돌격, 적 정글러인 '사이네이드'의 카직스를 솔로킬하고 바론까지 스틸하는 장면을 연출했고, 꺼내기만 하면 승리를 보장해주는 카드인 르블랑으로도 게임을 하드캐리했다. 국내에서는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한 SKT T1 K와 이상혁이었지만, 여전히 일류임을 입증하면서 LoL 올스타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LoL 올스타전 우승은 했지만 이어지는 정규 시즌에서는 거짓말처럼...

하지만 LoL 올스타전 우승의 기쁨도 잠시, SKT는 삼성 화이트에게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핫식스 롤챔스 섬머 2014 8강에서 SKT T1 K는 전 시즌에서 자신들을 탈락시킨 삼성 화이트(스프링 당시 삼성 오존)를 만나 1세트를 따냈고 2세트에서도 허원석을 라인전에서 완전히 찍어누르며 게임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이상혁은 오리아나의 궁극기를 허공에 사용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그대로 게임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2세트 내내 팀을 끈질기게 떠받치던 이상혁이 단 한 번 실수를 하자 SKT T1 K는 무너졌고, 곧바로 3, 4세트를 내리 내주면서 또다시 1:3으로 패배하면서 탈락했다.

결국 조금씩 쇠락하던 이상혁과 SKT T1 K는 롤드컵 선발전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앞서 펼쳐진 2-3위 결정전에서 SKT T1 K는 또 삼성 화이트를 만났다. 이 경기에서 이상혁은 허원석에게 3세트 연속으로 솔로킬 겸 퍼블을 내주는 대굴욕을 겪었고 삼성 화이트는 3:0으로 압승, SKT T1 K의 천적이 되었음을 증명하면서 롤드컵에 진출했다. SKT T1 K는 롤드컵 선발전 준플레이오프부터 꾸역꾸역 올라온 나진 화이트 실드를 만났으나 3세트를 제외하고는 SKT T1 K다운 경기를 하나도 펼치지 못했다. 4세트에서 이상혁은 제라스로 분투하며 바론 스틸까지 해냈지만 혼자서 모든 상황을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 결국 SKT T1 K는 1:3으로 패배, 전 시즌 롤드컵 챔피언이 롤드컵에 진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상혁의 기량만큼은 여전히 최고급 미드란 칭호를 받기 부족함이 없었으나, 누구를 만나도 미드를 박살내던 포스는 많이 옅어졌고 결국 이대로 '영고라인'에 입성하는 것 같았다.


■ 왕년의 챔피언, 더 강해져서 다시 돌아오다!

삼성 화이트, 삼성 블루 멤버들의 전원 이탈과 더불어 SKT에게도 멤버 변화가 찾아왔다. 롤드컵 시즌3 우승을 일궈낸 주역들 중 '임팩트' 정언영, '피글렛' 채광진, '푸만두' 이정현이 모두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남은 것은 이상혁과 배성웅 뿐이었다. 격동의 시기에 SKT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도약할 준비를 했다.

▲ MSI 패배는 SKT를 각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2015 스베누 롤챔스 스프링에서 이상혁은 다이애나, 애니비아, 이즈리얼 등 온갖 다양한 챔피언들을 꺼내들면서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이지훈' 이지훈이 3세트 연속 출전하면서 본인이 등판하지는 못했으나 팀은 3:0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했다.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에서 결승까지 진출했다가 중국의 EDG에게 일격을 당해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이 패배는 SKT에게 엄청난 보약이 되었다.

스베누 롤챔스 섬머에서는 더욱더 다양해진 챔피언 풀로 상대를 괴롭혔다. 미드 이렐리아, 코그모, 마스터 이 등 상대가 생각도 하기 힘든 기괴한 픽을 했고 그 때마다 대부분의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완벽하게 부활한 이상혁, 그리고 긴 부진에서 탈출한 배성웅의 대활약으로 SKT는 섬머 정규 시즌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며 절대자의 포스를 보였다. MSI에서의 패배를 교훈삼아 공격적인 운영을 펼치는 SKT에게 국내 다른 팀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승에서 이상혁은 아지르, 다이애나, 리븐으로 kt의 미드라이너 김상문을 완전히 찍어누르면서 게임을 휘어잡았다. 귀신같은 반응속도로 상대의 스킬을 피하는 이상혁을 보면서 팬들은 열광했다.


롤드컵 시즌5에서 이상혁은 미드 올라프를 제외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픽만 했지만, 그 평범한 픽에서 나오는 강력함은 전 세계 모든 미드라이너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이상혁은 MSI에서 자신들을 꺾었던 EDG, 그리고 자신의 천적으로 불리던 허원석에게 그간의 울분을 토해내듯 라이즈로 스킬을 쏟아부으며 적을 맵에서 지워버렸다. 룰루, 라이즈 등으로 AHQ와 오리젠을 잡아먹은 이상혁은 결승에서도 라이즈를 선택,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솔로킬을 만들더니 킬 관여율 100%를 달성했다.

SKT가 롤드컵 시즌5에서 기록한 패배는 단 1패. 역대 최고 승률로 롤드컵을 제패함과 동시에 부진에 빠졌던 SKT와 이상혁 자신을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의 팀, 최강의 미드라이너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상혁은 데뷔할 때부터 모두의 주목을 받았고,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가 아닌 순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팀의 기량이 떨어지고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이를 겪어본 적이 없는 이상혁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혁은 길었던 슬럼프, 그리고 롤드컵 시즌4에 진출조차 하지 못했던 아픔을 딛고 두 번째 롤드컵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이상혁은 LoL 프로씬 전체를 통틀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았고, 본인의 존재 자체가 한국 LoL을 넘어 전 세계 LoL을 상징하는 선수가 됐다. 이제 불과 20살이 된 이상혁. 과연 그가 앞으로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더 위대한 선수로 거듭날지 지켜보는 것도 LoL 팬들에게 즐거운 관심사가 될 것이다.

▲ 핫식스 롤챔스 섬머 2013 '페이커' VS '류' 일기토 (출처 : 유튜브 GameTube)


▲ 단신으로 적 전원을 쫓아내는 '페이커'의 라이즈 (출처 : 유튜브 OPLOLReplay)